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떠난 운동장은 휑한 쓸쓸함이 가득합니다. 운동장 가장자리를 따라 눈석임물이 얕은 물길을 내어 흐르고, 빈 운동장을 독차지하듯 길냥이 두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산책에 나섰습니다. 푸석푸석한 오후의 겨울 햇살이 운동장 한가득 퍼져갑니다.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서는 먹이를 찾는 듯 포릉포릉 가볍게 날고 있습니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고 생각한 길냥이들이 까치 주변으로 몰려듭니다. 위험을 감지한 까치가 밭은 울음소리를 내며 경고성 엄포를 놓아 보지만 길냥이들은 전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길냥이들의 짓궂은 태도에 까치는 그만 포기하고 저만치 날아가버렸습니다. 운동장은 다시 길냥이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겨울 햇살이 약간의 온기를 뿌려주는 동안 눈석임물이 졸졸 소리를 내어 흐르고 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사무실 근처의  초등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아무도 없는 벤치에 앉아 햇빛을 쪼이다 들어왔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크게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하루하루의 일상은 언제나 평화롭고 푸근합니다. 어제 도서관에 잠시 들렀다가 팟빵의 오디오 매거진 <월말 김어준>이 책으로 출간된 것을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반갑기도 했고 말이죠.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월말 김어준 part 1'이라고 쓰인 책등을 발견하였을 때 뭐랄까, 오래된 친구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입니다. 서가 옆에 서서 책을 잠시 펼쳐보고 다시 꽂아 놓을 생각이었는데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여 나도 모르게 책을 대출하고 말았습니다.


동장군의 기세가 절정을 이루어야 할 시기에 예년보다 따뜻한 나날이 이어지다 보니 봄이 멀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백은선의 산문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한 가지 면만 가진 사람도 없고 한 가지 성격만 가진 인간도 없고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슬프고 이상하고 안도하고 그런 반복을 계속해서 들락날락거리는 게 내게 남은 삶을 탕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것은 나뿐이야."


두서없는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삶이 두서없는 것처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ingri 2023-01-10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어준 책 어려워보여요.tbs서 내쳐지더니 유튜브에서 첫방으로 슈퍼챗 세계 1위찍었다고. 왠지 유튜브도 불안하긴하지만요ㅋ .
5세후니 일 잘 하네요;;ㅡㅡ

꼼쥐 2023-01-12 15:55   좋아요 0 | URL
팟빵에서 가끔 들었던 내용인지라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다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서인지(건방지게)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유튜브 방송은 동접자가 여전히 20만에 육박하고 슈퍼챗도 많더군요.
 
생의 실루엣
미야모토 테루 지음, 이지수 옮김 / 봄날의책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그것을 암묵적인 슬픔이라고 부르자. 슬픔에도 모든 것을 있는 대로 내보이는 적극적인 슬픔과 꺽꺽 울음을 안으로만 삼키는 소극적인 슬픔이 있는 것처럼 슬픔이란 이런 것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슬픔,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주변의 분위기와 주변을 맴도는 어떤 느낌으로 인해 금방이라도 주르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슬픔, 우리는 그것을 암묵적인 슬픔이라고 하자. 미야모토 테루의 에세이 <생의 실루엣>을 읽고 있노라면 과거의 어떤 슬픈 기억을 통과한 현재의 암묵적인 슬픔이 마치 창호지에 물감이 번지듯 밑바닥부터 축축하게 젖어온다. 그럴 때 한 권의 책은 내 기억 속에서 슬픔을 걸러내는 체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고, 온갖 슬픈 기억 속에서 암묵적인 슬픔만 쏙쏙 뽑아내는 필터의 역할을 하는 듯도 하다.


