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산
낸 셰퍼드 지음, 신소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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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유년 시절의 나를 떠올릴라치면 자연과 동떨어졌던 기억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숫제 없는 것인지, 아니면 몇몇 가지가 있었지만 기억에서 모두 지워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현재의 내 머릿속에는 남아 있는 게 없다. 그러다 보니 어느 가을날 억새밭에 누워 바라보았던 푸른 하늘이나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겨울날 짚으로 만든 김치광 안에서 느꼈던 안온한 풍경, 뽀얗게 비질을 마친 마당으로 어미닭과 함께 걸어 나오던 노란 병아리 떼 등 선명한 기억 속에는 언제나 사람보다는 먼저 그날의 풍광이 선연한 기억으로 떠오르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안의 5남매 중 막내(뒤늦게 태어난 여동생 덕분에 막내 자리는 물려주게 되었지만)로 성장했던 나는 누릴 수 있는 문명의 혜택은 거의 받아본 적이 없다. 텔레비전은 물론 전화도 없었던 까닭에 동전을 넣고 다이얼을 돌려야 했던 공중전화도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용 방법을 익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내가 조선시대에서 환생한 '별에서 온 그대'쯤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나는 엄연히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동시대인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혜택을 남들보다 비교적 늦게 받았을 뿐 드라마에서나 나올 만한 그런 구시대적 인물은 아니라는 말씀 되시겠다. 나의 성장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 작가이자 시인인 낸 셰퍼드의 산문집 <살아 있는 산>을 읽는 동안 '나는 왜 여전히 산과 자연을 좋아할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의 가장 섬뜩한 특징은 그것이 지닌 힘이다. 나는 물의 반짝이는 광채가 좋다. 음악적인 소리, 유연하고 우아한 움직임, 내 몸을 때리는 감촉도 좋다. 하지만 그 완력만큼은 두렵다. 자연의 힘을 두려워했기에 숭배했던 조상들처럼 나 역시 자연이 두렵다."  (p.52)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나는 매일 아침 산책 삼아 집 근처의 산을 오른다.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습관으로 인해 다른 조건이 엇비슷하다면 집 근처에 산이나 공원이 존재하는 것이 집의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거닐며 잠시나마 도시 생활의 번잡함과 여러 고민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시골에서의 성장 배경을 지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시골에서 도시로 퇴출된 나와 같은 도시 난민들에겐 인근의 야산이나 공원처럼 일시적으로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공간이 무엇보다 필요할지도 모른다. <걷기 예찬>을 쓴 다비드 르 브르통의 글이나 낸 셰퍼드의 산문집 <살아 있는 산>에 무의식적으로 이끌리는 까닭도 그와 같은 배경 때문일 테다.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는 방법을 터득했다면 이제는 몸과 마음을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할 차례다. 다양한 감각을 사용해야 한다. 귀로 말하자면, 산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침묵이다. 침묵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침묵이 얼마나 드문 존재인지 깨닫는다. 항상 무언가가 움직인다. 공기가 완벽하게 정지해 있을 때도 물은 흐르게 마련이니까. 산에서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고원의 물줄기는 대부분 돌 아래를 지나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이따금 사방이 너무 적막하게 느껴질 때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p.152)


<살아 있는 산>은 스코틀랜드 케언곰 산맥 지도를 시작으로 머리말을 지나 1장 '고원', 2장 '계곡', 3장 '산봉우리들', 4장 '물', 5장 '서리와 눈', 6장 '공기와 빛', 7장 '생명체:식물', 8장 '생명체:새와 동물과 곤충', 9장 '생명체:인간', 10장 '잠', 11장 '감각', 12장 '존재'로 구성되었으며 뒤에는 영국의 산악인이자 문학가인 로버트 맥팔레인의 해설이 실려 있다는 게 특이하다. 1년 내내 산을 찾는 산 애호가로서 낸 셰퍼드의 글은 케언곰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생생하다. 산을 좋아하지 않는 도시내기가 읽는다 할지라도 대리만족을 느낄 정도의 감각적인 묘사는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가 될지도 모르겠다.


