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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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문장이나 텍스트를 통해 인물이 처한 현재의 상황이나 배경이 되는 장소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자신의 글을 끝없이 다듬고, 어떤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열정을 쏟아부으며, 자신보다 훌륭한 다른 작가의 글을 끝없이 읽고 본받으려 한다. 그것이 비단 작가들에게만 통용되는 삶의 방식은 아닐 테지만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며 주변부 인간 군상의 삶을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냈던 윌리엄 트레버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역사 교사로서, 미술 교사이자 조각가로 활동했던 작가의 이력에 대해 곰곰 생각하곤 한다. "소설가는 자신의 생활이라는 집을 부수어 그 돌로 소설이라는 집을 짓는다."라고 했던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작가의 경험과 삶에 대한 진지한 열정이 '윌리엄 트레버'라는 탁월한 작가로 탄생시켰던 게 아닐까.

 

윌리엄 트레버의 대표작이기도 한 <펠리시아의 여정>은 아일랜드 출신의 어린 소녀 펠리시아와 공장 구내식당의 매니저인 중년의 힐디치를 소설의 중심축에 배치함으로써 독자들의 마음이 약자인 펠리시아에게 극단적으로 기울도록 한다. 이와 같은 단순한 구조는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측면에서도, 약자에게 이끌리는 인간의 동정심이라는 측면에서도 유용하지만 작가는 이에 그치지 않고 펠리시아의 순수함이 만들어내는 여러 차례의 위기상황을 통해 그들을 둘러싼 주변부의 많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선한 본성이 인간 본연의 모습임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킨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들은 펠리시아가 처한 안타까운 상황으로 인해 극도의 긴장감과 함께 당장이라도 책 속으로 들어가 펠리시아의 손을 잡고 달아나고 싶은 위태위태한 순간들을 여러 번 경험하게 된다.

 

"그녀는 이제 예전의 자신이 아님을 안다. 가을날 결혼식 신부 들러리도 아니고 자동차 뒷좌석에서 담요를 뒤집어썼던 아이도 아니다. 한때 그녀의 것이던 순수함은 시간이 흐르며 이제 어리석음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남아 있고, 상실을 경험한 예전의 그녀는 지금의 자신으로 이끈 사람이기에 소중하다."  (p.312)

 

오빠 에이든의 결혼식 날 펠리시아는 우연히 마주친 조니와 사랑에 빠진다. 영국의 한 농기계 공장에서 일을 한다는 조니. 펠리시아의 짧았던 연애는 임신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결과로 남는다. 연락처도 없이 떠나버린 조니. 펠리시아는 남자친구 조니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수녀원의 정원사로 일하는 아버지와 채석장에 다니는 오빠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백 세에 가까운 증조할머니를 돌봐왔던 펠리시아는 자신이 떠남으로써 집안사람들이 곤경에 처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오직 조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걱정을 잊는다.

 

"만일 지금 돌아간다면 그녀는 또다시 그 침실에서 깨어날 것이다. 같은 절망 속에서 또다시 찾아오는 새벽, 여섯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눈을 뜨는 고단함, 또다른 하루의 시작. 화요일이면 다시 그 비좁은 계단을 닦아야 하고, 주말에는 노인의 침대 시트를 갈아야 한다. 만일 지금 돌아간다면 아버지는 비난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오빠들은 복수를 벼를 것이다."  (p.73)

 

그러나 펠리시아의 여정은 녹록지 않았다. 조니의 정확한 주소도 모르는 데다 아일랜드와 억양이 다른 까닭에 사람들과의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았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낯선 나라의 산업 단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펠리시아가 돌파구도 없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어리숙한 시골 소녀를 지켜보는 어둠의 눈이 있었다. 공장 구내식당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던 힐디치. 50대의 중년 남성인 그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힐디치의 반복되는 호의에 그에 대한 경계심마저 서서히 무너지고, 결국 힐디치는 펠리시아의 돈을 훔쳐 그녀를 더욱 곤경에 빠지게 한다. 말하자면 그는 펠리시아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고, 그녀가 스스로 자신을 찾아오도록 만든 셈이었다. 그녀가 찾던 조니의 행방도 그가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모른 채...

 

"힐디치 씨는 잠시 이 모든 것이 실수나 오해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상상을 해봐도 그가 우정을 맺었던 그 아일랜드 여자가 협잡꾼이라 불릴 리가 없다. 그가 알던 다른 여자들은 그런 식으로 묘사될 수 있을지 몰라도 가장 최근의 이 여자만큼은 절대 그렇게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 여자가 맞다. 그가 도와준, 무진장 애를 써가며 도와준 여자. 그 여자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고, 보아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한 모양이다."  (p.246)

 

한편 힐디치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고, 그 어머니도 자신이 만났던 수많은 남성들로부터 버림받았던 과거를 갖고 있던 까닭에 힐디치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만나는 여인으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런 까닭에 빚을 대신 갚아주기도 하는 등 호의를 베풀었지만 여자들은 한결같이 그를 버리고 떠나겠다고 했다. 그는 여인들을 살해하고 만났던 여성들의 이름을 끊임없이 읊조리면서 그녀들을 추억했다. 말하자면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다

 

"그런 사색이, 한때는 생경했던 그런 생각이 펠리시아의 하루를 채운다. 그녀는 떠오르는 생각 속에서 굳이 의미를 찾지 않고, 목적 없는 여정에서도 더이상 의미를 찾지 않으며, 시간과 사람이 뒤죽박죽 섞인 가운데서도 어떤 규칙을 찾지 않는다. 그럼에도 생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p.320)

 

펠리시아는 비록 사랑하는 사람과의 재회도, 자신의 아이를 지키지도 못했지만 길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위안을 받았다. 작가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한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는 제2, 제3의 펠리시아임을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록 우연처럼 살인자를 만날 수도 있고, 또다른 우연처럼 조니와 같은 사랑스런 연인을 만날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주소도 모른 채 헤어질 수 있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인간 본성의 선한 모습으로 다가와 위험에 처한 우리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걸 믿기에 거리낌없이 미래를 향해 긴 여정을 떠날 수 있는 게 아닐까. 펠리시아의 여정은 현재를 사는 우리의 본 모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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