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탄다'는 건 어쩌면 절대적 고독을 인식하는 성숙한 개인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인간관계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혼자일 수밖에 없는 고독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의식한다는 건 어떤 철학적 사색이나 인문학적 소양에 바탕을 두지 않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감적으로 혹은 선험적으로 깨달을 수밖에 없는 기본 인식이리라. 그와 같은 고독감은 우리가 사는 경쟁의 틀 속에서 발현되고 강화된다. 개인이 갖고 있는 수많은 특성 중에 단지 몇몇 가지 능력만을 비교하여 차별하고 무시하며 때로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모욕감을 안겨주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인간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가 갖고 있는 수많은 장점과 비교되지 않은 여러 탁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은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그러나 사회라는 거대구조에 속한 다수의 횡포를 한 개인이 거부하거나 저항하기에는 그 힘이 너무도 크고 막강하여 지레 움츠러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가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신에 매달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그 밑바탕에는 치유되지 않은 인간의 고독감이 짙게 깔려 있는 탓일지도 모른다. 열기를 더해가는 대선 후보 토론회만 보더라도 인간의 폭력성과 야만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상대방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그가 했던 말이 어떤 의도였는지 알아보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건 전혀 없고, 상대방의 과거나 토론회장에서 내뱉은 말을 빌미로 공격을 일삼는 게 토론의 전부이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또한 그런 폭력성 앞에서 깊은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연유인지 정치 초년생인 모 후보는 집에 여러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고 손바닥에는 '왕(王) 자'를 쓴 채 토론회장에 등장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키우는 반려동물이나 그가 믿는 무속 신앙에 자신의 고독감을 반복적으로 표출해 왔을 터, 강아지나 신은 그가 표출하는 방식이 어떻든 그에 대해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은 채 들어준다는 걸 알기에 인간보다는 반려동물 혹은 무속 신에게 의지하고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어왔던 게 아닐까. '오죽하면...' 하는 생각에 일견 딱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 후보는 자신에 대한 비난 여론에 대해 "후보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지자들이 매번 토론이 있을 때마다 응원한다는 의미에서 손바닥에 써준 것"이라고 변명했다. 물론 그럴 테지. 자신과 한 집에 사는 어떤 지지자(할머니 혹은 아주머니일 수도 있지만)는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운세를 연구한 사람이니까.( 온라인 운세 콘텐츠의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대한 연구)

 

오늘은 개천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건국이념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개인의 욕망과 타인에 대한 비난만 드러내는 대선 후보들의 아귀다툼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이다. 손에 '왕(王) 자'를 쓰고 토론회장에 나온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국민은 자신의 손바닥에 '신(臣) 자'를 쓰고 생활해야 하는 걸까? 고민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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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로버트 판타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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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시월입니다.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 중의 한 사람인 에우리피데스는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가을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가을은 상실의 계절인 동시에 슬픔의 계절인지도 모릅니다. 슬픔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날이면 언제나 단풍잎 붉은 가을의 어느 오후가 떠오르는 것도 그런 이유이겠으나 푸른 하늘에 새겨지던 삶의 덧없음이 가을 하늘에 이르러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는 가을을 앓고, 습관처럼 책을 읽습니다. 가을에 읽는 책의 주제는 대개 죽음을 소재로 한 책들입니다.

 

"내 생애 최초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죽게 될지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이제 알기 때문이다. 또한 내 생애 최초로 죽음에 대한 생각과 일종의 평화를 이루게 되었다. 죽는 것이 평화롭게 느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를 안다는 사실과 평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마치 전혀 기대하지 않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누군가 내 얼굴을 한대 세게 쳐주겠다고 말한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평생 동안 누가 언제 어떻게 날 때릴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한 방 먹은 것이다."  (p.15)

 

유튜브 채널 <Pursuit of Wonder>와 같은 이름의 프로덕션 회사의 창업자이자 기획자인 로버트 판타노(Robert Pantano)가 쓴 책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는 자신이 죽음과 마주하던 그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떠오른 생각들을 꼼꼼히 기록한 책입니다. 자신의 곁에 죽음이 함께한다는 달갑지 않은 인식과 동행하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다양한 주제의 질문들... 나는 누구인가? 삶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에게 시간이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삶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등 살면서 누구나 몇 번이고 곱씹어 생각해 보았을 듯한 근원적인 질문들. 그리고 작가 개인이 맞닥뜨렸던 여러 어려움들.

 

"인생은 0으로 곱하기를 해야 하는 등식이다. 그 삶에 아무리 많은 것을 더하고 보태도, 아무리 큰 숫자가 된다 해도 결국 0으로 수렴하면서 끝난다."  (p.167)

 

작가의 생각은 대개 부정적이거나 슬픔에 익숙한 어떤 것들입니다.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삶의 종말을 미처 알지 못하는 나와 같은 인간도 슬픔과 죽음에 경도되어 찬란한 이 계절을 무참히 허비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죽음의 순간을 미리 예측하며 살아야 했던 서른다섯 살의 젊은 소설가에게 하루하루의 시간은 어떠했을는지요.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고 오글거리는 말은 입 밖으로 표현할 줄 모르던 작가가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렵사리 이어오면서 겪어야 했던 많은 어려움들에 대해 작가는 할 말이 많은 듯했습니다.

