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귀나무를 아시는지? 그렇다면 자귀나무가 콩과에 속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신지? 콩과에 속하는 식물은 콩, 팥, 녹두나 싸리류와 같은 키가 작은 식물만 있는 게 아니냐구요? 그럴 리가요. 여기서 그런 무식한 소리를 해서는 앙~돼요. 아, 키가 작은 식물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토끼풀도 콩과에 속합니다. 알고 보면 콩과에 속하는 나무 종류는 꽤나 다양합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아까시나무나 등나무, 조금쯤 생소할 수도 있는 주엽나무, 박태기나무, 회화나무, 자귀나무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제가 꽤나 유식해 보이죠? 아니라구요? 그러지 말고 인정할 건 인정하세요. 콩과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두드러지는 특징은 두 가지라고 합니다. 씨앗이 콩깍지 안에 속한다는 것과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상태로 바꾸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는 것이 그것이죠. 전문적인 용어로 이것을 '질소 고정'이라고 합니다. 흠, 이쯤 하니 유식해 보인다구요?

 

엉뚱한 얘기를 하다가 정작 쓰려던 말을 깜박하고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이런 정신머리 하고는... 암튼 요즘은 이런 증상이 시도때도 없이 일어나곤 합니다. 나이 탓으로 돌리기엔 조금 이른 듯하지만 뭐 어떨라구요. 그냥 나이 탓으로 해두죠. 오늘 쓰려고 했던 것은 뭔고 하니 콩과에 속하는 낙엽관목 자귀나무(mimosa tree )입니다. 부부 금슬을 상징하는 합환목(合歡木), 합혼수(合婚樹), 야합수(夜合樹)라고도 하며, 소가 자귀나무 잎을 무척 좋아해서 소쌀밥나무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제가 가끔 들르는 도서관의 한 귀퉁이에는 자귀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매일 아침 오르는 산의 정상 부근에도 어린 자귀나무 한 그루가 있지요. 자귀나무는 꽃이 유난히 인상적입니다. 분홍색 색실을 풀어 공작의 날개처럼 만들어 놓은 듯합니다. 막 피어난 꽃이 청명한 하늘과 어우러질라치면 나뭇가지 위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여러 갈래의 꽃술은 아랫부분은 투명하게 희고 끝으로 갈수록 분홍빛이 짙어집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누군가 정성들여 만든 코사지 장식을 나무 곳곳에 붙여놓은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절로 들기도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자귀나무의 잎은 해가 지고 나면 펼쳐진 잎이 서로 마주보며 접힙니다. 마치 잎에 감광 센서라도 달아놓은 듯 보고 있으면 신비하기 이를 데 없답니다. 게다가 떨어진 꽃을 만져보면 그 부드러운 감촉이 어찌나 좋던지 어느 짐승의 털이 이보다 더 보드라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저는 이따금 떨어진 꽃을 모두 모아 붓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발상을 떠올리기도 하지요.

 

오늘 아침 산행길에서도 이제 막 피어나는 자귀나무의 꽃을 여러 송이 보았습니다. 자연은 때로 그 신비를 통하여 인간을 기쁘게 합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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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엊그제 아침 산행길에서 잠자리 한 마리를 보았다.  어찌나 반갑던지.  올해 들어 처음 만나는 잠자리였다.  혹자는 '매년 만나는 잠자리인데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떨 것 까지야...'하며 끌끌 혀를 찰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지겨울 법도 한 시간의 순환이란 게 나는 언제나 반갑고 경이롭다.  나는 매달 그와 같은 마음으로 신간 서적을 둘러보곤 한다.  우리의 삶은 셀 수도 없는 무한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지겹다면 다른 무엇에서 행복을 찾을까? 

 

 

 

내가 윤대녕 작가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의 소설 <대설주의보>를 읽은 직후가 아닐까 싶다.  감각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문체.  삶의 이면을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통찰.  나와 작가의 교감은 절정에 이른 듯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산문집을 읽어보지 못했다.  인연이란 때로 어긋난 길을 걸을 때가 있다.

