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다운 비가 내렸던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간밤에 잠깐 후두둑 빗발이 치는 듯하더니 눈 깜짝할 새 가뭇없이 사라져버렸었다. 아침에도 비는 오지 않고 한여름처럼 무덥기만 했다. 햇빛도 없는 후텁지근한 날씨가 종일 이어지더니, 점심 무렵에 병아리 오줌만큼 찔끔 빗방울이 내비쳤다. 비라고 할 수도 없는, 맑은 날에는 보이지도 않을 자동차의 먼지가 찔끔 내린 비로 인해 유리창에 먼지자국만 선명하게 남았다.
불쾌지수가 높을 거라는 기상청 예보는 적중했다. 예보를 듣지 못했다 하더라도 날씨에 반응하는 몸을 통하여 알게 되었을 것이다. 몸 속의 불쾌지수 게이지가 하루 종일 요동쳤을 테니까 말이다. 지친 사람들은 무더위를 피해 도서관으로 몰려들었다. 어른이고 아이고 책 한 권을 골라 잡고 앉아 편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다. 무더위를 잊게 하는 것 중에 책만 한 게 또 있을까?
나도 텐게 시로가 쓴 <2030년 학력 붕괴 시대의 내 아이가 살아갈 힘>을 빼 들었다. 끊임없이 생각을 하면서 읽어야 할 책인데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는다. 책을 빌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날씨에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랐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던 책을 놓고 응씨배 바둑 대회 준결승전을 보고 있다. 이세돌 9단과 박정환 9단이 벌이는 준결승 제2국이다. 먼저 1승을 했던 박정환 9단이 조금 밀리는 듯 보이지만 바둑은 그야말로 박빙이다.
일요일 오후의 시간에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지곤 한다. 하나의 일에 진득하니 집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라 밴 브레스낙의 <혼자 사는 즐거움>도 읽어야 하는데 슬슬 졸음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