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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자는 고백 - 십만 권의 책과 한 통의 마음
김소영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6월
평점 :
누군가의 추천 도서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책에 대한 그 사람과 나의 취향이 같아질 리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고르는 데에는 절대적인 영향력이 미친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겠습니다. 예컨대 우연히 어느 도서관에 들렀을 때 또는 친구와의 약속시간이 조금 남아 근처에 있는 서점에 잠깐 들렀을 때, 나의 눈에 띄는 서적은,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내 손에 들어오는 책은 언젠가 누군가의 추천 도서 목록에서 보았던, 스치듯 지나치며 읽었던 그 추천 도서 목록의 상단에 있었던 그 책이었음을 뒤늦게 확인하곤 합니다. 나는 그 사실에 경악하며, 속으로는 ' 이 줏대 없는 놈!' 하는 자책을 여러 번 반복하지만 그것도 그때뿐, 그 질긴 습관의 고리가 말끔히 사라지는 건 결코 아닙니다.
"한 명의 북큐레이터로서는 분명 부족했을 것이지만, 지난 4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천재지변이 있으나 매달 책을 보내는 일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책을 이야기하고 싶고, 공간의 한계로 인해 멀어지는 것이 싫어 만들게 된 북클럽은, 그 모든 한계를 고려치 않아도 지속할 수밖에 없을 만큼 저를 설레게 해주었습니다. 물리적 속성을 가진 '책'과 '편지'를 함께 보내는 일은 많은 사람의 노력을 요했습니다." (p.9 '서문' 중에서)
전직 아나운서로서 작가이자 큐레이션 서점 책발전소의 서점지기를 하고 있는 김소영 작가의 <같이 읽자는 고백>은 서문을 쓴 김소영 작가를 비롯하여 편지와 함께 북큐레이터로 활동했던 많은 사람들의 편지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김연수 작가를 비롯하여 신형철 평론가, 김초엽, 장류진, 김혼비, 이다혜, 이슬아, 최은영, 정보라, 장기하, 황선우, 김하나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이 책에 얽힌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북큐레이터로서 독자들이 함께 읽었으면 싶은 책들을 선정하여 편지 형식의 글을 남긴 것입니다. 그들이 선정한 책을 일러 자신의 인생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하루도 쉬지 않고 새로운 책이 쏟아지는 까닭에 우리가 삶을 지속하는 한 인생책이라 말할 수 있는 선택의 영역은 계속하여 확장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저는 이 책이 아마도 제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제가 읽은 베트남 작가가 쓴 소설이라는 이유 때문에도 여러분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싶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번역서를 읽지만 대체로 영미권 작가들이나 프랑스, 독일 같은 유럽, 아니면 일본이나 중국 같은 동아시아 작가들의 책을 읽잖아요. 그래서 저는 늘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p.118 백수린)
15년쯤 전 법정스님의 타계 후 나는 스님이 쓴 <내가 사랑한 책들>에 나오는 책들을 가능한 한 모두 읽어보려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나는 베스트셀러를 비롯한 다른 어떤 책에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오직 스님의 추천 도서만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은 책이 추천 도서 목록의 2/3를 넘어선 듯합니다.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스님이 권하는 책만 무작정 읽다 보니 스님의 마음 한 귀퉁이쯤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누군가를 존경하여 흠모한다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소영의 <같이 읽자는 고백>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까닭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위주로 읽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추천한 도서 목록이 상당하여 나는 또 누군가의 추천 도서를 읽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진실을 대면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 진실로 인해 상처받고 괴로운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일 겁니다. 저는 이 책을 한동안 읽지도 못할 정도로, 그 정도의 용기가 없을 정도로 비겁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책과 창작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소수의 책과 창작물들이 우리의 의식을 깨우고 그것을 접하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합니다. 저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읽으며 이 책을 쓴 작가의 절실함을, 용기를 느꼈습니다." (p.206 최은영)
며칠 선선하던 날씨는 비가 오면서 습도가 높아진 탓인지 다시 더워진 느낌입니다. 한여름 더위도 잊을 만큼 재미있는 책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듯합니다. 사람의 취향도 환경과 기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읽고 싶지 않았던 책도 오늘 저녁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까닭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동물입니다. 퇴근 후 나는 어쩌면 <같이 읽자는 고백>에서 봤던 도서 목록을 들고 가까운 도서관을 방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 손에 최종적으로 들리는 책은 그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도서 목록이 불현듯 떠오를지도 모르는 까닭입니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