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막별 여행자
무사 앗사리드 지음, 신선영 옮김 / 문학의숲 / 2007년 8월
평점 :
어린 시절 소쿠리로 새의 덫을 놓았던 적이 있다.
싸리나무로 엮은 커다란 소쿠리를 땅에 엎어놓고는 한쪽 편을 들어 그 밑에 작은 나무 막대기를 괸 후에 새가 좋아할 만한 곡식 낱알을 뿌려 놓는다. 그 괴임목에 긴 끈을 매달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곡식을 쪼아먹던 새가 소쿠리 밑으로 들어가는 순간 끈을 잡아 당기면 새는 소쿠리 안에 갇히고 만다. 어린 나는 포로로 잡은 새를 의기양양하게 자랑하곤 했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미래라는 시간 곳곳에 스스로 쳐놓은 덫을 바라보며 불나방처럼 돌진하고 있다. 내가 만든 덫에 내가 잡힐 줄이야 그 어린 시절에는 상상이나 했을까.
우리는 자라면서 자신이 갇힐 덫을 미리 준비하도록 교육 받는다.
돈이 많아야 되고, 건강해야 하고, 명예와 권력을 얻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곁에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항상 우러러 봐야 하고, 오래 살아야 하고......
그 절대 기준의 덫에 걸린 나는 자유의지를 잃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미래라는 시간을 항상 염려하고, 시시때때로 탈출을 꿈꾼다. 그 덫에서 풀려나는 어느 순간 나는 또 다른 덫을 준비하곤 한다. 나는 그 절대 기준의 덫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함을 알고 있다.
그것이 어찌 나만의 일이겠는가.
현대인 대부분이 그럴 터이고, 나의 자식에게도 대물림 할 것이다.
삶의 긴 여정을 걷노라면, 때로는 고통과 직면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하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사고와도 직면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나의 절대 기준에는 그런 상황은 있을 수 없다. 오직 편안함과 안락함 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는 그 기준에 수시로 갇혀 더 큰 고통을 맛보는 것이다. 결국 삶이란 고통이고, 미래는 두려움이며, 과거는 잊어야 할 대상이다. 그 어디에서도 삶의 아름다움과 충만감은 찾을 수 없다.
이 책은 사막의 유목민 투아레그족 젊은이가 영혼을 잃고 흔들리는 모든 현대인에게 들려주는 진실의 울림이다.
사하라 사막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어느 여기자로부터 우연히 선물로 받게 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한 권은 그 소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오직 그 책을 읽기 위해 자신의 야영지에서 왕복 30km에 이르는 학교를 다니고, 온갖 고난 속에서도 <어린 왕자>의 저자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프랑스 유학의 길을 떠났던 원시 부족의 한 소년은 태양과 바람과 모래의 땅을 떠나 상상할 수 없었던 낯선 문명과 마주했다.
많은 인파 속에서 살지만 고독한 사람들과,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지만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엄청난 속도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도 조급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섹스를 즐기지만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생활은 그 소년에게 충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도시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잃고, 끝없이 자신을 잊으려 한다. 자신을 잊음으로써 삶으로부터 달아나려는 도시인들에게 원시 부족의 젊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망각이 아니라 기억을 쌓는다. 우리는 구전사회다. 따라서 우리가 잊는다면, 우리의 역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과거가 지워지는 것이다. 망각은 작은 죽음이다. 진정 살아있다는 것은, 명철한 의식으로 삶에 참여하여 모든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도피, 자신에게서 벗어남은 자신을 잃는 것이다."(P.204)
사막의 유목민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도시의 문명인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된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내 생각에 참 삶이란 복잡하고 어려운 게 아니다. 이를 누리는 방법 또한 간단하다. 매일 아침 신선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 건강을 유지하는 것, 서로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 자연을 존중하며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 온전히 시간을 사는 것, 그러한 것들이 참삶을 이룬다.(P.165)
영혼을 찾아 사하라 사막으로 향하는 문명인과 더 큰 영혼의 확장을 위해 프랑스의 도시로 향한 원시인 사이에서 나는 몹시 혼란스럽다.
법정 스님이 추천을 했던 이 책은 문명 사회의 원시 부족, 그 문명인의 필독서라고 말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다. 나는 미래의 덫을 하나씩 걷어내려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