"그나저나 내가 공황장애라는 병으로 얻은 수많은 보물에 대해 말하자면, 이제는 그것을 하나하나 궤적으로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듯하다. 타인의 아픔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거산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하나 더, 마음의 힘이라는 것의 대단함을 몸소 깨달았다는 점도 덧붙여둔다."  (p.87)


스물다섯 살 때 발작이 덮쳐온 뒤 9년이 지나서야 진단을 받고, 신경안정제가 자신의 상비약이 된 지 30년이나 되었다는 작가는 1년에 두 번씩 10년에 걸쳐 발행해 온 <소유>라는 잡지에 글을 연재하였고, '소설로 쓰면 지나치게 소설 같아지는' 추억이나 경험 등을 소재로 이 이상 쓰면 창작이다 싶은 아슬아슬한 분수령 언저리를 서성이며 에세이라는 장르를 뛰어넘겠다는 계획을 관철할 수 있었다고 후기에 적고 있다. 책에는 평생 안 보고 살던 이복형을 만나기 위해 충동적으로 찾아갔다가 그냥 돌아온 이야기, 어릴 적 입양되었던 동네 어린아이가 청년으로 장성한 후 지진으로 죽었다는 소식, 공황장애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 일이 몹시도 힘들던 시절 서점의 어느 문예지를 보고 지하철을 타지 않으려면 작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기억, 불가리아 여행에서 아무 대책도 없이 자신들을 국경 밖으로 태워다 줄 차를 무작정 기다렸던 일, 어린 시절 터널 연립주택에서 시체를 발견했던 사건 등 작가는 자기 안에 있던 작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그 터널 연립주택 시절로부터 60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충고를 지키지 않고 어슬렁거리던 때가 있어서 확실히 변변한 일은 없었지, 하며 부끄러운 생각에 잠긴다. 세상에는 70억 명의 인간이 있다는데, 그렇다면 타인은 알 수 없는 '각자의 사정'이 70억 개 있다는 뜻이다. 터널 연립주택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왠지 숙연한 기분이 든다."  (p.178)


책을 번역한 이수지 번역가는 '담백한 문체로 일상의 파문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그의 작품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다.'고 썼다. '인간도 식물도 곤충도 모두 생명이며, 돌멩이 하나조차 생명으로 보일 수 있다.'고 믿는 작가는 '바람에서도 대기에서도 비에서도 구름에서도 생명의 모습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리고 '생명보다 더 이상한 것은 없다.'고 결론짓는다. 나는 사실 미야모토 테루의 <생의 실루엣>을 적게 잡아도 두어 번은 읽은 듯하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 주변을 감싸는 모든 사물의 물성과 그것들이 맞물려 굴러가는 세상의 원리들이 무엇 하나 허투루 이루어지지 않았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선량한 사람들의 연대, 이것이 지금만큼 요구되는 시대는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 방향을 향해 구체적으로 움직이려고는 하지 않는다. 인종이나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 따위와는 상관없이 인간 하나하나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p.107)


우리는 그것을 암묵적인 슬픔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어떤 순간에도 눈물은 흘리지 않을 것이며, 타인은 알 수 없는 '각자의 사정'이 70억 개나 존재한다는 걸 믿기로 하자. 삶의 연대는, 선량한 사람들의 연대는 우리가 믿는 암묵적인 슬픔에서 비롯된다는 걸 잊지 않기로 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 존댓말과 상민 멧돼지


도시는 며칠째 미세먼지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1995년에 있었던 도쿄 지하철 차량 내에서 발생한 무차별적인 사린 가스의 살포를 잊지 말라는 경고처럼 보이기도 하고,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의 무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소한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비껴가려는지 쌀쌀하던 날씨가 풀려 미세먼지만 가득합니다. 그나저나 뒷골목 시절부터 늘 반말에 익숙했던 내가 리더 멧돼지가 된 지도 한참이나 지난 오늘 이렇게 존댓말로 일기를 쓸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게다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존댓말로 지극히 사적인 일기장을 메운다는 게 저로서도 믿기지 않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에게 하는 말일지라도 뒷골목 세계에서는 언제나 반말이 일상어처럼 쓰였던지라 다 늦은 나이의 내가 이제 와서 존댓말을 배운다는 게 말이 되지 않을뿐더러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똘마니들에게 누차 설명했는데 이번 존댓말 건에 대해서는 도무지 고집을 꺾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지고 만 것입니다. 나에게 존댓말을 쓰도록 건의한 비서 멧돼지 왈, 반말 짓거리를 찍찍하는 내 모습이 과히 보기 좋지는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내가 꼴값을 떠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여론도 좋지 않고 말입니다. 결국 나는 외국어를 배우듯 존댓말을 배우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거번먼트 인게이지먼트가 레귤레이션인 것처럼 말입니다.


