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허벅지 다나베 세이코 에세이 선집 1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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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호박씨를 깐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지. 그닥 좋은 의미로 쓰이는 말은 아닌 까닭에 못 들어봤을 수도 있겠다. 앞에서는 시치미 뚝 떼고 조신한 척 하면서 뒤로는 딴 짓거리를 한다는 뜻의 이 말은 '간통'이 불법이었던 시절의 밤문화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지금은 '간통'이 합법화 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법으로 제재를 가하기보다는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온전히 각자의 도덕적 판단에 맡기겠다는 뜻이니 국민의 교육이나 의식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헌법재판소가 내린 '간통법 폐지'의 사유에 있어서도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이런 점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간통법이 폐지되었다고 하여 국민 개개인의 교육수준과 도덕성이 함께 좋아졌다고는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양자 간에는 정의 상관관계가 아니라 부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도 더러 있고 말이다.

 

우리나라에 비해 성적으로 개방된 듯 보이는 일본도 매춘이 합법화된 것은 아니지만 출판이나 영상매체에서의 성적인 묘사는 우리나라에 비해 확실히 자유로운 듯 보인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법적으로 규제할 것은 규제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엄격한 법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선을 긋고 그 안에서는 대부분 허용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의 성문화가 이렇다 보니 작가들의 성적 담론도 거침이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실생활에서 극도로 절제하는 일본인의 스트레스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성적인 방면으로 분출되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나베 세이코의 에세이 <여자는 허벅지>는 제목만큼이나 여성의 성에 대한 도발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다. 여자가 말하는 여성의 성 담론은 자칫 딱딱하고 이론적이어서 재미가 없거나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흘러 공감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연애소설로는 일가견이 있는 작가의 노련함은 이 책에서도 십분 발휘되어 솔직하면서도 불쾌하지 않고, 지적이면서도 유머와 재치가 넘친다. 1971년부터 1990년까지 주간지 '슈칸분슌(週間文春)'에 연재한 칼럼 중 일부를 묶었다는 이 책은 그동안 흘러간 세월과 함께 시대에 뒤떨어진 한물간 이야기로 넘쳐날 것 같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여자는 자신의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의 부인'이라 불리고 싶어 한다. '~의 부인'이라 불러 주었을 때 여자는 비로소 꽃이 된다. 이것은 단순히 '이제는 매일 남자랑 잘 수 있겠다'라는 즉물적이고 쩨쩨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남자의 성욕은 한순간 발산하면 그것으로 끝이 나지만, 여자의 그것은 느리고 느긋하고 지긋하며 길고 천천히 피어난다. 다시 말해 남편을 두고 아이를 낳아 키워 세상에 내보내는 그 모든 행위가 성욕인 것이다." (p.37)

 

작가는 자신의 일방적인 이야기로 인해 책을 읽는 독자가 자칫 흥미를 잃지나 않을까, 우려하여 '가모카 아저씨'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킨다. 이를테면 '가모카 아저씨'는 작가의 이야기 파트너인 동시에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평범한 중년 남성의 이미지를 재현함으로써 때로는 작가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기도 하고 찌질한 모습 때문에 남성 독자의 동정(?)을 받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책을 읽는 재미와 함께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가모카 아저씨한테 시험해보자. "이 세상에 명기란 것이 정말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여자가 진심으로 사랑해 몸과 마음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불태울 때 누구나 명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당연히 어떤 여자든 자신을 불태우면 명기가 될 수 있겠죠." 이것으로 아저씨는 여자 경험이 빈약하다는 걸로 판명되었다." (p.151)

 

