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옛사람의 생각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생각의 방향이나 영역 면에서 일정한 틀을 유지하는 것은 굳어진 화석처럼 반복되는 관습 속에는 행동과 더불어 생각도 대물림되고 있음이다.
책에 비유하자면 초판에서 내용만 살짝 바뀐 개정증보판 정도라고나 할까?
이런 까닭에 과학의 놀라운 발전에 비해 인문학의 수준이 늘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진실이라고 믿어온 생각들은 여전히 진실이라 믿고 따르게 되고, 타인의 생각이 내 생각인 양 수용하는 데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스펙트럼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행위, 즉 '의심'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은 잊혀진 지 오래다. 그것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혀지고 있다.
그러므로 √3이 무리수임을 증명하기 어렵듯이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은 오히려 설명하기 어렵다. 간혹 우리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잘못된 내 생각의 몇몇을 바로잡아 본다.
1. '기적'과 '절망'의 거리는 우리의 생각처럼 멀지 않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생각보다 일찍 오면 '기적'이 되고,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절망이 된다.
우리는 그 거리를 알지 못한다.
2. 시간은 항상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우리는 가끔 게으름으로 뻗대면 시간이 천천히 흐를 것이라 믿는다.
3. 중독은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과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중독이 좋아하는 대상으로 끌리는 현상이라 이해한다.
중독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끊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4. 사랑을 지속하기 어려운 것은 일상에서 비이성적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이성과 감정은 늘 균형을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다.
5. 우리는 돈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넘어선 탐욕을 미워하는 것이다.
6.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것은 분산된 가능성이 한곳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은 추락할 여력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바닥을 딛지 못하는 허공에서 우리는 희망을 말하곤 한다.
7. 사랑에 욕심이 개입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헌신할 것을 강요한다.
일말의 욕심도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경우는 '신의 사랑'이 유일하다.
8. 버릇없는 행동은 예절을 지켜야 하는 까닭을 납득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
우리는 그의 무례함만을 보고 있다.
9. 우리는 웃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웃고자 하는 그의 노력을 부러워 하는 것이다.
웃음에는 항상 노력이 따른다.
10. 삶이 두려울 때는 현실이 어려울 때나 행복할 때 둘 다에 해당한다.
우리는 현실이 어려울 때만 삶이 두렵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