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국경 섬을 걷다 - 당산나무에서 둘레길까지, 한국 섬 인문 기행
강제윤 지음 / 어른의시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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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꽤나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법정스님이 타계한 후 한동안 스님의 추천 도서만 읽었던 나는 어느 날 도서관에서 <숨어 사는 즐거움>을 검색하게 되었고, 강제윤 작가가 쓴 <숨어 사는 즐거움>을 빌려 읽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스님이 추천했던 책은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 쓴 <숨어 사는 즐거움>이었다. 나는 그야말로 헛다리를 짚은 셈인데 허균의 책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읽었던 강제윤의 <숨어 사는 즐거움>이 허균의 책을 읽지 못했던 나로서는 '꿩 대신 닭'이었는지 '닭 대신 꿩'이 되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1988년 시인으로 등단하였던 작가는 고향인 보길도에 정착하여 '보길도 시인'으로 살다가 2005년 보길도를 떠나 청도 한옥학교 한옥 목수 과정을 졸업한 뒤 2006년 가을 완도군 덕우도를 시작으로 10년 동안 한국의 유인도 500여 개를 거어서 순례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자동차와 손전화를 갖지 않고 육식을 하지 않는 3무의 삶을 살고 있다는 작가는 유랑자라기보다 구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시인이자 섬 환경운동가로서 그리고 사단법인 섬연구소의 소장이기도 한 작가의 신작 <바다의 국경 섬을 걷다>를 읽는 기분은 마치 오래전에 알던 친구를 다시 만나 반가운 술잔을 기울이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랬다.


"무인도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겠지만 무척 중요하다. 2014년 중국이 민간자본을 앞세우 우리의 무인도 하나를 매입하려 했다. 태안군 격렬비열도는 동.서.북 3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 중국과 가장 가까운 무인도인 서격렬비열도가 매물로 나왔었다. 우리나라 사람도 잘 모르는 서해의 외딴섬이 매물로 나온 사실을 중국이 어찌 알았을까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다행히 가격 협상이 결렬되어 서격렬비열도는 팔리지 않았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정부가 서격렬비열도를 포함한 8개의 무인도를 '외국인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며 한숨을 돌렸다."  (p.9~p.10 '여는 글' 중에서)


대학에서 스킨스쿠버 동아리를 했던 덕분에 나는 비교적 많은 섬을 다녔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바다와 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은 편이다. 섬에서 나고 자란 작가에 비해서는 견줄 바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작가는 고향인 보길도를 떠나 20여 년간 섬을 떠돌면서 섬 이야기를 복원하였고, 그 결과물로 이 책을 출간하였다. 8편의 나무 이야기와 7편의 길 이야기, 9편의 사람 이야기와 7편의 역사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저자는 '섬의 환대와 돌봄'으로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섬에 대한 저자의 사랑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외지인에 대한 경계가 심한 섬사람들에게 있어 그들만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작가에게는 섬에 사는 사람들 대다수가 경계를 풀고 그들의 속내를 한껏 풀어놓았다는 건 섬을 사랑하는 작가의 진심을 그들이 알아챘다는 것이다.


"내수전일출전망대에 올랐다가 되돌아 내려오면 석포로 가는 숲길이 이어진다. 또 한동안 길을 가다 보면 느닷없이 쉼터가 나타난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정매화골이다. 옛날 개척민 중 정매화라는 이가 살던 골짜기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매화가 살다 간 뒤 이곳은 1962년 9월부터 이효영 씨 부부가 삼 남매와 살았다. 이씨 일가는 1981년까지 19년을 이 외딴 골짜기에서 살았는데 이 씨 부부의 이름이 남은 것은 그들이 이곳에 살면서 폭설, 폭우에 조난당하거나 굶주림에 지친 사람을 300여 명이나 구조한 미담이 있기 때문이다."  (p.107)


