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에 레몽 장의 <책 읽어주는 여자>가 영화로, 그리고 책으로 한참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그 때만 해도 난 책을 읽어주는 것도 남이 읽는 것을 듣는 것도 싫었다. 책은 속으로 읽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읽는다라는 것에 대한 그 어떤 대안도 생각도 해 본적이 없었던,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가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시절이었다.  단순히 <책 읽어주는 여자>란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책을 읽어주는 직업이 있을 수 있구나라고, 웃긴다라고 생각했었다.   

결혼하고 나서 책이나 영화에 대한 관심이 무 자르듯이 뚝 끊어졌다. 아니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 때였는데도 책도 영화도 내 주의를 끌지 못했다.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들이 흘러갔고 애가 태어나자 별일도 다 있지, 내 책들이 아닌 아이들 그림책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서점엘 가도 그림책 코너만 돌다 맘에 드는 그림책만 사들고 오고 인터넷 서점의 잇점을 알고 나선 매일 아침에 일어나 딱 한시간 동안 유아코너에 들어가 어떤 그림책들이 나왔는지 검색하고 주문하고 그리고 주문한 책 받아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그런 반복되는 일상을 한 몇년동안 재생버튼 누르듯 해 왔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신간 그림책 때문인지 그 생활에 싫증도 나지 않았다.  

내가 읽어주는 책에 길들어진 아이들은 책은 엄마가 읽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 내가 영화처럼 책 읽어주는 그 여자 아니 엄마가 되다니.... 한 때 비웃었던, 웃지 못할 일이 생긴 것이다. 감정도 넣어가면서 열심히 읽어주었다. 하루에 수십권을 읽어도 힘든지 모를 정도로. 하지만 나도 모르게 아이들과 나 사이에 틈이 서서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요 근래에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읽어주고 싶은 글이 있어 큰 애에게 읽어주겠다고 하면, 딴짓을 하곤해서 기분 상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거절당하기도 하였다. 처음엔 어리둥절해서 아이가 보내오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한동안 그 벌어진 틈이 익숙하지 않아서, 간극만큼 공허감만 커져간다. 

며칠 전에만 해도 그렇다. 테지마 케이자부로오의 신간<섬수리부엉이의 호수>라는 작품에서 작가 후기가 읽어 줄 만해 읽어주려고 했더니 단번에 거절하는 것이었다. 잠깐 앉아 들어, 엄마가 빨리 읽어줄께. 이 작가가 왜 이 작품을 썼는지에 대한 글이니깐, 응! 한번만 들어달라는 엄마의 애걸을 주저없이 거절하고 다른 곳으로 쳐다보는 아이의 모습에서 울렁이는 씁쓸함을 느꼈다. 왜 이런 배신감이... 시도 때도 없이 책 읽어달라고 했던 놈이..... 

나의 고향 

나는 소년 시절 대부분을 홋까이도 북쪽 끝에 있는 시골에서 보냈습니다. 그 곳은 집에서 백미터만 걸어가도, 커다란 가문비나무가 우거진 산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산속은 조용해서 한 그루 한 그루 나무 끝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가 고독한 기분을 더욱더 강하게 자아냈지요. 밤이 되면 섬수리 부엉이가 소리도 없이 날아와서, 집 가까운데 있는 전봇대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곤 했습니다. 노란 눈동자와 이러저리 잘 움직이는 머리와, 그 뒤에 펼쳐지는 넓고 반짝이는 대우주는 어린 나의 마음에 무한한 신비감을 주었습니다. 

<섬수리 부엉이의 호수>는 그 시절에 체험한 것들이 향수와 그리움으로 승화되어 만든 세계입니다. 

깊은 밤, 섬수리 붕엉이가 펼치는 생활 드라마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변함없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꾸미없는 모습입니다. 나에게 섬수리 부엉이는 친구이자, 삶의 방식을 가르쳐 준 선생님일지도 모릅니다.  - 테지마 케이자부로오 

끝내 읽어주지 못했다. 내가 테지마 케이자부로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판화로 세겨내고 있는 훗카이도오의 적막한 자연때문이었다. 그가 장면 장면에 새긴 그림이 완벽한 라인을,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진 못하겠다. 세밀하게 새겨진 세련미보다는 그의 그림에서는 약간의 서툰 형태의 모습도 간간히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의 그림에서 짚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한 장면 한장면 판화를 새길 때,  자신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풍경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어린 독자이건 어른이건 간에 상관없이) 강렬하고 열정적인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이 없었더라면, 그의 그림책에서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적막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사람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적막감이 더 부각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자신의 유년시절에서 체험한 자연의 이미지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고히 간직한 그 이미지를 그림으로 잡아낼려는 열정이 없었더라면 그의 그림 세계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주기 위하여 아들애한테 읽어주고 싶었다. 작가가 그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과 원동력이 무엇인지 이 후기만큼 더 잘알 수 있는 정보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할수 없지, 머리가 커가면서 점차 멀어지는 아이의 마음을  내가 무슨 수로 말린단 말이여.     

