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토마스 산체스 그림, 박미경 옮김 / 다산초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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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산에 올랐을 때 비가 내렸습니다. 아파트를 막 벗어날 때의 하늘은 금세라도 비가 쏟아질 듯 위태위태해 보였지만 '설마' 했던 안일함이 그와 같은 낭패를 자초한 셈이었습니다. 산길을 걸을 때는 등산로 주변의 키 큰 나무들이 적당히 비를 막아주는 바람에 비로 인한 불편은 크게 느끼지 못하였지만 산을 벗어나는 순간 빗줄기의 공세를 고스란히 맞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한 고초를 마치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다 마주치는 당혹스러운 순간에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매우 적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산에서 비를 만났을 때 비가 그칠 때까지 하릴없이 기다리거나 옷이 모두 젖을지라도 굴하지 않고 오롯이 비를 맞으며 집을 향해 걸어가는 방법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비가 그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은 고려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아닙니다. 차라리 도로를 걷는 생면부지의 행인에게 돌진하여 제 사정을 설명하고 우산을 같이 쓸 수 있도록 선처를 구하는 게 더 적당한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승려의 삶은 저도 모르게 여러모로 죽음을 대비하도록 해주었습니다. 부처님은 우리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숲속 승려로 수행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늘 죽음을 접한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삶은 영구적이지 않으며 언젠가 끝난다는 현실을 날마다 마주했습니다. 대오大悟의 순간 없이도 육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은 그곳에서의 삶이 흐를수록 제 안에 점점 깊이 새겨졌습니다."  (p.261)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읽는 동안 내가 산에서 만났던 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생각지도 못한 곤경에 처했을 때에도 제 스스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거나 별별 수단을 동원하여 사태를 더 악화시키기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게 어쩌면 큰 상처 없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인 동시에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처럼 '직장'이라는 굴레만 아니라면 비가 걷힐 때까지 큰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뭇잎에 듣는 낙수 소리를 들으며 온종일 기다려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에서 마주쳤던 곤경의 순간마다 제 나름의 방식으로 분투하고 저항합니다. 시간의 흐름을 무심히 바라보았던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을 질책하고 무기력했노라 나무라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동원할 수 있는 아무런 수단도 없이 그렇게 무작정 견뎌야 했던 자신의 마음 역시 타들어가는 양초의 길이처럼 조바심에 가슴을 태우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시절의 자신을 나무라거나 자책할 것이 아니라 '잘 견뎠어' 칭찬하며 스스로를 다독여야 마땅할 것입니다. 삶에서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들은 매우 적거나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직감을 현실이라고 믿습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다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이 옳은지 그른지,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지요. 우리는 걸핏하면 삶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우리가 계획한 방식대로 마땅히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삶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극히 무지하다는 것을 이해할 때, 지혜가 싹틉니다."  (p.134)


자신의 삶을 하찮게 여기거나 가볍게 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2022년 1월에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저자 역시 자신의 삶을 가볍게 살지 않았습니다. 스물여섯 살에 다국적 기업의 임원이 되었던 저자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태국 밀림의 숲속 사원에 귀의해 '나티코' 즉 '지혜가 자라는 자'라는 법명을 받고 17년간 수행했다고 합니다. 마흔여섯의 나이에 환속하여 고국인 스웨덴으로 돌아간 저자는 사람들에게 일상 속에서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전하며 살았으나 2018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고, 2022년 1월,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저는 며칠 전에 그랬듯 여전히 제가 죽는 순간 가장 먼저 안도감을 느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가여운 몸은 드디어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다정한 몸이여, 싸워주어 고맙소. 싸움은 드디어 끝났습니다. 그다음에는 분명히 경이를 느끼게 되겠지요. 지난 30년간 저는 이 순간과 그다음에 따를 일들을 준비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런데도 깜짝 놀라게 될 겁니다. 죽음 뒤에 사라질 그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적어도 살짝만 쥐고 살아가세요. 영원히 남을 것은 우리의 업이지요. 세상을 살아가기에도, 떠나기에도 좋은 업보만을 남기길 바랍니다."  (p.306~p.307 '에필로그' 중에서)