 

"인생에는 얼마든지 아름답고 기쁨이 가득한 순간이 있음을, 내가 직접 보고 느낀 적이 있기에 그것이 실재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실제로 그만큼 행복해하며 살지 않았다. 행복의 가치가 있는 순간들의 작은 조각 정도만 즐기고 감동했다. 내가 했어야 하는 일, 내가 했어야 하는 생각과 실제 나의 삶을 일치시키지 못했다. 그보다는 그 과정에서 나를 속이거나 나를 파괴했다."  (p.201)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더불어 끝이 존재한다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만은 예외일 거라는 생각과 내년에도, 후년에도 지금의 이 계절을 다시 맞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우리로 하여금 끝내 철들지 못하게 합니다. '죽는다는 건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력하고 순수한 존재로 후퇴하는 것이다.'(p.250)라고 쓴 작가의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책임져야 할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순수했던 그 시절에 대한 강한 향수로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문득, 시월입니다. 나는 또 습관처럼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흥얼거리고, 뉴스에서 들었던 단풍 소식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내 가슴엔 여름내 잊고 지내던 죽음이, 슬픔이, 벼이삭을 흔드는 바람처럼 가볍게 일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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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집사부일체'를 시청했던 사람들은 어울리지 않는 집사부의 등장에 다들 의아해했을 줄 압니다. 대권 유력주자인 윤석열 씨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상업방송사인 sbs의 의도된 줄대기일 수도 있고, 모기업인 태영건설의 철저히 계산된 아부성 프로그램일 수도 있겠습니다. 예컨대 대권의 유력주자 중 건설사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 윤석열 씨임을 태영건설의 경영진은 잘 알고 있었겠지요. 분양가 상한제 등 민간 건설사를 향한 규제를 없애고, 그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할 것 같은 인물로 윤석열 씨를 제일로 꼽는 것은 경제와 토지 공개념의 분야에서는 윤석열 씨의 경력으로 볼 때 문외한이거나 젬병이라고 판단하였을 듯합니다. 그들로서는 윤석열 씨에게 적당히 아부만 잘한다면 자신들이 의도한 대로 마음껏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집사부일체'를 통해 확인했을 듯합니다.


게다가 남편이 출연하는 단독 프로그램에 부인인 김건희 씨는 철저히 숨겼던 걸 보면 윤석열 씨의 대권 행보에 김건희 씨는 장애물이거나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로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국민의힘 소속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 '여자가 어딜...' 하는 안티 페미니즘의 영향이 반영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방송 내내 반말지거리를 하는 모습이나 조직폭력배와 같은 걸음걸이 등 방송에 참여한 연예인들이나 시청자들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에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던 검사 윤석열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장제원 국회의원의 아들이 또다시 뉴스에 등장했더군요. 음주운전에 운전자 바꿔치기 시도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그가 이번에는 무면허에 음주운전, 게다가 음주 측정을 하려는 경찰관을 밀치고 폭행하는 등 자신의 아버지의 백그라운드 없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그를 귀가시켰습니다. 국회의원의 권한이 과연 세기는 센가 봅니다. 만약 민주당 국회의원의 자식이 이런 일을 벌였다면 온 언론이 몇 날 며칠 온 지면에 도배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아가서 의원직을 내려놓으라는 요구도 이어졌겠지요. 이상하게도 언론이나 검찰은 국민의힘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모습입니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때문일까요?


내일은 우리나라 최대 명절이라는 추석, 코로나로 가족 전체가 모이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가족 모두가 보는 텔레비전에서 조폭과 같은 검사의 얼굴이나 자식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무능한 아빠의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게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이것도 보름달을 보고 빌어야 이루어지는 걸까요. 에이, 설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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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삶 - 타인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는 독서의 즐거움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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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는 언제나 연휴 동안 읽을 책을 고르느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혀를 끌끌 찰 일이지만 책과 떨어지면 나도 모르게 유아기적 분리불안이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는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연휴가 길어질수록 연휴 동안 읽을 책에 대한 기대와 설렘에 비례하여 목록 선정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선천적 선택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람처럼 갈팡질팡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종국에는 선물 보따리보다 책보따리가 더 커지게 마련이다.

 

"문학의 (전부는 아니고) 대부분은 즐거움을 위해 가볍게 읽도록 되어 있다. 느긋하게 앉아서 어떤 의미에서 "재미로"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문학을 본래 용도대로 쓰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의 모든 비평도 순전히 허사가 되고 만다. 어떤 물건이든 본래 용도대로 쓰지 않고는 평가할 수 없는 법이다."  (p.133)

 

탁월한 기독교 사상가이자 작가인 C.S. 루이스는 그의 저작 <나니아 연대기>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저명한 영문학자로서 엄청난 독서가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그는 읽은 책을 대부분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빼어난 기억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의 작가는 독서가 몸에 배어 있었고 또한 깊이 몰입해서 읽었다고 한다.

