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 펄 벅이 들려주는 사랑과 인생의 지혜
펄 벅 지음, 이재은.하지연 옮김 / 책비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금도 그런 말이 유행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백치미'라는 말은 여자의 매력을 도드라지게 하는 특별한 단어처럼 쓰였던 것 같다. '걔는 백치미가 있어'라든가 '백치미가 있는 애가 좋아'라고 하는 말은 남자들 세계에서 자신의 여성관을 드러내는 흔한 표현이었다. 그때의 '백치미'는 단순히 머리가 나쁘고 맹해 보임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머리는 나쁘지만 얼굴은 예쁘다는 속뜻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말이 공공연히 쓰였던 데는 여자 연예인의 공(?)이 컸다고 하겠다. 얼굴이나 몸매는 흠잡을 데 없이 곱고 예쁘지만 어쩌다 출연한 퀴즈 프로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답을 내놓는다거나 누가 봐도 출연한 여자 연예인을 속이려는 티가 역력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화들짝 놀라는 모습은 남자들로 하여금 '그래, 나도 저런 심부감을 구해야겠군'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남자들이 백치미가 있는 여성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품게 된 것은 단순히 귀엽다거나 남자들의 보호본능을 일깨운다거나 같이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거나 하는 이유인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예컨대 그 이면에는 남자들의 폭력성이 숨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즉, 아내의 얼굴이나 몸매가 예쁘니 부부동반 모임에 나가서도 목에 힘이 들어갈 테고, 사회 물정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니 남편인 자신의 말만 믿고 따를 게 아닌가. 게다가 전적으로 자신이 잘못한 일도 미주알고주알 따지지도 않고 그냥 넘어갈 거라는 믿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물론 자신이 시키는 건 뭐든지 고분고분 따르는 여자를 자신의 신부감으로 선택하겠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하자면 얼굴만 예쁜 노비를 구하겠다는 것과 진배없었다.

 

"남자로 태어나지 않고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백인이나 흑인, 황인종으로 태어나는 것과 같이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행하는 차별은 인종차별만큼이나 잔혹하고 불공평하다. 인류의 절반에 달하는 여성들이 평생을 불평등과 편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최대의 약자가 여성임을 환기시키고 싶다." (p.146)

 

펄 벅이 쓴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를 읽으면서 나는 순간순간 멈춰야만 했다. 시린 하늘이 햇살마저 매섭게 밀어내는 혹한의 추위를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시대가 변한다 해도, 세월이 흐른다 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남자들의 의식 수준이 아프게 느껴졌다. 나도 그 보통의 수컷 무리 중 한 명일 뿐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여성 스스로가 여성의 잠재된 위대한 가능성과 책임을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미혼의 여성이 현명하게 사랑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룩하기 위해 필요한 나름의 지혜를 조목조목 설파하고 있다.

 

나는 이따금 공공장소에서의 낯뜨거운 장면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성적 자유를 누가 말릴 수 있으랴. 그러나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미혼모들이 나날이 늘어나는 이 마당에, 자신이 낳은 아기를 쓰레기 버리 듯 유기하는 이 시대에 남녀 성평등이라는 명목은 과연 합당한 부르짖음인지... 백여 년 전 서양의 무분별한 성 의식에 대해 따끔한 질책을 보냈던 펄 벅 여사이고 보면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올바른 지침서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젊은이들에게 앞으로 태어날 아기에 대한 존경심을 가르쳐야 한다. 아기에게 새 삶을 주어 세상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책임을 경험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유를 막론하고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사랑의 결실인 아기는 부모가 더더욱 잘 보살필 의무가 있다. 아기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잖은가. 사랑하는 두 사람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무책임한 부모가 아기를 버렸어도 사회가 그 아기를 받아준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p.208)

 