엄혜숙씨도 본격적으로 일본그림책에 서서히 발을 들여 놓는구나 싶다. 요 몇년 심심찮게 일본그림책의 역자에 엄혜숙씨의 이름이 눈에 띈다. 작년 8월에 나온 책인데, 이번에 오픈 키드에서 행사해 오랜 만에 주문 넣고, 열린어린이책 그림책 받아보고 나서야 케이자부로의 신간이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인터넷 검색이 편하고 빠르고 편하긴 한데, 단점은 글자 하나 틀려도 같은 작가로 검색이 안 된다는 것. 케이자부로오는 관심가는 일본작가라 그 때 그때 검색했었건만..... 모르고 지나칠 때가 있어 인터넷 검색이 빠른건지...모든 정보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인지. 알쏭달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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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먼 다이슨는 평생 수학과 물리를 위해 살았지만, 또한 훌륭한 독서가이기도 하다. 그 어떤 세기보다 더 혼란스럽고 말썽 많고 멋진 기술시대의 20세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많은 문학작품들을 거론하는데, 자신의 견해를 문학작품에 비유하며 아주 멋들어지게 설명하고 있다. 이 정도의 독서력을 가지고 있으려면 내공이 도대체 얼마나 되야 가능하단 말인가. 평소 물리학이라는 학문은 공학적인 의미가 강한 분야인 줄 알았는데, 물리학과 관련된 과학자들의 책을 읽을 수록 그들의 깊은, 논리적인, 과학적인, 명료한 사고에 매혹을 느끼고 빨려들어간다. 프리먼 다이슨이 이 책에서 언급한 문학작품은 무수히 많다. 그리고 자신이 그 문학작품에 내리는 해석은 왠만한 일류 문학 비평가 못지 않다. 아니 오히려 문학비평가들의 난해한 글보다 실제적으로 접근한다. 그가 과학기술자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드레스덴 폭격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대목이 있는데.... 

커트 보네커트는 드레스덴 공습에 대해 <제5도살장 또는 소년 십자군>이라는 책을 썼다. 나는 여러 해동안 공습에 관한 책을 쓰려고 벼르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보네커트가 휠씬 더 잘썼기 때문이다. 그는 공습 당시에 드레스덴에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기 눈으로 보았다, 그의 책은 좋은 소설일 뿐만 아니라 진실이기도 하다. 내가 본 것 중에서 유일하게 부정확 점은 그날의 살육을 일으킨 것이 영국공군이었다고 말하지 않은 것 뿐이었다. 미국인들은 다음 날에 와서 부서진 돌더미를 치웠을 뿐이다. 미국 사람인 보네커트는 그런 식으로 써서 이 모든 것을 영국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 말고는 그가 말한 것이 모두 옳다. 이 책에서 가장 진실인 것은 부제인 "소년 십자군"이다. 보네커트는 서문에서 친구의 부인이 화를 내서 이것을 부제로 쓰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그 부인이 옳았다. 이 유혈 낭자한 아수라장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이 소년 십자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폭격 사령부는 어떤 미친 사회학자가 과학과 기술의 사악한 측면을 최대한 명료하게 보여 주려고 만든 견본일지도 모르겠다. 랭커스터 폭격기는 그 자체로는 훌륭한 비행기계였지만, 그 기계를 작동시키는 소년들에게는 죽음의 덫일뿐이었다. 거대한 조직이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헌신했고, 이 조직은 그 일 자체를 엉망으로 실행했다. 관료주의 체계는 목적과 수단을 전혀 구별하지 못했고, 비행 횟수만 가지고 비행대의 성공을 측정했을 뿐 왜 비행했는지 따지지 않았고, 투하한 폭탄의 톤수만 따졌을 뿐 어디에 투하했는지는 따지지 않았다.  