두 사람의 성 담론은 성욕, 월경, 바람기, 정관수술, 체위, 불륜 등 다방면으로 펼쳐지지만 단순히 재미와 호기심의 충족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성과 관련된 인생론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이제 막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사춘기 시절에서부터 '침소 사퇴식'을 해야 하는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인생 경험을 남성과 여성의 입장에서 다룸으로써 자칫 삼류 외설 문학으로 흐를 수도 있는 여지를 엄격히 차단하고 있다. 일본의 에세이스트 사카이 준코는 이 책의 해설 '어차피 쓸 거라면 다나베 시이코 씨처럼'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이 에세이를 통해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재확인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비로소 생겨나는 묘미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이렇게 긴 음담패설을 읽고 났는데도 기분이 상쾌한 것은 남성을 무참히 때려눕히기보다 우열을 가리지 않은 채 끝맺었기 때문 아닐까요." (p.309)

 

요즘은 성희롱에 대한 처벌 수위가 한층 높아진 까닭에 어떤 자리에서건 성과 관련된 농담이 거의 사라졌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성인 남녀가 모인 사적인 자리에서는 언제든 19금 농담이 성행했었다. 물론 때로는 듣기 거북한 농담으로 인해 어색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 반면에 방송이나 공적인 자리에서는 지금보다도 더욱 엄격하게 금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남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정한 수위를 넘지 않는 성적 농담이나 성 담론은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는 일종의 윤활유와 같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수위 조절이라는 게 무척이나 어려워서 농담 한마디로 인생 전체를 망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겠다. 이 책의 재미있는 부분을 인용하기 어려운 것도 다 수위 조절을 신경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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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다운 비가 내렸던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간밤에 잠깐 후두둑 빗발이 치는 듯하더니 눈 깜짝할 새 가뭇없이 사라져버렸었다. 아침에도 비는 오지 않고 한여름처럼 무덥기만 했다. 햇빛도 없는 후텁지근한 날씨가 종일 이어지더니, 점심 무렵에 병아리 오줌만큼 찔끔 빗방울이 내비쳤다. 비라고 할 수도 없는, 맑은 날에는 보이지도 않을 자동차의 먼지가 찔끔 내린 비로 인해 유리창에 먼지자국만 선명하게 남았다.

 

불쾌지수가 높을 거라는 기상청 예보는 적중했다. 예보를 듣지 못했다 하더라도 날씨에 반응하는 몸을 통하여 알게 되었을 것이다. 몸 속의 불쾌지수 게이지가 하루 종일 요동쳤을 테니까 말이다. 지친 사람들은 무더위를 피해 도서관으로 몰려들었다. 어른이고 아이고 책 한 권을 골라 잡고 앉아 편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다. 무더위를 잊게 하는 것 중에 책만 한 게 또 있을까?

 

나도 텐게 시로가 쓴 <2030년 학력 붕괴 시대의 내 아이가 살아갈 힘>을 빼 들었다. 끊임없이 생각을 하면서 읽어야 할 책인데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는다. 책을 빌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날씨에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랐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던 책을 놓고 응씨배 바둑 대회 준결승전을 보고 있다. 이세돌 9단과 박정환 9단이 벌이는 준결승 제2국이다. 먼저 1승을 했던 박정환 9단이 조금 밀리는 듯 보이지만 바둑은 그야말로 박빙이다.

 

