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여린 마음을 위로하려는 듯 부드럽기 그지없는 비다. 나는 잠깐 산책을 했고, 속삭이는 빗소리를 들었고, 이따금씩 우산을 옆으로 젖힌 채 한두 방울의 비를 맞곤 했다. 겨울을 준비하는 모든 생명체의 바쁜 일상은 잿빛 어둠에 묻혀 가뭇하다.
아침에 처음으로 내복을 꺼내어 입었다. 사는 게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구나, 생각하며 맥없이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날씨이고, 기온인데 몸은 오슬오슬 추위를 탄다. 어렸을 때는 내복 입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었다. 요즘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몸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거나 유행을 좇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내복을 입었을 때의 답답한 느낌이 싫었을 뿐이다. 예전에는 내복의 두께가 어찌나 두껍고 투박했던지...
수능 예비소집 때문인지 수업을 일찍 마친 아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저희들만의 언어로 조잘거린다. 이따금 들리는 웃음소리가 유난히 맑다. 은행나무 가로수의 노란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간다. 바람을 머금은 듯한 투명한 빛깔이다. 계절은 또 이렇게 말없이 지나가나 보다.
한 잔의 커피를 옆에 두고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었다.
대입 학력고사가 멀지 않았던, 딱 이맘 때쯤에 나는 이 책을 읽었었다. 나는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이나 <1984 >보다 르포 형식의 이 책을 더 좋아했었다. 나는 그때 생각하는 것과 경험하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알았다. 나의 부모님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광산촌에서 살고 계셨다.
추억이란 때로 까닭도 없이 깊은 슬픔으로 빠져들게 한다.
내가 내복을 꺼내 입은 것도, 하루가 훌쩍 스러지는 것도, 피곤에 절은 후배의 얼굴도 괜스레 슬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