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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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작가가 쓴 소설인 줄 알았다. 혹시 번역가가 바뀌었나 해서 신경도 쓰지 않았던 번역가의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작가의 이름은 에쿠니 가오리, 번역가는 김난주.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번역을 맡았던 사람은 주로 김난주 또는 신유희 번역가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달라졌다고 느낀 나의 감상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내가 알던 에쿠니 가오리는 간결한 문체와 절제된 감성, 그리고 인간의 욕망에 대한 거침없으면서도 적나라한 묘사, 각이 잡힌 구성 등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의 최신작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은 문체에서부터 구성에 이르기까지 내가 알던 에쿠니 가오리가 아니었다. 문체는 부드럽고 조곤조곤 길어졌으며, 독자들을 감싸는 듯한 다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세이케 리에는 다미코의 대학 시절 친구다. 외국 금융회사에서 일하느라 영국에서 오래 생활했다. 한 달 전, 일을 그만두고 귀국할 텐데 살 곳이 정해질 때까지 당분간 너희 집에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와서, 다미코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 집에는 남편과 아이가 있지만,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다미코는 그 어느 쪽도 없다."  (p.8)


소설은 친하게 지냈던 대학 동창 중 한 명인 리에가 오랜 해외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세 사람의 대학 동창인 다미코와 리에, 그리고 사키는 현재 그들이 처한 상황도 크게 다르다. 한때 결혼을 했었으나 이혼을 하고 다시 혼자가 된 리에, 평범한 가정을 꿈꾸었으나 50대 후반이 된 지금도 작가로서 어머니 가오루와 함께 살고 있는 다미코, 아들 둘을 낳은 주부로서 무심한 남편과의 기계적인 일상을 반복하면서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문병하기 위해 요양원을 드나드는 사키는 이른 나이에 결혼하겠다는 큰아들과의 갈등 상황에 고민하고 있다.


"아마도 가온이 제안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만나고서 알았는데, 가이는 벌써 가온에게 꽉 잡혀 있었다. 아들이 완전히 독립하는 셈이니까 어머니가 무척 허전할 거다, 그러니 그 빈자리를 메울 것이 필요하다는 둥 하고. 어이가 없다. 이 집에는 손이 많이 가는 남자가 둘이나 있고, 보살펴야 하고 보살핀 만큼 풍요롭게 답해 주는 마당도 있다. 그런데다 시설에 있기는 하지만, 늙은 시어머니도 보살펴야 한다. 그런데 뭐가 부족하다는 것인지. 요는 둘이서 사키의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속셈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화가 났다. 분개하는 생각을 넘어 피가 거꾸로 치솟을 것 같은데, 그건 사키의 방식이 아니다."  (p.217~p.218)


대학 시절 '쓰리 걸스'로 불리며 친하게 지냈던 리에와 다미코, 그리고 사키는 리에의 귀국과 함께 완전체가 되었지만, 그들 앞에 놓인 현실과 각각 떨어져서 살았던 독립된 삶의 관성이 시간을 거슬러 과거 그들의 대학 시절로 향하는 추억 여행에 장애물로 작용한다. 소설은 그렇게 과거 절친했던 세 사람의 삶을 조망하면서 얽히고설킨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풀어나간다. 우리의 삶은 이렇듯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성격의 사람들이 우연이라는 선물을 통해 관계를 맺고, 약속이나 한 듯 흩어지기도 하면서 어울렁더울렁 살아가게 마련이다. 작가는 그런 모습들을 가감 없이 포착하여 우리들 앞에 자연스레 펼쳐 보인다.


"리에가 이사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다미코는 솔직히 침실을 되찾아 좋았고, 그보다 복도에 쌓인 대량의 짐이 없어지면 개운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정작 리에가 없어지고 나니, 예상보다 훨씬 허전했다. 실제로 그 비 내리는 오후, 짐은 많았지만 이사는 순식간에 끝났다. 업자 두 명의 힘이 얼마나 세던지, 작업은 또 얼마나 효율적이고 신속하던지 가오루와 다미코는 그저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트럭을 선도하듯 차를 몰고 후다닥 사라진 리에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다미코는 상실감을 느낀다."  (p.348~p.349)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도시를 떠나 자연에 파묻히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고 싶은 까닭이다. 말하자면 텔레비전 속 자연인의 삶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익숙하지 않은 도시내기들에게 자연에서의 생활은 단 한 달도 버티기 힘든 게 사실이다. 시끌벅적한 도시의 삶은 복잡한 관계로 인해 때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 관계를 모두 지우고 나면 차오르는 상실감과 고독을 우리는 감당하기 힘들다. 어쩌면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맺게 되는 복잡다단한 관계에 대해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그렇게 의미도 없이 흘러가는 것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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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새해가 밝았다. 2024년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그러나 해결하지 못한 삶의 과제가 언제나 그렇듯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새해가 되었건만 여전히 2024년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은 비단 나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던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가 마냥 어색하거나 쑥스러워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웅얼웅얼 속으로만 삼키고 만다. 새해라면 늘 덕담처럼 주고받던 말이었는데...


