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잘 잤으면 하는 너에게 - 고단한 하루 끝, 숙면 기원 에세이
미내플(유민애) 지음 / 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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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피곤이 아침 기상시간에 몰리던 시기가 있었다. 아침을 먹고 학교에 등교하기 위해 혹은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만 하는 그 짧은 시간에 쌓인 피로가 집중되다 보니 시간을 넘겨 더 잘 수만 있다면 나의 운명을 악마의 유혹에 팔아넘길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시간이었다. 그러나 장점도 있었다. 잠에서 빠져나오는 게 힘들 뿐 일단 정신이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뿐했고 하루를 별 탈 없이 잘 보낼 수 있었다. 단지 일어나는 순간이 힘들었을 뿐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일과에서 쌓인 피로가 저녁 귀가 시간에 집중된다. 밖에서 일을 마치고 일단 귀가하면 그때부터 만사가 귀찮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진다.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싫은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면 언제나 그렇듯 습관처럼, 뇌 속에 주입된 일과의 반복이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것처럼 하루를 거뜬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시기가 지나고 좀 더 나이가 들자 하루의 피로는 일상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동행이 자연스러운 불치병처럼 말이다. 피로가 풀려 개운하다거나 가뿐하다는 느낌은 옛날 옛적의 동화 속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일주일의 피로가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주말 시간에 더 깊은 피로감으로 몰려온다는 점이다. 친척의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행사에 참가하느라 쉴 시간이 없었던 주말이면 다음 주에 견뎌야 할 시간들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진짜 휴식을 취하려면 지금 머릿속에 가득한 걱정부터 내려놓자. 물론 그게 얼마나 힘든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걱정에 휩싸일 때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패닉에 빠져 시간만 흘려보내곤 하니까. 그러나 걱정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는 몸의 긴장이 풀릴 수 없다. 휴식답게 휴식할 수 없다."  (p.30)


자기계발 유튜버이자 고민 상담가로 잘 알려진 미내플(유민애) 작가의 저서 <오늘도 잘 잤으면 하는 너에게>를 택배로 받았던 건 어제 오후.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던 나는 나도 모르게 후루룩 다 읽고 말았다. 작정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가볍다거나 한 번 빠르게 읽고 구석으로 던져버려도 되는 그런 책도 아니다. 이런저런 고민 때문에 불면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 저자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맞춤 처방전을 제시함으로써 같은 시기를 통과하는 젊은 세대에게 큰 도움이 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 이어 1장 '고단했던 하루 끝, 나를 보듬는 시간', 2장 '나를 괴롭혔던 건 너일까? 나일까?', 3장 '일단 자고 내일 생각해 볼 것'에 이어 에필로그 성격의 '땡스 투'로 끝을 맺고 있는 이 책은 각 장의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젊은 시절에 공통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일과 관계, 그것으로부터 오는 여러 고민들과 불면의 나날들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저자 자신이나 주변의 그 누구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인해 여러 날 잠들지 못하고 피곤에 절어 다른 문제까지 야기하는 불상사는 막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물론 해결하지 못한 어떤 문제로부터 매번 도망치거나 문제를 회피하라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꾸준히 동력을 잃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계기로 삼는가가 중요하다.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시한폭탄 같은 불안을 동력으로 삼는다. '패배자가 될까 봐', '남들이 무시할까 봐', '인정받지 못할까 봐'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 자신을 몰아붙인다. 몸과 마음의 근육이 제대로 단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안감에 불을 지핀다면, 머지않아 번아웃으로 향하는 지름길로 가게 될 것이다."  (p.163)


어떤 특정한 고민은 그 시기가 지나면 유효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고민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셈이다. 결혼을 하지 못했거나 때를 놓친 채 50대가 된 사람이 있다면 결혼은 이제 그에게 큰 고민거리가 되지 못한다. 하면 좋고 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가벼운 주제로 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효기간이 존재하는 이런 고민들은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종국에는 우리 인생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죽음'도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음을 나는 책을 통하여 배웠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의 바이오리듬도 변하고 젊은 시절처럼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던 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숙면의 가장 큰 적이라는 고민을 적절히 조절하고 해결하는 일은 내게도 필요한 듯 보인다.


