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이유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궁리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나의 책읽기에 작은 변화가 나타났음을 느끼고 있다.
단순한 오락이나 시간 떼움의 방식에서 벗어난 것도 그러려니와 한 인물의 삶이나 삶의 깊이 있는 통찰을 다룬 책을 읽을 때에도 전과는 달리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 깨달음을 오롯이 내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전에는 단순히 나와는 관련이 없거나 애당초 내가 실천할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 쯤으로 치부하기 일쑤여서, 나의 독서는 그저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수준에 머물렀었다.
이러한 독서는 생각보다 그 폐해가 많아서 책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리거나 일회성의 독서로 끝나게 하였다.  나는 최근까지 그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피상적인 독서에 길들여진 원인은 근본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던 듯하다.  
나와 저자 간에 존재하는 거리감,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저자의 위대한 삶이나 고고한 영혼을 따르려 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독서는 그저 독서의 수준에서 끝나고 만다.  조금이라도 나를 개선하고 저자의 삶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는 적극적인 노력이나 의지가 없으면 독서는 그야말로 지적 허영 또는 시간 떼우기에 그칠 뿐, 저자와의 교감은 기대하기 어렵다.  나는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지금껏 많은 책을 읽었음에도 누군가 내 삶을 변화시킨 한 권의 책을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피상적인 독서법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나는 요즘 내게 도움이 될 좋은 책을 가려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만큼 책에 대한 진지함과 진리에 대한 경외감이 깊어진 것이다.  이런 변화에는 법정 스님의 도움이 크다.  스님은 죽어서도 범인에게 그 깨달음의 한 자락을 나눠주시니 그 대자대비함이 그저 놀랍다.

1964년 이십대 후반의 젊은 아가씨가 아프리카 오지로 들어갔다.
생물학적으로 인간과 가장 흡사하다는 침팬지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이를 통하여 인간의 문화적 진화를 규명하고자 했던 그 여인은 탕가니카 호숫가 곰베 지역에 작은 텐트를 짓고 아프리카의 자연과 그 속에서 자라나는 모든 생명체에서 평화와 자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 경이를 느낀다.  침팬지의 잔인한 공격성에서 인간에게도 공격적 유전인자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그녀.  인간의 사악하고 잔인한 그 공격성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진화하였고,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행되고 있는 각종 동물실험과 환경파괴에 가슴 아파하는 그녀는 내게 묻는다.
  만약 어떤 성직자나 승려가 이런 사람들의 내적인 삶을 체로 가려내서 영적으로 습득한 것과 영적인 성공의 정도를 가려낸다면, 과연 물질적으로 얻은 것과 정신적으로 얻은 것의 비율은 어떻게 될까.(P.249)
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과학적인 창문을 통해 침팬지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분석하면서, 그들의 복잡한 사회적 행동을 파악하여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녀는 이제 우리들에게 마음과 영혼을 통해 세상을 보는 방법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인간이 품성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합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덜 오만해질 수 있다.(그러기를 기대한다).(P.278)
세계는 ’일순간의 폭발이 아니라 한동안 흐느끼는 사이에’ 종말을 맞을 것이라 주장하는 그녀의 절망은 그녀를 인간의 탐욕에 항거하는 전사로 거듭나게 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두뇌와, 자연의 회복력과, 젊은이들의 열정과, 불굴의 인간정신에 거는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 꺼져가는 지구의 생명력에 작은 불씨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우리 모두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인간 존재로부터 성인으로 진화해야만 한다 외치는 그녀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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