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허벅지 다나베 세이코 에세이 선집 1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호박씨를 깐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지. 그닥 좋은 의미로 쓰이는 말은 아닌 까닭에 못 들어봤을 수도 있겠다. 앞에서는 시치미 뚝 떼고 조신한 척 하면서 뒤로는 딴 짓거리를 한다는 뜻의 이 말은 '간통'이 불법이었던 시절의 밤문화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지금은 '간통'이 합법화 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법으로 제재를 가하기보다는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온전히 각자의 도덕적 판단에 맡기겠다는 뜻이니 국민의 교육이나 의식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헌법재판소가 내린 '간통법 폐지'의 사유에 있어서도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이런 점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간통법이 폐지되었다고 하여 국민 개개인의 교육수준과 도덕성이 함께 좋아졌다고는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양자 간에는 정의 상관관계가 아니라 부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도 더러 있고 말이다.

 

우리나라에 비해 성적으로 개방된 듯 보이는 일본도 매춘이 합법화된 것은 아니지만 출판이나 영상매체에서의 성적인 묘사는 우리나라에 비해 확실히 자유로운 듯 보인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법적으로 규제할 것은 규제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엄격한 법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선을 긋고 그 안에서는 대부분 허용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의 성문화가 이렇다 보니 작가들의 성적 담론도 거침이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실생활에서 극도로 절제하는 일본인의 스트레스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성적인 방면으로 분출되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나베 세이코의 에세이 <여자는 허벅지>는 제목만큼이나 여성의 성에 대한 도발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다. 여자가 말하는 여성의 성 담론은 자칫 딱딱하고 이론적이어서 재미가 없거나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흘러 공감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연애소설로는 일가견이 있는 작가의 노련함은 이 책에서도 십분 발휘되어 솔직하면서도 불쾌하지 않고, 지적이면서도 유머와 재치가 넘친다. 1971년부터 1990년까지 주간지 '슈칸분슌(週間文春)'에 연재한 칼럼 중 일부를 묶었다는 이 책은 그동안 흘러간 세월과 함께 시대에 뒤떨어진 한물간 이야기로 넘쳐날 것 같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여자는 자신의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의 부인'이라 불리고 싶어 한다. '~의 부인'이라 불러 주었을 때 여자는 비로소 꽃이 된다. 이것은 단순히 '이제는 매일 남자랑 잘 수 있겠다'라는 즉물적이고 쩨쩨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남자의 성욕은 한순간 발산하면 그것으로 끝이 나지만, 여자의 그것은 느리고 느긋하고 지긋하며 길고 천천히 피어난다. 다시 말해 남편을 두고 아이를 낳아 키워 세상에 내보내는 그 모든 행위가 성욕인 것이다." (p.37)

 

작가는 자신의 일방적인 이야기로 인해 책을 읽는 독자가 자칫 흥미를 잃지나 않을까, 우려하여 '가모카 아저씨'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킨다. 이를테면 '가모카 아저씨'는 작가의 이야기 파트너인 동시에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평범한 중년 남성의 이미지를 재현함으로써 때로는 작가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기도 하고 찌질한 모습 때문에 남성 독자의 동정(?)을 받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책을 읽는 재미와 함께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가모카 아저씨한테 시험해보자. "이 세상에 명기란 것이 정말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여자가 진심으로 사랑해 몸과 마음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불태울 때 누구나 명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당연히 어떤 여자든 자신을 불태우면 명기가 될 수 있겠죠." 이것으로 아저씨는 여자 경험이 빈약하다는 걸로 판명되었다." (p.151)

 

두 사람의 성 담론은 성욕, 월경, 바람기, 정관수술, 체위, 불륜 등 다방면으로 펼쳐지지만 단순히 재미와 호기심의 충족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성과 관련된 인생론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이제 막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사춘기 시절에서부터 '침소 사퇴식'을 해야 하는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인생 경험을 남성과 여성의 입장에서 다룸으로써 자칫 삼류 외설 문학으로 흐를 수도 있는 여지를 엄격히 차단하고 있다. 일본의 에세이스트 사카이 준코는 이 책의 해설 '어차피 쓸 거라면 다나베 시이코 씨처럼'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이 에세이를 통해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재확인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비로소 생겨나는 묘미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이렇게 긴 음담패설을 읽고 났는데도 기분이 상쾌한 것은 남성을 무참히 때려눕히기보다 우열을 가리지 않은 채 끝맺었기 때문 아닐까요." (p.309)

 

요즘은 성희롱에 대한 처벌 수위가 한층 높아진 까닭에 어떤 자리에서건 성과 관련된 농담이 거의 사라졌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성인 남녀가 모인 사적인 자리에서는 언제든 19금 농담이 성행했었다. 물론 때로는 듣기 거북한 농담으로 인해 어색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 반면에 방송이나 공적인 자리에서는 지금보다도 더욱 엄격하게 금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남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정한 수위를 넘지 않는 성적 농담이나 성 담론은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는 일종의 윤활유와 같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수위 조절이라는 게 무척이나 어려워서 농담 한마디로 인생 전체를 망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겠다. 이 책의 재미있는 부분을 인용하기 어려운 것도 다 수위 조절을 신경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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