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는 송년 모임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이맘때의 거리는 여전히 송구영신의 기치로 들썩인다. 가는 세월이 아쉬운 건 늙다리 기성세대나 MZ세대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일 뿐 어느 한 세대에게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모임의 내용이나 형식은 많이 달라졌다 할지라도 '송구(送舊)'하고 '영신(迎新)'하려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오페라의 유령처럼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물론 뜬금없이 계엄령을 선포하는 바람에 시국이 뒤숭숭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찬물을 끼얹은 측면이 없지 않으나 나처럼 모임을 회피하는 '피회족(避會族)'들에게는 이맘때의 송년 모임마저 취소하고 나면 참가할 만한 모임이 거의 사라지고 마는 까닭에 모임 취소를 극구 뜯어말리는 기현상을 연출하게 되었다.


어제는 인근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 몇몇과 송년 모임을 가졌다. 몇 순배 술잔이 돌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 주제, 이를테면 건강이나 정년, 자녀의 학업이나 취업 또는 결혼 등 나올 만한 주제는 모두 지나고 나자 꺼낼까 말까 입이 간지럽기는 하지만 좀처럼 꺼내지 않는 정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 시발점은 서울의 모처에서 오래전부터 점집(당사자는 언제나 철학관이라고 우기지만)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의 입을 통해서였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것은 대한민국 무속신앙의 승리였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개신교 목사든, 조계사 승려든 이 사실을 모른다고 할 사람은 아마 없을 거야. 그들 역시 다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윤석열에게 머리를 조아렸을 뿐이야. 그러니 나처럼 철학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윤석열 부부가 얼마나 고마웠겠냐? 천공이니 건진법사니 하는 사이비 무속인들도 당당히 어깨를 펼 수 있었고 말이야. 윤석열 부부가 아니었다면 그게 가당키나 했겠어?"


반쯤 혀가 꼬부라진 친구의 말에 이렇다 저렇다 반론을 펴는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의 일방적인 주장이 길게 이어지자 한 친구 왈, "목사님들을 싸잡아 비난하면 안 되지.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윤석열 부부가 무속에 심취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거야. 알았다면 그를 지지할 리가 없지. 그거야 말로 우상숭배나 다름없으니까 말이야." 하며 화를 냈다. 모태신앙의 독실한 신자답게 그의 반론 역시 진지했다. 그러자 철학관을 운영하는 친구 왈, "야, 말은 똑바로 하자. 그걸 몰랐다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알던 사실을? 목사님들은 어디 북한 출신만 있냐?" 하며 대드는 바람에 술자리는 온통 정치와 종교가 뒤섞인 난장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뒷수습은 물론 종교가 없는 무교인들 차지였다. 우리는 그렇게 '송구(送舊)'하고 '영신(迎新)'하자는 다짐을 하고 밤 늦게 헤어졌다.


못 먹는 술을 한 잔 받아 마신 탓인지,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이 대한민국 무속신앙의 승리라는 친구의 말이 충격적이었던 탓인지 어제부터 있었던 두통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고 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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