계엄령과 탄핵 국면에 이어 항공기 사고에 이르기까지...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은, 그 시발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윤석열을 선택한 것일 테지만 당사자인 그는 지금껏 인간 이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아닌가.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를 통해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더니 이제는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대통령 관저에 숨어 나오지도 않는, 이른바 '뻗치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법 시스템과 헌법을 무시한 채 마치 고려 중기의 무신정권 시기처럼 경호처 직원들과 군인을 자신의 사병인 양 부리며 알량한 권세를 누리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평소에도 젊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기는 나는 인턴사원의 면접이 있을라치면 이따금 자청하여 들어가기도 하는데 어제도 그랬었다. 20대의 푸릇푸릇한 청춘들. 그들과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나로서는 더없이 즐겁고 설레는데 그들은 자리가 자리인 만큼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런 자리에서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질문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지만 뉴스에서는 속보를 통해 내란 수괴 혐의자 윤석열에 대한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있었으므로 이 상황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너무나 궁금해서 슬쩍 물었었다.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우경화되고 있다는 걸 나 역시 모르는 바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대답 역시 그와 비슷한 대답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현실은 많이 달랐다. 그중 한 친구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저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을 지지했고, 그가 말한 '공정과 상식'을 임기 동안 잘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예상은 대통령의 임기 내내 단 한 번도 지켜진 적 없었고, 생각지도 못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까지 목격하면서 제 판단이 무척이나 잘못된 것이었음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더구나 대통령의 잘못을 연일 감싸고도는 여당의 모습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공부하고 참여하는 주권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우리의 일상은 언제든 파괴될 수 있다는 걸 주변 친구들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당당하고 떳떳하게 조사받겠다던 윤석열 본인의 말은 허언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가 했던 거짓말이 어디 이 번뿐일까마는 대통령 관저에 꽁꽁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비겁하고 찌질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젊은 친구들의 자조 섞인 후회가 하루를 잠식했던 그런 날이었다. 희망은 멀고 일상은 답답한 그런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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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인간심리 속 문장의 기억 Shakespeare, Memory of Sentences (양장) - 한 권으로 보는 셰익스피어 심리학 Memory of Sentences Series 3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박예진 편역 / 센텐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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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울수록 몸속 세포 하나하나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말하자면 추위는 세포 감각을 일깨우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글의 느낌을 되살리는 건 무엇일까?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그것은 바로 슬픔이다. 슬픔은, 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 하나하나의, 낱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생생하게 되살린다. 그럴 때의 슬픔은 비가 내려서 혹은 낙엽이 져서 일시적으로 느끼는 낭만적인 슬픔이 아니라 깊은 고통 속에서 맛보는 처연한 슬픔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에서 깊은 슬픔을 체험한 작가의 글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넓은 공감력을 갖게 된다.


고전문학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북 큐레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예진 작가의 신작 <셰익스피어, 인간심리 속 문장의 기억>을 읽는 내내 나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에 대해 생각했다. 16세기말에서 17세기초를 살았던 그에 대해 기록으로 남겨진 단편적인 사실 외에 작가의 삶에 대한 전모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의 글 속에는 언제나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슬픔으로부터 건져 올린 보편적 깨달음의 경구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다만 슬픔이 슬픔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깨달음을 통한 작은 기쁨으로 재탄생하는 감정의 탈피를 경험하도록 한다.


"sentence 114

I have done penance for contemning Love, whose high imperious thoughts punish'd me with bitter fasts, with penitential groans, with nightly tears, and daily heart-sore sighs; for in revenge of my contempt for love, love hath chased sleep from my enthralled eyes and made them watchers of my own heart's sorrow.

나는 사랑을 경시한 것을 속죄하네. 사랑의 높은 오만한 생각들이 나를 비통한 금식, 참회하는 신음, 밤마다 흐르는 눈물, 매일의 마음 아픈 한숨으로 벌하였네. 사랑은 내 흘린 눈에서 혼돈의 잠을 빼앗아가고, 내 마음의 슬픔을 지켜보게 만들었네."  (p.92~p.93)


우리는 간혹 위대한 고전문학의 힘을 간과하거나 그 필요성을 잊곤 한다. 그러나 깊은 슬픔에서 비롯된 글과 문학은 시대를 불문하고 살아남게 마련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은 시대에 상관없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 나라 영국에서 수백 년 전에 쓰인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시대와 장소를 건너뛰어 21세기 대한민국의 독자를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엮은 박예진 작가는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엄선하여 간략한 스토리와 함께 작품 속 명문장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sentence 218

I am very proud, revengeful, ambitious, with more offences at my beck than I have thoughts to put the in, imagination to give them shape, or time to act them in. What should such fellows as I do crawling between earth and heaven? We are arrant knaves, all. Believe none of us.

