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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Yousuf Karsh (Paperback) - Portrait in Light and Shadow
Maria Tippett / House of Anansi Pr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5월 5일 어린이날, 날씨 화창. 문방구앞 오락실에서 놀겠다는 큰 애를 억지로 윽박질러 데리고 간 곳이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이었다. 이 날 예술의 전당에서는 그림책 원화 전시회부터 클림트까지 다양한 크고 작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아이들하고 가 보려고 작정했던 전시회는 유제프 카쉬전. 5월 8일이 마지막이어서 서둘러 가지 않으면 놓치겠다 싶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 날은 작정하고 집을 나섰다.
예술의 전당 전면에 요제프 카쉬가 찍은 오드리 헵번을 프린트 해 걸어 놓고 있었다.
애니타 애크베리라는 미국여배우와 훼밍웨이
사람들 징그럽게 많았다. 5월8일이 전시회 마지막 날이어서 파장 분위기일 것이라 지레짐작한 것은 나의 착각. 전시회장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린 시간이 1시간 40분 정도.
이 독창적인 지성앞에서 경외감에 사로잡혀 카쉬는 인간의 불멸성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의견을 물었다. "두가지 불명성이 있는데 하나는 인간의 상상 속에 존재하며 그것을 환상이라고 불립니다. 인간의 기억속에서 수세대동안 전해질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상대적인 불멸성입니다. 진정한 불멸성은 우주적 차원에서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우주 그 자체의 불멸성입니다." 카쉬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음악과 수학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예술 속엔 그리고 높은 수준의 과학 속엔 조화의 느낌이 있습니다. 조화의 감각이 없인 예술이든 과학이든 진정한 위대함이란 없습니다. 조화감각이 결핍된 사람에겐 어떤 분야이든지 뛰어난 기능인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인류가 조화를 이루는 해결책을 찾는데 실패했다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차원의 파멸이 닥칠 것입니다. 그럼 우린 인류는 이 인류 전체 미래의 희망을 위해 어디에다 기대야하는지 물었다. "우리 스스로에게 "아인슈타인은 슬프게 그러나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마치 우주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았다. 카쉬의 카메라는 이 순간 그를 찍었다. 이 사진은 희망이나 절망 같은 것의 차원을 너머 여행했던 사람의 인물 사진이다 카쉬는 이 사진을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에서 찍었다. 카쉬의 인물 사진에선 손이 특히 중요한 역활을 한다. 위치에 따라 얼굴과의 거리에 따라 의미가 모두 다르다.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면 기도하는 듯한 그의ㅣ손은 얼굴만큼 비중있게 처리되었다.. 만약 세상에 원자 폭탄이 또 다시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카쉬의 물음에 그는 "아아, 그렇게 된다면 아마 우리는 더이상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될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소피아 로렌처럼 지성과 프로근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고루 가준 여배우를 촬영한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작업이었다라고 카쉬는 회상했다. 이 사진은 파리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이른 오후에 찍은 것이다. 그녀는 여느 엄마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두 아들을 끔찍히 사랑했다. 작업이 끝나갈 무렵 학교에서 아이들이 돌아왔고 그들 사이의 넘쳐나는 사랑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카쉬는 세계적인 첼로연주자를 만나기 위해 먼지 나는 시골길을 운전해가면서 마치 순례자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프라드에 위치한 쿡사 수도원에서 카쉬는 이 첼로의 악성과 유쾌한 몇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이윽고 촬영을 위해 조용하고 어두운 방으로 갔다. 아무런 연출도 필요 없었다. 일단 카잘스가 바흐으이 곡을 연주하자, 카쉬는 감동한 나머지 잠시 동안 사진을 찍는 것도 잊었다. 자칫하면 마법 같은 분위기가 깨질까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카쉬는 이렇게 회상했다. "불현듯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제껏 그리고 이 이후로도, 나는 단 한번도 나를 등지고 있는 사람을 찍은 적이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왠지 이게 맞을 것 같았다." 위에 보이는 창문과 빈 방의 구조가 마치 감옥처럼 보였고 늙은 예술가의 음악이 창문을 넘어 감옥을 벗어나 전세계로 울려퍼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Yoursuf Karsh(1908~2002)
유섭 카쉬는 흑해 연안, 아르메니아 공화국 말딘에서 태어났다. 터키인의 박해를 피해서 시리아로 옮겼다가 1924년 그의 나이 열여섯 되던 해 캐나앋에서 사진관을 경영하고 있는 숙부를 찾아 이주했다. 1933년 캐나다에서 초상사진 사진관을 경영하면서 총독 부처를 비롯하여 고관과 그의 가족들을 찍기 시작했다. 1941년 카쉬의 후원자였던 캐나다의 수상 맥캔지 킹의 주선으로 캐나다를 방문한 영국수상 처칠을 찍었으며 이 사진이 후에 LIFE지의 표지로 발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후 1943년에 캐나다 정부의 요청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조지 6세를 비롯 정치가,과학자,군인,예술가,성직자등 42명의 초상을 찍었으며 1945년에는 LIFE지의 위촉으로 세계 명사들의 초상사진을 찍었다. 그 뒤로는 1950년대 산업 혁명 시기의 캐나다 경제성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으며 2002년 작고할 때까지 수 많은 세계 명사들으 모습을 남겼다.
