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해가 짧아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내가 아침 운동을 나가는 5시 30분은 한낮처럼 환해서 한 점 어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구름이 없는 맑은 날에도 조금씩 어스름이 깔리더니 오늘 아침에는 희끄무레 나무의 형체마저 선명하지 않았다. 조금 더 지나면 완전한 어둠이 그 시각을 지배하게 될 터이다. 그래서였을까, 숲은 어제와는 뭔가 달라진 분위기였다. 엊저녁에 조금 내린 비로 등산로는 부드러웠고, 우듬지에서 떨어진 참나무 잔가지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입추가 지나면서 며칠 흐리고 간간이 비가 내린 탓인지 누그러진 폭염에 아침 기온은 제법 선선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매년 이맘때면 늘 보던 풍경. 그것 때문에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을 터, 나는 산에 올라 운동을 하면서도 내내 그 생각에 골똘했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비로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약속이나 한 듯 매미 울음소리가 뚝 끊겼던 것이다. 말매미 소리가 요란한 도심의 주택가와는 다르게 숲에서는 '맴 맴 맴 맴' 우는 참매미 소리만 가득한데, 매미들이 단체로 이사라도 갔는지 시끄럽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숲은 오직 적막함에 놓여 있었다. 숲의 고요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이따금 멧비둘기만 '구구구구' 낮은 소리로 울었다.
지금은 다시 한낮의 무더위가 거리를 뒤덮고 있다. 그 무더위를 몰아내려는 듯 목청 좋은 말매미가 한껏 소리를 높이고, 사람들은 소음과 더위를 피해 어딘가로 숨어들고 있다. 우리가 사는 환경은 이렇듯 시시각각 변하고 있지만, 오직 제 것에만 관심이 있는 현대인들은 천기의 변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숙맥이다. 투미할 정도로 말이다. 치넨 미키토가 쓴 <이웃집 너스에이드>를 읽고 있다. 저자는 현재 내과 전문의로 일하며 집필을 병행하고 있다는데, 세상에는 정말 믿기 힘든 정도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와 같은 장삼이사를 이따금 주눅 들게 하는 이들이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간호조무사에 지나지 않는 내게는 아무 힘도 없어...... 절망과 무력감으로 미오가 무너져 내리려던 그때였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침대 위에서 하나에가 상체를 일으켰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미오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불안이 떠올라 있었다. 미오는 눈을 부릅뜨고서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문다. 포기하지 마! 하나에 씨를 가족 곁으로, 사랑하는 딸과 손자 곁으로 반드시 돌려 보낸다." (p.60)
내일은 다시 비가 예보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열대야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뒤척이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날씨 변화에 민감할 필요는 없지만,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약간의 관심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