멧돼지들에게 이름이나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내가 리더 멧돼지가 된 후 상민 계급의 멧돼지인 나의 충복에게 '어이, 상민(常民) 왔는가?' 하고 물었던 게 인연이 되어 상민 멧돼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앞에서도 쓴 바 있습니다. 상민 멧돼지로 하여금 정부의 주요 직책을 맡겼던 것은 나에 대한 그의 충성심도 충성심이지만 '두꺼비'라는 그의 별명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사회성이 부족하여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 능력이 전무하고, 말을 가려서 할 줄 모르며, 미래에 처할 자신의 운명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만 아니라 내가 리더에서 물러나는 순간 내가 저질렀던 대부분의 죄를 나 대신 그가 옴팡 뒤집어쓸 수도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는 뒷골목 시절 그가 심판을 보았다는 경력 때문에 후임 심판으로부터 죄를 추궁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조금쯤 알고 있습니다.  내가 리더에서 물러나는 순간, 나의 부름을 받았던 많은 수하들이 감옥에 갈 것이며 사면이나 복권을 기대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내가 리더 멧돼지가 된 후 많은 멧돼지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정부의 잘못이었습니다. 나라고 왜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럼에도 상민 멧돼지를 보직에서 해임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앞으로 저지르게 될 많은 죄들을 그가 대신 뒤집어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나의 방패막이인 셈이지요. 그는 그 일을 성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비록 눈치가 없고, 공감 능력도 부족하지만 나처럼 매사에 두려움과 공포가 큰 멧돼지에게는 상민 멧돼지만큼 배포가 크고 우직한 멧돼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이지요. 내가 리더에서 물러난 후에도 그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듯합니다. 내가 그를 신임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도시는 여전히 미세먼지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당 대표에 출마하는 여러 똘마니들이 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연일 굽실대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마음을 정한 지 오래되었지만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나에게 충성을 다짐하며 나를 알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정치권도 여전히 안갯속입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소설의 특징은 읽는 내내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도 좀체 손에서 책을 내려놓기 어렵다는 데 있다. 소설의 구성도, 스토리의 전개도, 심지어 독자의 허를 찌르는 반전까지도 모두 인공의 냄새가 폴폴 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뻔한 결말이거나 뻔한 스토리일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의 소설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일단 책을 펼친 독자라면 결코 쉽게 책을 내려놓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덫에 걸리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그 인과의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한 채 습관처럼 또다시 일본 소설을 손에 잡는다.


"터키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방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마치 뱀이나 매미가 벗어놓은 허물처럼. 텔레비전도 세탁기도 냉장고도 형광등도 커튼도 현관 매트도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p.5)


오가와 이토의 소설 <달팽이 식당>은 그렇게 시작된다. 중학교 졸업식을 마치던 날 밤, 열다섯 살에 집을 나온 주인공 린코가 그동안 애인과 함께 세를 얻어 살던 집의 모든 물건이 사라진 것이다. 사라진 것은 가전제품이나 살림살이만이 아니었다. 언젠가 애인과 동업으로 음식점을 열겠다는 희망으로 한 푼 두 푼 모았던 창업자금도 모조리 사라졌다. 그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하면서 집 안 벽장에 알뜰히 보관해 두었던 창업자금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 할머니가 물려준 겨된장 항아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린코는 그때 이후 정신적 충격에서 오는 일종의 히스테리 증상 탓인지 말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린코는 결국 겨된장 항아리만 안고 집을 뛰져 나왔던 과거처럼 심야버스를 타고 어머니가 있는 시골의 집으로 향한다. 애인에게 차이고 빈손으로 돌아온 린코를 어머니는 크게 나무라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창고로 쓰던 공간에 식당을 개업하겠다는 린코의 계획을 적극 지원하고 돕는다. 물론 이와 같은 도움은 모두 린코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몰래 하는 것이었다. 창고의 물건을 비우고 식당의 모양을 갖추기 위해 애쓰는 린코를 위해 린코와도 친분이 있는 마을 주민 구마 씨로 하여금 도와주도록 부탁하였음은 물론 창업 자금도 선뜻 내주었던 것이다. 린코의 어머니 루리코의 엄마였던 할머니로부터 요리의 기초를 배웠던 린코는 요리라면 언제든 자신이 있었다.


