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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악몽과 몽상 1 - 스티븐 킹 단편집 ㅣ 악몽과 몽상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5월
평점 :
추리소설 작가의 능력은 뻔한 스토리를 특별한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데 달려 있다. 그런 까닭에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고 나면 왠지 허탈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고작 이런 이야기를 읽으려고 밤을 새웠단 말인가, 하는 억울한 느낌도 들고 말이다. 이를테면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인데, 책을 읽는 중간에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데 추리소설의 묘미가 있다. 본전 생각은커녕 오히려 쫀득한 스릴과 꽁꽁 숨겨진 힌트, 그리고 독자의 후두부를 강타하는 대반전 등으로 인해 자신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여러 번 인정하곤 한다. 적어도 그만한 책이라면 밤을 새울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스스로 믿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장르에서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던 스티븐 킹은 그의 단편집 <악몽과 몽상 1>에서도 전문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복수는 차갑게 식혀서 먹었을 때 가장 맛있다.'는 스페인 속담으로 시작하는 이 책의 첫 소설 <돌런의 캐딜락>은 그의 소설이 늘 그렇듯 경쾌한 리듬을 타며 천천히 출발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학교 선생님이다. '나'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역시 같은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7년 전 당시 엘리자베스는 돌런의 도주 현장을 우연히 목격했고, FBI에서 신문을 받고 증언을 하겠다고도 했다. 말하자면 엘리자베스는 돌런의 도주를 목격한 증인이었던 셈인데 어느 날 저녁 그녀가 차에 타서 시동을 거는 순간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했고, '나'는 홀아비가 되었다. 증인이 사라지자 돌런은 자유의 몸이 되었고, 그의 집 라스베이거스의 펜트하우스로 돌아갔다.
"그는 그의 세계로 돌아갔고 나는 나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의 세계는 라스베이거스의 펜트하우스였고 나의 세계는 아무도 없는 성냥갑 주택이었다. 그의 세계에서는 모피와 스팽글이 달린 이브닝드레스로 휘감은 미녀들의 행진이 이어졌고 나의 세계에서는 정적이 이어졌다. 그가 회색 캐딜락을 네 대 갈아치우는 동안 나는 점점 망가져가는 뷰익 리비에라를 계속 타고 다녔다. 그의 머리가 은색으로 변하는 동안 내 머리는 그냥 없어졌다." (p.25)
'나'는 복수할 기회만 엿보며 돌런의 동선을 수 년째 면밀히 관찰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최종 복수 장소로 결정한 '나'는 네바다 고속도로 관리 공단에 입사 원서를 제출한다. 현장감독 하비 블로커는 40도를 웃도는 사막의 열기 속에서 삽을 들고 펄펄 끓는 역청을 펴는 일을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예상을 깨고 악착같이 버틴다. 보다 못한 블로커는 '나'에게 굴착기 운전을 연습하라고 말했다. 여름 내내 굴착기를 운전했던 '나'는 학교로 복귀한 후 이듬해 봄에 네바다 주 고속도로 위원회의 우편물 수신을 신청했다. '나'는 도로 재포장 공사를 의미하는 RPAV만 관심이 있었다.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7월 1일부터 7월 22일 사이에 도로 재포장 공사 일정이 확인되었다. '나'는 도로를 차단하고 우회도로 표지판을 세운 후 한밤중에 도로를 파헤쳤다. 달려오는 돌런의 캐딜락을 도로 아래에 묻을 생각이었다.
"그날의 남은 시간은 포효하는 엔진과 작렬하는 태양으로 뒤덮인, 길고 환한 지옥이었다. 케이스 조던 기사는 기어에 모래 덮개 씌우는 건 깜빡해놓고 양산은 제대로 치웠다. 조물주가 가끔 장난을 칠 때도 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조물주는 특이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다. 2시가 거의 다 됐을 때 아스팔트 조각들을 도랑에 모두 처박을 수 있었다." (p.62)
'나'는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체력은 바닥났지만 오직 복수를 위해 악착같이 버텼다. 모든 것은 준비되었다. '나'는 돌런이 타고 올 회색 캐딜락을 기다렸다. 돌런이 지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시각이 다가오고 나는 도로를 지나는 차량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조바심을 냈다.
"막힘없이 보이는 이 길의 저쪽 끝에서 커브길을 돌아 나온 캐딜락은 착각의 여지가 없었다. 머리 위 하늘과 같은 회색이었지만 동쪽으로 굽이치는 칙칙한 갈색 땅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도드라져 보였다. 그였다. 돌런이었다. 의구심과 망설임으로 얼룩졌던 기나긴 순간들이 순간, 아득하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돌런이었고 나는 그 회색 캐딜락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p.77)
우리는 한 치 앞에 펼쳐질 자신의 미래도 모른 채 누군가를 코너로 몰거나 해선 안 될 해코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명한 사람은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입지나 않을까 항상 살피고 삼가는 사람일 터,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터무니없이 순항을 할 때 우리는 종종 분에 넘치게 오만해지거나 '나'의 앞길을 아무도 막지 못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다음 장면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비록 자신의 미래를 낱낱이 예측할 수는 없지만 오만해지는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는 있다. 불운을 막기 위해 무당을 찾을 게 아니라 탐욕을 버리고 교만을 억제하는 게 자신의 불운을 막는 유일한 부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