나는 매우 교만하고, 복수심에 차 있고, 야망이 가득하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죄를 마음에 품고 있소. 그 죄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도, 그것을 실행할 시간도 없소. 나 같은 자들이 땅과 하늘 사이에서 기어다니며 무엇을 해야겠소? 우리는 모두 철저한 악당이오. 누구도 믿지 마시오."  (p.10~p.161)


오전에 인근 공원을 가볍게 산책했다. 아침 특유의 날카롭고 쨍한 냉기가 온몸의 세포를 살아나게 하는 듯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 여러 운동 기구에 매달려 가볍게 몸을 푸는 사람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빠르게 걷는 사람 등 제각각 목적하는 바와 행동은 달랐지만 이 추운 겨울 아침에 공원에 나와 온몸의 세포 감각을 일깨웠던 기억은 오래도록 비슷한 장면으로 남지 않을까. 그리고 박예진 작가의 책 <셰익스피어, 인간심리 속 문장의 기억>을 읽는 독자들 역시 그 추구하는 바도 다르고 읽는 장소도 다를 테지만 셰익스피어가 느꼈던 인간 존재의 슬픔과 삶의 여정에서 겪는 온갖 감정에 대한 물음표를 각자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간직하지 않을까. 2024년의 마지막 주말 아침, 그 냉랭한 한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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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는 송년 모임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이맘때의 거리는 여전히 송구영신의 기치로 들썩인다. 가는 세월이 아쉬운 건 늙다리 기성세대나 MZ세대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일 뿐 어느 한 세대에게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모임의 내용이나 형식은 많이 달라졌다 할지라도 '송구(送舊)'하고 '영신(迎新)'하려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오페라의 유령처럼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물론 뜬금없이 계엄령을 선포하는 바람에 시국이 뒤숭숭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찬물을 끼얹은 측면이 없지 않으나 나처럼 모임을 회피하는 '피회족(避會族)'들에게는 이맘때의 송년 모임마저 취소하고 나면 참가할 만한 모임이 거의 사라지고 마는 까닭에 모임 취소를 극구 뜯어말리는 기현상을 연출하게 되었다.


어제는 인근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 몇몇과 송년 모임을 가졌다. 몇 순배 술잔이 돌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 주제, 이를테면 건강이나 정년, 자녀의 학업이나 취업 또는 결혼 등 나올 만한 주제는 모두 지나고 나자 꺼낼까 말까 입이 간지럽기는 하지만 좀처럼 꺼내지 않는 정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 시발점은 서울의 모처에서 오래전부터 점집(당사자는 언제나 철학관이라고 우기지만)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의 입을 통해서였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것은 대한민국 무속신앙의 승리였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개신교 목사든, 조계사 승려든 이 사실을 모른다고 할 사람은 아마 없을 거야. 그들 역시 다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윤석열에게 머리를 조아렸을 뿐이야. 그러니 나처럼 철학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윤석열 부부가 얼마나 고마웠겠냐? 천공이니 건진법사니 하는 사이비 무속인들도 당당히 어깨를 펼 수 있었고 말이야. 윤석열 부부가 아니었다면 그게 가당키나 했겠어?"


반쯤 혀가 꼬부라진 친구의 말에 이렇다 저렇다 반론을 펴는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의 일방적인 주장이 길게 이어지자 한 친구 왈, "목사님들을 싸잡아 비난하면 안 되지.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윤석열 부부가 무속에 심취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거야. 알았다면 그를 지지할 리가 없지. 그거야 말로 우상숭배나 다름없으니까 말이야." 하며 화를 냈다. 모태신앙의 독실한 신자답게 그의 반론 역시 진지했다. 그러자 철학관을 운영하는 친구 왈, "야, 말은 똑바로 하자. 그걸 몰랐다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알던 사실을? 목사님들은 어디 북한 출신만 있냐?" 하며 대드는 바람에 술자리는 온통 정치와 종교가 뒤섞인 난장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뒷수습은 물론 종교가 없는 무교인들 차지였다. 우리는 그렇게 '송구(送舊)'하고 '영신(迎新)'하자는 다짐을 하고 밤 늦게 헤어졌다.


