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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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문장이나 텍스트를 통해 인물이 처한 현재의 상황이나 배경이 되는 장소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자신의 글을 끝없이 다듬고, 어떤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열정을 쏟아부으며, 자신보다 훌륭한 다른 작가의 글을 끝없이 읽고 본받으려 한다. 그것이 비단 작가들에게만 통용되는 삶의 방식은 아닐 테지만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며 주변부 인간 군상의 삶을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냈던 윌리엄 트레버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역사 교사로서, 미술 교사이자 조각가로 활동했던 작가의 이력에 대해 곰곰 생각하곤 한다. "소설가는 자신의 생활이라는 집을 부수어 그 돌로 소설이라는 집을 짓는다."라고 했던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작가의 경험과 삶에 대한 진지한 열정이 '윌리엄 트레버'라는 탁월한 작가로 탄생시켰던 게 아닐까.

 

윌리엄 트레버의 대표작이기도 한 <펠리시아의 여정>은 아일랜드 출신의 어린 소녀 펠리시아와 공장 구내식당의 매니저인 중년의 힐디치를 소설의 중심축에 배치함으로써 독자들의 마음이 약자인 펠리시아에게 극단적으로 기울도록 한다. 이와 같은 단순한 구조는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측면에서도, 약자에게 이끌리는 인간의 동정심이라는 측면에서도 유용하지만 작가는 이에 그치지 않고 펠리시아의 순수함이 만들어내는 여러 차례의 위기상황을 통해 그들을 둘러싼 주변부의 많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선한 본성이 인간 본연의 모습임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킨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들은 펠리시아가 처한 안타까운 상황으로 인해 극도의 긴장감과 함께 당장이라도 책 속으로 들어가 펠리시아의 손을 잡고 달아나고 싶은 위태위태한 순간들을 여러 번 경험하게 된다.

 

"그녀는 이제 예전의 자신이 아님을 안다. 가을날 결혼식 신부 들러리도 아니고 자동차 뒷좌석에서 담요를 뒤집어썼던 아이도 아니다. 한때 그녀의 것이던 순수함은 시간이 흐르며 이제 어리석음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남아 있고, 상실을 경험한 예전의 그녀는 지금의 자신으로 이끈 사람이기에 소중하다."  (p.312)

 

오빠 에이든의 결혼식 날 펠리시아는 우연히 마주친 조니와 사랑에 빠진다. 영국의 한 농기계 공장에서 일을 한다는 조니. 펠리시아의 짧았던 연애는 임신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결과로 남는다. 연락처도 없이 떠나버린 조니. 펠리시아는 남자친구 조니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수녀원의 정원사로 일하는 아버지와 채석장에 다니는 오빠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백 세에 가까운 증조할머니를 돌봐왔던 펠리시아는 자신이 떠남으로써 집안사람들이 곤경에 처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오직 조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걱정을 잊는다.

 

"만일 지금 돌아간다면 그녀는 또다시 그 침실에서 깨어날 것이다. 같은 절망 속에서 또다시 찾아오는 새벽, 여섯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눈을 뜨는 고단함, 또다른 하루의 시작. 화요일이면 다시 그 비좁은 계단을 닦아야 하고, 주말에는 노인의 침대 시트를 갈아야 한다. 만일 지금 돌아간다면 아버지는 비난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오빠들은 복수를 벼를 것이다."  (p.73)

 

그러나 펠리시아의 여정은 녹록지 않았다. 조니의 정확한 주소도 모르는 데다 아일랜드와 억양이 다른 까닭에 사람들과의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았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낯선 나라의 산업 단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펠리시아가 돌파구도 없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어리숙한 시골 소녀를 지켜보는 어둠의 눈이 있었다. 공장 구내식당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던 힐디치. 50대의 중년 남성인 그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힐디치의 반복되는 호의에 그에 대한 경계심마저 서서히 무너지고, 결국 힐디치는 펠리시아의 돈을 훔쳐 그녀를 더욱 곤경에 빠지게 한다. 말하자면 그는 펠리시아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고, 그녀가 스스로 자신을 찾아오도록 만든 셈이었다. 그녀가 찾던 조니의 행방도 그가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모른 채...

