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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아주 오래 전 대학 시절 같은 동아리 멤버였던 한 친구의 결혼 후 집들이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막 제대하여 복학을 준비하던 시기였고, 다른 친구들은 이미 다니던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거나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사실 우리 동아리는 동아리라고 말하기도 쑥스러운 작은 모임에 불과했었지만 대학 시절 우리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만나곤 했었다. 여자 셋에 남자 하나인 우리 모임은 비록 인원은 단출했지만 다니는 학교가 다 달랐기에 약속 시간을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모임의 청일점이었던 내가 궂은일을 도맡다시피 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모임 장소는 언제나 내가 다니던 학교 근처의 어느 카페로 정해졌었고, 그렇게 자주 만나면서도 만날 때마다 한참이나 서로의 안부를 물었었고, 시답지 않은 농담에도 배꼽이 빠지도록 웃곤 했다. 우리는 그렇게 형제자매인 양 몰려다녔고 이따금 그것도 시큰둥해지면 응암동의 단독주택에 살던 한 친구의 집으로 불쑥 쳐들어가곤 했었다. 서울에서 건축 설계 사무소를 하던 그 친구의 아버지는 외동딸인 그녀를 무척이나 아끼셨던 까닭에 우리 멤버들도 언제나 환영을 받았었다.
그녀의 집은 복잡한 서울 시내에 위치한 집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고 웅장했었다.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과 잘 가꾸어진 정원, 식구 세 명이 살기에는 턱없이 넓었던 3층 건물, 그리고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끝없이 내오던 음식과 과일. 그럼에도 그때는 누구 하나 열등감을 느끼거나 부러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었다. 같은 대학생이라는 약하디 약한 동질감이 크게 작용했던 듯하다.
내가 갑작스레 군입대를 하면서 깨질 줄 알았던 모임은 단지 모임의 장소만 바뀌어 계속 이어졌다. 내가 서울과 가까운 곳에서 군생활을 했던 것도 모임이 이어진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녀들은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 타야 했던 불편을 감수하면서 매주 토요일마다 면회를 오곤 했었다. 내무반의 막내사절부터 줄기차게 면회를 오는 그녀들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로 인해 혹시 고참들로부터 미움을 받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내무반의 고참들은 오히려 나를 통하여 여자 친구를 한 명쯤 소개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더 컸었던 듯했다.
내가 제대를 하고 복학을 준비하던 시기에 그녀들은 졸업을 했다. 둘은 취직을 했고 응암동에 살던 그녀는 내가 다니던 대학의 도서관에 나와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이따금 영화를 보거나 전공이 국문과였으니만큼 적당히 글을 쓰면서 지냈다. 한마디로 무위도식의 삶을 굳건히 살았던 셈이다. 그러던 중 취직을 했던 한 명이 결혼을 했고 서울 외곽의 신시가지에 터를 잡고 우리를 초대했던 것이다. 33평의 깨끗한 아파트와 모든 게 새것인 신혼살림. 비록 전세라고는 했지만 사회 초년생인 그녀에게는 과분한 것이엇는지도 몰랐고, 그래서였는지 그녀는 신혼집과 자신의 남편을, 행복에 취한 자신을 한껏 자랑하고 싶어했다.
나는 지금도 그 신혼집 집들이에서 응암동 그녀가 했던 말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곳저곳 한참을 둘러보던 그녀는 소파에 풀썩 몸을 내던지며 새댁이던 다른 그녀에게 물었다. "이거 몇 평이야?" 묻자 새댁이었던 그녀는 "응, 삼십삼 평. 그래도 꽤 넓어 보이지?" 웃으며 되물었다. 그런데 응암동 그녀의 대답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응암동 그녀의 대답은 "그래? 답답하겠다." 였다. 우리를 초대했던 신혼부부는 물론 나와 같이 갔던 또 다른 그녀마저 일순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자리에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던 사람은 오직 응암동 그녀뿐이었다.
그때 응암동 그녀는 신혼이었던 그녀를 놀려주려는 의도도, 일찍 결혼한 그녀를 시샘해서 나온 말도 아니었음을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우리와 만나기 전에는 지하철을 단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다고 했던 응암동 그녀의 고백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나는 그때 알았다. 우리가 자주 몰려다니던 그때 인기리에 방영되던 '전원일기'에 대해 우리 중 누군가가 물은 적도 있었다. 그때도 그녀는 '그거 그냥 설정 아니야?"하고 되물었었다. 그녀는 다만 자신 밖의 세상을 전혀 알지 못했을 뿐이었다.
내가 김영하의 산문집 <보다>를 읽으면서 문득 응암동 그녀를 떠올렸던 것은 작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느꼈기 때문이다. "진짜 부자는 소유하지 않는다"는 소제목의 글에서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부자를 정말 부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가난에 대한 무지다. 예를 들어 TV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재벌집 아들 김주원(현빈)은 가난한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에게 친절한 얼굴로 이렇게 묻는다. "이봐, 길라임씨. 혹시 가난한 사람들은 뭐 사고 싶은 게 있거나 하면 오랫동안 저축도 하고 마음도 졸이고, 뭐 그러는 거야?" (p.25)
그런가 하면 자신의 중학교 시절 체험에서,
"어느 날 우리 둘은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우리집에 가서 놀기로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가 가지런히 놓인 슬리퍼를 보고 이렇게 말했던 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작은 집에도 슬리퍼가 필요해?" 그의 말에는 그 어떤 공격성이나 비아냥의 기운도 없었다. 그의 의문은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천진함이야말로 그가 가난을 거의 경험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p.28)
산문집 <보다>에서 작가는 자신의 체험, 보았던 영화, 읽었던 책 등에서 작가 자신이 느꼈던 점과 생각나는 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작가는 여러 이야기들을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 많은 이야기들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산문집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글은 나와 생각이 달라서, 어떤 글은 재미가 없어서, 어떤 글은 너무나 현학적이어서... 그렇게 읽다 보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머릿속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다만 그 느낌만 전해질 뿐.
응암동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을 빈둥대다가, 또는 이따금 나를 귀찮게 하다가 불쑥 결혼을 했고, 얼마 안 가 이혼을 했고, 한동안 나에게 밤마다 슬픈 전화를 하다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이유로 연락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