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장학생인 램지어에 의한 헛소리 한마디가 우리나라 전체를 들끓게 하는 걸 보면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제국주의 일본에 부역하였던 친일의 잔재를 제때에 처리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 역시 간과할 수는 없는 일, 과거 일제시대에도 그러하였지만 돈이라면 열 길 불 속이라도 뛰어들 듯한 불나방과도 같은 존재들의 난장을 아무런 단죄도 없이 그저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게 마냥 답답할 뿐이다. 램지어의 헛소리에 동조하는 몇몇 미꾸라지들의 망언을 듣고 있노라면 그들이 과연 보편적 인류의 양심에 비추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작자들인지 심히 의심이 들긴 하지만 적어도 한민족이라는 민족주의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램지어의 헛소리에 분개해야 마땅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겠는가 말이다.

 

더욱더 기가 막히는 건 그런 망언을 쏟아내면서도 학문의 자유 운운한다는 것인데 그게 설득력이 있으려면 나치에 부역했던 자들을 옹호하는 논문을 발표하거나 그와 유사한 인터뷰를 언론에 실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나치를 지지할 용기는 없으면서 유독 일본 제국주의자들만 칭송하는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게다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악행에 견주어 히로히토의 추종자들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선량했던 자들이 아닌데 어떻게 하면 일제의 만행을 덮어줄 수 있을까 틈만 나면 궁리하는 까닭을 도무지 모르겠다.

 

그나마 우리 사회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기사는 과거 학교 폭력 피해자들의 폭로로 인한 유명 스포츠인들의 퇴장이 아닐까 싶다. 물론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이 스포츠계에만 존재할 리 없겠지만 성과지상주의에 매몰된 대한민국의 스포츠계에서 쉬쉬하고 넘어가던 학교 폭력의 관행이 많았던 것도 공공연한 비밀, 언젠가 터질 게 터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면 스포츠계를 넘어 다른 분야에서도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지 않겠는가. 그런 관행이 정착되면 학교 폭력이 용서받기 힘든 중대 범죄로 인식될 테고 말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다 보니 타인과의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기보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 언론에 노출되는 기사를 전보다 더 꼼꼼히 살펴보는 게 습관화되었다. 타인과의 접촉 시간이 줄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작은 기사에도 일희일비하게 된다. 혼자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다가도 어느 순간 잠잠해지기도 하고, '그것 참 쌤통이다!' 하면서 무릎을 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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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것의 새로움을 새삼 느끼게 되는 하루. 예년 같지 않은 적적한 명절 연휴를 보내다 불현듯 들었던 생각. 말장난이 아니라 '늙어간다는 것의 새로움'은 우리가 매일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는 구태의연한 의미에서 벗어나 하루하루 신체의 변화를 실감하며 단 한 번도 늙는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던 한 인간의 실감에서 비롯되었다. 매일 아침운동을 해도 빠지지 않는 뱃살과 아무리 피곤한 날도 새벽 두세 시면 어김없이 잠이 깨는 이상한 잠버릇, 이따금 찾아오는 꺼질 듯한 무기력증 등 시간의 경과에 따라 새롭게 발견되는 육체적인 변화도 새롭지만 가슴을 옥죄는 깊은 허무와 회색빛 우울의 불규칙적인 습격과 같은 정신적인 변화도 나를 이따금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내가 예전에 늙어가는 것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이토록 가깝게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자신의 죽음마저 궁금했던 리처드 파인만의 호기심처럼 성장기의 육체적 변화를 자세히 관찰하지 못했던 나는 중년의 내 몸이 겪는 변화가 문득 새롭게 느껴졌던 것이다. 바야흐로 '늙어간다는 것의 새로움'이 내 삶의 화두처럼 등장했다.

 

고3 수험생이 된 아들을 앉혀놓고 괜한 잔소리를 했었다. 아들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기대가 화를 부른 꼴이랄까.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카톡 메시지를 남겼다. 아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아닌 아들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무리하게 끼어들고 간섭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 겪었던 어려웠던 환경과 성장 과정을 마치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학창시절 1대 5로 싸운 적이 있다는 친구의 지나친 과장을 비웃으면서도 아들에게 들려주는 내 성장기에는 양념을 치듯 드문드문 과장이 섞이는 것이다.

