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누구나 턱턱 막히는 순간이 있다.
평소 같았으면 눈 감고도 걸었음직한 익숙한 길에서 몇번이고 부딪히고 넘어졌던 기억처럼 순탄하던 내 인생길의 작은 돌부리에 걸려 앞 못 보는 맹인처럼 나뒹구는 순간, 우리는 좌절하게 된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에 겨워 축제를 즐기는데, 나만 홀로 불행의 나룻배를 타고 외딴 섬으로 향하는 듯한 느낌 또는 애정 어린 손길로 나를 감싸주던 삶의 미소가 한순간에 돌변하여 내 멱살을 부여잡고 마른 바닥에 사정없이 내동댕이 치는 듯한 그런 기분.
나는 그 흙바닥에 누워 대상 없는 그 누군가에게 돌팔매질이라도 하고 싶었던 그런 기억은 내 남은 인생에서 두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잔혹한 신이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오늘 만났던 후배의 한탄에 나는 그보다 더한 일도 겪었노라 말한들 그의 고통이 감해지지 않음을 알기에 나는 그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내가 그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지고 싶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까?
다정한 말 한마디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나를 야속하다 여기지는 않을지...
88년,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었던 소설가 박완서가 생각났다.
그녀가 사는 이 나라에는 올림픽 축제로 떠들썩했건만 온몸으로 아픔을 견뎌야 했던 그녀를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었을까?
"자식을 앞세운 에미는 밤에 편히 잠들지 못한다. 추운 날은 내 자식이 얼어붙은 딱딱한 땅속에서 추위에 떨 것 같아 따스운 잠자리가 오히려 가시방석처럼 고통스러워 전전반측 잠 못 이루고, 더운 날은 더운 날대로 그 깊은 땅속에서 답답하고 무서워 어찌 견디나 싶어 쾌적한 냉방을 거부하고 홀로 가슴을 쥐어뜯는다." (`에미 마음, 여자 마음` 中) 고 썼던 그녀의 상실은 세월에 흘러 아득할 터, 이제는 여느 봉분과 다를 바 없는 동그마니 작은 묘소가 그녀의 아픔을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살다보면 나만 홀로 겪는 듯한 그런 일들이 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나 아닌 누군가에게도 언제든 찾아오는 그런 일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내가 사는 하루하루는 인생의 작은 퍼즐조각이라고 하지 않던가.
죽음을 앞두고 내 인생의 전체 그림을 완성했을 때, 혹시 아는가? 그때의 아팠던 순간이 무지개로 빛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