카쉬는 자신이 사진에 대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모든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대상이 되었던 것은 인간의 얼굴이었다. 그에게 있어 얼굴은 풍경과도 갔았고, 그는 이를 읽는데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생애를 통들어,그는 15,312명의 사진을 찍었고 150,000 장의 필림을 현상하였으면 20세기를 이룩한 많은 위인들의 예술적이고 역사적인 모습을 잊혀지지 않게 남겨 놓았다. 카쉬은 인물 사지은 그 대상이 된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확한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카쉬는 인간의 장점, 열정, 용기, 부드러움등과 같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모습만을 보고, 또 찾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진실을 추구하였고, 이를 자신의 대앗에게서 이끌어 내어 우리와 함께 공유하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회에서 발간된 KARSh 100 도록에서 발췌
전시회장 안은 사람들로 혼잡해서 제대로 작품을 감상할 수 조차 없었다. 작품 감상이라기보다는 사람구경하러 왔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인터넷에서 떠도는, 혹은 책 겉표지에서 늘 보아오던 인물 사진들이 단 한 사람, 요제프 카쉬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은 묘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카쉬의 초상 작품에 대한 이끌림은 내가 그 어떤 세기보다도 20세기가 가장 매력적인 시대라고 생각한데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인한 가치에 대한 혼란과 반항, 영상의 발전, 미술에 있어서의 추상개념의 등장, 탈정치와, 기존권력의 대한 저항과 재편성, 두 차례의 세계전쟁, 이념 전쟁, 양심과 폭 넓은 인권에 대한 권리주장, 여성의 시대등등. 정말 이 멋지고 불편했던 세기는 그 어떤 세기도 겪지 않았던 쉴 틈 없는 혼란과 진통의 연속이었다. 카쉬가 그런 멋진 혼란의 세기에 살았던, 20세기의 대표적인 수 많은 인물들을 찍었다는 것자체가 놀라운 일 아니겠는가.아마 화가였다면 불가능한 작업을 사진기라는 매체를 통해 그는 20세기의 얼굴들을 보여 주었다. 한마디로 어떤 광고에 나오는 문구처럼 nothing is impossible!! 사진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의 도록에 쓰인 글에 의하면 그가 찍은 프레임 속의 인물들은 그의 독특한 45도 광(사광)으로 알려진 테크닉속에서 각각의 개성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카쉬전을 보면서 궁금한 것은 그가 찍은 무수한 인물들의 초상 사진속의 인물들을 단 한번 짦은 시간에 만났을 것인데, 어떻게 그는 사진 속의 인물들의 인간적인 혹은 내면화한 모습을 적절하게 포착할 수 있었을까하는 것이었다. 평소 인물들에 대한 이해가 깊었기 때문에....카쉬의 본능적인 재능이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려나. 도록에 실린 글에서는 그가 인물의 개성을 표출하기 위한 표정의 이해에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써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단 몇 분만에 인물들의 캐릭터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불가사의해 보였다. 전시회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인물은 고뇌에 찬 슈바이처와 날카롭고 까칠해 보이는 버나드 쇼였는데, 흑백의 프레임 속에 지난 20세기가 다 들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볼 만한 전시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