 

크리스천 돈런이 쓴 <완벽한 날들>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저자가 죽음이 임박한 5년 동안의 기록을 책으로 엮은 <완벽한 날들>은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보다는 삶이라는 밝은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너무 오래 쳐다보는 바람에 하마터면 로터리에서 방향을 틀 기회를 놓칠 뻔했다. "병원에서요." 내가 말했다. "발견이라기보다는 깨달음에 가까워요. 자식을 위해 죽는 게 부모의 책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게 부모의 궁극적 책무죠."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목숨을 걸고서 불구덩이나 달려오는 차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걸, 죽어도 괜찮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죽는다는 뜻이에요. 그게 부모가 해야 할 마지막 일이에요." 별로 웃기는 말도 아닌데 말하고 나서 껄껄 웃었다. 아버지는 운전하면서 내 말을 곰곰 생각하는 것 같았다."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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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운명을 오롯이 타인에게 의지하거나 마치 내 것이 아닌 양 다른 누군가에게 위탁하면 자신의 타고난 운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운명을 살게 될 거라고 믿는 사람이 더러 있다. 이는 마치 '1+1=2'라는 수학적 인식에 젖어 '1'이라는 각자의 운명이 합쳐져 '2' 라는 새로운 운명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믿는 것과 다름없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그와 같은 논리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는데, 문제는 그런 논리를 믿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조금만 생각해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많은 논리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그처럼 허무맹랑한 운명론적 사고에 쉽게 빠져드는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우리들 각자의 운명이 대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게 그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운명에 순응하며 산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자신의 운명을 타인에게 의지하거나 위탁한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쉼 없이 살아갈 뿐이다. 비록 운명의 방향이 조금쯤 바뀔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죽음을 맞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 각자는 결국 자신의 운명을 묵묵히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에 앞서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운명적인 고독을 이해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는 것도, 언젠가 맞게 될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음을 개별적 운명을 이해하기에 앞서 수긍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코로나 정국이 길게 이어지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주변에서도 많이 보게 된다. 지금 겪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말하자면 작금의 힘든 삶을 누군가에게 오롯이 의지하거나 숫제 내 것이 아닌 양 위탁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분명한 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어떻게든 살게 된다는 이치이다. 삶의 결은 각자가 조금씩 다를지언정. 정혜윤 작가가 쓴 <앞으로 올 사랑>을 읽고 있다. 책에 나오는 한 문장을 옮겨본다.


"나는 이제 내가 사랑해온 세계의 깊은 상처를 본다. 현재와 미래, 자연과 인간, 나와 타인, 이 모든 영역에서 길을 잃은 우리를 본다. 그러나 우리는 슬픔의 중지를 원할 수 있다. 고통의 중지, 죽음의 중지 또한 원할 수 있다. 길을 잃을 때는 이야기를 미래의 관점에서 볼 줄 알아야 하고 앞날이 알고 싶다면 지향점과 방향성이 가리키는 쪽을 봐야 한다. 우리 시대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삶의 방향성을 바꾸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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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방학에도 여러 학원을 전전하며 학기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곤 하지만 예전에는 또래 친구들과 놀 생각으로 방학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곤 했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에 비해 겨울옷도 허술하고 바깥 기온도 낮았던 까닭에 오롯이 바깥 추위를 온몸으로 견딘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 시절에는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 신기한 일이다. 그 시절에 주로 하던 놀이는 구슬치기, 비석치기, 딱지치기, 술래잡기, 자치기 등 4계절 흔히 하던 놀이와 비료 포대를 이용한 눈썰매 타기, 직접 만든 얼음썰매 타기, 연날리기, 쥐불놀이, 얼음배 타기 등 다양한 놀이를 즐겼었다. 망가진 비닐우산의 대나무살을 쪼개 방패연이나 가오리연을 만들어 날리기도 했고, 분유나 통조림통을 구해 못으로 구멍을 뚫고 철사를 꿰어 밤늦도록 쥐불놀이를 하기도 했다. 나일론 코트에 불똥이 튀어 마마자국과 같은 흔적을 훈장처럼 겨우내 달고 다니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 시절의 추억을 언뜻언뜻 떠올릴 때마다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푸른 하늘 아득히 날던 가오리연의 비상이 한 폭의 유화처럼 그려진다. '그리움'과 '연날리기'는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날리는 연이 실에 매달려 사뿐사뿐 하늘을 날 때만 하더라도 연은 자신의 무게를 잊고 하늘 높이 비상하지만 실이 끊어지는 순간 기우뚱기우뚱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한순간에 털썩 땅에 곤두박질침으로써 자신의 무게를 실감하는 것처럼,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그 관계가 지속되는 한 그리움은 무게를 잊고 하늘거리지만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가슴에 철렁 무너져 내림으로써 비로소 제 무게를 실감하기 때문이다. 상실 이후의 그리움은 실이 끊긴 연과 무척이나 닮아 있는 것이다.