책의 4부 '섬에는 역사가 있다'에 실린 내용은 어쩌면 이 책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뭍과의 교통이 불편했던 섬에는 섬사람들만의 역사가 유지되었고, 그들만의 문화와 관습이 존재했을 테니까 말이다. 한 나라의 국민이지만 나라의 역사에 온전히 편입되지 않았던 그들만의 역사는 그래서 더 애틋하다. 과거 쾌속선이 없던 시절에 울릉도는 정말 고립된 섬이었다. 대학 시절 동아리 선배들과 함께 여객선을 타고 울릉도를 갔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뱃멀미에 시달리며 12시간을 가야 하는 울릉도 여행은 그야말로 고난의 뱃길이었다. 지금은 쾌속선은 3시간 내외, 일반페리는 6~7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으니 조금 과장하면 육지나 진배없는 곳이 된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교통이 발달해도 섬은 섬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곳의 역사와 문화가 남아 있는 한 섬은 섬으로서의 자생적인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찾는 강화도만 하더라도 우리는 그곳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발견하곤 한다.


"강화도는 '불멸의 섬'이다. 세계 최강 몽골제국의 군대와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제국, 미국의 침략에도 끝끝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은 섬이다. 하지만 강화 사람들은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 안아야 했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 왕성이 옮겨 오면서 왕궁과 성벽 건설 등의 노역에 시달렸고 조선시대 말에는 프랑스, 미국 등 서구 열강의 침략 전쟁으로 전란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p.309)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이제 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섬나라에 불과하다. 대륙과의 연결이 끊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류가 활발하다는 건 문화와 문화가 뒤섞이고, 역사와 역사가 뒤섞이면서 종래에는 사람마저 그 정체성을 잃고 희미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섬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고유한 문화, 고유한 역사가 대를 이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흔들릴 때 또는 유구한 역사의 숨결마저 미약해져 젖내 나는 어머니의 품이 몹시도 그리울 때 우리는 뭍을 떠나 섬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는 고향의 온기가, 구수한 고향의 냄새가 언제든 우리를 반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잊고 지내던 우리 자신을 찾게 되는 것이다. 강제윤 작가의 <바다의 국경 섬을 걷다>가 반가운 이유도 그런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지금은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른 것도... 언젠가 섬이 그리운 날엔 나는 또다시 강제윤의 <바다의 국경 섬을 걷다>를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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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훨씬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물론 내가 쓰는 글이라는 게 고작 낙서 수준의 짧은 잡글에 불과한 게 전부이지만, 내가 이렇게 글을 많이 쓴다는 건 뭔가 해결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업무에 집중할 수 없는 신경 쓰이는 일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없을 때 나는 주로 방금 하던 일을 작파하고 잠시 짬을 내어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우리가 조절하기 힘든 감정의 찌꺼기, 이를테면 분노, 화, 불안, 슬픔 등이 치솟을 때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어쭙잖은 글이지만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온 신경을 오직 글 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웬만한 고민쯤은 머릿속에서 툭툭 털어낼 수 있게 된다. 조절하기 힘든 감정의 찌꺼기들도 다르지 않다. 글쓰기의 효과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물론 글쓰기가 나의 주업무가 아닌 까닭에 글을 쓰는 시간은 대개 30분에서 1시간을 넘지 않도록 한다. 물론 그 시간 내에 글을 완성하지 못하면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지만 집중하는 일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다.


우리의 인생은 일종의 병렬독서와 같은 것이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는 관심을 끌 만한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읽는 게 좋다. 그렇게 한동안 다른 분야의 책을 읽다 보면 방금 전에 읽던 책의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집중할 수도 없는 한 권의 책을 꾸역꾸역 계속하여 읽는다는 건 시간낭비일 때가 많다. 다 읽은 후에도 책의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아 결국 다시 읽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없다는 건 지금 자신의 신경이 여러 갈래로 분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일을 계속한다는 건 시간낭비이거나 사고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기본적으로 멀티태스킹이 되지 않는 나로서는 하나의 일에 집중하기 위한 방법을 열심히 찾고 궁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게 된 일이 글쓰기와 독서이다. 때로는 글쓰기가 내 감정의 배설 창구가 되는 느낌도 들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글이라는 건 어느 정도 자신의 감정을 순화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글은 쓸 수 없는 까닭에 나의 글에는 날것의 감정은 잘 담기지 않는다.


