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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비비언 고닉 지음, 서제인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8월
평점 :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평소에 가깝다고 느끼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나에 대한 세세한 질문을 퍼붓거나 지난달보다 살이 조금 빠졌다거나 쪘다거나 하는 식의, 나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추측성 정보를 마치 사실인 양 단언하면서 살갑게 다가서려는 모습 등은 거북하기 이를 데 없지만 악의가 없는 상대방을 야멸차게 밀어내는 것도 차마 못할 짓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고 마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회생활에 있어서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를 산정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닥치는 갈등 중 8할 이상은 서로 간의 거리를 잘못 책정한 탓일지도 모른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반응의 부재는 내 삶에서 하나의 존재로 변했다. 이 존재에서는 고립의 감각이 흘러나왔고, 그 감각은 점점 더 꾸준하게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그 스며듦에서 하나의 진공 상태가 만들어졌다. 그 진공 상태 속에서 나는 외로움뿐 아니라 내가 단절되었음을, 피해야 할 인간 본연의 상태가 됐음을 느꼈다.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극심한 욕구에 사로잡힌 나머지, 나는 스스로 생각해왔던 것보다 한층 더 즉각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나는 내면의 균형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그 균형의 불안정함은 나를 놀라게 했다." (p.193~p.194)
미국의 에세이스트이자 비평가인 비비언 고닉의 저서를 처음 만났던 건 지난여름, <사나운 애착>을 통해서였다. 회고록 장르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그 책 덕분에 나는 비비언 고닉이라는 에세이스트의 매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손에 잡은 고닉의 저서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책에 대한 소개보다도 제목에 이끌려서 읽게 되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간섭 탓에 몇 번 마찰을 빚었던 나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나만의 공연을 펼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혼은 친밀감을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유대감은 부서져 내린다. 공동체는 우정을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참여는 끝이 난다. 지적인 삶은 대화를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 삶의 신봉자들은 괴상해진다. 사실은 정말로 혼자 있는 게 더 쉽다. 욕망을 불러일으키면서 그것을 해결해주려 하지 않는 존재와 함께 있는 것보다는." (p.216)
비비언 고닉이 관찰하는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 지구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들이지만 그녀의 눈은 마치 현미경과 같아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 그 무수히 많은 세세한 조각들을 통하여 마음에 의문으로만 남았던 여러 정황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테면 우리가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쳤던 여러 실마리들을 고닉은 하나하나 찾아내어 우리 앞에 펼쳐놓는 것이다. 그리고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다. 당신은 이러이러해서 슬펐으며, 저러저러해서 외로웠으며, 그것에서 벗어나려면 이러이러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 후에 내가 외로움에서 나 자신을 비틀어 떼어냈던 게 기억난다. 외로움은 나를 겁에 질리게 했다. 몸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기로 균형이야말로 모든 것이었다. 나는 내 주위 잔디밭을, 건물들을, 주차장을, 직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 조그맣고 빈틈없는 세계를 둘러보았다. 이 세계에서 내가 훌륭하게 작동하는 방법을(다시 말해 무례한 모욕을 피하고 어디까지 굴복할지 한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익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 똑바로 앞을 보고, 입을 다물고, 온전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 삶의 크기가 얼마나 되든, 그것이 무엇으로 구성되든, 삶은 순간이라는 좁고 똑바른 길을 걸어 나가는 데 달려 있다고 나는 단호하게 생각했다." (p.102~p.103)
책에 실린 일곱 편의 글에서 고닉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다른 어느 것보다 소중하다고 말한다. 때로는 어려운 일에 몰두하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살아갈 동력을 얻기도 하고,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낯선 이들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으며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홀로 있는 것보다 더 외롭고 고독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감기 몸살 후유증으로 인해 최악의 컨디션으로 한 주를 보냈던 나는 비비언 고닉의 몇몇 문장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20도에 육박하는 이상 고온으로 인해 계절은 다시 가을의 어느 시점으로 회귀하는 듯하다. 급변하는 날씨 탓에 사람도 자연도 몸살을 앓는다. 기후 위기가 아니라 기후 전쟁이 시작된 듯한 느낌. 전쟁과 같은 이 삶에 전하는 비비언 고닉의 위로,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읽는 이의 기억에 남지 않고 가슴 밑바닥에 찰랑찰랑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