"머릿속으로 달팽이 식당의 이미지가 거의 굳어졌다. 달팽이 식당은 손님을 하루에 한 팀만 받는 조금 색다른 식당이다. 전날까지 손님과 면접 혹은 팩스나 메일로 대화를 주고받아 무엇이 먹고 싶다든가, 가족 구성이라든가, 장래의 꿈이라든가, 예산 등을 상세하게 조사한다. 나는 그 결과에 따라 그날의 메뉴를 생각한다."  (p.66)


입소문이 좋게 난 달팽이 식당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엄마 루리코와의 관계는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 목소리를 잃고 필담으로 나눌 수밖에 없는 제한적인 환경 탓이기도 했지만 아빠 얼굴도 모른 채 엄마와 함께 성장했던 린코는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한 상태였다. 루리코가 자신의 친엄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자신의 엄마가 운영하는 술집 아무르의 단골손님 중 한 명이 자신의 아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등으로 린코와 루리코 사이의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소설은 그렇게 막바지로 향하고 독신으로 지냈던 엄마의 비밀이 비극적인 결말과 함께 벗겨지게 되는데...


"내게 요리란 '기도' 그 자체다. 엄마와 슈이치 씨와의 영원한 사랑을 비는 기도이고, 몸을 바친 엘메스에 대한 감사의 기도이고, 그리고 요리를 만드는 행복을 베풀어준 요리의 신에게 올리는 기도이기도 했다."  (p.212)


린코가 의심하였던 엄마에 대한 비밀은 루리코가 세상을 떠난 후 뻐꾸기시계 밑에서 발견된 엄마의 편지를 통하여 모두 밝혀진다.


"정말로 소중한 것은 내 가슴속에 넣어놓고 열쇠로 꼭꼭 잠가두자. 아무에게도 도둑맞지 않도록. 공기에 닿아 색이 바래지 않도록. 비바람을 맞아 흐트러지지 않도록."  (p.218)


언젠가 읽었던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떠올리게 하는 오가와 이토의 소설 <달팽이 식당>은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의 소설에서 단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왠지 모르게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고 동화 같은 잔상들이 몇몇 이미지로 남는다. 책을 쉽사리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가독성과 비슷비슷한 스토리로 독자들을 홀리는 중독성은 일본 소설이 갖는 매력일지도 모른다. 나처럼 머리가 나쁜 사람은 '어, 이 책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하면서도 여전히 그 비슷한 이야기를 소설로 다시 읽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 소원이 있다면


2023년 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1주일여가 지나고 있다. 시간이란 게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어서 연초에는 아주 더디게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다가도 1월 한 달이 가고 나면 '벌써?' 하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 물론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에게 1월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 줄도 모른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가 흐르다가, 12월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 벌써 1년이 흘렀네!' 하는 혼잣말과 함께 시간의 노예가 된 듯한 멧돼지들의 탄식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새해. 멧돼지들에게 1년 소망이라는 게 있을 리 없지만 리더 멧돼지가 되고 보니 하고 싶은 일들이 자고 나면 하나씩 늘어나는 통에 멧돼지들의 소망이란 소망은 죄다 나에게 쏠린 듯하다.