못 먹는 술을 한 잔 받아 마신 탓인지,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이 대한민국 무속신앙의 승리라는 친구의 말이 충격적이었던 탓인지 어제부터 있었던 두통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고 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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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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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이 찡한 추위가 가슴속까지 얼얼하게 하는 아침. 거실 문을 열자 베란다 창문을 통해 쏟아지던 겨울 햇살이 냉랭한 한기와 함께 부엌 입구까지 짓쳐들었다. 온전한 느낌이란 언제나 한 발 늦게 도착하는 법, 나는 잠옷 위에 패딩 조끼를 껴입고 베란다로 나섰다. 아파트의 동과 동 사이 주차장에는 녹지 않은 눈이 여전히 주차된 차량 위에 소복이 쌓여 있고, 이른 외출이 불만인 어린아이의 뻗대는 소리가 휴일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는지 뒷목이 뻐근했다. 나는 속절없이 푸른 하늘을 향해 긴 숨을 토해냈다. 하얀 입김이 방충망 틈새를 빠져나가는 동안 문득 들었던 생각, '아, 책을 읽어야지.' 하는 강박이 편집증 환자처럼 나의 뇌를 흔들었다.


"내가 다 기억할 수 없는, 죽고만 싶었던 숱한 순간에 나를 살린 누군가의 문장들이 있었을 것이다. 고통의 순간도 회복의 과정도 전부 잊었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 나는 위대한 책들을 읽고서 혁명을 일으키지도 못했고 인류를 구원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나처럼 평범한 대부분의 독자에게 독서란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p.8 '책머리에' 중에서)


진은영 시인의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은 그렇게 자기 고백적인 시인의 넋두리로 시작된다. 많은 책을 읽었고, 지금도 늘 무언가를 읽고 있지만 삶이 바뀌기는커녕 읽었던 책의 제목마저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고 하소연하는 시인. 책에 대해서만 논하자면 나의 삶도 시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언가 열심히 읽고 기록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고, 하루의 지난 삶에 또 하루를 더하는 기계적인 일상이 지겹도록 이어져 왔다. 그리고 죽고만 싶었던 어떤 순간을 견디게 했던 것이 있다면 끝없이 읽고 쓰는 무용한 행동 덕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무엇을 꿈꾸며 싸우든 그 꿈을 이루는 일은 어렵다. 조금 전진한 기분이었는데 도로 제자리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인간은 실패하려고 태어난 '훼손된 피조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뮈 덕분에, 우리는 어려운 싸움을 계속 이어가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말하는 대신 위대한 용기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이들은 승리하는 이들이 아니라 진실과 인간적 품위를 지키기 위해 어쩌면 패배할지도 모를 싸움을 시작하는 이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p.143)


시인의 독서일기와도 같은 이 책에서 시인이 열거하는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카프카, 버지니아 울프, 한나 아렌트, 모르스 블랑쇼, 바흐만, 실비아 플라스, 카뮈, 시몬 베유, 바슐라르, 존 버거, 앤 카슨, 릴케... 한동안 책에 빠져 살다 보면 내가 책이나 작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지목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말하자면 독자의 취향이나 성향이 어떤 작가에 의해 지배되고, 그것이 결국 생각지도 않았던 책을 선택하도록 이끌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시인 역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독서에 대한 취향이나 성향이 자신이 좋아하는 한 작가에 의해 시나브로 굳어지게 되는 체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 따지고 보면 지금의 시인을 만든 것도 결국 시인이 읽었던 책이 아닐까 싶다.


"2022년 우리가 거리에서 많은 젊은이를 잃고서 치러야 했던 사회적 제의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핵심이 전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패도 사진도 없는 분향소에서 고인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한 채 누군지도 모르는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했다. 세상을 떠난 당신이 누구였는지 알고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바로 그 제의에서 말이다."  (p.188~p.189)


이 책에서 시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작가들의 책을 통하여 그 속에 깃든 삶의 의미를 살피고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문학의 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삶에서 겪는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였던 문학 작품 속 어느 주인공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만 있다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이른바 문학의 유용성이랄까 독서의 힘이랄까 하는 문제를 반복하여 되새긴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정작 삶에서 꼭 필요하다고 느껴지지도 않는, 팔 할의 딴짓으로 구성되는지도 모른다.


한낮이 되어서도 기온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시인의 산문집 한 권을 반나절 만에 뚝딱 읽어치운 나는 며칠 지나지 않아 책의 제목마저 아득해질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나의 독서는 이렇게 무심하다. 그럼에도 나는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읽고 문장이나 내용을 곱씹고 음미할 만한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서둘러 잊곤 한다. 나의 기억 어딘가에 두어 줄의 문장쯤 남아 있겠지, 하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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