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나 경제적 측면은 차치하고서라도 시간이나 열정을 무한정으로 쏟아부어야 하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시쳇말로 덕질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요즘에는 자신이 아이돌 덕후라는
둥 피규어 덕후라는 사실을 방송에서 공공연히 밝히는 사람들도 많지만, '에이, 그까짓 거 나라고 못할 게 없지' 하고 우습게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돈과 시간이 넘쳐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는 며칠 전부터 임경선 작가가 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게 사람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들더군요.
작가도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녀의 홈피에 올려지는 글을 몰래 읽기도 했었지만 그녀가 하루키를 탐닉하는 정도가 이
정도일 줄이야,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던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꼼꼼하게 쓴, 지극히 개인적인 애정을 듬뿍 담은 산문'이라고 작가
스스로가 밝히고는 있지만 저는 그녀가 혹시 하루키의 사생팬이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책의 소개글을 읽어보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은 임경선이 철저하게 실시한 ‘무라카미 씨 뒷조사’라고도 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2015년 현재까지, 책·신문·잡지·방송 등 다양한 매체의 방대한 자료를 샅샅이 살피고 그의 행적을 빈틈없이 기록했다. 일본의
도서관은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자료관 등 그에 대한 자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들뜬 마음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최근 그녀는 트위터에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거처그가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연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질문과 답을 번역해서 연재하며, 많은 국내 독자에게 환호를
받았다.) 이렇게 촘촘한 1년 반의 집필 기간을 거쳐 탄생한 이 책을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투덜거림’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고, 임경선의
재치 있는 입담까지 더해져 두 작가를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아무리 하루키의 팬이라고 할지라도 이 정도면 하루키 덕후 아닙니까?
그것도 작가가 또 다른 작가를 덕질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하루키 덕후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하루키의 팬이라고 밝혀왔던 제 말이 머쓱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에 글을 쓰게 되었다는 임경선 작가의 이 책은 정말 꼼꼼하게 기록되었더군요. 하루키 자신이 자서전을 쓴다
해도 이보다 자세하게 쓰기는 어려울 듯하더군요.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