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방학에도 여러 학원을 전전하며 학기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곤 하지만 예전에는 또래 친구들과 놀 생각으로 방학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곤 했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에 비해 겨울옷도 허술하고 바깥 기온도 낮았던 까닭에 오롯이 바깥 추위를 온몸으로 견딘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 시절에는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 신기한 일이다. 그 시절에 주로 하던 놀이는 구슬치기, 비석치기, 딱지치기, 술래잡기, 자치기 등 4계절 흔히 하던 놀이와 비료 포대를 이용한 눈썰매 타기, 직접 만든 얼음썰매 타기, 연날리기, 쥐불놀이, 얼음배 타기 등 다양한 놀이를 즐겼었다. 망가진 비닐우산의 대나무살을 쪼개 방패연이나 가오리연을 만들어 날리기도 했고, 분유나 통조림통을 구해 못으로 구멍을 뚫고 철사를 꿰어 밤늦도록 쥐불놀이를 하기도 했다. 나일론 코트에 불똥이 튀어 마마자국과 같은 흔적을 훈장처럼 겨우내 달고 다니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 시절의 추억을 언뜻언뜻 떠올릴 때마다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푸른 하늘 아득히 날던 가오리연의 비상이 한 폭의 유화처럼 그려진다. '그리움'과 '연날리기'는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날리는 연이 실에 매달려 사뿐사뿐 하늘을 날 때만 하더라도 연은 자신의 무게를 잊고 하늘 높이 비상하지만 실이 끊어지는 순간 기우뚱기우뚱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한순간에 털썩 땅에 곤두박질침으로써 자신의 무게를 실감하는 것처럼,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그 관계가 지속되는 한 그리움은 무게를 잊고 하늘거리지만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가슴에 철렁 무너져 내림으로써 비로소 제 무게를 실감하기 때문이다. 상실 이후의 그리움은 실이 끊긴 연과 무척이나 닮아 있는 것이다.
손에 팽팽하게 전해지는 연실의 느낌이 있을 때는 연은 자신의 무게를 체감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당신과 나의 관계가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느낄 때는 그리움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그리움이 가슴에 철렁 내려앉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움에도 무게가 있음을 실감한다. 관계의 끈이 팽팽하면 할수록 그 끈이 끊어졌을 때의 그리움은 감당할 수 없는 중량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가슴이 무너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