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인간심리 속 문장의 기억 Shakespeare, Memory of Sentences (양장) - 한 권으로 보는 셰익스피어 심리학 Memory of Sentences Series 3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박예진 편역 / 센텐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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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울수록 몸속 세포 하나하나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말하자면 추위는 세포 감각을 일깨우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글의 느낌을 되살리는 건 무엇일까?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그것은 바로 슬픔이다. 슬픔은, 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 하나하나의, 낱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생생하게 되살린다. 그럴 때의 슬픔은 비가 내려서 혹은 낙엽이 져서 일시적으로 느끼는 낭만적인 슬픔이 아니라 깊은 고통 속에서 맛보는 처연한 슬픔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에서 깊은 슬픔을 체험한 작가의 글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넓은 공감력을 갖게 된다.


고전문학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북 큐레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예진 작가의 신작 <셰익스피어, 인간심리 속 문장의 기억>을 읽는 내내 나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에 대해 생각했다. 16세기말에서 17세기초를 살았던 그에 대해 기록으로 남겨진 단편적인 사실 외에 작가의 삶에 대한 전모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의 글 속에는 언제나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슬픔으로부터 건져 올린 보편적 깨달음의 경구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다만 슬픔이 슬픔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깨달음을 통한 작은 기쁨으로 재탄생하는 감정의 탈피를 경험하도록 한다.


"sentence 114

I have done penance for contemning Love, whose high imperious thoughts punish'd me with bitter fasts, with penitential groans, with nightly tears, and daily heart-sore sighs; for in revenge of my contempt for love, love hath chased sleep from my enthralled eyes and made them watchers of my own heart's sorrow.

나는 사랑을 경시한 것을 속죄하네. 사랑의 높은 오만한 생각들이 나를 비통한 금식, 참회하는 신음, 밤마다 흐르는 눈물, 매일의 마음 아픈 한숨으로 벌하였네. 사랑은 내 흘린 눈에서 혼돈의 잠을 빼앗아가고, 내 마음의 슬픔을 지켜보게 만들었네."  (p.92~p.93)


우리는 간혹 위대한 고전문학의 힘을 간과하거나 그 필요성을 잊곤 한다. 그러나 깊은 슬픔에서 비롯된 글과 문학은 시대를 불문하고 살아남게 마련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은 시대에 상관없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 나라 영국에서 수백 년 전에 쓰인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시대와 장소를 건너뛰어 21세기 대한민국의 독자를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엮은 박예진 작가는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엄선하여 간략한 스토리와 함께 작품 속 명문장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sentence 218

I am very proud, revengeful, ambitious, with more offences at my beck than I have thoughts to put the in, imagination to give them shape, or time to act them in. What should such fellows as I do crawling between earth and heaven? We are arrant knaves, all. Believe none of us.

나는 매우 교만하고, 복수심에 차 있고, 야망이 가득하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죄를 마음에 품고 있소. 그 죄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도, 그것을 실행할 시간도 없소. 나 같은 자들이 땅과 하늘 사이에서 기어다니며 무엇을 해야겠소? 우리는 모두 철저한 악당이오. 누구도 믿지 마시오."  (p.10~p.161)


오전에 인근 공원을 가볍게 산책했다. 아침 특유의 날카롭고 쨍한 냉기가 온몸의 세포를 살아나게 하는 듯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 여러 운동 기구에 매달려 가볍게 몸을 푸는 사람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빠르게 걷는 사람 등 제각각 목적하는 바와 행동은 달랐지만 이 추운 겨울 아침에 공원에 나와 온몸의 세포 감각을 일깨웠던 기억은 오래도록 비슷한 장면으로 남지 않을까. 그리고 박예진 작가의 책 <셰익스피어, 인간심리 속 문장의 기억>을 읽는 독자들 역시 그 추구하는 바도 다르고 읽는 장소도 다를 테지만 셰익스피어가 느꼈던 인간 존재의 슬픔과 삶의 여정에서 겪는 온갖 감정에 대한 물음표를 각자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간직하지 않을까. 2024년의 마지막 주말 아침, 그 냉랭한 한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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