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김한영 옮김, 이인식 해설 / 김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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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딘 쿤츠의 <남편>을 읽어보셨습니까? 쟝르 소설 매니아라면 읽어봤거나 관심목록에 집어 넣었을 법한 스릴러 소설인데, 개인적으로 그렇게 매력적인 다가 온 소설은 아니었다.  미국 작가들의 영화제작을 염두한 비쥬얼적인 글쓰기를 싫어하고, 딘쿤츠의 <남편> 또한 그런 경향에서 예외는 아니어서, 솔직히 <남편>에 대한 예찬은 호들갑스러운 평가 혹은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한 예의상 띄어주기 위한 주례비평의 본보기정도로 밖에 비추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을 읽지 않았더라면 딘 쿤츠의 <남편>은  내 뇌리 속에 계속해서 후진 소설쯤으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읽은 양육서(혹은 육아서)가 일반통행처럼 양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에 반해, 매트 리들리는 <본성과 양육>에서 본성에 초점을 맞추고 본성에 맞는 양육을 통해 각 개인의 본성이 강화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의 타고난 본성에 대한 성장론은 딘 쿤츠의 <남편>에서 제시된 인물유형을 상기시켰는데,  딘쿤츠는 그의 작품 <남편>에서 스키너식(예를 들어 자기에게 아이를 맡기면 부모가 원하는 아이 즉 변호사로, 의사로, 판사로, 거지로 양육할 수 있다는)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부모와 그런 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 중 다 자라 성인된 두 아들을 통해 본성과 양육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스키너식의 양육을 고집하는 부모밑에서 자란 큰 아들은 부모가 원하는 모습의 아들로 성장하고 이 책의 주인공 밋치는 스키너식의 부모밑에서 성장한 것에 넌덜머리를 내며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하여 부모와 거의 교류없이 지낸다. 사건은 밋치의 부인인 홀리가 납치돼, 부모의 양육대로 자란 큰 아들과  밋치가 얽혀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밋치의 본성이 그런 부모밑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올바른지를 보여주는, 혹은 본성이 그 부모의 양육과는 별개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경우에는 무자비한 스키너식의 양육은 개인개인의 특질인 dna 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한마디로 딘쿤츠는 작가 자신이 본성대 양육 논쟁을 아는지 모르는지간에 <남편>이란 스릴러 소설을 통해 양육론보다는 본성에 손을 들어 주었다라고 할 수 있다.  

매트 리들리에 따르면 본성대 양육에 대한 논쟁은 프랜시스 골턴의 "1874년 책 <영국의 과학자: 그들의 본성과 양육>을 발표하고 나서부터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과학적 천재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결론을 되풀이했다. 본성과 양육인 Nature and Nurture라는 그 유명한 두운법이 탄생한 것도 이 책(110p)"  이였다.되었다. 그의 주장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의 반발을 일으켜 본성과 양육의 논쟁에 근거가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우생학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후에 스키너같은 행동심리학자들의 실험에 의해 본성보다 양육(즉 환경)이 더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초기 본성에 대한 골턴의 주장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어 보인다. 매트 리들리는 골턴의 주장에 따라 이 책 초반에서 본성을 강조한다. 그는 떨어져 산 일란성 쌍둥이의 예를 들어 환경보다는 유전적인 요소가 성격을 결정한다고 이야기한다.  아기 때 떨어져 산 일란성 쌍생아를 추적하여 성인이 되어 그들의 성격이나 행동들을 살펴본 결과 한번도 만나적이 없던 그들 사이에 유사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혼경력이라든가 개를 기른다든지 또는 개의 이름까지도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환경에서 양육된 쌍생아들의 공통분모인 유전적 요소가 그들의 현재의 환경을 유사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실례로 들어 본성을 강조하는 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아이의 본성에 따라 양육한다고 한다. 여자아이는 여자아이의 본성에 따라 인형을, 그리고 남자 아이는 남자 아이의 본성에 따라 자동차나 기차를 사주며 아이의 본성에 맞게 양육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핏 매트 리들리가 본성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트 리들리가 이처럼 이 책 에 초중반에 본성을 역설한 것은 어쩌면 아직까지도 현재 양육서가 프로이드의 이론과 스키너같은 행동심리학자들에 의해 양육(환경)에 의해 성장이 결정된다는 이론이 지배적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은 육아서의 대부분은 양육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트러블로 인한 개선등등 그 아이가 타고난 본성을 믿어라라는 양육서는 아직까지 이 책 이외에는 읽어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매트 리들리가 본성 그 자체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 원제목처럼 그는 양육을 통한 본성 강화nature ia nurture의 입장이다. 그에게 본성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유전자는 양육의 중개인이며(138p), 본성은 양육을 압도하지 않고, 양육과 경쟁하지 않는다. 둘은 본성 대 양육의 경쟁을 벌이는 라이벌이 아니다(139p)라고 보기 때문이다. 