오늘 아침의 등산로에선 온 산의 매미가 돌림노래라도 하려는 듯 정말 미친 듯이 울어댔다. 엊그제 아침의 정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그들에게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듯 짝짓기를 하기 위한 구애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가 예상하는 삶의 결과는 번번이 깨지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삶의 계획조차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지만 만족할 수 없는 결과가 우리 앞에 놓일지라도 크게 실망하거나 화를 낼 필요는 없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실망스러운 성적표에 화를 억누를 수 없다면 그 감정을 찬찬히 살펴 글로 옮겨보라. 그 글을 다 쓰기도 전에 화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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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8-14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 날 때나 스트레스 만당일 때 일기를 쓰고 나면 기분이 나아지더라고요. 주업무도 아닌 글쓰기를 척척 해 내시는 분들을 가장 부러워합니다.

꼼쥐 2025-08-16 15:08   좋아요 1 | URL
정말 그렇죠?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 일기를 쓰거나 다른 글을 써도 기분이 좀 풀리고 나아지는 것 같아요. 심지어 낙서만 해도. 주업무가 아니라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같이 읽자는 고백 - 십만 권의 책과 한 통의 마음
김소영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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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추천 도서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책에 대한 그 사람과 나의 취향이 같아질 리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고르는 데에는 절대적인 영향력이 미친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겠습니다. 예컨대 우연히 어느 도서관에 들렀을 때 또는 친구와의 약속시간이 조금 남아 근처에 있는 서점에 잠깐 들렀을 때, 나의 눈에 띄는 서적은,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내 손에 들어오는 책은 언젠가 누군가의 추천 도서 목록에서 보았던, 스치듯 지나치며 읽었던 그 추천 도서 목록의 상단에 있었던 그 책이었음을 뒤늦게 확인하곤 합니다. 나는 그 사실에 경악하며, 속으로는 ' 이 줏대 없는 놈!' 하는 자책을 여러 번 반복하지만 그것도 그때뿐, 그 질긴 습관의 고리가 말끔히 사라지는 건 결코 아닙니다.


"한 명의 북큐레이터로서는 분명 부족했을 것이지만, 지난 4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천재지변이 있으나 매달 책을 보내는 일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책을 이야기하고 싶고, 공간의 한계로 인해 멀어지는 것이 싫어 만들게 된 북클럽은, 그 모든 한계를 고려치 않아도 지속할 수밖에 없을 만큼 저를 설레게 해주었습니다. 물리적 속성을 가진 '책'과 '편지'를 함께 보내는 일은 많은 사람의 노력을 요했습니다."  (p.9 '서문' 중에서)


전직 아나운서로서 작가이자 큐레이션 서점 책발전소의 서점지기를 하고 있는 김소영 작가의 <같이 읽자는 고백>은 서문을 쓴 김소영 작가를 비롯하여 편지와 함께 북큐레이터로 활동했던 많은 사람들의 편지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김연수 작가를 비롯하여 신형철 평론가, 김초엽, 장류진, 김혼비, 이다혜, 이슬아, 최은영, 정보라, 장기하, 황선우, 김하나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이 책에 얽힌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북큐레이터로서 독자들이 함께 읽었으면 싶은 책들을 선정하여 편지 형식의 글을 남긴 것입니다. 그들이 선정한 책을 일러 자신의 인생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하루도 쉬지 않고 새로운 책이 쏟아지는 까닭에 우리가 삶을 지속하는 한 인생책이라 말할 수 있는 선택의 영역은 계속하여 확장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저는 이 책이 아마도 제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제가 읽은 베트남 작가가 쓴 소설이라는 이유 때문에도 여러분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싶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번역서를 읽지만 대체로 영미권 작가들이나 프랑스, 독일 같은 유럽, 아니면 일본이나 중국 같은 동아시아 작가들의 책을 읽잖아요. 그래서 저는 늘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p.118 백수린)


