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가 밝았다. 2024년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그러나 해결하지 못한 삶의 과제가 언제나 그렇듯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새해가 되었건만 여전히 2024년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은 비단 나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던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가 마냥 어색하거나 쑥스러워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웅얼웅얼 속으로만 삼키고 만다. 새해라면 늘 덕담처럼 주고받던 말이었는데...
계엄령과 탄핵 국면에 이어 항공기 사고에 이르기까지...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은, 그 시발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윤석열을 선택한 것일 테지만 당사자인 그는 지금껏 인간 이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아닌가.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를 통해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더니 이제는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대통령 관저에 숨어 나오지도 않는, 이른바 '뻗치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법 시스템과 헌법을 무시한 채 마치 고려 중기의 무신정권 시기처럼 경호처 직원들과 군인을 자신의 사병인 양 부리며 알량한 권세를 누리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평소에도 젊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기는 나는 인턴사원의 면접이 있을라치면 이따금 자청하여 들어가기도 하는데 어제도 그랬었다. 20대의 푸릇푸릇한 청춘들. 그들과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나로서는 더없이 즐겁고 설레는데 그들은 자리가 자리인 만큼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런 자리에서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질문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지만 뉴스에서는 속보를 통해 내란 수괴 혐의자 윤석열에 대한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있었으므로 이 상황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너무나 궁금해서 슬쩍 물었었다.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우경화되고 있다는 걸 나 역시 모르는 바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대답 역시 그와 비슷한 대답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현실은 많이 달랐다. 그중 한 친구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저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을 지지했고, 그가 말한 '공정과 상식'을 임기 동안 잘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예상은 대통령의 임기 내내 단 한 번도 지켜진 적 없었고, 생각지도 못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까지 목격하면서 제 판단이 무척이나 잘못된 것이었음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더구나 대통령의 잘못을 연일 감싸고도는 여당의 모습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공부하고 참여하는 주권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우리의 일상은 언제든 파괴될 수 있다는 걸 주변 친구들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당당하고 떳떳하게 조사받겠다던 윤석열 본인의 말은 허언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가 했던 거짓말이 어디 이 번뿐일까마는 대통령 관저에 꽁꽁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비겁하고 찌질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젊은 친구들의 자조 섞인 후회가 하루를 잠식했던 그런 날이었다. 희망은 멀고 일상은 답답한 그런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