 

 

 

 

 

 

 

 

언제부턴가 학교와 학생들을 주제로 다룬 책들을 그냥 넘기기 어려워졌다.  세월호 참사의 영향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지만 나의 이력은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청춘 이전의 아이들, 이제 막 제 인생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그런 열정이 마치 타고난 재능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거침이 없다.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없다면 그런 열정은 솟아나지 않는다.  나는 가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지치거나 약간의 회의감이 느껴질 때 이런 책을 읽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의 어리광을 질책하게 된다.

 

 

 

 

 

 

 

"독서의 기쁨을 아는 자는 재난에 맞설 방편을 얻는 것이다."라는 에머슨의 말은 생각할수록 의미심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쩌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의하여 에머슨이 알려진 측면이 없진 않지만 사실 그는 19세기를 대표했던 미국의 사상가로서 그의 글을 한번쯤 읽어본 사람이라면 단박에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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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해발고도 500m 이상의 고지대에 단 한 번이라도 살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햇살의 질감이 저지대의 그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언제였던가.  내가 저지대의 도시로 처음 나와 살게 되었을 때 척척 감겨오는 햇살의 감촉에 나는 저으기 놀랐었다.  놀라기보다는 오히려 살짝 부담을 느꼈는지도.  나는 왜 그 겨울의 헤살거리던 햇살을 부담스러워만 했던가.  모를 일이다. 익숙함은 언제나 변화에 저항하는 속성이 있다.  사춘기였고 호기심과 저항이 나의 이성을 반반씩 지배하던 시기였다.

 

고지대의 햇살은 공격적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그렇다.  뜨거운 여름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수천 수만의 햇살이 가닥가닥 풀어져 빛의 화살처럼 내려 꽂힌다.  찰나지간에 모공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온 몸을 헤집어 놓고는 다른 방향으로 유유히 빠져 나갈 것만 같은 느낌.  그러나 저지대의 햇살은 뭉근하게 풀어진 수프처럼 올올이 흩어지는 법이 없다.  그저 저항하는 대상을 은근히 감싸다가 서서히 풀어질 뿐이다.  군불에 달구어진 황토방의 열기처럼 발원을 알 수 없는 열감이 한동안 머물다 흩어지곤 한다.

 

오가와 요코의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고 불현듯 들었던 생각이다.  수학을 소재로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구나 감탄했다.  이질적인 두 대상이 만나 하나로 융합되는 과정은 경이롭다.  내가 두 지역의 햇살을 한 몸으로 살아낸 것처럼.

 

"물질이나 자연현상, 또는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영원한 진실은 보이지 않는 법이야.  수학은 그 모습을 해명하고, 표현할 수 있어.  아무것도 그걸 방해할 수는 없지."  배가 고픈 것을 참아가면서 사무실 바닥을 닦고 루트를 걱정하고 있는 내게는 박사가 말하는 영원하고 옳은 진실이 필요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실감이 필요했다.  넓이도 없이 장엄하게 어둠을 뚫고 한없이 뻗어나가는 한 줄기 진실한 직선.  그 직선이야말로 내게 잠시의 말을 떠올리면서 나는 어둠을 응시했다."    (p.164 ~ p.165)

 

소설의 내용은 최근에 읽었던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를 떠올리게 한다.  박사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기억이 80분을 넘지 못한다.  80분 이전의 기억은 금세 사라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박사를 미망인이 된 형수가 돌본다.  교통사고 이전에는 천재 수학자였던 박사는 이제 수학 저널에 실린 수학 문제나 풀며 하루하루를 소일하는 신세가 되었다.  형수는 집의 안채에서 박사는 별채에서 개별적인 노년을 견디고 있다.