 

"힐디치 씨는 잠시 이 모든 것이 실수나 오해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상상을 해봐도 그가 우정을 맺었던 그 아일랜드 여자가 협잡꾼이라 불릴 리가 없다. 그가 알던 다른 여자들은 그런 식으로 묘사될 수 있을지 몰라도 가장 최근의 이 여자만큼은 절대 그렇게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 여자가 맞다. 그가 도와준, 무진장 애를 써가며 도와준 여자. 그 여자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고, 보아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한 모양이다."  (p.246)

 

한편 힐디치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고, 그 어머니도 자신이 만났던 수많은 남성들로부터 버림받았던 과거를 갖고 있던 까닭에 힐디치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만나는 여인으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런 까닭에 빚을 대신 갚아주기도 하는 등 호의를 베풀었지만 여자들은 한결같이 그를 버리고 떠나겠다고 했다. 그는 여인들을 살해하고 만났던 여성들의 이름을 끊임없이 읊조리면서 그녀들을 추억했다. 말하자면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다

 

"그런 사색이, 한때는 생경했던 그런 생각이 펠리시아의 하루를 채운다. 그녀는 떠오르는 생각 속에서 굳이 의미를 찾지 않고, 목적 없는 여정에서도 더이상 의미를 찾지 않으며, 시간과 사람이 뒤죽박죽 섞인 가운데서도 어떤 규칙을 찾지 않는다. 그럼에도 생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p.320)

 

펠리시아는 비록 사랑하는 사람과의 재회도, 자신의 아이를 지키지도 못했지만 길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위안을 받았다. 작가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한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는 제2, 제3의 펠리시아임을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록 우연처럼 살인자를 만날 수도 있고, 또다른 우연처럼 조니와 같은 사랑스런 연인을 만날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주소도 모른 채 헤어질 수 있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인간 본성의 선한 모습으로 다가와 위험에 처한 우리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걸 믿기에 거리낌없이 미래를 향해 긴 여정을 떠날 수 있는 게 아닐까. 펠리시아의 여정은 현재를 사는 우리의 본 모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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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숨
조해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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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에는 매듭이 지어지는 어떤 순간들이 있다.소설가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경험을 오롯이 자신의 소설 속에 담는,이를테면 자전 소설을 쓰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자전 소설 ‘문래‘가 실린 <환한 숨>의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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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김종옥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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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왕년에는..." 또는 "내가 소싯적에는..."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의 뒤끝은 언제나 씁쓸하다. 때로는 허무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이야기인 즉 자신의 과거에 비해 지금의 현실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딴에는 그런 생각도 든다. 우리의 기억이라는 게 지금의 형편에 따라 화려하게도, 또는 초라하게도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예컨대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는 한 사람이 자신의 초라했던 과거를 대중에게 솔직하게 말해준다고 해서 그 기억이 더욱 초라하게 변하는 것도 아니요, 현재의 위상이 새롭게 알려진 그의 과거로 인해 깎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가 들려준 자신의 초라했던 기억은 현재의 위상으로 인해 다소 낭만적인 어떤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 반면에 지금은 쇠락한 한 사람이 화려했던 자신의 과거 기억을 들려준다고 해서 현재의 위상이 조금 높아지는 것도 아니요, 그가 들려준 화려한 기억들이 곧이곧대로 믿기지도 않을뿐더러 화려함이 더욱 증폭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의 과거는 반쯤 차감된 채 대중에게 전달되곤 한다.

 

김종옥의 소설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에는 실업자로 전락한 40대 남자가 등장한다. 비록 지금은 보잘것없는 그이지만 그도 한때는 잘 나가던 때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때의 기억들은 대개 과천과 얽혀 있었고, 지독히도 길치였던 그였지만 그는 단순히 지리상의 길만 못 찾았던 게 아니라 자신의 인생행로를 분간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길을 찾는 데 영 젬병'이었다는 뜻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중의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살아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여자는 내가 서른넷이었을 때 만나서, 서른다섯에 헤어졌다. 그러니까 그게 오 년 전의 일이다. 나는 그 오 년이 마치 육 개월처럼 느껴진다. 오 년 전에는 이런 오 년 후의 나를, 정확히 말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나는 그녀가 내 마지막 여자가 될 줄은 몰랐다. 당시 나는 막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었는데, 그 후로 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와 같은 번듯한 직장을 다시 구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도 몰랐다. 나이가 마흔인데, 직장도 없고, 여자도 없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요즘 나는 완전히 좆 됐다." (p.60)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자신의 나이를 속이며 '나'와 만났던 한 여인을 떠올린다. '나'와 만나면서도 유부남과 양다리를 걸쳤던 그 여인은 결국 유부남과의 위험한 사랑을 선택하면서 '나'와 헤어진다. 그녀가 '나'를 불러냈던 곳도 과천이었다. 길눈이 어두웠던 '나'는 그녀가 일러주는 곳을 간신히 찾아갔었고,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지금은 그곳이 과천이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그녀와 헤어진 후 직장마저 그만두었던 '나'는 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대형 유통업체에 취직한다. 그곳에서 '나'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여자를 만나게 된다. 건강하고 활발했던 그녀 역시 어떤 오해로 인해 헤어지게 된다. 유부남과 사귀었던 그 여자와 헤어진 지 사, 오 년쯤 지난 후의 어느 날 그녀로부터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나는 여전히 여기 그대로 있는데...'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나'는 그녀에게 '여전히 거기에 그대로 있으면 안 되잖아'라는 답을 보낸다.

