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가고 또 새해가 오는 이맘때쯤이면 연례행사처럼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토정비결이나 신년운세를 보는 것이지요. 대개는 재미삼아 하는 일종의 놀이쯤으로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요즘 신년운세를 보지 않습니다. 믿지 못해서이거나 궁금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귀찮아졌을 뿐이죠.
제가 어렸을 때는 점집이 참 많았던 듯합니다. 붉은 바탕에 만자 (卍字) 표시가 있는 집은 한결같이 점을 보는 집이었죠. 지금도 더러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그렇게 자주 보이지는 않더군요. 점도 이제는 다양화되고 첨단화되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앱으로 이동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즘에는 점집을 찾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제가 돈을 내고 점을 보았던 것은 아마도 아내와 결혼하기 한두 해 전쯤 아내와 함께 점집을 찾았던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듯합니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어느 점집에 들러 가족들 사주며 운세를 모두 보고 와서는 저희 형제들에게 들려주었던 적은 한두 번 있었던 듯합니다. 요즘에도 제 주변에는 심심풀이로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곤 합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점은 우리 주변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많아지는 게 사실인 듯합니다. 못 믿으시겠다구요? 그 이름만 달라졌을 뿐이지 인간의 길흉을 예측하는 점이나 무슨무슨 예보 또는 예측은 사실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적중률에 있어서는 차이가 나지만 말이죠. 예컨대 일기예보만 하더라도 단기예보는 잘 맞는 편이지만 장기예보는 적중률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주가예측이나 경기예측도 비슷하지요. 이런 것들은 오히려 우리가 보는 점보다도 못한 적중률인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점은 미신으로 치부하며 터부시하는 반면 경기예측이나 주가예측을 두고 미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개중에는 신기한 예보도 있더군요. 요즘은 미세먼지도 예보를 하고 내년 4월부터는 서울시에서 모기예보제를 시행한다니 점의 종류는 나날이 늘어날 것만 같아요. 예보를 하는 것도 그 주체에 따라 성향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 듯 보입니다. 가령 장기 기상예보는 늘 최악의 상황을 말하고, 주가예측은 항상 최상의 상황을 가정하지요. 올해만 하더라도 올 겨울은 눈도 많고 혹독한 추위를 예보했었는데 지금까지는 그렇지도 않은 듯 보이니 적중률은?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형편없어 보이네요. 주가예측도 올초에는 상당히 높게 예상했는데 강보합 정도였으니 예측은 빗나가도 한참이나 빗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기관에 따라 왜 이런 예측을 하고 사람들은 왜 어떤 예측은 기억하고 어떤 예측은 기억조차 하지 못할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기상청 장기예보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말할 경우 이 예보가 맞을 경우 잘 맞는다고 할 테고 맞지 않았을 경우는 날씨가 좋았을 테니 그런 예보가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듯합니다. 그러나 주가예측은 주가가 상승하든 하락하든 손해를 보는 사람과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니 기왕이면 낙관적으로 예측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예측을 믿었다가 손해를 본 사람들은 원망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하겠죠.
아무튼 예보든 점이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비록 그 기법이 과학적이냐 비과학적이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죠. 미래는 신의 영역이 아니겠습니까? 문명이 발달할수록 불확실성은 증가하고 그에 따라 우리 인간은 점이든 예보든 그 무엇엔가 더욱 의존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과학이 발달해도 100% 정확한 예보는 존재하지 않을 듯 싶군요. 점이든 또는 예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