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낮잠이 쏟아질 때는 달리 대처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저 조용히 물러날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할 일이 없다는 얘기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나는 낮잠 때문에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교통사고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가벼운 수준이었지만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걸 보면 내게는 꽤나 큰 충격이었던 듯하다. 원주 치악산에서 점심을 먹은 후 채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출발한 게 잘못이었다.

 

고속도로는 여주를 지나면서 주차장을 방불케 했고, 차들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나른한 봄햇살이 차의 앞유리로 마구 쏟아졌고 아내는 피곤했는지 이내 잠들어버렸다. 차 안에는 도로만큼이나 답답하고 무거운 공기 사이로 끈적한 졸음이 둥둥 떠다니고 잇었다. 앞차의 브레이크등을 보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이천까지 왔을 때 나는 한계에 도달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서 다음 휴게소에서 잠깐 자고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아뿔사! 그만 앞차를 뒤에서 받아버렸다. 잠이 확 달아났다. 앞차의 뒷범퍼가 찌그러들고 내차의 앞범퍼와 보닛이 긁혔다. 깜박 졸다 일어난 불상사였다. 다행히 사람은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앞 차의 차주와는 명함을 주고 받은 후 헤어졌다.

 

그 후로 나는 점심 식사 후의 운전을 상당히 꺼리게 되었다. 오늘 낮에도 운전을 하여 나갈 일이 있었지만 어찌나 잠이 쏟아지던지 결국에는 취소하고 말았다. 졸음을 쫓으려고 책을 펼쳤었는데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낳은 셈이었다. 일교차가 심하게 벌어지는 탓도 있는 듯했다. 아침에는 제법 서늘했는데 낮기온은 더위를 느낄 정도로 오르니 몸인들 정상 컨디션이겠는가. 이럴 때는 한숨 늘어지게 자고 싶은 생각뿐 다른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또 주말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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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청산'을 기치로 내걸었던 국무총리가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자신의 직책을 스스로 내려놓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나는 갑자기 나른해졌습니다. 때아닌 춘곤증이 마구 밀려오는 듯했어요.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던 건 물론 어젯밤이었지만 내가 그 소식을 접했던 건 아침이었지요. 하여, 내가 그런 나른한 느낌을 가졌던 것도 물론 아침 무렵이었구요. 상황에도 맞지 않는 그런 생뚱맞은 느낌이 들었던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화가 난다거나, 분노를 느꼈다거나, 차라리 잘 되었다 안도하거나, 안타깝다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국정 공백이 우려된다거나 뭐 그런 느낌이 들었어야 할 텐데 나는 왜 뜬금없이 나른함을 느꼈을 까요? 내 마음을 다른 누군가에게 묻는 것도 이상하기는 합니다만. 금방이라도 풀썩 다리가 꺾일 것처럼 온 몸에 기운이 빠지고 나른한 피곤이 몰려왔던 것이지요.

 

어젯밤에 잠을 못자서 그런 게 아니냐구요? 물론 아닙니다. 19금 답변입니다만 주말부부로 지내는 나로서는 평일날 잠을 못 잘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지요. 아, 간혹 밤이 늦도록 책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웬 잘난 체냐구요? 또 대답이 그렇게 되는군요. 가물에 콩 나듯 아주 가끔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아침 뉴스에서 국무총리가 어젯밤 사퇴 표명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지, 다짐했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아침부터 나른한 피곤을 두 눈에 걸게 되었지요.

 

