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지.

이런저런 문제로 고민이 많으신 할머니께서는 홀로 성당에 가셨고, 늦은 아침을 먹는 내내, 한없이 가라앉는 나를 느꼈었단다.

그래서일까?

너는 조용히 일어나 베란다로 향하더구나.

유리창에 길게 이어지는 빗줄기 너머, 네 시선은 도망치듯 아주 멀리 달아났었지.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거실에서, 오전내 너는 책만 읽더구나.

물끄러미 네 얼굴만 한참을 바라보았단다.

'아! 네 얼굴에 투영되는 그 고운 마음결이 어쩌면 저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나는 정말 감탄했단다.

시시각각 변하는 너의 표정에 나는 한동안 넋을 잃고 있었지.

나는 화장실로 향했단다.

화장실 거울에는 잔뜩 굳은 내 얼굴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단다.

 

아들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몸만 굳어가는 것이 아니란다.

마음 결결이 피어나던 그 많은 표정을 함께 잃는 것이란다.

마음을 숨기며 어색하게 굳어지는 나.

나는 그렇게 교육받았단다.  그렇게 나의 몸은 마음과 차츰 멀어졌단다.

몸은 자라는데 마음은 한없이 작아지고 있음을 나는 미처 몰랐었구나.

 

 

아들아

 

네 마음이 맘껏 즐길 수 있는 곳은 너의 얼굴이란다.

네가 너른 들에서 네 몸을 키우듯이, 마음이 자라는 네 얼굴을 고이 간직하렴.

마음이 숨쉬는 그 공간을 결코 잃어서는 안된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