일요일 오후의 시간에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지곤 한다. 하나의 일에 진득하니 집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라 밴 브레스낙의 <혼자 사는 즐거움>도 읽어야 하는데 슬슬 졸음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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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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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몇 번 밝힌 적이 있지만 나는 하루키의 열성 팬입니다. 그가 쓴 소설은 물론 에세이 또한 읽지 않은 게 없고, 그의 광팬임을 자처하는 임경선 작가의 책('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이나 일본의 대표적인 문예비평가인 고모리 요이치가 쓴 책('무라카미 하루키론')과 말의 권위자 사이토 다카시가 쓴 책('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고백했다') 등 하루키와 관련된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모조리 읽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내가 조금 섬뜩한가요? 혹시 하루키의 사생팬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평소에 독서를 좋아하여 즐겨 책을 읽기는 하지만 예전부터 좋아하던 작가라고 해서 그/그녀의 전작(全作)을 무작정 읽었던 적은 없었던 듯 싶은데 그런 면에서 하루키는 내게 특별한 작가였었나 봅니다. 내가 이토록 하루키를 탐닉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어떤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이따금 생각하게 됩니다. 나로서도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아무리 곰곰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의 소설이나 에세이가 다른 작가와 비교하여 이러이러한 점에서 확실히 다르다는 건 몇 가지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하게도 나는 최근에 나온 하루키의 신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습니다. 삼십오 년 동안 지속적으로 소설을 써오면서도 자신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걸 극도로 꺼렸던 작가이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는 사실이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지기는 했습니다. '이 정도 썼으면 됐다' 생각하여 소설가로서 은퇴를 선언하거나 절필을 결심하기 전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결코 쓰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직 일흔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런 책을 출간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소중하게 여겨온 것은(그리고 지금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나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는 솔직한 인식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그 기회를 붙잡았고, 또한 적지 않은 행운의 덕도 있어서 이렇게 소설가가 됐습니다." (p.58)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 작가인 까닭에 그가 살아온 삶이나 세계관, 가치관, 직업관 등 작가가 직접 책으로 쓰거나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어도 이미 그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다 밝혀진 마당에 더이상 말할 게 남아 있을까, 싶겠지만 그는 아마도 소설가로서 살아왔던 자신의 반평생에 대하여 약간의 변론이나 반론이 필요했었나 봅니다. 그것은 아마도 일본의 기성 작가들과 다른 스타일의 글쓰기, 일본 문단과 동떨어진 행보, 작가만의 독특한 생활 습관 등 다름에서 오는 오해와 불신을 그 나름대로 변명하거나 합당한 이유를 들어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작품은 현재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나름대로 크나큰 달성이라고 자부합니다. 이건 바꿔 말하면 다양한 문화의 다양한 좌표축 위에서 내 작품이 평가된다는 뜻이니까, 나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기쁘게 생각하고 또한 자랑스럽게 느낍니다. 하지만 '그러므로 내가 해온 일이 옳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생각도 없습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또 이것이지요. 나는 아직 발전 도상의 작가고, 나의 여지라고 할까 '발전 가능성'은 아직 (거의) 무한하게 남겨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p.314)

 

작가는 이 책에서 소설가로서 자신이 경험했던 다양한 것들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소설가의 자격에 대해서, 문학상에 대해서,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소설의 내용에 대해서, 소설가가 지향하는 독자층이나 소설의 등장인물에 대해서 등 소설 쓰기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설가가 된 계기며, 학창시절과의 연관성이며,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의 달라진 습관이나 경험, 미국에 진출했을 때의 경험과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가와이 하야오와의 만남 등을 자세히 들려줍니다.

 

'무라카미 자전적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가 썼던 다른 에세이집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 있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지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데서 오는 머쓱함이랄까, 아니면 쑥스러움이랄까 작가 본인이 느꼈음직한 그런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지금껏 써왔던 그의 에세이는 적절한 유머와 위트를 섞어 독자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는 그런 책들이 대부분이었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든 나와는 상관없다는 식의 내던지는 투로 말함으로써 독자들의 어깨를 가볍게 하는 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본인이 어떤 상황을 슬프다고 느꼈을 때 글에서도 여전히 슬픈 느낌을 지나치게 많이 씀으로 해서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슬픔을 억지로 강요하는 듯한 글쓰기는 절대적으로 자제해왔던 작가였기에 진지하다는 건 독자의 입장에서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는 뜻입니다.

