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산행길에는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된다.
아침 운동이라는 것이 저마다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하는 것이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은 한결같다.
그런데 새로운 인물과 마주칠 때도 더러 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월요일에 보게 되는데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세트로 구입한 듯한 운동복을 입고, 장갑과 모자와 심할 경우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모습은 전문 산악인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과 몸에 걸친 것들이 모두 새것이라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아침 운동이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것과 같다.
그렇게 차려 입으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대개는 길어야 사나흘이 지나지 않아 모습을 감추곤 한다.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은 얼굴도 익숙하려니와 그 차림새도 수수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사람이건 물건이건 오래된 것이 좋은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엊그제는 서모 개그맨의 부인이 운영하는 쇼핑몰 "쉬 이즈 앳 홈"이 구설수에 올랐었다.
 
대나무 소쿠리(33만원)                                              회색 쿠션(44만원)

가격이 조금 과한가?
앤틱이라면 다 용서가 되는 세상 아니던가.
한동안 더위가 심했던 탓인지 큰 웃음을 선사하는 분들이 종종 눈에 띈다.
무더위에 지친 국민들에게 살신성인하여 웃음을 주려는 그 모습이 눈물겹다.
같은 날 강모 국회의원이 대통령까지 거론하는 저질 개그로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왠지 한참을 웃다가도 뒷맛이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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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누구나 턱턱 막히는 순간이 있다.
평소 같았으면 눈 감고도 걸었음직한 익숙한 길에서 몇번이고 부딪히고 넘어졌던 기억처럼 순탄하던 내 인생길의 작은 돌부리에 걸려 앞 못 보는 맹인처럼 나뒹구는 순간, 우리는 좌절하게 된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에 겨워 축제를 즐기는데, 나만 홀로 불행의 나룻배를 타고 외딴 섬으로 향하는 듯한 느낌 또는 애정 어린 손길로 나를 감싸주던 삶의 미소가 한순간에 돌변하여 내 멱살을 부여잡고 마른 바닥에 사정없이 내동댕이 치는 듯한 그런 기분.
나는 그 흙바닥에 누워 대상 없는 그 누군가에게 돌팔매질이라도 하고 싶었던 그런 기억은 내 남은 인생에서 두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잔혹한 신이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오늘 만났던 후배의 한탄에 나는 그보다 더한 일도 겪었노라 말한들 그의 고통이 감해지지 않음을 알기에 나는 그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내가 그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지고 싶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까?
다정한 말 한마디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나를 야속하다 여기지는 않을지...