"『살아 있는 산』이 현대에도 의미 있는 책인 것은 신체적 사고에 대한 셰퍼드의 믿음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점점 더 심하게 분리되어 살아간다. 우리의 마음이 물려받은 유전 특성과 습득하는 관념뿐만 아니라 공간, 질감, 소리, 냄새나 습관처럼 신체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은 점점 더 잊혀간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접촉을 잃고 있으며 과거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 더 몸과 단절되는 중이다."  (p.204 '로버트 맥팔레인의 해설' 중에서)


영영 끝나지 않을 듯하던 여름도 이제 그 막바지에 이른 듯하다.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가 펼쳐지는 것이다. 하루라도 더 자연을 만끽하고자 욕심을 부리는 일은 100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네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각박하고 단조로운 삶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나의 유년기의 기억에서 먼저 그날의 풍광이 떠오르는 것도 그런 까닭일지 모른다. 힘겹게 건너온 시간이었지만 자연이라는 뒷배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나의 영혼이 내 몸과 단절되는 것을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더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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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에 난 기사를 읽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실 관계자의 전언을 기사화한 내용이었는데 말인 즉, 대통령이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전투 식량을 직접 인터넷에서 구매해 먹어보았으며 이를 통하여 우리 군의 전투식량과 비교해 보고, 개선점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읽고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런 잡무를 처리하는 데 굳이 대한민국의 대통령까지 나서야 하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란 자리가 그토록 한가한가? 하는 점이었다. 사실 그와 같은 업무는 국방부의 하급 관리가 처리하고도 남을 일이며, 개선점을 보고 받고 최종 결정을 하는 단계에서도 국방부의 중간 관리급에서 전결 처리할 일이지 국방부 장관에게까지 보고할 일도 아닐지도 모른다. 하물며 대통령에게 그와 같은 업무가 전가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휴가기간에 정 할 일이 없어서, 혹은 몸이 뒤틀릴 정도로 심심해서 한다면 모를까 그런 일을 대통령이 한다는 건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과 의무는 과도한 측면이 있는데 그와 같은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말이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매일 밀려드는 산적한 국정 현안을 대통령 일인이 감당하기에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텐데. 사정이 이러한 까닭에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자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많지 않다.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숫제 손을 놓아버리거나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공부하고, 토론하며, 국정 운영에 매진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전자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국정 현안에 손을 놓는다고 해도 국가의 녹을 먹고 있는 공무원 신분인 자신이 그저 잠이나 자고 좋은 술과 음식만 탐하기에는 국민들 보기에 민망한 노릇이니 뭔가 하고 있다는 태는 내야 하겠고... 그래서 찾은 일이 전투식량이 아니었을까.


대통령 부부가 체코 순방을 마치고 오늘 귀국했다. 체코의 원전 수주를 목표로 방문했다고는 하지만 당사국인 체코 언론은 그렇게 보지 않는 듯했다. 2024년 9월 21일자 체코 일간지 블레스크는 김 여사에 대해 과거 세금 회피, 표절, 학력 위조 등 다양한 혐의를 제기하며,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 한국 대통령 옆에 설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대통령 부부에게 엿을 먹인 기사였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정 현안에 손을 놓은 바지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거기까지인 셈이다.


오늘은 24절기 중 열여섯 번째 절기인 추분. '추분이 지나면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가 숨는다'는데 과연 그럴지 지켜볼 일이다. 때 아닌 가을장마로 전국이 난리이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낮 무더위가 조금 누그러졌다는 것이다. 냉방장치를 가동하지 않은 실내에서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었던 게 과연 얼마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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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박성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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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는 거짓말처럼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밤새 비가 내렸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더위도 빗줄기에 한풀 씻겨 내려간 듯했다. 돌이켜보면 지독한 여름이었다. 직장인의 삶이라는 게 늦가을 해거름녘의 느린 산책처럼 여유롭고 한가할 수는 없겠지만 지난여름의 나는 입에서 단내가 물큰물큰 날 만큼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라고 썼던 박성원의 소설집 <하루>를 읽는 내내 길었던 추석 연휴가 흘러갔고, 하루가 천 년 같았던 연휴 뒤끝의 근무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주말.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소설은 맥락도 없이 뒤섞였다.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게 진짜 세상이라기보다 누군가가 그리고 있는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햇빛은 슬며시 구부러지고, 건물들은 마주 보거나 아니면 서로 등을 돌리고 서 있다. 바깥은 여름이고, 나는 마흔이다. 알고 있다. 바보 같은 나이다."  (p.43 '볼링의 힘' 중에서)


어제부터 내린 비로 도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물웅덩이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계속해서 물동그라미를 그린다. 선명하게 퍼지던 물동그라미의 파문이 이내 사라지고, 새로운 빗줄기에 의해 다시 또 생겨나는 물동그라미의 파문. 어디서 날아왔는지 마른 낙엽 한 장이 종이배처럼 떠 있다. 그 위로 사람들의 무심한 발길이 이어졌고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내렸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데 더위를 겨우 씻어낸 올해의 가을비는 한여름 장마처럼 끝이 길다.