생후 5개월 만에 중국으로 건너가 15세까지 그곳에서 성장하다가 미국으로 귀국했던 펄 벅은 이 책에서 동양과 서양을 비교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경험이나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서 젊은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이런저런 고민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이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떳떳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경제적 책임을 무조건 남편에게 지우고 결혼을 여자 인생의 보험쯤으로 생각하는 여성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행복이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능력과 모든 정력을 기울여 자기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그 사람에게 주어진다. 남성들은 이 엄연한 사실을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가서는 안 된다. 따라서 모든 남성은 자신의 아내가 어떤 부류에 속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대부분은 아내가 가정에 있기를 바라며 그것이 여성의 본분이라고 대답할 확률이 높다. 나는 이 사실을 가지고 논쟁할 생각은 없다. 어쨌든 그것은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라는 것이다. 미국의 남녀 관계는 구습에 매여 있으며, 대개 여성은 남성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보조적인 입장에 있을 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를 허심탄회하게 인정하지 않은 채 여성들에게 사회 진출에 대한 꿈을 불어넣는 교육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p.328)

 

지금도 백치미를 배우자 선택의 기준으로 꼽는 젊은이가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믿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가정의 경제를 남편이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 여자도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혹여라도 사회 물정을 모르는 맹한 남자를 순수하다고 믿는 여자가 있다면 그 또한 정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결혼을 약속한 남자의 입에서 백치미 운운하는 소리가 나온다면 심각하게 고려할 문제라고 본다. 그 이면에 숨겨진 심각한 폭력성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이나 경제적 측면은 차치하고서라도 시간이나 열정을 무한정으로 쏟아부어야 하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시쳇말로 덕질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요즘에는 자신이 아이돌 덕후라는 둥 피규어 덕후라는 사실을 방송에서 공공연히 밝히는 사람들도 많지만, '에이, 그까짓 거 나라고 못할 게 없지' 하고 우습게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돈과 시간이 넘쳐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는 며칠 전부터 임경선 작가가 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게 사람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들더군요. 작가도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녀의 홈피에 올려지는 글을 몰래 읽기도 했었지만 그녀가 하루키를 탐닉하는 정도가 이 정도일 줄이야,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던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꼼꼼하게 쓴, 지극히 개인적인 애정을 듬뿍 담은 산문'이라고 작가 스스로가 밝히고는 있지만 저는 그녀가 혹시 하루키의 사생팬이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책의 소개글을 읽어보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은 임경선이 철저하게 실시한 ‘무라카미 씨 뒷조사’라고도 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2015년 현재까지, 책·신문·잡지·방송 등 다양한 매체의 방대한 자료를 샅샅이 살피고 그의 행적을 빈틈없이 기록했다. 일본의 도서관은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자료관 등 그에 대한 자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들뜬 마음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최근 그녀는 트위터에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거처그가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연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질문과 답을 번역해서 연재하며, 많은 국내 독자에게 환호를 받았다.) 이렇게 촘촘한 1년 반의 집필 기간을 거쳐 탄생한 이 책을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투덜거림’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고, 임경선의 재치 있는 입담까지 더해져 두 작가를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아무리 하루키의 팬이라고 할지라도 이 정도면 하루키 덕후 아닙니까? 그것도 작가가 또 다른 작가를 덕질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하루키 덕후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하루키의 팬이라고 밝혀왔던 제 말이 머쓱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에 글을 쓰게 되었다는 임경선 작가의 이 책은 정말 꼼꼼하게 기록되었더군요. 하루키 자신이 자서전을 쓴다 해도 이보다 자세하게 쓰기는 어려울 듯하더군요. 아무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16-01-2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쩍 담아 갑니다 ㅎㅎㅎ

꼼쥐 2016-01-25 17:51   좋아요 0 | URL
네, 행복한 한 주 맞이하시길...^^

오거서 2016-01-2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게 말해서, 일종의 전기겠군요

꼼쥐 2016-01-25 17:52   좋아요 0 | URL
네, 전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중간중간에 자신의 이야기도 쓰고 있어서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자네 늙어봤나, 나는 젊어봤네 - 이미 어른이 된 우리에게 ‘또 다른 어른’이 필요할 때. 92세 지(知)의 거인이 조언하는 '마흔 이후 인생수업!'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김정환 옮김 / 책베개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별것 아니지만 제목의 절묘함에 탄성이 절로 나왔던 책이다. 도야마 시게히코의 신작 에세이<자네 늙어봤나, 나는 젊어봤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수 서유석의 노래 중에도 이와 비슷한 제목의 노래가 있었다고 한다. 노래의 제목인즉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라는데 나는 들어본 적 없는 노래였다. 그렇게 제목에 이끌렸던 책이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자 책은 의외로 술술 읽혔다. 92세의 노학자가 들려주는 '인생 이모작'에 대한 조언인데 참고할 만한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내용이 신선해서 좋았다.