 

최근 수년간 9명이나 되는 가정부를 갈아치운 박사에게 싱글맘인 쿄코가 10번째 가정부로 등장한다.  다음 날이면 가정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박사는 자신이 입은 양복 소매에 메모를 붙여 잃었던 기억을 되찾으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쿄코에게 10살 먹은 아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박사는 아이를 집에 홀로 두어서는 안 된다며 학교가 파한 후 자신의 집에 들르도록 당부한다.  박사는 아들이 모든 수를 포용할 수 있는 루트 기호와 닮았다고 '루트'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80분의 기억이 허락되는 한도에서 박사는 루트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늘 외롭게만 지냈던 루트는 박사의 무한한 사랑 앞에서 할아버지의 따스한 정을 느낀다.  쿄코는 대인 기피증이 있는 박사를 이끌고 미장원을 방문하기도 하고, 교통사고 이전에 야구에 열광했던 박사를 위해 루트와 함께 야구장을 찾기도 한다.  야구장에 다녀온 후 고열에 시달리는 박사를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어 쿄코와 루트는 박사의 집에 머문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하여 쿄코는 해고된다.

 

박사를 통하여 수식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의미를 배워나가던 쿄코와 루트는 박사를 몹시 그리워 한다.  교통사고 전에 박사는 형수를 사랑했었다.  그야말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형수는 자신의 남편이 죽고 미망인이 되었지만 기억과 젊음을 상실한 채 살아야 하는 박사를 차마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학 잡지의 현상문제를 풀어 리포트 용지에 깨끗하게 옮겨 쓰고서 다시 한 번 훑어볼 때면 박사는 자신이 도출해낸 해답에 만족하면서 중얼거렸다.  "아아, 조용하군."  정답을 얻었을 때 박사가 느끼는 것은 환희나 해방이 아니라 조용함이었던 것이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장소에 정확하게 자리하여, 덜고 더할 여지 없이 오랜 옛날부터 거기에 한결같이 그렇게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있으리란 확신에 찬 상태.  박사는 그런 상태를 사랑했다."    (p.93)

 

쿄코는 결국 다시 복직된다.  수와 관련된 박사의 사상과 철학을 배우는 생활이 한동안 지속된다.  중학 중퇴의 학력이 전부인 쿄코도 초등학생인 루트도 박사의 설명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고독한 수인 소수를 사랑하는 박사를 통하여 수식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의미를 배운다.

 

"물질이나 자연현상, 또는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영원한 진실은 보이지 않는 법이야.  수학은 그 모습을 해명하고, 표현할 수 있어.  아무것도 그걸 방해할 수는 없지."  배가 고픈 것을 참아가면서 사무실 바닥을 닦고 루트를 걱정하고 있는 내게는 박사가 말하는 영원하고 옳은 진실이 필요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실감이 필요했다.  넓이도 없이 장엄하게 어둠을 뚫고 한없이 뻗어나가는 한 줄기 진실한 직선.  그 직선이야말로 내게 잠시의 말을 떠올리면서 나는 어둠을 응시했다."    (p.164 ~ p.165)

 

여름 한낮의 저층에 깔린 해묵은 기억을 가을 햇살처럼 선명하게 되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박사처럼 기억 상실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저지대의 햇살처럼 사랑의 열감만을 간직한 채 평생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세세한 기억이 아니라 그때의 느낌만으로 말이다.  박사도 루트도 도타워졌던 사랑의 열감이 삶을 지탱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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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편 무대에는 물수제비를 뜨는 어린 시절의 내가 등장하곤 한다.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여름 한낮이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종일 물장구를 치던 아이들이 오소소 소름이 돋은 몸으로, 강의 이쪽 모래밭에 나란히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다, 누군가의 느닷없는 제의가 있었고, 아이들은 저마다 강변에 흩어진 조약돌을 고르고 있다. 동글동글 마모된 얄팍한 돌을 찾아 이곳저곳을 훑는 그 짧았던 시간에도 몸의 물기는 금세 사라진다. 따가웠던 햇살.

 

금방이라도 닳아 헤질 듯한 누런 팬티 차림의 한 아이가 자세를 잡는다. 마른 체격에도 굵고 실팍한 등근육이 시선에 들어온다. 몸을 비스듬히 눕혀 수면과 한껏 가까워지도록 자세를 취하는 게 요령이라면 요령이었다. 오후의 잔양(殘陽)은 뜨겁기만 하다. 달궈진 돌을 피해 조심조심 강가로 모이는 아이들. 어서 던지라고 성화다.