아무튼 이번 정권에 들어서 총리의 수난사는 끝이 없는 것 같군요. 그 무한반복의 권태가 나로 하여금 나른함을 느끼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영원회귀의 시간처럼 말입니다. 갑자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떠오르는군요. "영원한 시간은 원형을 이루고, 그 안에서 우주와 인생은 영원히 되풀이된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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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는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하는 친구 A와 모 신문사의 기자인 친구 B를 만나 늦은 시각까지 함께 있었다. 정말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만남을 제안한 사람은 친구 B였는데 정작 약속 장소에는 가장 늦게 도착했다. 금요일 밤의 맥주집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젊은이들의 활기와 들뜬 분위기로 인해 콘크리트 건물은 금방이라도 통째 하늘 높이 날아가버릴 것만 같았다. 옆사람과의 대화도 어려운 그런 시끄러운 분위기의 술집을 나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개중에는 내가 술도 마시지 않으니 숫제 술집 자체를 싫어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술집에 가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다. 가끔 즐길 때도 있다. 비록 술은 입에도 대지 않지만 그저 분위기에 빠져들어 스스럼없이 즐기곤 하는 편이다. 그러나 어제와 같은 술집은 평상시라면 결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나 시끄럽던지 머리가 흔들려 머릿속에서는 윙윙 소리가 나는 듯했다. 그러나 한 주를 마감하는 금요일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친구 B의 음주 습관은 독특하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지 그는 맥주잔을 들어 단숨에 마신다. 젊어서부터 그랬다. 깡소주로 낮술을 하면서도 기사 마감 시간은 지켜야만 했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의 시간에 대한 강박이 그를 그렇게 버릇 들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반면에 친구 A는 느긋하기 이를 데 없다. 맥주 500cc 한 잔을 들고 종일이라도 버틸 기세다. 친구 B는 뭔가 우리에게 할 말이라도 있었던지 급하게 맥주 몇 잔을 연거푸 마시고는 장소를 옮기자고 했다. 친구 A의 맥주는 아직 반도 비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자리를 옮겨 시작된 대화는 두서도 없이 흐르다가 어느 순간 우리 대화의 주제는 마치 오래된 습관인 양 '책'으로 이어졌다. 책이 예전처럼 잘 팔리지 않는다거나 주변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둥의 시시껄렁한 이야기에서부터 리처드 도킨스나 알랭 드 보통, 움베르토 에코 등의 다소 철학적인 작가들로 옮겨갔다가 마지막에는 우리나라 신진작가들 중에는 딱히 눈에 띄는 작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흘렀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 쪽이었는데 말인 즉슨 신진 작가들은 대체로 문장력이 쓸만하면 정서가 메말랐거나, 머릿속에 들은 게 많다 싶으면 문장력이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작기는 자신의 글이 문학인지 비문학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한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듣다 못하여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쓰라고 했더니 두 사람 다 멋적게 웃었다. 덧붙여 말하기를 요즘 젊은 작가들의 글은 딱 두 종류란다. 문장력만 좋고 알맹이는 없는 '겉껍데기 글'과 문장력은 별 볼 일 없으나 내용은 그럭저럭 쓸 만한 '속 알맹이 글'로 나뉜다고 했다.

 

그 원인으로 그들이 꼽았던 말은 헤어져 곱씹어봐도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차치하고라도 어려서 자연을 접하지 못한 채 자라는 게 주원인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작가의 느낌이나 정서는 누구로부터 배워지는 게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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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세상을 하나로 엮어 크고 더욱 깊어진 슬픔으로 우리를 이끌다가 질식할 듯한 심연의 슬픔에 이르게 합니다. 공유된 슬픔은 바람에 증발하지 않는 법, 힘겹고 느린 시간을 견디다가 오늘에서야 비로소 길고 긴 울음으로 토해내는 듯합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운동을 나섰습니다.

계절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세월호 참사 1주기입니다. 등산로 초입부터 들리던 까치 울음 소리도 오늘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낙엽 밟히는 소리만 새벽의 정적을 깨우고 있었지요. 우리는 종종 슬픔으로 하나되는 슬픔의 연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연대를 마뜩잖아 하는 힘센 자들의 압제 때문만은 아닐 터, 저 벚꽃이 힘없이 지는 것처럼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름하는 팽목항 그 언저리의 어둠이 아릿한 슬픔으로 번져옵니다.

 

싸리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봄인 양 환하게 말입니다. 봄비가 예보된 아침 하늘은 여전히 맑았습니다. 공유된 슬픔은 증발하지 않는 것을 알기에 싸리꽃 환한 아침의 숲을 아이들 웃음인 양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정녕 기억된 슬픔을 되살리고 있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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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좋았다.

거저 주어진 볕이건만 허투루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내가 어렸을 때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이면 어른들은 언제나 '아이고, 아까워라. 아이고, 아까워라.' 연발하며 그 좋은 볕에 뭐라도 해야 할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곤 했었다. 나는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오늘만 날인가,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는데 웬 호들갑이람.' 속으로 한심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나도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보니 그때 하셨던 어르신들의 말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이면 딱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괜스레 맘이 바빠지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온종일 볕이라도 쪼이고 싶고, 옛친구라도 불러 하루 종일 햇빛 속을 함께 거닐고도 싶다.

 

이상의 수필 <권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해는 100도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리쬔다."

 

"나는 아침을 먹었다. 할 일이 없다. 그러나 무작정 널따란 백지 같은 '오늘'이라는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면서 무슨 기사記事라도 좋으니 강요한다.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구해야 한다."

 

나는 봄볕 가득한 오늘의 여백을 앞에 두고 이상처럼 일망무제의 권태를 느꼈던 것은 아니지만 청명한 하늘과 찬란한 봄볕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욕심이 일었던 것이다. '아깝다'하며 나직이 옛 어른들의 흉내를 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이상의 <권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런 대목은 정말로 '이상 답다'는 생각이 든다.

 

"소의 체구가 크면 클수록 그의 권태도 크고 슬프다. 나는 소 앞에 누워 내 세균같이 사소한 고독을 겸손하면서, 나도 사색의 반추는 가능할는지 몰래 좀 생각해 본다."

 

올 봄에는 맘에 드는 '한국 단편 소설' 몇 편 골라 읽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봄볕 좋은 날에 나는 '이상'의 수필이 문득 떠올랐다. 이상의 소설과는 달리 그의 수필은 소탈하면서도 사실적이다. 이상의 시와 소설에 비하면 그의 수필은 찾아 읽는 이가 드문 편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이 쓴 수필은 감칠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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