 

"흉내 내는 버릇을 방지하려면 평소에 세상의 상식에서 한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렇다고 '반(反)상식'을 소리 높여 외칠 필요는 없다. 의식적으로 상식과 조금 거리를 두기만 해도 독자적인 사고를 하는 습관이 들게 될 것이다. 독자적인 사고는 인생의 갈림길이라고 생각되는 상황에서도 필요하다. 자기 나름대로 머리를 쥐어짠 끝에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걷기 시작한다.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실치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수 있다." (p.120)

 

이모작 인생을 직접 살아왔다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진솔하게 쓰고 있다. 그러므로 구순의 노학자에게서 나온 풍부한 경험은 이모작 인생을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다양하고 폭넓은 조언을 제공한다.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적정 연령대와 자금 준비 방법, 왜 '인생 이모작'을 준비해야 하는지,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지,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는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이나 인생 후반기의 독서법, 죽음에 대한 저자 자신의 생각 등 저자는 인생의 선배로서 자신이 들려줄 수 있는 여러 주제에 대해 짤막하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내 나이 올해로 아흔둘. '노후'라는 말을 의식한 뒤로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노후는 우리의 생각보다 길다. 이 기나긴 노후를 찬란하게 만들기 위해, 나는 노후를 의식하기 조금 전부터 먼저 나 자신의 발로 걷자고 생각했다. 이모작 인생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p.21)

 

자신도 언젠가는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실제로 그 사실을 의식하며 살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매시간 의식하며 살아서도 안 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의 삶에 대한 대다수 사람들의 인식은 '불안'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불안은 막연한 추측이나 보험회사의 협박성 발언 등과 같은 잘못된 지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불안심리 때문인지 시중에는 노후를 준비하는 방법에 대해 쓴 많은 책들이 나와 있고, 지금도 여전히 출간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읽었던 책들로 인해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떠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금과 보험에 의지하지 않고 내조나 효도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저자는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익힐 것을 주문한다. 그것이 요리든, 취미든, 건강이든 말이다. 또한 인간관계에도 유통 기한이 있다는 것과 노년의 독서법은 젊은 시절의 그것과 달라져야 한다고도 말한다.

 

"'오해를 각오'하고 말하면, 쓸데없는 독서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독서가 자신의 지성을 높여주거나 사고를 깊게 해주리라고 믿는 사람이 많지만, 단순히 지식을 꾸역꾸역 쑤셔 넣을 뿐인 경우가 종종 있다. 불필요한 지식은 오히려 두뇌 활동을 방해한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책에서 답을 구하게 되면 큰일이다. 다른 사람이 생각한 결과물을 모방할 경우도 있다.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사고를 흉내 내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p.134)

 

저자가 추천하는 중년 이후의 독서는 '자신을 뒤흔드는 지적 경험을 제공했던 책을 다시 음미하라는 것', '그것을 충분히 음미하며 읽는 미독(味讀)과 독자 사고를 반복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때때로 공상에 잠기는 '베타 읽기'를 취하라는 것이다.

 

나도 예전에 가깝게 지내던 스님으로부터 책을 그만 읽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들었던 적이 한 번 있다. 생각도 하지 못했던 뜻밖의 말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축에 속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로 맹목적인 독서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렇게 말하는 스님이 내심 섭섭하고 수긍하기도 힘들었었다. 그러나 지나고 나서 곰곰 생각해보니 스님의 말이 일견 일리가 있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무엇보다도 자신의 판단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92세의 노학자도 그런 것을 염려하는 듯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간다면 넉넉잡아 두어 시간이면 다 읽을 책이지만 되내고 곱씹어 생각할수록 그 맛이 진해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운동을 나서는데 어찌나 춥던지요. 어제 아침은 얼마나 춥고 바람이 거세던지 결국 산에 오르는 건 포기하고 아파트 인근의 체육공원에서 가볍게 몸을 푸는 걸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집을 나서기 전부터 '오늘은 기필코 산을 오르고야 말겠다.' 굳은 결심을 하엿던 것입니다. 사납게 불던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볼에 닿는 찬 기운이 에이듯 매서웠습니다.

