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국경 섬을 걷다 - 당산나무에서 둘레길까지, 한국 섬 인문 기행
강제윤 지음 / 어른의시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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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꽤나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법정스님이 타계한 후 한동안 스님의 추천 도서만 읽었던 나는 어느 날 도서관에서 <숨어 사는 즐거움>을 검색하게 되었고, 강제윤 작가가 쓴 <숨어 사는 즐거움>을 빌려 읽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스님이 추천했던 책은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 쓴 <숨어 사는 즐거움>이었다. 나는 그야말로 헛다리를 짚은 셈인데 허균의 책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읽었던 강제윤의 <숨어 사는 즐거움>이 허균의 책을 읽지 못했던 나로서는 '꿩 대신 닭'이었는지 '닭 대신 꿩'이 되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1988년 시인으로 등단하였던 작가는 고향인 보길도에 정착하여 '보길도 시인'으로 살다가 2005년 보길도를 떠나 청도 한옥학교 한옥 목수 과정을 졸업한 뒤 2006년 가을 완도군 덕우도를 시작으로 10년 동안 한국의 유인도 500여 개를 거어서 순례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자동차와 손전화를 갖지 않고 육식을 하지 않는 3무의 삶을 살고 있다는 작가는 유랑자라기보다 구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시인이자 섬 환경운동가로서 그리고 사단법인 섬연구소의 소장이기도 한 작가의 신작 <바다의 국경 섬을 걷다>를 읽는 기분은 마치 오래전에 알던 친구를 다시 만나 반가운 술잔을 기울이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랬다.


"무인도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겠지만 무척 중요하다. 2014년 중국이 민간자본을 앞세우 우리의 무인도 하나를 매입하려 했다. 태안군 격렬비열도는 동.서.북 3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 중국과 가장 가까운 무인도인 서격렬비열도가 매물로 나왔었다. 우리나라 사람도 잘 모르는 서해의 외딴섬이 매물로 나온 사실을 중국이 어찌 알았을까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다행히 가격 협상이 결렬되어 서격렬비열도는 팔리지 않았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정부가 서격렬비열도를 포함한 8개의 무인도를 '외국인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며 한숨을 돌렸다."  (p.9~p.10 '여는 글' 중에서)


대학에서 스킨스쿠버 동아리를 했던 덕분에 나는 비교적 많은 섬을 다녔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바다와 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은 편이다. 섬에서 나고 자란 작가에 비해서는 견줄 바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작가는 고향인 보길도를 떠나 20여 년간 섬을 떠돌면서 섬 이야기를 복원하였고, 그 결과물로 이 책을 출간하였다. 8편의 나무 이야기와 7편의 길 이야기, 9편의 사람 이야기와 7편의 역사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저자는 '섬의 환대와 돌봄'으로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섬에 대한 저자의 사랑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외지인에 대한 경계가 심한 섬사람들에게 있어 그들만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작가에게는 섬에 사는 사람들 대다수가 경계를 풀고 그들의 속내를 한껏 풀어놓았다는 건 섬을 사랑하는 작가의 진심을 그들이 알아챘다는 것이다.


"내수전일출전망대에 올랐다가 되돌아 내려오면 석포로 가는 숲길이 이어진다. 또 한동안 길을 가다 보면 느닷없이 쉼터가 나타난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정매화골이다. 옛날 개척민 중 정매화라는 이가 살던 골짜기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매화가 살다 간 뒤 이곳은 1962년 9월부터 이효영 씨 부부가 삼 남매와 살았다. 이씨 일가는 1981년까지 19년을 이 외딴 골짜기에서 살았는데 이 씨 부부의 이름이 남은 것은 그들이 이곳에 살면서 폭설, 폭우에 조난당하거나 굶주림에 지친 사람을 300여 명이나 구조한 미담이 있기 때문이다."  (p.107)


책의 4부 '섬에는 역사가 있다'에 실린 내용은 어쩌면 이 책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뭍과의 교통이 불편했던 섬에는 섬사람들만의 역사가 유지되었고, 그들만의 문화와 관습이 존재했을 테니까 말이다. 한 나라의 국민이지만 나라의 역사에 온전히 편입되지 않았던 그들만의 역사는 그래서 더 애틋하다. 과거 쾌속선이 없던 시절에 울릉도는 정말 고립된 섬이었다. 대학 시절 동아리 선배들과 함께 여객선을 타고 울릉도를 갔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뱃멀미에 시달리며 12시간을 가야 하는 울릉도 여행은 그야말로 고난의 뱃길이었다. 지금은 쾌속선은 3시간 내외, 일반페리는 6~7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으니 조금 과장하면 육지나 진배없는 곳이 된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교통이 발달해도 섬은 섬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곳의 역사와 문화가 남아 있는 한 섬은 섬으로서의 자생적인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찾는 강화도만 하더라도 우리는 그곳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발견하곤 한다.


"강화도는 '불멸의 섬'이다. 세계 최강 몽골제국의 군대와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제국, 미국의 침략에도 끝끝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은 섬이다. 하지만 강화 사람들은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 안아야 했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 왕성이 옮겨 오면서 왕궁과 성벽 건설 등의 노역에 시달렸고 조선시대 말에는 프랑스, 미국 등 서구 열강의 침략 전쟁으로 전란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p.309)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이제 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섬나라에 불과하다. 대륙과의 연결이 끊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류가 활발하다는 건 문화와 문화가 뒤섞이고, 역사와 역사가 뒤섞이면서 종래에는 사람마저 그 정체성을 잃고 희미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섬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고유한 문화, 고유한 역사가 대를 이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흔들릴 때 또는 유구한 역사의 숨결마저 미약해져 젖내 나는 어머니의 품이 몹시도 그리울 때 우리는 뭍을 떠나 섬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는 고향의 온기가, 구수한 고향의 냄새가 언제든 우리를 반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잊고 지내던 우리 자신을 찾게 되는 것이다. 강제윤 작가의 <바다의 국경 섬을 걷다>가 반가운 이유도 그런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지금은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른 것도... 언젠가 섬이 그리운 날엔 나는 또다시 강제윤의 <바다의 국경 섬을 걷다>를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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