 

워낙에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작가인 까닭에 이 책 또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스타일의 글을 써야 한다는 것도, 지속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실질적인 체험만으로 글을 쓴다는 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쓰기에는 몹시 쑥스러웠을 듯한 자신의 경험을 아주 솔직하게 씀으로 해서 소설가를 꿈꾸는 많은 작가 지망생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했던 그의 자세가 진심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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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다른 동물들처럼 겨울잠을 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뭐,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매년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에 인사치레 삼아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어이, 김씨! 올해는 언제 동면할 생각인가?" 물어올라치면 "글쎄, 다음달 중순께나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올해는 예년에 비해 날씨가 푹해서 말이야." 이런 대화가 곳곳에서 들려올 것이다. 김장을 언제 할 것인지 인사말처럼 물어보듯이.

 

찬바람이 불고 쌀쌀해지면 사람들은 제 집의 곳곳을 손보고 다음해 봄까지 아무런 피해가 없기를 기원할 것이다. 그리고 안심이 된다는 듯 자신의 침낭을 펼치고 그 속에 들어가 긴 잠에 빠져 들 것이다. 누에가 실을 토하여 제 몸을 감싸듯 겨우내 자신의 몸을 지켜줄 침낭 속에서 욕심없이 긴 잠을 자는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이듬해 봄이 되어 얼었던 땅이 녹고 길었던 잠에서 다시 깨어날 즈음이면 원시 자연의 공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일 것이다. 굳었던 몸을 풀고 신선한 공기가 온 몸 구석구석을 한바퀴 돌고 나면 '아, 또 다시 1년을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것이다. 그리고 서너 달만에 보는 이웃을 향해 반가운 인사를 나눌 것이다. "어이, 김씨! 그동안 잘 잤나? 동면을 하고 나더니 한 10년은 젊어진 듯하이." 하고 덕담을 건네오면 "그런가? 자네도 안 보는 사이에 많이 좋아졌군 그래. 혹시 남 몰래 깨어나서 보약이라도 한 재 훔쳐 먹은 겐가?" 하는 농을 스스럼없이 던지지 않을까 싶다.

 

동면을 하는 동안 지구는 청정자연의 원시상태를 회복할 테고 사람도, 동물도 그 속에서 건강하게 1년을 살아갈 것이다. 아,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꿈만 같다. 세계 최하위의 공기질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이 너무도 참담하여 별 이상한 생각이 드는가 보다. 오늘도 하늘은 그저 뿌옇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 속에서 살고 있다. 아니,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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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6-06-10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환경이 마치 우리 것인양 착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환경을 나부터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환경파괴의 주범이 아닌지 말입니다.

꼼쥐 2016-06-11 11:07   좋아요 0 | URL
상상만으로 그칠 게 아니라 유전자 변형을 통해서 인간을 동면하도록 만들면 지구환경은 그만큼 좋아지고 에너지 소비도 엄청 줄어들 것 같아요.

Ralph 2016-06-11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숲에서 길을 잃거나 해서수주-수개월 동안 동면 형태로 생존한 예가 꽤있고, 자발적으로 매년 겨울에 동면하는 사람에 대한 경우도 있다는 군요. 이미 인간의 유전자에 프로그램이 있을 가능성이 크지요.

꼼쥐 2016-06-12 16:3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그저 상상만 했을 뿐인데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군요. 온대지역에 사는 사람만이라도 모두 동면을 하게 만든다면 지구 환경은 매년 회복될 텐데 말이죠.
 
괴짜물리학 -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지적 교양을 위한 물리학 입문서
렛 얼레인 지음, 정훈직 옮김, 이기진 감수 / 북라이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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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어떤 것들과 종종 마주치게 된다. 대개는 아주 작고 가벼워서 먼지를 털어내듯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것들이지만, 가끔은 인생 전체에 영향을 줄 만큼 크고 중대한 문제를 만날 때도 있다. 그럴라치면 나는 '이건 좀 어렵겠는걸.' 하면서 쿨하게 포기하거나, 며칠 밤을 새면서 끙끙 속앓이로 몸만 축내다가 결국엔 '나에게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하는 말과 함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이번에는 반드시 내 손으로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이며 열공모드에 돌입하기도 한다.