 

발길을 움직일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조용한 숲에 울려 퍼졌습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따금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바람이 능선에 쌓인 눈을 등산로 옆 나뭇가지에 하얗게 흩뿌려 놓았습니다. 어렸을 적 누나가 떠준 빵모자와 벙어리 장갑을 끼고 바람 매서운 길을 30여 분 걸어 학교에 가던 생각이 나더군요. 털실로 짠 모자와 장갑은 바람이 불 때마다 바깥 추위를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었지요. 손과 발 귀가 꽁꽁 언 채로 학교에 도착하면 벌써 등교한 친구들이 아직 불도 붙지 않은 난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곤 했었습니다. 서로의 체온을 조금씩 나눠주면서 말이지요.

 

오늘 만났던 사람들마다 '많이 춥지요?' 하고 인사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인사말이 참으로 다양합니다. 판에 박은 듯이 '안녕하십니까?' 나  '안녕하세요?' 또는 서양식의 '좋은 아침입니다.'가 보편화 되었지만 과거에는 '진지 드셨습니까?'와 같은 실제적인 물음이 인사를 대신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진심이 담기지 않은 요즘의 빈 인사말보다 진심이 가득 담긴 과거의 투박한 인사말이 더 정감이 가는 것도 그런 이유인 듯합니다.

 

오늘 뉴스를 보다 보니 대통령이 노동5법 등의 입법을 촉구하는 재계의 서명운동에 동참했다는 소식이 있더군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그렇게 한가한 직책이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얼마나 할 일이 없고 무료했으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대기업과 재벌단체가 하고 있는 서명운동에 동참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보좌관들은 대통령을 위해서 하다 못해 뜨게질 거리라도 사다 드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더군요. 비서실 직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장소] 2016-01-20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날씨에도 운동을 ...으...머..멋...지십니다.
힘을 빼고 걸을시길..하긴 운동하면 열이발생하니
덜 춥긴...하죠. 그래도 마주오는 바람의 차가움은.
매서운데.ㅡ옷 잘 챙겨입고 다니시길 바랍니다.^^

꼼쥐 2016-01-21 13:02   좋아요 1 | URL
오늘은 부딪히는 바람이 한결 부드럽더군요. 올해는 소한이 대한 집에 와서 얼어 죽게 생겼습니다. 다음주에는 조금 풀리겠지요. 그러면 겨울도 다 가겠지만 말입니다.

[그장소] 2016-01-21 17:14   좋아요 0 | URL
오...재미있는 표현입니다..소한이 대한 집에 와...얼어죽다..ㅎㅎㅎ
겨울 걸음은 느리고 뒤끝도 깁니다..도마뱀 꼬리마냥...잘린 걸 두고 몸통만 가서..남은녀석이 휭허니 있다 지독을 부리는게
겨울 끝이곤 합니다. 끝났나 싶음 아직. .갔나
싶음 저기..그런 식이죠..오죽함 이른 녀석이 빼꼼 고개빼고 지가 어딜 껴야하나 들여다 본다고 봄 , 아직 있나..가긴 갔나..들여다 봄..해서 봄이잖아요.^^

우민(愚民)ngs01 2016-01-21 0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급격한 체온 변화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꼼쥐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할 일 없으면
역사책이나 보시든지 말입니다. 정치란 분배고
나눔이다. 문제는 어느 계층의 세금을 거둬 어느 계층에 나눠줘야 하는가이다. 역사를 보면
백성을 짜내어 탐관오리 배를 불린 것과 지금의 서민 등골 뽑아 재벌들과 고위직 배 불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말입니다.

꼼쥐 2016-01-21 13:05   좋아요 1 | URL
제가 생각하기에 역사책을 비롯한 인문학 서적과는 담을 쌓은 것 같아요. 물론 독서 자체도 싫어하는 것 같지만. 차라리 그 큰 공간에서 할 일 없으면 아프리카 신생아를 위해 털모자라도 뜨는 게 어떨지 생각했습니다.

우민(愚民)ngs01 2016-01-21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털모자 좋은생각이시네요!
 