"내 문제를 어떻게든 마주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때, 내가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나아가려고 노력할 때, 내 주변 사람들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때, 오래 울기를 그만둘 때 세상은 언제나 더 또렷해졌다."  (p.215)


피곤해서 저녁 일찍 취침에 들었지만 이유도 없이 새벽에 깨서 다시 잠들기 위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눈은 더 한층 말똥말똥해지고 잠은 구만리 밖으로 달아나는 날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낮에 활동량을 늘리고, 햇빛을 쪼이는 시간을 늘려도 소용이 없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고 있음이다. 피곤은 이제 익숙한 배우자처럼 상시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나는 미내플 작가의 책 <오늘도 잘 잤으면 하는 너에게>를 뒤적이며 찡한 마음으로 '더 좋은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야' 마음속으로 내게 깊은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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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소설, 향
조경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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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움직임>에서 작가 조경란이 그리고자 했던 가족은 소설 속 주인공인 '나'(신이경)가 가꾸던 작은 화단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런 힘이 없는 까닭에 주변의 어떤 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가족. '담배꽁초와 빵봉지들'이 쌓인 척박한 환경이지만 거름을 주고 잘만 돌보면 언젠가 분꽃, 채송화처럼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라는 기대만 가득했던 가족. 그러나 시름시름 앓던 엄마를 잃고 외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새로 꾸린 가족은 '가족'이라기보다는 혈연관계라는 외피를 두른 '이상한 동물원'에 가까웠다.


"이 목욕탕집에 처음 왔을 때 내게 유일하게 위안이 됐던 건 이 화단뿐이었다. 사과 궤짝만 한 작은 화단에는 담배꽁초와 빵봉지들이 널려 있다. 나는 매일매일 화단에 물을 주고 쓰레기들을 골라낸다. 지금은 분꽃, 채송화가 한창이다. 곧 봉숭아도 몽우리를 터뜨릴 것 같다."  (p.19)


완전한 성년도 미성년도 아닌 스무 살의 '나'는 목욕탕집 일 층의 단칸 셋방의 가족 구성원으로 편입한다. 일 층에는 여섯 가구가 세 들어 살고 있고, 이 층은 목욕탕, 삼 층은 안마시술소가 운영되고 있다. 다락방이 있는 외갓집에는 결혼도 하지 않은 외삼촌과 이모, 외할아버지가 함께 산다. 늑막염을 앓고 있는 외삼촌은 매일 한 움큼의 알약을 털어 넣고, 밤마다 흉몽에 시달리는 이모는 깊이 잠들지 못한다. '나'는 허허벌판의 벽돌공장에서 블록벽돌을 만드는 외삼촌과 외할아버지를 위해 도시락을 싸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한다. 농협에서 하루 종일 돈을 세고 퇴근하는 이모는 책상도 없는 단칸방에 엎드려 새벽까지 외국어 공부를 하고,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내가 산책을 다녔던 샛강과 할아버지의 벽돌공장, 문득문득 마주치곤 했던 장님들과 삼촌의 여자, 그리고 다락방이 있던 어두운 집과 남자의 방이 떠오른다. 그 밖에 더 이상 기억할 게 없다. 기억할 게 많은 사람들은 떠나지 못하는 법이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툭툭 털어내버린다."  (p.85)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했던 '나'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화단을 가꾸고, 기차역을 서성이기도 하고, 앞방 남자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나처럼 우편물이 오지 않는 앞방 남자는 가느다란 안전줄에 매달려 유리창을 닦는다. 남자 방의 열쇠 하나를 훔친 '나'는 남자가 없는 방에서 이불에 밴 남자의 체취를 맡기도 하고, 3개월이나 밀린 방세 중 한 달치를 남자 몰래 대신 내주기도 한다. 책상을 사기 위해 이모의 지갑에서 몰래 빼돌려 오랫동안 모았던 돈이었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나를 위해 검정고시 교재를 사다 주었던 이모는 어느 날 회사 근처로 나를 불러 점심으로 냉면을 사주었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나갔다. 농협에 맡긴 고객의 돈을 들고 앞방 남자와 함께.


"서랍에서 검정고시 학습지를 꺼내 읽다 보면 또 시간이 갔다. 꽃들은 다 어디로 날아가버렸는지 한 포기도 보이지 않는다. 작고 까만 씨앗들도 떨어져 있지 않다. 아전부터 쓰레기통이었던 것처럼 담배꽁초며 과일 껍질들만 쌓여 있다. 모종삽으로 화단 흙을 쑤석거린다. 잔돌멩이가 많고 시멘트 조각들이 박혀 있다. 이 거친 흙을 뚫고 한때 꽃들이 피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묵묵히 흙을 파헤친다. 삼촌의 오줌이라도 몰래 뿌리고 싶다. 거름이 필요할 것이다. 내년 봄에도 나는 이 작은 화단에 꽃씨를 뿌리고 있을까."  (p.98)