 

손을 떠난 돌은 어쩌면 수면 위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채 물보라를 튀기며 곤두박질 쳤거나, 과한 힘으로 던진 까닭에 단 몇 걸음만에 저쪽 강기슭으로 튀어 올랐거나, 물 위를 사뿐사뿐 밟으며 저쪽 강기슭에 가까워지던 돌멩이가 나른한 곡선을 그리며 종종걸음으로 회귀하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중력을 거스르며 통통 튀어오르던 물수제빗돌의 발걸음을 기억한다. 어쩌면 수면 위로 반짝이던 여름 햇살의 눈부심을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까맣게 탄 어깨 위로 드문드문 마름버짐처럼 허옇게 일어나던 화상 자국들. 건너편 숲에서는 뻐꾸기가 한나절 울었을게다. 저녁 어스름이 지고 산그늘이 깊은 음영으로 강물을 잠식할 때면 저 멀리서 들려오던 소리. "아무개야, 밥 먹어라!"

 

이따금 나는 수면 위를 가볍게 걷던 조약돌의 흔적을 아스라히 좇곤 한다. 사는 게 조약돌처럼 가벼웠던 시절이었다. 수면 위로 튀어오르던 조약돌의 발걸음을 합창을 하듯 입맞추어 하나, 둘, 셋, 넷...세던 친구들. 세월의 저편에서 만나는 그 시절의 추억. 친구들 모두 삶의 무게를 딛고 세월의 강을 가뿐히 건너가길 나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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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 있었던 알제리와 우리나라의 월드컵 예선 경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더군요. 그것은 주로 어느 일간지나 방송에서 들었던 전문가의 분석에 자신의 의견을 조금 덧칠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들은 모두 과하다 싶을 정도의 감정을 분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벌개진 얼굴로 침을 튀겨 가며 누군가를 비난하는 모습은 과히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월드컵 대표선수들에게 그닥 기대도 하지 않았고 경기 결과에 큰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지기를 바란 것은 물론 아니었죠. 다만 어떤 선수가 참가했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경기도 보지 않았으니 이렇다 저렇다 논평할 꺼리가 없었을 뿐입니다.

 

세계 무대에서 우리나라 스포츠의 위상이 지금처럼 높아진 것도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닙니다. 올림픽에서 태극기를 달고 첫 금메달을 딴 것도 1976년의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언제부턴가 우리는 승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한 듯합니다. 당연히 이길 것이라 예상했던 경기에서 졌을 때의 낭패감이나 모멸감은 곧바로 누군가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게 마련이지요. 더구나 알제리전과 같은 졸전을 본 후에는 그런 마음이 더욱 강하게 들었겠지요.

 

나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제는 조금 더 현명해져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축구와 같은 국가 대항전에서의 승리나 올림픽의 금메달 획득이 무에 그리 중요한지 냉정하게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승리했을 때의 기쁨은 잠깐입니다. 국민 전체의 행복을 증가시키는 것도 아니지요. 기껏해야 조금의 위로, 잠시 잠깐의 기쁨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엘리트 스포츠에 그 많은 돈을 쏟아부음으로써 자살률 1위, 고아 수출국 2위, 교통 사고 사망율 OECD 1위 등 온갖 불편한 진실들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 대회에 출전하고 싶은 사람은 자비로 출전하게 함으로써 지든 이기든 그 사람의 열정을 존중하고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는 게 국민 정서나 국가 경제를 위해 훨씬 더 값진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엘리트 교육에 매몰된 대한민국의 정서는 약자와 패자에 대한 비난 일색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반면 승자는 모든 권력과 존경을 독식하게 되었지요.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국민 모두를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자신들은 모두 승자이고 마땅히 존경과 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람쯤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약자와 패자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세상, 누구의 도움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은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정녕 꿈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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