"여자는 차창에 얼굴을 꼭 댄 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라고 남자는 중얼거렸다. 허브냄새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몸이 악기 같다고 생각했다."  (p124 '어느 맑은 가을 아침 갑자기' 중에서)


책에는 표제작인 '하루'를 비롯하여 '볼링의 힘', '얼룩', '어느 맑은 가을 아침 갑자기', '분노와 복종 사이에서 그녀를 찾아줘', '저녁의 아침', '흔적' 등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각각의 단편을 이끄는 중심인물들은 성격도, 직업도 제각각이지만 하나 비슷한 것은 그들의 이름이 모호하거나 알 수 없게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그녀 혹은 그 남자이거나 남편이나 아내, 때로는 여자나 남자 혹은 주인으로 명명될 뿐이다. 그런 까닭에 책을 읽는 독자는 소설의 얼개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한 개인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가 무수히 많은 까닭에 그들의 이름조차 혼란스러운 것처럼. 그럼에도 소설은 무리 없이 읽힌다.


"생각해보니, 태어나지만 영원히 죽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것은 죽음과 금뿐이구나. 죽은 그것들은 이제 콧구멍도 없고 숨을 쉬는 허파도 없으며 되새김질할 수 있는 위장도 없다. 지금에 와선 그것이 부럽다. 죽음의 가장 큰 미덕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것이다. 그 점에선 내 삶이나 죽음이나 똑같구나."  (p.179 '저녁의 아침' 중에서)


빗줄기가 굵어졌다 가늘어지기를 반복하며 강우량을 늘리고 있다. 사람들은 명절 연휴의 피로가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줄기와 함께 씻겨 내려가기를 바라며 하염없는 시선을 이어갔다. 스러지는 물동그라미의 파문 위로 속절없는 시간들이 지워지고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가 꿈인 양 되살아났다.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스러지는 물동그라미의 파문이 아련하고 끊이지 않는 빗소리가 익숙한 자장가처럼 잠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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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만 느껴지던 추석 연휴도 이제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휴일이라는 게 사실 그동안에 쌓인 피로를 씻고 재충전하고자 함이 일차적인 목표일 텐데 명절 연휴는 언제나 반대의 경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쌓인 피로를 풀기는커녕 쌓인 피로에 새로운 피로를 더 얹어서 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게다가 성장기에 있는 조카들이나 연로하신 어른들을 뵙고 나면 나 역시 잊고 지내던 세월의 흐름을 불현듯 느끼게 되어 정신적인 피로감도 만만치 않게 작용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자본주의라는 게 본디 돈과 권력으로 사람들의 서열을 매기는 까닭에 철이 들면 들수록 진실로부터 멀어지도록 부추기지 않던가. 자신의 처지나 속마음을 숨긴 채 몇 날 며칠을 부대끼며 연기를 한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말이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누구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듯 기진하여 영 맥을 못 추게 되고 만다.


연휴 기간 동안 나는 군에 입대한 아들을 면회하여 특별 외출로 잠시 집에 데리고 왔다가 다시 데려다주었고, 짬을 내어 처가 식구들과 '매드포갈릭'에서 외식을 했다. 자영업이 위기라는데 식당을 찾은 방문객들이 어찌나 많던지...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여념이 없고, 나는 그들의 지치지 않는 열정을 잠시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타들어가는 저 배추밭처럼 사람들 역시 시간 속으로 제 몸의 수분을 끝없이 밀어 넣다 보면 언젠가 거울 속에서 주름이 깊게 팬 푸석푸석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늙어가는 게 아니라 메말라가는 것이다.


길었던 연휴 기간 동안 읽고 싶은 책은 많았지만 게으름과 이런저런 약속에 발목 잡혔던 나는 이 책 저 책 기웃대기만 했을 뿐 어느 것 하나 끝까지 읽어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박성원이라는 소설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나는 왜 이렇게 훌륭한 작가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읽지 않았던 것일까. 바보처럼 말이다. 그의 단편소설 <하루>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


과연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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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24-09-18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새롭게 알아갑니다. 소설가 박성원!