남보다 오래 살았거나 지금껏 수도자로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삶은 지극히 무겁거나 깃털처럼 한없이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다만 타인의 삶을 너무 의식하는 탓에 자신의 삶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보듬고 살펴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시선은 늘 밖으로만 향하는 까닭에 자신의 삶이 변해가는 모습을 모른 채 늙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날 자신의 외모에 비해 무척이나 어린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우리는 영혼의 성숙을 다음 생으로 미룬 채 게으른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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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최장기 총리를 역임했던 아베가 죽었다. 그것도 일본 해상자위대에서 3년간 근무했던 41세 남자가 만든, 엉성하기 짝이 없는 사제 권총에 의한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선거 유세 도중 피습을 당한 장면에서부터,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후송되는 모습과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언론은 그의 소식을 빠르게 전했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의 주변국에서 보면 그는 일급 전범의 후손이었고,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망상가였으며, 아베노믹스로 지칭되는 강력한 양적완화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일본 경제를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트린 장본인이기도 했다. 일본 우익의 상징이자 미국의 종복이기도 했던 그의 삶. 영원할 것 같던 그의 삶도 참으로 허망하게 마감하는 걸 보면 한 사람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허약한 듯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의 코가 석 자인지라 한가하게 인접국의 미래만 걱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 미국의 경제뉴스 전문방송인 CNBC는 최근 한국 경제가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초대 고비를 맞고 있으며, 제2의 IMF 사태가 우려될 만큼, 한국경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을 정도이다. 매체에 따르면 "한국의 물가 상승률이 24년 만에 최고치인 6.0%대를 기록했으나 천문학적인 가계부채로 인해 큰 폭의 금리인상을 가로막고 있는 한편, 무역수지는 악화되고 노동자들의 단체 행동도 가속화되고 있다는 국내 사정과 함께 한국 상품의 해외 판매도 1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성장을 기록, 경제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부채질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외환보유고마저 IMF가 권고하는 적정 수준 아래로 떨어진 상태여서 원화 환율 역시 1300원을 상회하는 상황이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겨우 두 달 남짓. 대내외에 산적한 중요 경제 문제에 집중해도 돌파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대책이 없다는 대통령을 필두로 자기네들의 세과시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니 국가의 명운이 풍전등화인 듯 보이는 게 어쩌면 당연한 귀결. 만취 운전 전력이 있는 자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 임명함으로써 전국의 각 대학이 만취운전학과(가칭)의 신설을 고민하게 만들고, 이런 자를 임명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언론에 맞서 '전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냐'며 발끈하는 대통령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하긴 만취 운전을 하고도 선고유예 처분을 받는다는 건 전 정권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


요즘에는 억지로라도 웃을 일이 도통 없어서 과거에 방송되었던 촌스러운 광고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중에 단연 압권인 것은 "별이 다섯 개!"라고 외치던 어느 침대 광고. 창업주가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 광고인데 이마에는 붉은색 별을 다섯 개 덕지덕지 붙인 채 등장하여 오른손의 손가락 다섯 개를 활짝 펴고는 "별이 다섯 개!"라는 광고 멘트를 힘껏 외치는 장면인데 지금 보아도 참으로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역시 얼마 전 나토 정상회의에 참가하여 별 소득도 없이 그의 이름에 걸맞게 손가락 열 개를 활짝 펴고는 "돌이 열 개!"라고 외치고 돌아온 것을 생각할 때, 대한민국은 점점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 들 수 없었다. 집권 초기인 지금이야 "돌이 열 개!"라고 외칠 수 있겠지만 중반기만 가더라도 "돌이 백 개!" 또는 "돌이 천 개!"라는 광고 멘트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그에 따라 개명의 필요성도 언급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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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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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직장 후배와 함께 같은 차를 타고 외출을 한 적이 있었다. 성실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는 주말마다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농사일을 거드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는지라 세상 무서울 것 없어 보였던 그에게도 겁나고 두려운 게 있었던지 이런저런 얘기 끝에 갑자기 자신은 귀신이 무섭다는 고백을 해왔을 때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어느 날 시골에서 잠을 자는 데 규칙적으로 나는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깬 후 밤새 한잠도 못 잔 적도 있었다며 나이가 들어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다고 했다. "나는 자연인이다는 절대 못하겠는데?" 하고 내가 묻자 그는 "에이, 절대 못해요."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귀신이나 유령을 실제로 목격하거나 현실에서 부딪힌 경험이 있다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귀신이나 유령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그들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그런 까닭에 이런 초자연적인 대상이나 현상에 더욱 집착하고 관심을 갖게 되며 진위를 궁금해한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걷거나 깊은 산속으로 차를 몰고 들어갈 때,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갯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거나 갑작스러운 대상과 마주칠 때 우리는 등골이 오싹해지거나 가슴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와 같은 불쾌한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변조되거나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기자 출신의 프랑스 최고 추리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며 시나리오 작가였던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 역시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을 배경으로 인간 심리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사랑과 질투를 텍스트의 서사로 엮은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파리 오페라 극장이라는 크고 어둡고 일반인이 모르는 비밀 공간이 산재할 것 같은 웅장한 건물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오페라의 유령에 대한 공포와 불안과 긴장감. 그리고 크리스틴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에릭과 라울 간의 질투.