<움직임>에서 작가 조경란의 문체는 사뭇 건조하다. 건조하고 짧은 문장들이 흩어지는 모래알처럼, 같은 혈연이지만 함께 섞일 줄 몰랐던 외갓집 식구들처럼 내내 서걱거린다. 그럼에도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인 '나'를 통하여, 내가 가꾸는 작은 화단을 통하여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가족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까닭에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도,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도 배우지 못했지만, 때가 되면 그들 모두가 저마다의 꽃을 피울 것이라고 강하게 믿고 응원하는 관계.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쏟아지는 5월. 꽃잎을 떨군 아까시나무는 제 소임을 다한 듯 제법 원숙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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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속담은 어느 정도 사실인 듯싶다. 결혼과 동시에 외국에서 타향살이를 시작한 여동생은 뉴욕에 정착하여 지금은 가족 전체가 미국인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시간을 맞춰 전화 통화를 하는 일조차 행사 아닌 행사가 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와 13시간의 시차가 나는 까닭에 내일 하지, 내일 하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서로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 채 한두 달이 훌쩍 지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날짜를 세다 보면 왠지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들기도 하고, 타지에서 종종걸음을 칠 여동생이 눈에 밟히는 것이다. 그럴라치면 나는 서둘러 전화를 하곤 한다. 그리고 그곳 사정도 모른 채 대화는 시간을 넘겨 길게 이어지곤 한다.


어제의 전화 통화도 다르지 않았다. 한 번 시작된 통화는 여동생과 가족 전체를 돌아 다시 여동생에게로 되돌아갔을 때 비로소 끝이 나게 마련인데, 어제는 재작년에 대학생이 된 여동생의 큰딸(나에게는 조카)과의 통화가 길게 이어지는 바람에 결국 인사를 대신 전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조카 선에서 끝을 맺고 말았다. 한국어가 서툰 조카는 빠른 영어로 쉼 없이 떠들었고, 나는 잘 들리지도 않는 발음을 알아듣느라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그 발단은 사실 미국 내 대학가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관한 것이었다. 조카 역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학살하는 이스라엘 시오니스트의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며 팔레스타인 주민의 생존권을 위해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학살을 주도하는 이스라엘 정치인과 이를 지원하는 미국 정치인의 행보에 분개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그녀의 외삼촌으로서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사법적 처벌이나 불이익이 염려되는 게 사실이었지만 기성인으로서 차마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제노사이드에 가까운 만행을 보면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우리나라 대학생의 현실이 부끄러움을 넘어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사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려는 움직임, 즉 동정심은 인간만이 갖는 감정이다. 이것은 혹시 나에게도 있을지 모르는 미래의 불행에 대한 일종의 보험이다. 나에게 비슷한 불행이 찾아왔을 때 그들 역시 나를 위해 싸워줄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 그것이 없다면 인간의 동정심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이타적인 행동인 듯한 동정심과 연대가 그 저변을 살펴보면 지극히 사소하면서도 이기적인 충동이 깔려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집단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인간이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는 올바른 태도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이와 같은 연대에서 멀어진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느 나라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의 젊은이들은 각자도생에 너무나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의 불행에 누구 한 사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런 가능성조차 내가 기대할 수 없다면 불안으로 점철된 미래를 어찌 견딜 수 있을까. 내가 조카와의 통화를 마친 후 먼 나라의 대학생이 부러웠던 건 그런 까닭이었다.


오늘은 어린이날.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가까운 곳의 중학교 빈 운동장에는 우산을 쓴 몇몇의 사람들이 운동장을 하릴없이 돌고 있다.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늘어선 벚나무는 가지치기를 했는지 깡똥한 우듬지가 마치 상고머리를 한 중학교 신입생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잘려 나간 가지들이 운동장 한 켠에서 우두커니 비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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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4-05-05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청소노동자에 학습권이 침해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소송을 낸 대학생 모습을 보며 암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게 그들이 생각하는 공정 일까요?

요즘 대학생들 보면 하다못해 ‘반값 등록금‘ 시행 하라는 요구라도 하던가,

본인도 군대에 갈텐데 또래 채상병의 죽음에 대해서도 침묵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왜 사회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내놓지 않는걸까요?

나에게 비슷한 불행이 찾아왔을 때 그들 역시 나를 위해 싸워즐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

제가 아픔에 눈을 감지 않는 이유입니다

꼼쥐 2024-05-08 18:51   좋아요 2 | URL
먹고사는 문제가 무엇보다 절실한 그들에게 그외의 다른 문제는 아마도 개똥철학쯤으로 여겨질지도 모르죠. 언론과 보수 여당은 젊은이들을 그런 쪽으로 끝없이 몰고가고... 말하자면 공부만 많이 한 개,돼지로 만드는 게 보수여당의 목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삶을 잘 가꾸어가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 사람에게 인간보다 더 좋은 텍스트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은 인간 군상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 결과물이자 완벽한 논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독자의 관심을 최대치로 끌어모으기 위해 그 얼개를 교묘하게 편집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문학적 수사를 제거하고 기승전결의 구성에 맞춰 재편집한다면 소설은 그저 한 편의 논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된다. 물론 소설에 따라 등장하는 인물이나 주제가 제각각 다르겠지만 말이다.