리더 멧돼지가 된 후 처음으로 맞는 새해이다 보니 설레는 마음이 절로 드는 게 사실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지고 중요하지도 않은 술약속을 매일 잡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토록 원하던 술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매일 마실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천국이 아닐 수 없다. 마치 꿈만 같아서 똘마니 멧돼지에게 내 엉덩이를 한 번 물어보라고 시킬 때가 더러 있다. 북쪽의 정은 멧돼지가 무인기를 보내던 날도 나는 상민 멧돼지를 불러 밤새 부어라 마셔라 술판을 벌였었다. 내가 이렇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를 놀리고 구박하던 주변의 또래 친구들과 엄하기만 하던 아버지 멧돼지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된 술판은 이제 나를 과시하고 똘마니 멧돼지들을 짓밟는 장으로 변질되었다. 나는 리더 멧돼지가 된 후 술자리에서 단 한 번도 존댓말을 쓴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난하거나 힐책하는 멧돼지를 본 적이 없다. 모두가 다 굽실댈 뿐이다. 그러니 술맛이 절로 날 수밖에.


술을 원하는 만큼 맘껏 마시는 것 말고 또 다른 소망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늙다리 멧돼지들, 재물도 없고 나라의 도움만 바라는 무용지물의 늙다리 멧돼지들을 재임 중에 한 마리라도 더 제거하는 것이다. 그들만큼 눈에 거슬리는 것도 없다. 나는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의료 지원을 대폭 줄이라고 지시했다. 병에 걸린 늙은 멧돼지들이 치료를 포기함으로써 국가의 재정도 튼튼히 하고, 보기 싫은 늙다리 멧돼지들을 한 마리라도 덜 볼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닌가. 게다가 나는 원자력 안전을 느슨하게 하라고 지시함으로써 원전 주변의 늙은 멧돼지들을 일거에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울에서는 발암물질 범벅인 용산공원을 적극 개방함으로써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늙다리 멧돼지들을 그곳에 유인하여 없애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나의 계획이 차근차근 진행된다면 무용지물의 늙다리 멧돼지들을 힘들이지 않고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나는 아버지 멧돼지로부터 멧돼지들이 부자 멧돼지에 이렇게 반응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자신보다 10배 정도의 부자는 경멸하고, 100배 정도의 부자는 가까운 사람으로 삼으려 하고, 1000배 정도의 부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그의 노복이 되겠다고 자청한다고 말이다. 사실 일반적인 멧돼지들의 꿈은 많은 새끼를 낳아 자신의 DNA를 영원히 남기는 것이지만 나나 아내 멧돼지는 새끼를 낳을 수 없는 처지이고 보니 다산의 욕망보다는 부귀의 욕망이 더 크다고 하겠다. 그런 까닭에 아내 멧돼지와 그의 일가는 불법과 탈법을 넘나들며 부를 축적했고 나는 이를 비호하며 음으로 양으로 도와왔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리더 멧돼지가 된 지금, 가난한 멧돼지들보다는 부자 멧돼지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약간의 콩고물을 기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가난한 멧돼지들을 백날 도와봐야 오히려 짐만 될 뿐 나에게 돌아올 이득은 전혀 없으니 그들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게 아내 멧돼지가 내게 가르쳐준 철칙이다. 부자 멧돼지로서 노복이 되겠다고 자청하는 많은 멧돼지들을 거느리는 건 퇴임 후에 있을 나의 소망이다.


부자 멧돼지들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당연하게도 일하는 멧돼지들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국가가 관리하는 사업 중 알짜배기 사업을 그들에게 양도하고, 저항하는 멧돼지들을 일망타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새해에는 그것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나저나 나와 나의 똘마니들에게 대항하는 야생 멧돼지들의 수장을 어서 빨리 감옥에 보내야 할 텐데 그게 잘 안 되고 있으니 나의 스승 천공 멧돼지를 찾아뵙고 도움을 청해야 할까 보다. 새해 운세도 좀 볼 겸...


*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히 고지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