 

비교적 가벼운 문제에기는 하지만 물리학 서적이나 수학 관련 서적은 아들의 엉뚱한 질문을 잠재울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쓰이곤 한다. 올해 중학생이 된 아들은 그 나이대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스타워즈>나 <어벤져스>에 열광하고, 신화를 바탕으로 한 아동판타지소설로 유명한 릭 라이어던의 퍼시 잭슨 시리즈, 케인 연대기 시리즈, 매그너스 체이스 시리즈를 즐겨 읽고, 어린이 영화 시나리오 작가인 스튜어트 깁스의 책들을 좋아한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에 푹 빠져서 그가 쓴 모든 작품을 다 읽어치우더니 며칠 전부터는 <제3인류> 완간 기념으로 방한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 몹시 아쉬워하고 있다.

 

아들의 이런 취향 덕분(?)에 나는 종종 곧바로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곤 한다. 아들은 간혹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기상천외한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비된 입장에서 아들의 질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비판하거나 이런 저런 핑계를 대어 나의 무식을 변명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나의 처지를 이해했음인지 아들은 이따금 질문을 퍼붓는 대신에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사달라 요구하기도 한다. 최근에도 나는 아들의 요구로 랜들 먼로가 쓴 <위험한 과학책>을 사주었었다.

 

렛 얼레인의 <괴짜 물리학>은 <위험한 과학책>의 속편쯤 되는 책이다. 미국 사우스이스턴루이지애나대학의 물리학 교수이자 '와이어드'(Wired) 최고의 과학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인기 게임 '앵그리버드'를 비롯해 영화 <스타워즈>, <어벤져스> 등 일상에서 발견한 갖가지 소재에 대한 물음을 물리학적 해법으로 답하고 있다. <위험한 과학책>과 다른 게 있다면 저자는 각각의 질문에 대하여 적당한 가정을 세운 후 구체적으로 계산했다는 점일 것이다.

 

"데스 스타의 지름이 160km라면 알데란Alderan(무장하지 않은 평화로운 행성)을 파괴하는 장면에서 광선의 속도를 대략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데스 스타에서 발사되는 광선은 두 가지로, 각각 속도가 다릅니다. 우선 데스 스타 위에 있는 엄청난 크기의 원에서 뭔가가 발사되어 나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합쳐지면서 하나의 거대한 빛줄기를 이루죠. 간단히 분석해보면 첫 단계에서 빛의 속도는 600km/s이고, 합쳐진 후 빛줄기의 속도는 1,000km/s가 됩니다. 두 가지 수치 모두 데스 스타만 나오는 장면을 보고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다음 장면에서 그 빛줄기는 알데란을 향해서 이동합니다. 이 빛줄기가 알데란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0.2초입니다. 빛줄기의 속도가 일정하다면 알데란과 데스 스타 사이의 거리는 196km에 불과합니다. 알데란의 크기는 불확실하지만 국제우주정거장은 지구 표면에서 약 300km 떨어져 있죠. 그렇다면……." (p.162)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일상의 사소한 궁금증에서부터 영화나 게임에서의 궁금증, 나아가 광대한 우주의 비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별난 호기심에 대한 물리학적 답변을 쉽고 재미있게 제시한다. '인구가 많아지면 지구가 달을 끌어당길까?',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는 얼마나 무거울까?', '자동차를 움직이려면 비가 얼마나 내려야 할까?', '블래스터 광선은 레이저일까?', '자판을 두드려서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을까?', '번개를 이용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등 남들이 들으면 별 이상한 놈도 다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별별 질문들을 저자는 진지하게 답변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라면 그건 상식일 뿐이지 과학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아들과 나는 이 책을 함께 읽었다. 수학 기호나 물리 공식, 물리 용어 등 아들이 이 책을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많았으나 영화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아들은 이 책이 퍽이나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책을 읽는 중간에 낄낄대며 웃던 아들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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