 

손에 팽팽하게 전해지는 연실의 느낌이 있을 때는 연은 자신의 무게를 체감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당신과 나의 관계가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느낄 때는 그리움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그리움이 가슴에 철렁 내려앉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움에도 무게가 있음을 실감한다. 관계의 끈이 팽팽하면 할수록 그 끈이 끊어졌을 때의 그리움은 감당할 수 없는 중량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가슴이 무너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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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교회(편의상 A교회라고 하자)가 하나 있다. 물론 아파트 인근에 A교회 말고도 올망졸망한 교회들이 커피숍의 숫자보다 더 많기는 하지만, 교회 부지나 건물의 규모면에서 A교회는 여타의 다른 교회를 압도하는지라 내가 아는 몇몇 분들도 모두 그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바람에 나도 수차례 교회에 나올 것을 권유받았지만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걸 거절의 이유로 내세우곤 했다. 물론 바쁘다는 이유로 주말 미사엔 번번이 빠져 고해성사를 하지 않는 한 신자라고 할 수도 없는 '날라리 신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런 핑계를 얼렁뚱땅 둘러대는 바람에 교회에 나오라는 권유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지만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어떤 때는 매일 새벽) 열심히도 교회에 출근 도장을 찍는 그들의 모습을 볼라치면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신앙생활을 제외하면 어느 모로 보나 그닥 성실한 사람들이 아닌데 교회 일이라면 어떻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만사 제쳐두고 앞장설 수 있는지 내 얕은 신앙심으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엊그제는 강풍이 불고 눈이 내린다는 기상청 예보도 있어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두고 출근했었다. 퇴근길에도 바람은 그치지 않았고 이따금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람에 날씨는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웠다. 뜨끈한 아랫목이 간절했던지라 걸음은 자연스레 빨라졌고 주변의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집 근처의 A교회 정문에 이르렀을 때 내가 아는 지인(A교회 신도)과 어떤 초로의 남성이 심하게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평소 다른 사람과 다투는 모습은 전혀 본 적이 없었던지라 걸음을 멈추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지인과 다투던 남자의 주장인 즉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 이 많은 사람들이 꼭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게 맞느냐는 것이었다. 자신도 교회 근처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면서 자신이 이렇게 따지고 들면 A교회에 다니는 고객 중 몇몇이 떨어져 나갈지도 모르지만 그런 손해를 차치하고서라도 도무지 불안해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그가 주장하려는 요지였다. 지인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회는 정부의 방역 지침을 따르고 있고, 발열체크라든가 인원 제한 등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선에서 예배를 보고 있는데 왜 종교의 자유마저 침해하느냐는 주장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분노가 극에 달해서인지 눈보라의 기세가 점점 드세지는 것도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지인과 눈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교회는 이제 공공의 적이 되어가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곳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득실거리는 바이러스의 천국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다. 이런 인식을 국민 전체에 심어준 것도 따지고 보면 미련한 목회자와 우둔한 신자들의 합작품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된다 할지라도 한 번 각인된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을 터, 교회 신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을 향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머리를 숙이는 게 참된 신앙인의 자세일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거꾸로 가는 경향이 있다. 교회 신도와 일반인의 편을 가르고 불안에 떠는 일반 시민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대는 것이다. 똥 묻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했던가. 옛말 그른 게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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