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노신부님의 발언을 두고 연일 계속되는 정치권의 한심한 작태와는 달리 우리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많이 높아졌구나, 하고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안하무인이고 독불장군으로 군림하는 우리 정치권이 언제부터 그렇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정치권과 언론의 짜고 치는 고스톱과 민심은 상당히 벌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적어도 수도권에서 대학 이상의 학력을 지닌 사람은 그렇더군요.

 

현 정부의 태동은 처음부터 의심스러운 것이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저는 깨끗이 인정하고 정치와는 거리를 둔채 침묵하며 지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만났던 사람들은(적어도 그들 중 반 이상은 현 정부를 지지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점심을 먹는 내내 민주주의의 후퇴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럴 수는 없다고 울분을 토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오히려 정치권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안 그러면 짧은 점심시간을 화도 삭이지 못한 채 끝내고 말았을 테니까요.

 

저의 놀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 저는 언론에 보도되는 어용단체의 행태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 다를 게 없다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언론에 일부 보도된 박 신부님의 발언은 비교적 강경한 것이었으니까요.  적어도 여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박 신부님을 빨갱이로 매도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어느 자리에서건 정치와 관련된 발언은 삼가고 있었는데, 오늘 제가 만났던 사람들은 저보다 더 열성적으로 현 정부의 한심한 작태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불같이 화를 내고 있으니 저로서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게 사람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주어진 지금 당장의 어느 상황 속에다 자신을 내맡기기만 한다면 그는 인간들 가운데서 가장 타락한 인간이 될 것이다." 장자크 루소가 그의 책 <에밀>에서 한 말입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어떤 상황에서 그저 피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루소는 가장 타락한 인간이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제가 오늘 만났던 분 중에는 예순이 넘은 분도 있었습니다.  나이와 정치색으로 판단했던 저의 생각이 무척이나 못나고 짦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 평화와 정의를,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를 무시하는 일체의 행위를 거부하는 한 우리에게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최소한 우리 다음 세대에서는 지금과 같은 무식한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하려는 수작은 부리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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