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떠난 운동장은 휑한 쓸쓸함이 가득합니다. 운동장 가장자리를 따라 눈석임물이 얕은 물길을 내어 흐르고, 빈 운동장을 독차지하듯 길냥이 두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산책에 나섰습니다. 푸석푸석한 오후의 겨울 햇살이 운동장 한가득 퍼져갑니다.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서는 먹이를 찾는 듯 포릉포릉 가볍게 날고 있습니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고 생각한 길냥이들이 까치 주변으로 몰려듭니다. 위험을 감지한 까치가 밭은 울음소리를 내며 경고성 엄포를 놓아 보지만 길냥이들은 전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길냥이들의 짓궂은 태도에 까치는 그만 포기하고 저만치 날아가버렸습니다. 운동장은 다시 길냥이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겨울 햇살이 약간의 온기를 뿌려주는 동안 눈석임물이 졸졸 소리를 내어 흐르고 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사무실 근처의  초등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아무도 없는 벤치에 앉아 햇빛을 쪼이다 들어왔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크게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하루하루의 일상은 언제나 평화롭고 푸근합니다. 어제 도서관에 잠시 들렀다가 팟빵의 오디오 매거진 <월말 김어준>이 책으로 출간된 것을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반갑기도 했고 말이죠.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월말 김어준 part 1'이라고 쓰인 책등을 발견하였을 때 뭐랄까, 오래된 친구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입니다. 서가 옆에 서서 책을 잠시 펼쳐보고 다시 꽂아 놓을 생각이었는데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여 나도 모르게 책을 대출하고 말았습니다.


동장군의 기세가 절정을 이루어야 할 시기에 예년보다 따뜻한 나날이 이어지다 보니 봄이 멀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백은선의 산문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한 가지 면만 가진 사람도 없고 한 가지 성격만 가진 인간도 없고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슬프고 이상하고 안도하고 그런 반복을 계속해서 들락날락거리는 게 내게 남은 삶을 탕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것은 나뿐이야."


두서없는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삶이 두서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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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3-01-10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어준 책 어려워보여요.tbs서 내쳐지더니 유튜브에서 첫방으로 슈퍼챗 세계 1위찍었다고. 왠지 유튜브도 불안하긴하지만요ㅋ .
5세후니 일 잘 하네요;;ㅡㅡ

꼼쥐 2023-01-12 15:55   좋아요 0 | URL
팟빵에서 가끔 들었던 내용인지라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다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서인지(건방지게)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유튜브 방송은 동접자가 여전히 20만에 육박하고 슈퍼챗도 많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