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잘 가꾸어가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 사람에게 인간보다 더 좋은 텍스트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은 인간 군상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 결과물이자 완벽한 논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독자의 관심을 최대치로 끌어모으기 위해 그 얼개를 교묘하게 편집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문학적 수사를 제거하고 기승전결의 구성에 맞춰 재편집한다면 소설은 그저 한 편의 논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된다. 물론 소설에 따라 등장하는 인물이나 주제가 제각각 다르겠지만 말이다.
정해연 작가의 소설 <용의자들>을 읽으며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웬만한 독자라면 다 아는 것처럼 2013년 소설 <더블>로 데뷔한 정해연 작가는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추리소설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인간 내면의 아름다운 측면을 탐구하기보다는 악하거나 추한 측면을 파헤치는 추리소설에 대한 선호도나 인기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일부 마니아층을 제외하면 일반 독자의 수요를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우리가 어렸을 때 열광했던 '명탐정 셜록 홈스'나 '괴도 뤼팽',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 등을 돌이켜 생각해볼 때 우리의 내면에는 인간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시대에 상관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반증하듯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정유정 작가, 박하익 작가, 송시우 작가, 강지영 작가 등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정해연 작가의 신작 <용의자들> 역시 살해된 여고생 현유정의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소설의 단락을 나누는 소제목이 각각의 인물로 정해졌다는 게 이색적이다. 한수연, 민혜옥, 현강수, 김근미... 각각의 인물이 잔인하게 살해된 유정 학생과의 연관성이나 살해 시점을 전후하여 그들이 취했던 행동이나 생각들이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일요일인 어린이날을 대체하는 월요일의 대체 공휴일을 포함한 3일간의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올해 한여름의 더위를 미리 경고라도 하려는 듯 벌써부터 한낮 기온이 여름을 방불케 한다. 그럼에도 인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 다르다. 저들은 과연 어떤 고민을 품고,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소설 속 인물들의 작은 몸짓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기억하는 것처럼 소설의 잔상이 현실에서도 한동안 이어지곤 한다. 매년 여름이면 사람들이 추리소설에 열광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현실과 소설을 오가며 각각의 인물들을 탐구하다 보면 참을 수 없던 더위도 쉽게 잊혀지기 때문이다. 정해연의 소설 <용의자들>이 출간 전부터 기대되는 까닭도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 때문이라고 나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