정해연 작가의 소설 <용의자들>을 읽으며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웬만한 독자라면 다 아는 것처럼 2013년 소설 <더블>로 데뷔한 정해연 작가는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추리소설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인간 내면의 아름다운 측면을 탐구하기보다는 악하거나 추한 측면을 파헤치는 추리소설에 대한 선호도나 인기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일부 마니아층을 제외하면 일반 독자의 수요를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우리가 어렸을 때 열광했던 '명탐정 셜록 홈스'나 '괴도 뤼팽',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 등을 돌이켜 생각해볼 때 우리의 내면에는 인간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시대에 상관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반증하듯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정유정 작가, 박하익 작가, 송시우 작가, 강지영 작가 등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정해연 작가의 신작 <용의자들> 역시 살해된 여고생 현유정의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소설의 단락을 나누는 소제목이 각각의 인물로 정해졌다는 게 이색적이다. 한수연, 민혜옥, 현강수, 김근미... 각각의 인물이 잔인하게 살해된 유정 학생과의 연관성이나 살해 시점을 전후하여 그들이 취했던 행동이나 생각들이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일요일인 어린이날을 대체하는 월요일의 대체 공휴일을 포함한 3일간의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올해 한여름의 더위를 미리 경고라도 하려는 듯 벌써부터 한낮 기온이 여름을 방불케 한다. 그럼에도 인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 다르다. 저들은 과연 어떤 고민을 품고,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소설 속 인물들의 작은 몸짓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기억하는 것처럼 소설의 잔상이 현실에서도 한동안 이어지곤 한다. 매년 여름이면 사람들이 추리소설에 열광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현실과 소설을 오가며 각각의 인물들을 탐구하다 보면 참을 수 없던 더위도 쉽게 잊혀지기 때문이다. 정해연의 소설 <용의자들>이 출간 전부터 기대되는 까닭도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 때문이라고 나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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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등산로는 적당히 부드러웠다. 간밤에 내렸던 비로 길가에 쌓인 낙엽더미에선 구수한 숭늉 냄새가 피어올랐고, 뽀얗게 송홧가루를 뒤집어쓴 떡갈나무 이파리는 비에 씻겨 마치 노란 립스틱을 바른 듯 가장자리에 노란 테를 두르고 있었다. 까치를 비롯한 새들의 울음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가슴 깊숙이 스미는 아카시아 꽃 향기. 청량한 아카시아 향기가 잠에 취해 느른하던 몸을 단단히 붙잡았다. 아카시아 꽃은 날씨에 따라 이따금 가슴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향기를 내뿜기도 하고, 때로는 누이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향기로 주변의 사람들을 다독이기도 한다.


영영 열릴 것 같지 않던 영수회담이 어제 있었다. 비공개 회담에서는 어떤 말이 오고갔는지 알 수 없지만, 모두발언만 놓고 본다면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발언이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비교할 때 두 사람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듯하여 씁쓸하기만 했다. 이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차원에서 누가 대통령이고 누가 야당의 대표인지 종잡을 수 없었던 상황. 전날 먹었던 술이 덜 깼는지 대통령은 눈만 껌벅껌벅 졸린 듯했고, 옆에 배석한 사람들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듯했다. 앞으로 3년이나 남았는데 걱정도 이만저만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인생에서 너무 일찍 인정을 받은 사람들은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자기 자신을 크게 놓쳐버린 느낌을 받는 그런 삶을 살게 되지요. 이것과 조금 다른 방향의 욕구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마땅히 있어야 할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이 없어 마음이 상하는 경우지요. 이것이 인정의 부재를 넘어 무시와 모멸이 되면,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파괴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p.35)


페터 비에리가 쓴 <자기 결정>은 무척이나 얇은 책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페터 비에리라고 하면 모르는 이들도 많을 테지만 그가 소설을 쓸 때 사용하는 필명 '파스칼 메르시어'는 다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유명한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이니 말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작가는 사실 그의 저서 <자기 결정>이나 <삶의 격>과 같은 철학서에서 더 빛을 발한다.


"문학적 글쓰기는 말에게 그것이 가진 원래의 의미와 시적 힘을 되돌려주려는 노력입니다."

"자신의 목소리와 자신의 울림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사건이지요. 즉 우리 안에서 잘못된 울림을 내는 것을 추방하고 새로운 말과 새로운 리듬을 시도해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의 소설을 끝내고 난 작가는 전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p.30)


우리는 이따금 자신이 지금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상대방의 말을 듣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이를 만나기도 한다. 어제 대통령의 얼빠진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다. <자기 결정>에서 페터 비에리는 자기 인식의 중요성을 끝없이 강조한다. 본인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데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는 건 어쩌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먼 세상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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