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소원이 있다면


2023년 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1주일여가 지나고 있다. 시간이란 게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어서 연초에는 아주 더디게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다가도 1월 한 달이 가고 나면 '벌써?' 하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 물론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에게 1월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 줄도 모른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가 흐르다가, 12월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 벌써 1년이 흘렀네!' 하는 혼잣말과 함께 시간의 노예가 된 듯한 멧돼지들의 탄식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새해. 멧돼지들에게 1년 소망이라는 게 있을 리 없지만 리더 멧돼지가 되고 보니 하고 싶은 일들이 자고 나면 하나씩 늘어나는 통에 멧돼지들의 소망이란 소망은 죄다 나에게 쏠린 듯하다.


리더 멧돼지가 된 후 처음으로 맞는 새해이다 보니 설레는 마음이 절로 드는 게 사실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지고 중요하지도 않은 술약속을 매일 잡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토록 원하던 술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매일 마실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천국이 아닐 수 없다. 마치 꿈만 같아서 똘마니 멧돼지에게 내 엉덩이를 한 번 물어보라고 시킬 때가 더러 있다. 북쪽의 정은 멧돼지가 무인기를 보내던 날도 나는 상민 멧돼지를 불러 밤새 부어라 마셔라 술판을 벌였었다. 내가 이렇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를 놀리고 구박하던 주변의 또래 친구들과 엄하기만 하던 아버지 멧돼지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된 술판은 이제 나를 과시하고 똘마니 멧돼지들을 짓밟는 장으로 변질되었다. 나는 리더 멧돼지가 된 후 술자리에서 단 한 번도 존댓말을 쓴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난하거나 힐책하는 멧돼지를 본 적이 없다. 모두가 다 굽실댈 뿐이다. 그러니 술맛이 절로 날 수밖에.


술을 원하는 만큼 맘껏 마시는 것 말고 또 다른 소망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늙다리 멧돼지들, 재물도 없고 나라의 도움만 바라는 무용지물의 늙다리 멧돼지들을 재임 중에 한 마리라도 더 제거하는 것이다. 그들만큼 눈에 거슬리는 것도 없다. 나는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의료 지원을 대폭 줄이라고 지시했다. 병에 걸린 늙은 멧돼지들이 치료를 포기함으로써 국가의 재정도 튼튼히 하고, 보기 싫은 늙다리 멧돼지들을 한 마리라도 덜 볼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닌가. 게다가 나는 원자력 안전을 느슨하게 하라고 지시함으로써 원전 주변의 늙은 멧돼지들을 일거에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울에서는 발암물질 범벅인 용산공원을 적극 개방함으로써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늙다리 멧돼지들을 그곳에 유인하여 없애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나의 계획이 차근차근 진행된다면 무용지물의 늙다리 멧돼지들을 힘들이지 않고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나는 아버지 멧돼지로부터 멧돼지들이 부자 멧돼지에 이렇게 반응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자신보다 10배 정도의 부자는 경멸하고, 100배 정도의 부자는 가까운 사람으로 삼으려 하고, 1000배 정도의 부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그의 노복이 되겠다고 자청한다고 말이다. 사실 일반적인 멧돼지들의 꿈은 많은 새끼를 낳아 자신의 DNA를 영원히 남기는 것이지만 나나 아내 멧돼지는 새끼를 낳을 수 없는 처지이고 보니 다산의 욕망보다는 부귀의 욕망이 더 크다고 하겠다. 그런 까닭에 아내 멧돼지와 그의 일가는 불법과 탈법을 넘나들며 부를 축적했고 나는 이를 비호하며 음으로 양으로 도와왔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리더 멧돼지가 된 지금, 가난한 멧돼지들보다는 부자 멧돼지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약간의 콩고물을 기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가난한 멧돼지들을 백날 도와봐야 오히려 짐만 될 뿐 나에게 돌아올 이득은 전혀 없으니 그들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게 아내 멧돼지가 내게 가르쳐준 철칙이다. 부자 멧돼지로서 노복이 되겠다고 자청하는 많은 멧돼지들을 거느리는 건 퇴임 후에 있을 나의 소망이다.


부자 멧돼지들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당연하게도 일하는 멧돼지들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국가가 관리하는 사업 중 알짜배기 사업을 그들에게 양도하고, 저항하는 멧돼지들을 일망타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새해에는 그것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나저나 나와 나의 똘마니들에게 대항하는 야생 멧돼지들의 수장을 어서 빨리 감옥에 보내야 할 텐데 그게 잘 안 되고 있으니 나의 스승 천공 멧돼지를 찾아뵙고 도움을 청해야 할까 보다. 새해 운세도 좀 볼 겸...


*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히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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