 

"나는 이제 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비록 에릭 자신이 매우 바뀌었으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사랑을 받게 된 날부터(이 말은 곧바로 나를 소름끼칠 정도로 당황하게 만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사람이 되었다고 매우 엄숙하게 선언했지만, 그 괴물을 생각할 때마다 온몸이 떨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에릭의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용모가 그를 인간의 세상에서 추방시켰다. 에릭이 자신의 추악한 외모 때문에 인간에 대한 어떤 의무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p.431)

 

천재적인 음악성과 건축가로서의 재능을 지닌 에릭은 '오페라의 유령'으로 잘 알려진 극장 내의 숨은 권력자이기도 했다. 그와 같은 에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크리스틴 다에는 극장가의 주목을 받는 스타로 성장한다. 그러나 흉측한 외모로 인해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에릭은 줄곧 극장의 지하에서 생활하며 크리스틴에 대한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나 크리스틴의 공연을 본 라울은 그녀와 함께 보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불타는 사랑을 늒게 되는데...

 

"만일 그녀의 목소리가 사랑의 날개를 타고 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목소리가 지옥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이며, 크리스틴은 오프터딩겐이라는 전설 속의 시인처럼 악마와 모종의 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p.44)

 

극적인 만남으로 라울과의 사랑을 키워가던 크리스틴은 공연 직후 에릭의 눈을 피해 라울과 함께 달아나자는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크리스틴은 에릭에게 납치당하고 만다. 크리스틴을 찾아 헤매던 라울은 페르시아인의 도움을 받아 에릭을 찾게 되고...

 

"이보게, 다로가, 잘 들어 보게. 내가 그녀 발밑에 엎드리고 있는데,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네. '가엾고 불쌍한 에릭!' 그리고는 내 손을 붙잡았어. 그때 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한 마리 불쌍한 개에 지나지 않았어. 다로가, 그건 사실이야."  (p.526)

 

에릭은 자신을 진심으로 가엾게 여기는 크리스틴의 눈물에 감화되어 크리스틴을 향한 자신의 사랑도 포기한 채 그녀가 라울과의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죽음을 맞는다. 어쩌면 에릭은 우리의 욕심이 만들어 낸 가장 흉측한 괴물일지도 모른다. 인간성이야 어떠하든, 얼굴이나 겉모습이 어떠하든 능력과 재능만 있으면 모든 게 용서되는 현대판 에릭의 모습을 우리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에릭의 순수한 인간성을 회복하고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는 크리스틴의 눈물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오페라의 유령을 읽거나 오페라로 감상할 때마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비통에 잠긴 모습을 묘사한 작품 '피에타'를 떠올리게 되는 건 아마도 나만의 습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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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더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바깥 기온은 그야말로 '폭염'. 아스팔트 도로 위로 번지는 뜨거운 열기로 인해 인접한 보도를 걷는 일조차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채 5분을 걷지 않아도 '덥다.'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밥솥을 열었을 때 퍼지던 하얀 김처럼, 폴폴 날리던 휴일의 일상은 온데간데없고 비상 상황을 감지한 사람들은 각자의 은신처를 찾아 힘겹게 스며들었다. 카페로, 영화관으로, 경로당으로, 혹은 도서관으로...

 

오전부터 도서관에 나와 책을 읽고 있다. 몇 페이지 읽다가 꾸벅꾸벅 졸고, 다시 또 몇 페이지 읽다가 꾸벅꾸벅 조는 일을 반복하면서 이따금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도 했다. 한 주의 피로가 뻣뻣하게 굳은 뇌를 더욱 자주 멈추게 했다. 글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도서관 복도로 나가 정수기의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기도 하고, 화장실 세면대에서 찬물에 손을 씻어 보기도 했다. 도서관 나들이가 영 어색한 사람들의 뒤태를 보면서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으로 비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하게 되는...

 

최은영의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를 도서관에서 채 반도 읽지 못한 까닭에 기어코 대출을 하고 말았다. 서가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무척이나 자신만만했었다. 그러나 피로에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은 창밖으로 보이는 성하의 녹음처럼 짙은 생명력으로 꿈틀대거나 영원히 닳지 않는 에너지로 펄펄 뛰거나 하지 않았다. 물에 젖은 솜처럼 힘없이 풀어질 뿐이었다.

 

"우리는 멀리멀리로 발을 구른다. 유쾌하게 웃는 당신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것들뿐인데. 나란히 앉아서 그네를 탈 수 있는 시간,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빛으로 마음껏 빛날 수 있는 시간, 서로에게 커다란 귀가 되어줄 수 있는 시간 말이야."  ('우리가 그네를 타면서 나눴던 말' 중에서)

 