 

"루이스에게 독서란 고결한 소명이자 끝없는 만족의 출처였다. 손에 책만 들었다 하면 그가 취미로 책을 읽는지, 책읽기가 직업인지 구별이 불가능했고, 글을 쓸 때도 대체로 마찬가지였다."  (p.11 '엮은이의 글' 중에서)

 

책을 읽다 보면 독서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지한 조언들로 인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때로는 나의 잘못된 독서 행태에 대한 작가의 따끔한 일침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예컨대 친구인 아서 그리브즈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가는 '단언하는데, 모든 좋은 책은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 다시 읽어야 하네.'라고 썼는데 나는 아무리 좋은 책도 좀처럼 다시 읽는 법이 없으니 가슴이 뜨끔할 수밖에. 게다가 나는 좋은 책을 구별할 줄 아는 좋은 안목의 소유자도 아닌 까닭에 작가의 글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박힌다.

 

"그러나 단어를 죽이는 가장 큰 원인은 대다수 사람이 그 단어로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기보다 찬반을 표현하려는 욕심이 단연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어는 점점 묘사에서 멀어져 평가에 가까워진다. 한동안은 그 평가에 왜 좋거나 나쁜지가 아직 살짝 암시되어 있지만, 결국은 순전히 평가만 남는다. "좋다"나 "나쁘다"의 무익한 동의어가 되는 것이다."  (p.87)

 

대선이 가까울수록 우리의 말과 글도 거칠어지고 결국에는 이와 같은 무익한 동의어가 되고 만다는 것은 너무나 뻔한 예측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오늘처럼 맑고 깨끗한 하늘을, 구름 사이로 퍼져나오는 쨍한 가을 햇살을 우리의 관심 뒷전으로 돌린 채 서로가 서로에게 악담과 저주의 말만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삶은 그저 아와 피아의 끝없는 대결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인 양 여겨지는 것이다.

 

"좋은 신발은 신고 있어도 느껴지지 않는 신발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독서는 시력이나 조명이나 인쇄 상태나 맞춤법 따위를 의식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 때 가능해진다."  (p.173)

 

주말을 낀, 조금은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2천 명을 넘나드는 시국에 가족 모임 역시 취소되거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마음에 드는 한 권의 책만으로도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갈 데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데 쓸데없이 연휴만 길게 주어지면 그것 또한 난감한 상황이었을 텐데 말이다. 다양한 형태의 구름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주말의 오후, 사람들은 서둘러 짐을 싸고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아이들의 등을 떠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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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끝까지 살아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더러 있습니다. 힘든 것으로만 따진다면 당장이라도 접시물에 코를 박은 채 죽고 싶겠지만 인간이란 섭씨 50도, 100도에서만 감동을 받지 않고 36.5도라는 낮은 온도에서 위로를 받는 가벼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쯤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면 열악한 환경에도 묵묵히 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동물과 식물들. 어쩌면 인간의 삶이란 과분한 환경 덕분에 괜스레 어리광만 느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어리광을 들어줄 만큼 우리가 믿는 신은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는 걸 진즉에 알았더라면 삶에 대한 우리의 의지는 조금쯤 강해졌을까요. 


저는 마음이 복잡하거나 일이 제대로 안 풀릴 때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펼쳐 보곤 합니다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저자가 아우슈비츠에서 겪었던 극한의 고통과 불안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였던 그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깨달았던 삶의 의미는 제게는 역시 난해한 문제처럼 어렵기만 하지만 그래도 저자의 삶에 견주어 나의 삶은 그럭저럭 살 만한 게 아닌가 하는 위안을 얻을 때가 많습니다.


“창조와 즐거움만 의미가 있지는 않다. 삶의 의미가 있다면, 시련이 주는 의미이리라. 운명처럼, 죽음처럼, 시련은 우리 삶의 불가결한 부분이다. 고통 없고 죽음 없이 인생은 완성되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서 시련을 이겨내는 자체가 의미 있는 까닭에 삶의 고통을 꺼리며 그것을 잊을 수단을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고통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데서 의미를 찾으라는 뜻이겠지요. 코로나 정국이 길게 이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나 봅니다. 어디 자영업자들만의 문제이겠습니까마는 팍팍한 현실에도 언제나 경중의 차이는 존재하겠지요. 삶의 고통과 지루한 현실 속에서 누구나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두 번쯤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차마 못할 짓입니다. 당신 주변의 가족 친지와 이웃 모두가 당신의 가벼운 체온만으로도 삶의 위안을 받고 다시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말이지요. 우리는 비록 36.5도라는 낮은 체온으로도 더없이 큰 감동과 위로를 받는 가벼운 존재이지만, 그런 까닭에 그대의 체온이 절실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세상 어우렁더우렁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벼운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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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09-15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꼼쥐 2021-09-18 15:48   좋아요 0 | URL
즐거운 명절 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