이러한 사악함은 전쟁이 기계화되기 오래전부터 있었다. 우리의 사령관은 과학 시대 이전의 전형적인 군인이었다....... 사악함의 뿌리는 전략 포격이라는 정책이었고, 이 정책은 폭격 사령부가  출범하던 1936년부터 견지되어 왔다. 전략 폭격 정책은, 전쟁에 이기거나 전쟁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적국의 하늘에 죽음과 파괴를 쏟아 붓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정책이 1930년대에 정치가들과 군사 지도자들에게 인기를 끈 이유로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그들은 모두 제 1차 세계 대전의 지긋지긋한 참호전에서 살아돌아왔기 때문에 참호전의 재현을 끔찍하게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전략 폭격이 참호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그들은 전력 폭격이 '억지력'으로 작용해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 관점에 따르면, 전쟁이 나면 폭격으로 인해 자국이 무조건 폐허가 되다는 것이 명백하면 어떤 정부도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과의 전쟁만을 본다면, 역사는 이 이론이 양쪽 모두에서 틀렸음을 증명했다. 전략 폭격은 전쟁을 억지하지도 못했고 승리를 가져다 주지도 못했다. 이제까지 전략 폭격만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 역사가 명백하게 증명해 주고 있는데도 전략 폭격 정책은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폭격 사령부에서 꽃을 피웠다. 그리고 이것은 여전히 더 큰 나라들에서 더 큰 폭탄으로 살아남아 번식하고 있다. 

폭격 사령부는 전쟁의 역사에서 오래된 악에다가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악을 더한 것의 초창기의 예였다. 기술은 악을 익명화한다. 과학과 기술을 통해서 악은 관료주의적으로 조직되어, 그 누구도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책임의식을 갖지 않게 되었다. 랭커스터 폭격기를 타고 레이더 화면에 나타난 불분명한 반점을 향해 폭탄을 뿌리는 소년병이나,군사령부에서 서류를 뒤적거리는 작전 장교나 작전 연구부의 좁은 사무실에 앉아 확률을 계산하는 나도 개인의 책임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우리중 그 누구도 자신이 죽인 사람을 보지 못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50~52p) 

달턴 트럼보는 1차 세계대전은 여름 축제처럼 시작되었다. 우리들 머리속에 저장되어 있는 전쟁이미지중 어린아이 할 것없이 모두가 나와 퍼레이드중인 군인들을 환호하는 축제같은 장면의 한 컷이 연상될 것이다. 그렇게 축제와같이 시작된 전쟁이 수 많은 대규모의 사망자와 부상자를 내면서, 이제 전쟁은 축제가 아닌 절망과 상실의 죽음의 백파이프로 대체되었다고 <Johnny got his gun>에서 쓰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세계는 몇 번의 커다란 전쟁을 겪었고 이제 우리는 전쟁은 사내들의 분출구같은 게임이 아닌 대량살육의 장이라고 알고 있다. 수 많은 작가들이 전쟁의 살육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다아슨처럼 왜 그런 대량살육이 가능해졌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접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전략폭격이 한 나라의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다아슨의 말대로 전쟁기술이 익명화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비행기안에서, 연구실안에서, 군 사령부안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드레스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비참함과 울부짖음, 상실과 절망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추상적으로 머릿 속에서잘 짜여진 시나리오처럼 그려지고 움직여졌을 뿐이고 가축처럼 도살되어 마땅한 대상일 뿐이다. 마우스의 오른쪽 버튼만 누르고도 간단히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구역질나고 피비린내나는 현실은 사라지고 흥분과 승리의 아드레날린만 쏟게 하는 요즘 아이들의 게임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전쟁의 현실은 사라지고 가짜 이미지만 득실한, 살인에 대한 죄책감조차 마비시킨 것은 기술의 익명이야말로 20세기가 우리에게 선사한 최악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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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집인 줄 알고 샀더니 인터뷰는 한 챕터만 할애하고 팀버튼의 영화론 또는 잡지의 기획기사글이다. 인터뷰를 선호하는 까닭은 인터뷰글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면서 감독의 즉흥적인 다른 면을 많이 읽어낼 수 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팀버튼의 디즈니에 대한 혐오, 뭐 팀버튼이 워낙 데뷔 초부터 자기는 디즈니의 이쁘고 귀여운 그림 그리는 거 죽어도 싫다고 떠들어대서 알고는 있었지만, 디즈니에 대한 혐오가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하지만 팀 버튼의 지금 영화이미지와 테크닉이 완성된 뒷 배경에는 디즈니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들의 영향력 또한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림책계의 거장 모리스 센닥의 화풍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어린 시절 보아온 디즈니의 애니였으며 토미 드 파올라가 그의 챕터북 26Fairmount Avenue 에서 묘사한 백설공주를 처음 영화관에서 봤을 때의 그 흥분감을 읽었을 때 드는 생각은 팀 버튼 윗 세대 그 누구도 디즈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팀 버튼은 세인 애커의<9>이라는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점점 팀 버튼의 영화에서 색이 없어지는구나. 개인적으로 난 그의 알록달록한 그의 초기작같은 작품을 다시 보고 싶다.  