최은영 작가의 글은 독자들로 하여금 가깝거나 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도록 유도하는 특징이 있다. 어느 틈엔가 나는 굳었던 심장이 아이의 그것처럼 말랑말랑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작가가 던져 준 한 톨의 낭만이 내 마음의 복주머니에 담겨 오랫동안 흔들렸던 까닭이다. 삶은 더러 슬프지도, 힘겹지도 않다는 걸 이따금 상기시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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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그린 사람 -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18인의 이야기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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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작가의 팬이 된 독자들 대부분은 출판사의 대대적인 광고나 어떤 이벤트를 통하지 않고, 블로그와 같은 개인 SNS에서 작가에 대한 호평 일색의 글을 읽고 궁금증 해소 차원에서 은유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된 경우가 일반적이다. 말하자면 지금의 은유 작가에 대한 유명세(?)는 입소문을 통한 조용한 광고 덕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을 직접적으로 증명한 작가라고나 할까. 암튼 게으른 독서가인 나 역시 이웃 블로그에서 읽었던 은유 작가의 매력에 이끌려 지금껏 작가의 팬 중 한 사람으로 살고 있으니 책을 사랑하는 열혈 독서가들에게 은유 작가는 이미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오르고도 남지 않았을까. 사족이지만 내가 읽었던 은유 작가의 첫 작품은 <글쓰기의 최전선>이었다.

 

"이야기는 힘이 세서 견고한 관념을 부순다. 내가 듣는 이야기는 감각과 정신의 속성을 천천히 바꾼다. 살아가면서 참조할 수 있는 사람 이야기가 많아야, 삶에 대한 질문을 비축해두어야 내가 덜 불행하고 남을 덜 괴롭히게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서도 인터뷰를 꼭 과제로 내어주는 이유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정해진 시간에 집중해서 듣는 일보다 더 좋은 글쓰기 공부를,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보다 더 깊은 쾌락을 나는 모른다. 지배는 단절과 분열의 문화 속에서 가장 잘 기능한다는 말이 있듯이 '연결'은 억압을 벗어나고 해방에 이르는 시작이자 원리다."  (p.10 '책머리에' 중에서)

 

<크게 그린 사람> 역시 은유 작가의 인터뷰집이다. 책에 등장하는 18명의 인터뷰이 역시 독자들에게 '연결'하고픈 은유 작가의 선택임을 생각할 때, 그들 각자의 인생관이나 신념 혹은 추구하는 세계관이 은유 작가의 그것과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감지하고 있을 터,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고 썼던 중국 작가 위화의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떠올렸던 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연결이었지 싶다.

 

1부 '아름다운 삶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에서는 평범한 길을 마다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묶었다. 사범대를 다니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홍은전은 노들장애인야학에 들어감으로써 '아무도 이기지 않고' 교사가 되었음은 물론 지금은 인권기록활동가로 살고 있다.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아픈 아버지를 돌보며 살아가고 있는 조기현은 돌봄을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투쟁을 시작했으며, 경찰 신분으로 자신이 겪은 '민생을 기록하는 원도, 평생 이타적인 삶을 살았던 자연인 씨돌 김용현, 직업의 틀을 벗어던진 채 아나운서의 외연을 확장한 임현주, 자식을 잃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변인이 된 김용균의 엄마 김미숙이 그들이다.

 

2부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에서는 코로나 시국에 직접 관객을 찾아 나선 시와,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소설가 김중미,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소설가 김혜진, 지구인컴퍼니 대표 민금채, 신영대 한양대 의대 교수를 인터뷰했다. 3부 '사는 일 자체로 누군가의 해방을 돕는 사람'에서는 노동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37년간의 복직투쟁을 이어 온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기 위해 열심히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 수신지, 한국성폭력상담소장 김혜정, 비선출직 정치인 박선민, 청년 노동자 고 김태규의 누나 김도현, 소수자의 일상을 시로 그려 내는 시인 김현이 그들이다.

 

"인터뷰는 짧은 연애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기에게 찾아온 느낌들, 생각들, 마음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마치 재물을 지키듯이 지켜내고 사는 사람들은 조용히 빛난다. 내가 만난 인터뷰이들은 그걸 삶으로 가만가만 해내는 분들이었고, 그들 앞에서 나는 자주 뜨거워졌다."  (p.300 '에필로그' 중에서)

 

찰랑이는 감정의 기복들이 마냥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이 한결같고 변수가 없는 이성의 결함으로만 이루어졌더라면 괜한 갈등이나 불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쏟아야 하는 쓸데없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고, 표리부동의 일관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신은 어찌하여 자신의 모습을 본뜬 모형으로 인간을 만들었다면서 정신이나 영혼만큼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을까, 하는 원망이 나도 모르게 자라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불완전성으로 인해 이 세상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모험과 가변성으로 가득 차고, 너의 장점과 나의 장점을 결합하여 완전함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협력과 연결의 고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은 수많은 감정의 조합들이 만들어내는 예측불가의 다채로운 조화로 인해 각자의 삶에 재미를 더할 수 있다. 그곳에 너와 나의 다름이 있다. 인터뷰집을 읽는다는 건 개개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아가 다름의 위대함을 깨닫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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