88년,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었던 소설가 박완서가 생각났다.
그녀가 사는 이 나라에는 올림픽 축제로 떠들썩했건만 온몸으로 아픔을 견뎌야 했던 그녀를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었을까?
 "자식을 앞세운 에미는 밤에 편히 잠들지 못한다. 추운 날은 내 자식이 얼어붙은 딱딱한 땅속에서 추위에 떨 것 같아 따스운 잠자리가 오히려 가시방석처럼 고통스러워 전전반측 잠 못 이루고, 더운 날은 더운 날대로 그 깊은 땅속에서 답답하고 무서워 어찌 견디나 싶어 쾌적한 냉방을 거부하고 홀로 가슴을 쥐어뜯는다." (`에미 마음, 여자 마음` 中) 고 썼던 그녀의 상실은 세월에 흘러 아득할 터, 이제는 여느 봉분과 다를 바 없는 동그마니 작은 묘소가 그녀의 아픔을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살다보면 나만 홀로 겪는 듯한 그런 일들이 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나 아닌 누군가에게도 언제든 찾아오는 그런 일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내가 사는 하루하루는 인생의 작은 퍼즐조각이라고 하지 않던가.
죽음을 앞두고 내 인생의 전체 그림을 완성했을 때, 혹시 아는가?  그때의 아팠던 순간이 무지개로 빛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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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어릴수록 기후 적응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조금만 더워도, 조금만 추워도, '죽겠다.'는 말이 거침없이 튀어 나오니 말이다.
이것은 비단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겨울이면 옷을 껴입고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여름이면 혀를 길게 빼고 헉헉대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매일 아침 마주치는 외국인 아가씨가 있다.
내가 운동을 마치고 산을 다 내려올 때쯤이면 배낭을 매고 산을 오르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간단한 인사와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인데 캐나다 출신인 그녀가 우리나라의 여름을 견디는 것이 조금 신기하다 느낄 때가 가끔 있었다.
"Good morning." 하고 인사를 건네자 늘 그렇듯 그녀는 서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하고 말한다.  그리고 웃는다.
"It's so hot and sticky. isn't it?" 하고 말하자 그녀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Ya, but I like summer.  I've never experienced hot weather like this in Canada.  So I enjoy the summer now."
나는 순간 그녀의 긍정적인 인생관이 좋았고, 새로운 것을 즐기는 그녀의 젊음이 부러웠다.
"Have a good day."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고 산을 내려왔다.
약한 바람이 등에 흐르는 땀을 걷어가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의 더위는 훨씬 옅어졌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더위도, 추위도,  순간일 뿐이다.
지나간 젊음을 한없이 그리워 하듯, 계절의 순환도 그런 게 아니겠는가.
내게 허락된 짧은 시간을 헛된 불평으로 허비하며 지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고 또 반성해 볼 일이다. 
비가 한바탕 쏟아지다가 그쳤다.
후끈한 열기와 눅눅한 습기가 온 방안을 휘감고 있다.
나는 그녀처럼 오롯이 여름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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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뉴스를 보면 교육부와 얼마 전 당선된 진보 교육감 사이에 불미스런 문제가 심심찮게 불거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교육의 문제가 어찌 그뿐일까마는 학생을 둔 학부형의 입장에서 아이의 교육을 생각할 때마다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기업 프렌들리를 정책 기조로 삼는 현정부와 학생의 자율이나 인권을 강조하는 진보 교육감의 시각에서 사뭇 이데올로기의 대립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세계은행이 공개한 2009년 세계 경제 규모 순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8325억달러로 세계 15위에 이른다.  2003년에 11위를 기록했지만, 해마다 뒷걸음질쳐 현재에 이른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러한 추세는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암울한 전망을 낳게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960년 6.0명에서 2008년 1.19명으로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고 가정할 때 2020년이면 우리나라의 전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여, 2050년에 이르면 현재 인구보다 600만명 정도가 줄어들고, 2300년에 이르면 전체 인구가 5만명이 된다고 한다.  알다시피 한 국가의 전체 인구는 기업의 입장에서 노동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한 것이다.  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비의 감소는 기업과 소수 자본가에게 있어 사활의 문제이자 생존이 달린 문제이므로 어떠한 방식으로든 소비의 확대 재생산을 유도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이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각각의 소비자로 하여금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남보다 더 좋은 차, 더 좋은 가구, 더 좋은 집, 더 좋은 휴대폰, 더 좋은 옷 등을 갖고 싶어 하는 욕구와 경쟁의식을 부추김으로써 제품의 교체 주기를 더욱 짧게 만들 수만 있다면 제품의 소비는 인구의 감소에 따른 소비의 감소를 대체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어릴 때부터 경쟁을 학습시키는 일련의 교육은 기업의 입장에서 필수적이다.
경쟁은 본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이기에 교육을 통하여 끝없이 경쟁의식을 주입함으로써 제품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격의 완성이나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진정한 교육의 의미는 퇴색되고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유능한 인재 육성이라는 미사여구도 마찬가지다.
기업에 필요한 인재는 입사와 동시에 기업의 문화와 용도에 맞도록 육성되는 것이지 발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의 전문인력은 발굴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좋은(?) 소비자로 길러지고 있다는 자괴감은 나만의 생각일까?  구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휴대폰을 바꾸려 하고, 친구네집의 평수가 궁금하고, 다른 집의 차종을 궁금해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교육계내에 존재하는 작금의 문제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아니며 자라나는 아이들을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도구로 보느냐 아니면 삶의 고귀한 가치를 지닌 인격체로 보느냐 하는 관점의 문제인 것이다.  기업의 이익을 최상의 가치로 인식하는 한 우리나라 아이들의 고난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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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랫만에 흘러간 옛노래를 들었다.
최근에 나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살고 있기에 이런 여유마저 잊고 있었다.  어쩌면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업무와 건강을 신경쓰느라 그밖의 다른 것에는 일체 눈을 돌리지 않았었다.  그렇게 즐기던 책도, 음악도, 다른 사람과의 교제도 손을 놓은 지 꽤나 오래 된 느낌이다.  월드컵 열기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한데 나만 홀로 외딴 섬에 따로 떨어진 것 같은 그런 생활을 해 왔던 것인데, 때로는 이런 생활이 오래 지속되면 좋은 점도 더러 있으나 벗어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오늘은 작정을 하고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유독 내 귀를 사로잡는 노래가 있었다.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섹스폰 소릴 들어보렴

샛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섹스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 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리를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그렇다.  허스키한 보이스가 매력적이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란 노래이다.
낭만의 사전적 의미는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 또는 그런 심리 상태로 인한 감미로운 분위기."라고 적혀 있다.  한마디로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낭만을 말할 때 묘한 설레임을 느끼게 된다.
희망과 절망의 중간쯤에 사랑이 있다면 사랑과 이별의 중간쯤에 낭만이 있다고 할까.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거나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할 때에도 낭만은 먼 거리에서 우리와 동행하고 있음이다.  작은 내의 징검다리를 건너듯 알맞은 보폭에 놓인 낭만의 징검다리는 꿈결 같은 사랑의 미로를 안내하는 안내인이자, 사랑을 보호하는 파수꾼이다.
정열과 낭만이 넘치던 학창 시절, 우리는 저마다의 사랑을 찾아 낭만에 젖었었다.
그 즈음에는 비 오는 날의 우수도, 눈보라 몰아치는 추위도 한편의 아름다운 시가 되고 언젠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라진 간이역에 남겨진 무성한 잡초처럼 덧없고 쓸쓸한 것일지언정 언젠가 그 추억만으로도 다시 찾을 기약을 하게 되듯, 낭만이 있는한 언제든 추억은 되살아나는 것이다.
열병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낭만은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사랑의 청량제 역할을 하는가 하면, 서로가 데면데면한 사람들에게 낭만은 서로의 가슴에 회오리 바람처럼 빨려들어가는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낭만은 과거와 현재에 다리를 놓아 준다.
고즈넉한 어느 여름날의 저녁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지난 시절의 한토막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은 우리네 가슴에 낭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 며칠 건조한 삶을 살았던 탓인지 딱딱하게 굳어 있는 내 머리와 감성은 글을 쓰기 어렵게 한다.   머리와 손이 제각각 노는 느낌이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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