지금까지 읽어본 아이들 챕터북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는 책을 들라하면 난 이 토미드 파올라의 이 시리즈를 꼽겠다. 흔히 재밌다는 소문이 무성한 여러 챕터북 시리즈들 한 두권 정도 집적거렸는데, 내가 그림책 작가들에게 흥미를 느끼고 좋아해서 그런지 이 토미 드 파올라의 어린시절을 엮은 챕터북이 제일 재밌더라. 30년대 이탈리아 가족의 끈끈한 가족애을 이 보다 더 훈훈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이 책중에서 디즈니의 <백설공주>가 처음으로 상영돼, 극장가서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가의 어린 시절의 그 흥분감이 그래도 전달된다. 볼 것도 많지 않는30년대에 백설공주는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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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리뷰] 데이비드 위즈너 그림책 리뷰 작성해 주세요~ 5분께 2만원 적립금을 드립니다!!
구름공항 벨 이마주 28
데이비드 위스너 그림, 이상희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외국 그림책 작가들 특히 서양쪽 작가들은 그림을 정말이지 참 잘 그려요. 그림뿐만 아니라 상상력도 풍부하고 치밀해서 정교하다고 해야하나 테크닉적이라고 해야하나...그림 속에서 뭐하나 버릴 게 없더라구요. 저 같은 경우는 그네들의 그림책 한권한권 보다가 그들의 뛰어난 상상력때문에 수집하는 대상이 점점 많아지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아무 생각없이 산 알파벳 북 같은 경우도 이 작가 저 작가의 알파벳북을 뒤적이다가 작가들이 글자 하나로 펼쳐내는 뛰어난 상상력을 보고 감탄해서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알파벳책을 모으게 되고, 어떤 하나의 이야기를 이미지화하는데 작가들 저마다 다 다른 상상력을 동원하다 보니, 이 작가는 이 장면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싶어, 같은 이야기라도 다른 버전의 <신데렐라>나 <눈의 여왕>같은 책을 수집하게 되더라구요.(요즘은 호두까기 인형에 필 받아서 모으고 있는 중)  워낙 외국의 경우, 일러스트의 역사가 오래 되고 층이 두꺼워서 뛰어난 작가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데이빗 위즈너같은 경우는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이 작가는 상상력뿐만 아니라 사고하는 방식도 독특한 사람이라서  <허리케인>을 보면 위즈너가 그림뿐만 아니라 글을 참 잘 쓴다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아기돼지 세마리>같은 경우는, 아기돼지 삼형제의 패러디인데, 제가 아기 돼지 삼형제를 패러디한 작품을 몇 작품 아는데, 그 중에서도 이야기의 전형성을 넘어선, 이야기의 경계를 흐트려서 이야기의 안과 밖이 존재하는 가장 독특한 아기돼지 삼형제였어요. 여하튼 그림책의 포스트모던은 이런 작품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던 그림책이었어요.(내용 보시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수긍하실 거예요.)  