15년쯤 전 법정스님의 타계 후 나는 스님이 쓴 <내가 사랑한 책들>에 나오는 책들을 가능한 한 모두 읽어보려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나는 베스트셀러를 비롯한 다른 어떤 책에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오직 스님의 추천 도서만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은 책이 추천 도서 목록의 2/3를 넘어선 듯합니다.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스님이 권하는 책만 무작정 읽다 보니 스님의 마음 한 귀퉁이쯤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누군가를 존경하여 흠모한다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소영의 <같이 읽자는 고백>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까닭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위주로 읽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추천한 도서 목록이 상당하여 나는 또 누군가의 추천 도서를 읽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진실을 대면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 진실로 인해 상처받고 괴로운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일 겁니다. 저는 이 책을 한동안 읽지도 못할 정도로, 그 정도의 용기가 없을 정도로 비겁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책과 창작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소수의 책과 창작물들이 우리의 의식을 깨우고 그것을 접하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합니다. 저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읽으며 이 책을 쓴 작가의 절실함을, 용기를 느꼈습니다."  (p.206 최은영)


며칠 선선하던 날씨는 비가 오면서 습도가 높아진 탓인지 다시 더워진 느낌입니다. 한여름 더위도 잊을 만큼 재미있는 책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듯합니다. 사람의 취향도 환경과 기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읽고 싶지 않았던 책도 오늘 저녁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까닭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동물입니다. 퇴근 후 나는 어쩌면 <같이 읽자는 고백>에서 봤던 도서 목록을 들고 가까운 도서관을 방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 손에 최종적으로 들리는 책은 그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도서 목록이 불현듯 떠오를지도 모르는 까닭입니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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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해가 짧아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내가 아침 운동을 나가는 5시 30분은 한낮처럼 환해서 한 점 어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구름이 없는 맑은 날에도 조금씩 어스름이 깔리더니 오늘 아침에는 희끄무레 나무의 형체마저 선명하지 않았다. 조금 더 지나면 완전한 어둠이 그 시각을 지배하게 될 터이다. 그래서였을까, 숲은 어제와는 뭔가 달라진 분위기였다. 엊저녁에 조금 내린 비로 등산로는 부드러웠고, 우듬지에서 떨어진 참나무 잔가지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입추가 지나면서 며칠 흐리고 간간이 비가 내린 탓인지 누그러진 폭염에 아침 기온은 제법 선선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매년 이맘때면 늘 보던 풍경. 그것 때문에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을 터, 나는 산에 올라 운동을 하면서도 내내 그 생각에 골똘했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비로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약속이나 한 듯 매미 울음소리가 뚝 끊겼던 것이다. 말매미 소리가 요란한 도심의 주택가와는 다르게 숲에서는 '맴 맴 맴 맴' 우는 참매미 소리만 가득한데, 매미들이 단체로 이사라도 갔는지 시끄럽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숲은 오직 적막함에 놓여 있었다. 숲의 고요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이따금 멧비둘기만 '구구구구' 낮은 소리로 울었다.


지금은 다시 한낮의 무더위가 거리를 뒤덮고 있다. 그 무더위를 몰아내려는 듯 목청 좋은 말매미가 한껏 소리를 높이고, 사람들은 소음과 더위를 피해 어딘가로 숨어들고 있다. 우리가 사는 환경은 이렇듯 시시각각 변하고 있지만, 오직 제 것에만 관심이 있는 현대인들은 천기의 변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숙맥이다. 투미할 정도로 말이다. 치넨 미키토가 쓴 <이웃집 너스에이드>를 읽고 있다. 저자는 현재 내과 전문의로 일하며 집필을 병행하고 있다는데, 세상에는 정말 믿기 힘든 정도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와 같은 장삼이사를 이따금 주눅 들게 하는 이들이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간호조무사에 지나지 않는 내게는 아무 힘도 없어...... 절망과 무력감으로 미오가 무너져 내리려던 그때였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침대 위에서 하나에가 상체를 일으켰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미오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불안이 떠올라 있었다. 미오는 눈을 부릅뜨고서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문다. 포기하지 마! 하나에 씨를 가족 곁으로, 사랑하는 딸과 손자 곁으로 반드시 돌려 보낸다."  (p.60)

내일은 다시 비가 예보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열대야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뒤척이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날씨 변화에 민감할 필요는 없지만,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약간의 관심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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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8-12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가을은 여름 안에 들어와 있네요. 풀벌레 소리가 들립니다.