 

"하지만 당신들도 알다시피 어떤 판단을 내리기엔 인생은 너무나 복잡하고, 결정의 시간은 너무 부족하다. 아니, 대체 인생이란 게, 우리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우리 앞에 놓여 있기라도 한 걸까? 그게 보이기라도 하나? 우리는 그저 어떤 판단, 마치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판단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p.75~p.76)

 

 

헤어진 여자에 대한 회상에서 비롯된 '나'의 상념은 과천과 연결된 여러 갈래의 추억들로 이어진다. 제대 후 만났던 여자에서부터 중학생 때 같은 반 친구였던 부잣집 아들에 이르기까지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당동에서 남태령 고개를 넘으면 경마장과 국립 현대 미술관, 서울랜드와 동물원 등이 있는 과천.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과천과 얽힌 추억 한두 개쯤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으랴. 작가가 굳이 과천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 이유는 그만큼 흔한 기억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귀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이별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결국에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 어쩌면 그건 그녀가 나를 두 번이나 엿 먹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그 남자가 그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p.72)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헤어짐의 원인이 서로에게 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일어난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은 너무 많아서 하지 않은 일이 뭔지 모른다. '나'는 그것을 생각할 때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올려다볼 때처럼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길이란 게 숫제 없는 까닭에 별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는 건 있을 수 없으므로.

 

인생에서 자신의 길을 확실히 아는 까닭에 길을 잃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누구나 처음인 이 길에서 말이다. 그러므로 후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좋다. 자책하거나 지나친 후회를 하면서 괜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암담한 현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과거에만 머물러서도 안 될 것이다. 2021년 한 해도 벌써 반나마 흘러가고 있다. 문득 하일지의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이 생각나기도 하고, 문성근과 강수연이 출연했던 영화 '경마장 가는 길'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사라지고 예전처럼 청명한 가을이 찾아오면 과천 서울랜드로 향하는 그 고즈넉한 길을 다시 한번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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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올림픽 열기는 예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느낌이다. 나만 하더라도 우연히 켠 텔레비전에서 우리나라 선수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으면 잠시 눈길을 주기는 하지만 오늘 어떤 경기가 있는지 일부러 찾아보거나 미처 못 보고 지나친 경기의 결과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등의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올림픽에 대한 관심은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관심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관중도 없이 선수들 위주로 펼쳐지는 경기를 그저 멀뚱히 쳐다본다는 게 왠지 지루하고 긴장감도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국민들의 관심과 열기가 식은 탓인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참가 선수들의 초반 성적도 그닥 신통치는 않은 듯하다.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태권도 선수들도 줄줄이 탈락하고 축구도 약체로 평가되던 뉴질랜드에게 패하는가 하면 사격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물론 몸으로 뛰는 선수들이야 어느 누가 지고 싶겠냐마는 텔레비전을 통해 경기를 관람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다.

 

본격적인 휴가철인데 코로나 감염병 확산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찜통더위는 나날이 그 위세를 더해가고,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줄줄이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단 하나 열기가 식지 않는 건 대선 출마자들의 공방뿐인 듯하다. 그럼에도 뚜렷이 감지되는 변화는 윤 전 총장의 지지도가 크게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검사란 직업은 본디 남을 의심하고 넘겨짚기를 주특기로 하는 직업인데 그런 자가 대통령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설사 대통령이 된들 공작정치밖에 더 할 게 무엇이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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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치조 미사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모모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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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의 풋풋한 사랑을 그린 소설은 다른 어느 나라의 작가들보다 일본 작가의 실력이 단연코 앞선다고 생각한다. 물론 주관적인 견해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일본 작가가 쓴 비슷한 주제의 소설을 몇 권만 읽어보더라도 나의 의견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들은 그 시기의 아이들이 이성교제에 있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할지 마치 해부를 하듯 하나하나 세심하게 그려내곤 한다. 물론 소설 전개에 있어서의 이러한 용의주도함이 때로는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세밀한 감정선이 독자들의 보편적 정서와 맞닿는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걸 보면 이것을 마냥 배척하거나 외면할 일도 아닌 듯싶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게 한낱 우연에 불과한 것인 양 하찮게 여길 일도 아니다. 비근한 예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쓴 스미노 요루 역시 청소년기의 사랑을 아주 세밀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았던가.