꼼쥐 2024-09-21 14:43   좋아요 1 | URL
제가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소설가라는 게 조금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집 근처의 도서관에서 그의 또다른 소설집 ‘나를 훔쳐라‘를 대출했습니다.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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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친구로부터의 안부 전화를 받았다. 추석 명절에 보내는 선물 대신에 그가 할 수 있었던 값이 싼 인사치레는 그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그는 내게 물었다. 특별할 게 없는 나의 일상을 그가 모를 리 없건만 그와 같은 물음에 나 역시 '어떻게'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 떠오르지 않아 '잘' 지낸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나 스스로도 정확히 규정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일상을 어쩌면 나는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할 때마다 지나치는 가로수,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이마에 닿는 바람 등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배경을 묘사하거나 기록함으로써 그의 물음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갈무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와 같은 지난한 작업에는 나름대로의 노력과 타고난 재주가 뒤를 든든히 받쳐 주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나의 생각이 결국 소설가 클레어 키건에 이르렀던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햇살이 화장대 발치에 닿을 때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행 가방을 다시 들여다본다. 뉴욕은 날씨가 덥지만 겨울이 되면 추워질지도 모른다. 오전 내내 밴텀 닭들이 울었다. 그 소리가 그립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옷을 입고, 씻고, 구두를 닦아야 한다. 바깥은 들판에 이슬이 내려서 종이처럼 하얗고 텅 비어 있다. 곧 태양이 이슬을 태워버릴 것이다. 건초를 말리기 좋은 날이다."  (p.11 '작별 선물' 중에서)


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읽을 때는 작가가 설명하는 배경 묘사에 집중하며 읽어야 한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공간적 배경에 등장인물의 거의 모든 것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내적 갈등이나 결심, 기쁨이나 슬픔, 희망 혹은 절망 등 심리적인 것들 대부분이 작가에 의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등장인물을 둘러싼 배경에 의해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방식은 책을 읽는 독자들을 심리적으로 크게 동요시키지 않으면서도 소설의 흐름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그것은 마치 강물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메마른 논에 물꼬를 트는 일처럼 간단하고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배경이 되는 풍경이나 사물을 통해 등장인물의 심리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가볍게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조금 있으면 아침이었다. 흔들리는 커튼을 회색빛이 액자처럼 감쌌다. 집은 바람 구멍이 숭숭 난 덫이었다. 바깥에서는 강풍이 불고 있었다. 마거릿은 집 앞에 자란 기다란 풀을 눕히는 바람 소리에 익숙했지만 나무를 뒤흔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어색했다. 그녀는 집 근처에서는 어떤 씨앗도 뿌리를 내리고 당단풍으로 자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런 더나고어에 절대 익숙해지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피 냄새가 났다. 그녀는 아직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이었던 것이다."  (p.203 '퀴큰 나무 숲의 밤' 중에서)


책에는 표제작인 '푸른 들판을 걷다'를 비롯하여 '작별 선물', '검은 말', '삼림 관리인의 딸', '물가 가까이', '굴복', '퀴큰 나무 숲의 밤' 등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일랜드 남자들의 개별적인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이 소설집은 클레어 키건이라는 걸출한 소설가에 의해 아일랜드인의 일상이 재해석되고, 일부는 삭제되고 또 일부는 크게 부각됨으로써 국적이나 세대를 떠나 인류의 보편적인 감성에 맞닿게 된다. 아버지로부터 오랫동안 성적 학대를 당했던 딸이 성장하여 결국 집을 떠나는 장면을 그린 '작별 선물'이나 가진 것이라곤 빚으로 산 집 한 채가 전부였던 사내가 가정을 뒷전으로 한 채 자신의 집을 온전히 자신의 소유로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등은 과거 우리나라 아버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이 이혼 절차를 밟는 동안 그를 데리고 살았던 할머니는 이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부재를 느끼지 않은 적이 하루도 없다. 할머니는 인생을 다시 산다면 절대 그 차에 올라타지 않겠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느니 거기 남아서 거리의 여자가 되겠다고. 할머니는 남편에게 자식을 아홉 명 낳아주었다. 청년이 차에 다시 탄 이유를 묻자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땐 다 그랬어. 난 그렇게 생각했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줄 알았어."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스물한 살이고, 이 지구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하버드에서 A학점을 받았고, 달빛 속에서 아무런 시간제한도 없이 해변을 걷고 있다."  (p.156~p.157 '물가 가까이' 중에서)


일상을 일목요연하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나는 그의 질문처럼 '어떻게' 지낸다고 답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벽에 걸린 달력이 8월에서 9월로 옮겨오고, 하늘의 구름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 아파트 화단에 핀 맥문동의 보라색 꽃대도 희미하게 시들고 있다. 가을 늦더위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을 뿐 시간은 꽤나 빠르게 흘러간 듯 주변 풍경도 크게 변하고 있다.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배경을 묘사하거나 기록하지 않는 탓에 나는 다만 '어떻게' 지내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라는 일상 속으로 클레어 키건이 설명하는 과거 아일랜드인의 일상이 선명하게 스며들었다. 친구여, 나는 다만 '어떻게' 살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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