꼼쥐 2025-08-13 16:32   좋아요 0 | URL
그런 것 같아요. 지난 며칠 동안 여름 같지 않은 여름을 보낸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은 다시 또 더워지는 듯하네요.ㅜㅜ
 
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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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일기를 이토록 열심히 읽었던 적이 과연 있을까 싶다. 내가 직접 겪은 일도 아닌데 그럴 필요성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대충대충, 건성건성 그런 느낌으로 읽었던 게 다가 아닐까. 아무튼 그랬다. 그러나 황정은의 <작은 일기>는 차마 그렇게 읽을 수가 없었다. 황정은의 <작은 일기>를 읽고 있노라면 마치 기억의 타임머신을 타고 속도를 최대한 낮춰 아주 천천히 그날을 향해 복기하듯 나아가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나아가는 동안 작가의 경험과 나의 경험이 어떤 시간에서 만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면서 아주 가까운 궤적을 스치듯이 지나고 있음을 확인한다. 결국 우리는 2024년 12월 3일 오후 열 시 이십삼 분에 만날 것을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과거를 향해, 복기하듯 아주 천천히,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떤 양심들의 상태가 내 예상이나 기대보다 처참하다. 그걸 목격하느라 매일 지치고 다친다. 기운을 너무 잃지 않으려면 거리로 나가 사람들 얼굴을 봐야 한다. 이게 옳지 않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보고 말을 듣고 그들 곁에서 걷는 일이, 그런 사람들도 세상에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이 내게 필요하다. (내란 옹호 집회에 참석하는 이들도 이러하면 어쩌지.)"  (p.67)


원하는 결과를 알고 있는 지금, <작은 일기>를 읽으며 과거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그저 암담했던, 앞을 가늠할 수 없었던 그때의 상황은 쉽게 낙관할 수 없었다. 낙관은커녕 계엄 이전의 상태로 퇴행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전전긍긍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걷듯 했다. 그래서 황정은의 <작은 일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현재의 상황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일기를 읽고 있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길한 악몽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은 왜일까. 정권이 바뀐 작금의 현실에도 주변에는 '윤 어게인'을 외치는 자들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구치소에 있는 윤석열은 조사와 재판을 전면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란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것이다.


"'한강진 대첩'과 '키세스단'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아침 뉴스를 통해 그들을 보았다. 서울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 사람들 몸을 덮은 은박 담요 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전날처럼 또 누군가는 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많은 이들이 그런 모습으로 밤을 보낼 줄은 몰랐다. 그렇게 다시 서로를 돕고 살피며 밤을 보낼 줄은."  (p.87)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는데 그게 어떻게 내란이냐?'며 윤석열의 무죄를 주장하곤 한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논리. 누군가가 평화로운 가정집에 흉기를 들고 침입했다가 깜짝 놀란 집주인이 소리치는 바람에 아무것도 훔치지 못한 채 도망쳐 나왔다면 그는 무죄라는 주장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그들의 논리에 어이가 없어 때로는 실소가 터지지만, 내가 그들과 동시대를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불쑥 화가 치솟는다. 나도 작가도 윤석열의 파면 선고가 있었던 2025년 4월 4일까지 내면에서 치솟는 분노를 우리는 얼마나 가까스로 삭이며 울퉁불퉁한 시간들을 견뎌 왔던 것일까. 그런 시간들에 대한 위로는 누구로부터 받아내야 할 것인가.


"어리석음이 종종 늙음의 얼굴로 온다는 것은 기필코 늙는 존재인 내게도 섬뜩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 어리석음이 마침내 늙음에서 개화했겠나, 인생 곳곳에 만발했을 것이다. 남의 인생을 이렇게 함부로 생각하며 앉아 있다. 시국이 이래서 헛소리하는 이들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있다."  (p.142)


우리는 그렇게 다시 봄을 맞았고, 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곳곳에는 계엄의 정당성을 외치는 이들과 윤석열의 무죄를 주장하는 이들이 마치 일제 치하의 고등계 순사처럼 포진되어 있다. 내란 정국에서 보았던 건전한 시민들이 이 사회를 지탱하고 굳건한 힘과 의지로 민주 시민의 역량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던 반민주 세력이 우리 사회를 언제라도 다시 전복하려 들 것이다. 한번 보였던 바퀴벌레가 좀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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