데이빗 위즈너의 그림의 특징은 말없는 그림책이라는 것도 있지만 이 작가가 선호하는 이미지가 플라잉 또는 플로팅의 이미지가 상당히 강해요. 그림책 어디서든지 날아다니거나 떠 다니는 이미지를 볼 수 있거든요. 사실 전 위즈너의 그림책들을 보면서 그가 선호하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게 뭘까하고 그 이미지의 패턴이 잡힐 듯 하면서 명확하게 안 떠올랐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시간상자>의 바닷속에서 떠다니는 물고기를 보고 그리고 제목이 flotsam 이라는 점에 힌트를 얻어서 아, 이 위즈너가 좋아하는 이미지가 바로 이거구나하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는 그의 다른 모든 작품들을 들여다 보니깐 바로 그 플라잉의 이미지들이 작품의 한 두 장면에는 꼭 끼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구름이 여러 형태를 만들 수 있다라는 <구름공항>의 아이디어는 그렇게 특별한 것은 없는데(구름공항이 존재한다는 아이디어가 더 신선한), 구름들이 일반적인 구름 모양을 거부하고 생물이나 사물의 형태로 여기 저기 떠돌아 다니는 모습을 유머스럽게 표현했고, 풍부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뒷받쳐주는 섬세한 그림이 멋진 작품입니다. 

 제가 글자없는 그림책은 읽어주기가 참 난감해서 아들에게 이 친구가 뭐라고 했을까하고 적어보라고 해서 적은 글, 7살때인가 적어서 철자도 다 틀리고 그러네요










상상력도 상상력이지만 이 작품이 45페이지에 불과하거든요. 근데 이야기의 완결이나 구성이 탄탄해요. 뭐 어떤 부분적인 이야기를 담은, 쪼가리 이야기도 아니예요. 상상력은 그림만으로 보여 줄 수 있지만 이런 이야기의 완결도 상당 부분 차지한다고 봐요. 그게 어떨 때는 진짜 부러울 때가 있어요. 저의 나라 교육 시스템(학벌위주의)으로는 이런 작가가 나오기도 힘들고 사실 나올 수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상상력이 풍부하고 이야기도 탄탄한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 아이가 사물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하는데, 우리의 현재 교육 현실에는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천천히 뜯어보고 조립할 수 있는 시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요. 몇 달전에 읽은 <생각의 도구>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 책의 요지가 천재가 될 수 있는 조건들, 예를 들어 유추,관찰,패턴등의 여러가지 조건들이 나와요. 그런데 그 책을 읽고 나서 100% 그 작가들의 말에 수긍을 하면서도, 과연 이러한 조건들이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충족될 수 있을까싶더라구요. 이러한 조건들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성숙이라는 어떤 정신적인 힘과 가장 중요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과연 시간적 여유라는 사치가 존재할 수 있을까 싶더라구요. 존 버닝햄이 2006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떠날 때, 학원에 쫒기며 사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에게 남긴 말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꼭 혼자 있는 시간을 주라고 말이예요.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은 사고하고 무엇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시간인데, 그런 시간이 우리들에게 있을 수 있느냐하는 것이죠. 이런 데이빗 위즈너의 상상력 정도 나오려면, 아마도 우리 아이들은 낙오자라는 이름의 딱지가 붙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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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책은 몇 년 전에 한림출판사에서 매달 받아보는 달맞이책에서 받아 보았다. 그런데 왜 관심가는 신간이냐고? 문제는 조카가 기차를 좋아하고 이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 옛다! 선심 좋게 선물하고 다시 사려고 했더니 품절이 되버린 책이라는 것. 일본아마존에서 구입할까하다가 언니네 있는데 궂이 비싼 돈 주며 살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그럴바에는 다른 책을 사는 게 더 낫지 싶어 구입을 미룬 차에 신간으로 나왔다. 이 작가는 기차만 전문으로 그리는 작가인 것 같다. 그의 작품 검색해 보면 기차 앞머리가 표지를 장식한 작품만 우수수 나오는 걸로 봐서는. 이 작품도 기차가 달리는 주변 경관이 은근 향수를 일으키는 책인데 이 책하고 계속해서 눈여겨 본 작품은 바로 밑의 그림책. 가격도 저렴하고(880엔)..엔화 오르기 전에 주문했어야 하는데, 지금 살펴보니 두 권 일본에서는 품절이다. 헌책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여기나 거기가 품절되면 값이 오르는구나. 

チンチンでんしゃのはしるまち―わくわくにんげん (かがくのとも傑作集) 

 

 

 

 

 

 

 

 

 


 

 

 

 

 

 

애아빠 회사에서 복지로 일년에 한 180만원 돈 나오는데, 쓴 내역서 보면 알라딘 아니면 예스다. 그뿐만 아니라 월급에서도 책 구입비가 만만치 않는데, 왜 사도 사도 책은 더 사고 싶은 걸까. 진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제 산 책들 읽기만 하면 되겠지 싶으면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 이번 한달도 그만 사야지 했는데 위의 책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미치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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