이치조 미사키의 소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역시 자수틀 속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청소년기 남녀의 세밀한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그려낸다. 고등학생 남녀의 흔하디 흔한 일상을 엮어 그 속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특별한 사랑과 우정, 방황, 고민, 불안한 미래 등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진부한 소재와 평범한 배경을 바탕으로 이토록 신선하고 놀라운 서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건 물론 일차적으로 작가의 능력에 기인하겠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폴폴 나는 내러티브를 무한한 감동으로 무마함으로써 그 모든 허물이 용서되거나 지워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고등학교 2학년생인 가미야 도루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후 홀로 된 아버지를 위해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성실한 학생이다. 그러나 무미건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자신이 마냥 한심하게만 여겨지던 어느 날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친구 시모카와를 돕기 위해 과감히 나서게 된다. 시모카와를 괴롭히던 친구들이 가미야에게 했던 제안은 1반의 히노 마오리에게 고백하면 시모카와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겠다는 것.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던 그의 고백을 히노는 3가지 제안을 걸고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가짜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사귀기 위한 조건이 세 개 있었다. 첫째, 학교 끝날 때까지 서로 말 걸지 말 것. 둘째, 연락은 짧게 할 것. 마지막으로 셋째,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  (p.96)


"시모카와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더라. 잘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게 훨씬 쉽지 않다고. 그러니까 가미야 넌 남들이 말하는 잘난 사람보다 훨씬 훌륭해. 이런 말은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고생하는데도 비뚤어지지 않았어. 이것도 아버지가 한 말인데, 고생한 사람은 대개 비굴해지거나 성격이 나빠진대. 그런데 넌 다정하거든. 아주 많이. 아주아주 많이." 그 말이 어제 헤어질 때 히노가 한 말과 겹쳤다."  (p.117)


시모카와가 외국으로 떠나고 히노와의 만남이 길어지면서 가미야의 마음은 온전히 히노에게 쏠린다.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이라고 했던 세 번째 조건은 가미야에게서 점차 희미해져만 갔고, 히노 역시 가미야의 다정한 마음 씀씀이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히노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히노 자신이 사고를 당한 이후 밤에 자고 일어나면, 전날 있었던 일을 전부 잊어버리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는 것. 히노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수첩과 일기, 스마트폰에 중요한 사항을 메모하며 다음날 그 모든 것을 복습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 그런 히노를 위해 가미야는 매일매일 즐거운 일로 채워주겠다고 다짐한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런 소중한 시간을 잊어버리다니, 일기에만 남길 수 있다니, 그런 건 싫었다. 그렇지 않나. 인생은 언제나 한 번뿐이다. 어떤 순간도 돌이킬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람은 그걸 소중히 한다. 보물로 삼으려고 한다. 그런 걸 기억할 수 없다니 너무한다. 너무 슬프다."  (p.267)


가미야 도루와 히노 마오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곁에서 보살피고 지켜준 사람은 히노의 어릴 적 친구 와타야 이즈미였다. 그렇게 세 사람은 놀이공원에도 가고, 수족관에도 가고 벚꽃놀이도 가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부모님의 별거로 마음의 문을 닫은 이즈미였지만 히노에게는 각별한 친구였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어느 순간 히노와 도루의 사랑을 응원하게 되고, 아름다운 결말을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또 다른 반전을 위해 두 사람을 투입한다. 자신의 꿈을 위해 어린 남동생과 홀로 된 아버지를 도외시한 채 집을 나갔던 도루의 누나 사나에와 히노의 친구 이즈미였다. 도루의 누나는 결국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아버지와 화해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을 안고 살았던 도루에 대한 감정은 끝내 풀지 못한 채...


"우리 부자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두 사람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현실은 픽션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현실은 언제나 이렇게 건조하고 당황스럽다. 주저앉아 꼼짝도 못한다. 그래도 현실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p.243)


사랑은 결국 두 사람이 쌍둥이처럼 닮은 하나의 기억을 갖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기에 한 사람이 기억을 잃어도 다른 한 사람으로부터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이다. 언제든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처음부터 불완전한 사랑을 전제로 독자들의 마음을 애틋하게 했다. 청소년기의 사랑이란 것이 대개 불완전함을 전제로 이루어지고, 성장통을 겪으며 온전한 성인으로 거듭나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불완전한 사랑을 마지막까지 밀어붙이고야 만다. 매정하리만치...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즐기고 때로는 괴로워하며, 그것도 모두 평온한 일상 속에서, 밤에 잠이 들면 내일이 찾아온다. 도루가 믿던 것. 그건 지금 같은 마오리의 미래였을 것이다."  (p.369)


짧은 장마가 남긴 화염의 흔적들. 펄펄 끓는 폭염의 기세 속에서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세는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아니, 사그라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구촌 곳곳이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초토화가 된 느낌. 그럼에도 우리의 사랑은 이 여름의 더위처럼 뜨겁기만 하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어떤 위협도 당신과 나의 사랑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치조 미사키 역시 자신의 소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에 결코 멈출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담지 않았을까. 면면히 흐르는 세월은 시간의 역사가 아닌 차라리 사랑의 역사였음을 한 권의 소설을 통해 우리는 이따금 재확인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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