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것의 새로움을 새삼 느끼게 되는 하루. 예년 같지 않은 적적한 명절 연휴를 보내다 불현듯 들었던 생각. 말장난이 아니라 '늙어간다는 것의 새로움'은 우리가 매일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는 구태의연한 의미에서 벗어나 하루하루 신체의 변화를 실감하며 단 한 번도 늙는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던 한 인간의 실감에서 비롯되었다. 매일 아침운동을 해도 빠지지 않는 뱃살과 아무리 피곤한 날도 새벽 두세 시면 어김없이 잠이 깨는 이상한 잠버릇, 이따금 찾아오는 꺼질 듯한 무기력증 등 시간의 경과에 따라 새롭게 발견되는 육체적인 변화도 새롭지만 가슴을 옥죄는 깊은 허무와 회색빛 우울의 불규칙적인 습격과 같은 정신적인 변화도 나를 이따금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내가 예전에 늙어가는 것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이토록 가깝게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자신의 죽음마저 궁금했던 리처드 파인만의 호기심처럼 성장기의 육체적 변화를 자세히 관찰하지 못했던 나는 중년의 내 몸이 겪는 변화가 문득 새롭게 느껴졌던 것이다. 바야흐로 '늙어간다는 것의 새로움'이 내 삶의 화두처럼 등장했다.
고3 수험생이 된 아들을 앉혀놓고 괜한 잔소리를 했었다. 아들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기대가 화를 부른 꼴이랄까.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카톡 메시지를 남겼다. 아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아닌 아들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무리하게 끼어들고 간섭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 겪었던 어려웠던 환경과 성장 과정을 마치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학창시절 1대 5로 싸운 적이 있다는 친구의 지나친 과장을 비웃으면서도 아들에게 들려주는 내 성장기에는 양념을 치듯 드문드문 과장이 섞이는 것이다.
크리스천 돈런이 쓴 <완벽한 날들>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저자가 죽음이 임박한 5년 동안의 기록을 책으로 엮은 <완벽한 날들>은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보다는 삶이라는 밝은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너무 오래 쳐다보는 바람에 하마터면 로터리에서 방향을 틀 기회를 놓칠 뻔했다. "병원에서요." 내가 말했다. "발견이라기보다는 깨달음에 가까워요. 자식을 위해 죽는 게 부모의 책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게 부모의 궁극적 책무죠."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목숨을 걸고서 불구덩이나 달려오는 차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걸, 죽어도 괜찮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죽는다는 뜻이에요. 그게 부모가 해야 할 마지막 일이에요." 별로 웃기는 말도 아닌데 말하고 나서 껄껄 웃었다. 아버지는 운전하면서 내 말을 곰곰 생각하는 것 같았다." (p.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