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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 펄 벅이 들려주는 사랑과 인생의 지혜
펄 벅 지음, 이재은.하지연 옮김 / 책비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금도 그런 말이 유행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백치미'라는 말은 여자의 매력을 도드라지게 하는 특별한 단어처럼 쓰였던 것 같다. '걔는 백치미가 있어'라든가 '백치미가 있는 애가 좋아'라고 하는 말은 남자들 세계에서 자신의 여성관을 드러내는 흔한 표현이었다. 그때의 '백치미'는 단순히 머리가 나쁘고 맹해 보임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머리는 나쁘지만 얼굴은 예쁘다는 속뜻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말이 공공연히 쓰였던 데는 여자 연예인의 공(?)이 컸다고 하겠다. 얼굴이나 몸매는 흠잡을 데 없이 곱고 예쁘지만 어쩌다 출연한 퀴즈 프로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답을 내놓는다거나 누가 봐도 출연한 여자 연예인을 속이려는 티가 역력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화들짝 놀라는 모습은 남자들로 하여금 '그래, 나도 저런 심부감을 구해야겠군'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남자들이 백치미가 있는 여성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품게 된 것은 단순히 귀엽다거나 남자들의 보호본능을 일깨운다거나 같이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거나 하는 이유인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예컨대 그 이면에는 남자들의 폭력성이 숨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즉, 아내의 얼굴이나 몸매가 예쁘니 부부동반 모임에 나가서도 목에 힘이 들어갈 테고, 사회 물정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니 남편인 자신의 말만 믿고 따를 게 아닌가. 게다가 전적으로 자신이 잘못한 일도 미주알고주알 따지지도 않고 그냥 넘어갈 거라는 믿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물론 자신이 시키는 건 뭐든지 고분고분 따르는 여자를 자신의 신부감으로 선택하겠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하자면 얼굴만 예쁜 노비를 구하겠다는 것과 진배없었다.
"남자로 태어나지 않고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백인이나 흑인, 황인종으로 태어나는 것과 같이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행하는 차별은 인종차별만큼이나 잔혹하고 불공평하다. 인류의 절반에 달하는 여성들이 평생을 불평등과 편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최대의 약자가 여성임을 환기시키고 싶다." (p.146)
펄 벅이 쓴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를 읽으면서 나는 순간순간 멈춰야만 했다. 시린 하늘이 햇살마저 매섭게 밀어내는 혹한의 추위를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시대가 변한다 해도, 세월이 흐른다 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남자들의 의식 수준이 아프게 느껴졌다. 나도 그 보통의 수컷 무리 중 한 명일 뿐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여성 스스로가 여성의 잠재된 위대한 가능성과 책임을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미혼의 여성이 현명하게 사랑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룩하기 위해 필요한 나름의 지혜를 조목조목 설파하고 있다.
나는 이따금 공공장소에서의 낯뜨거운 장면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성적 자유를 누가 말릴 수 있으랴. 그러나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미혼모들이 나날이 늘어나는 이 마당에, 자신이 낳은 아기를 쓰레기 버리 듯 유기하는 이 시대에 남녀 성평등이라는 명목은 과연 합당한 부르짖음인지... 백여 년 전 서양의 무분별한 성 의식에 대해 따끔한 질책을 보냈던 펄 벅 여사이고 보면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올바른 지침서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젊은이들에게 앞으로 태어날 아기에 대한 존경심을 가르쳐야 한다. 아기에게 새 삶을 주어 세상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책임을 경험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유를 막론하고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사랑의 결실인 아기는 부모가 더더욱 잘 보살필 의무가 있다. 아기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잖은가. 사랑하는 두 사람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무책임한 부모가 아기를 버렸어도 사회가 그 아기를 받아준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p.208)
생후 5개월 만에 중국으로 건너가 15세까지 그곳에서 성장하다가 미국으로 귀국했던 펄 벅은 이 책에서 동양과 서양을 비교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경험이나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서 젊은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이런저런 고민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이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떳떳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경제적 책임을 무조건 남편에게 지우고 결혼을 여자 인생의 보험쯤으로 생각하는 여성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행복이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능력과 모든 정력을 기울여 자기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그 사람에게 주어진다. 남성들은 이 엄연한 사실을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가서는 안 된다. 따라서 모든 남성은 자신의 아내가 어떤 부류에 속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대부분은 아내가 가정에 있기를 바라며 그것이 여성의 본분이라고 대답할 확률이 높다. 나는 이 사실을 가지고 논쟁할 생각은 없다. 어쨌든 그것은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라는 것이다. 미국의 남녀 관계는 구습에 매여 있으며, 대개 여성은 남성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보조적인 입장에 있을 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를 허심탄회하게 인정하지 않은 채 여성들에게 사회 진출에 대한 꿈을 불어넣는 교육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p.328)
지금도 백치미를 배우자 선택의 기준으로 꼽는 젊은이가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믿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가정의 경제를 남편이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 여자도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혹여라도 사회 물정을 모르는 맹한 남자를 순수하다고 믿는 여자가 있다면 그 또한 정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결혼을 약속한 남자의 입에서 백치미 운운하는 소리가 나온다면 심각하게 고려할 문제라고 본다. 그 이면에 숨겨진 심각한 폭력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