[우물에서 하늘 보기]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들은 속절없이 시를 썼다. 아들딸을 잃고 시를 썼고, 때로는 불행한 부모들을 대신해서도 시를 썼다. 그 절망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비애의 극한이 잊힐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p.93)

 

자신의 유익을 탈탈 털어 세상의 무익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여전히 바보믜 무리에 속하는 천덕꾸러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무익이 합쳐져 세상의 빛이 되고 따사로운 온정이 된다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황현산의 시 이야기 <우물에서 하늘보기>에서도 작가는 줄곧 시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시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오히려 오늘 내린 한파 주의보보다도 더 익숙하고 오래된 차가움일런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저는 '시 안 읽는 사회'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일부만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나는 시인도 아니고, 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닌, 순수 독자의 입장에서 시가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다. 시인의 속내를 낱낱이 알지 못하더라도, 시가 전하는 그 울림만으로 설레이던 시대가 있었다. 맘에 쏙 드는 시구를 연애편지에 인용하며, 제가 쓴 것인 양 얼굴을 붉히던 그리움이 있었다. 술동무를 옆에 두고, 노래 삼아 시를 읊조리던 젊음이 있었다. 우리는 시를 잃고, 사랑을 잃고, 그 속에 숨겨진 설레임, 그리움, 그리고 젊음의 낭만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시를 모르고 어찌 문학을 논하랴.

시를 모른 채 어찌 사랑을 노래할 것이며, 순수의 아름다움을 어찌 볼 수 있으랴.

시를 제쳐 두고 주옥같은 언어의 향연을 어찌 즐길 수 있으랴.

시는 문학의 태동이자, 끊이지 않는 북소리이다.

시는 언어가 아닌 몸짓이며, 아픔을 위로하는 따뜻한 손길이다.

시는 논리를 따라 흐르는 나의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 흐르는 작은 흔들림이다.

 

시를 읽지 않는 사회! 그 각박한 현실을 사는 우리는 무엇에서 위로받을 것이며,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그 통로를 무엇에 의지하여 찾을 것인지... 시를 쓰지 못하는 문학가는 한낱 글쟁이에 불과하며, 그 글을 읽는 우리는 영혼을 잃은 로봇에 불과하다. 사랑은,설레임은, 그리움은,낭만은 언어가 아닌 시에 숨겨진 떨림이기 때문이다.

 

2014년 한 해 동안 '황현산의 우물에서 하늘보기'라는 제목으로 <한국일보>에 연재햇던 27개 꼭지의 '시화(詩話)는 이육사의 시 '광야'를 비롯하여 김종삼의 시 '북치는 소년', 김수영의 '꽃잎', 백석의 '사슴' 등을 통하여 '시가 꼬투리를 만들어준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사안들과 만나' 독자의 가슴에 시적인 어떤 것을 아로새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시 이야기는 단순히 시의 해석에 그치지 않고 시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한수산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숨결처럼 시를 토해내다 시러진 박정만 시인, 가난과 질병으로 삶을 마감한 진이정 시인, 자본주의적 욕망의 피안을 보여주었던 최승자 시인 등 시인의 삶을 함께 더듬고 있습니다.

 

"시 쓰기는 끊임없이 희망하는 방식의 글쓰기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시가 말하려는 희망은 달성되기 위한 희망이 아니라 희망 그 자체로 남기 위한 희망이다. 희망이 거기 있으니 희망하는 대상이 또한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 희망이다. 꽃을 희망한다는 것은 꽃을 거기 피게 한 어떤 아름다운 명령에 대한 희망이며, 맑은 물을 희망한다는 것은 물을 그렇게 맑게 한 어떤 순결한 명령에 대한 희망이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희망을 단단히 간직하는 일이다." (p.262)

 

대한민국의 2016년 1월은 한파 주의보, 채무 주의보로 꽁꽁 얼어 붙었지만 사람들 가슴에는 온통 행복 주의보가 내려지기를 간절히 희망하게 됩니다. 시의 어느 한 구절이 단초가 되어 사그라들었던 희망의 불꽃을 다시 살려내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어쩌면 2016년 1월은 시의 부활, 희망의 부활을 알리는 시발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