부모의 적극적인 양육으로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은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리들리에게 말 그대로 억지에 불과해 보인다. 아이는 부모 맘대로 할 수 있는 인형같은 존재가 아니다. 부모가 쥐고 흔들 수 있는 시기도 어린시절이나 가능하다. 아이가 자신의 파워을 얻는 순간, 딘 쿤츠의 소설 <남편>의 밋치처럼 알에서 깨어나온다. 아이들에겐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보다 더 강하게 그 전 시대부터 축적되고 누적되어 온 dna가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유전자는 때에 따라선 환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매트 리들리가 이 책에서 본성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좋은 부모(환경,양육) 또한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부모는 양육을 통해 본성을 강화할 뿐이지, 남녀차이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그들은 성적 전형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가진 성향에 반응(352p)하기 때문이다. 단지 양육은 어린 원숭이실험에서 보여준 것처럼 우유를 주는 철로 만들어진 어미 원숭이보다 우유는 주지 않지만 푹신푹신하고 따스한 모형 어미 원숭이한테 매달려있는 것처럼 양육은 안정적인 보금자리 역활을 하는 것이다. 매트 리들리의 양육을 통한 본성강화라는 주장은 열손가락이 다 다르듯이, 한 배에서 난 자식도 다 다르다라는 우리의 속담과 어딘지 비슷하다 . 그리고 그의 양육을 통한 본성강화는 그가 책의 말미에서 말하는 모든 유전자가 환경에 반응하는 감수성의 축도라는 것, 생명체를 유연하게 만드는 수단이라는 것, 경험의 하인이라는 것을 보여주(389p)는 것인지도 모른다.    

덧: 이 책에는 매트 리들리는 양육을 통한 본능 강화라는 주장을 위해 많은 예를 드는데, 그 중 흥미로운 것이 있다. 언어 습득에 대한 것인데, 언어의 독특한 특징 그러니깐 억양이나 말투같은 것을 그 나라 사람처럼 습득할 수 있는 시기는 사춘기 이전이라고 한다. 그는 헨리 키신저의 예를 들면서 키신저가 한살 아래인 동생과 함께 미국에 와서 똑같은 시기에 언어를 습득할 때 키신저는 미국식 액센트를 습득하지 못한 반면에, 한살 아래인 동생은 미국식 액센트를 구사했다고 한다. 두 형제의 언어 습득 차이에 대해 그는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특정적인 시기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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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어요 미래에너지 - 한국과학창의재단 우수과학도서 그린 에너지 생생 원자력 3
이은철 지음, 홍원표 그림 / 상수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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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과학책을 쉽게 읽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지식의 축적과 누적을 필요로 한다. 20세기 놀라운 이론적 발전과 기술의 진보을 가져다 준 현대 물리학과 생물(특히나 진화론)에 관한 책을 읽을 때면 무엇보다도 더 절실하게 그리고 간절히 필요한 것이 과학 이론의 기초 지식이었다. 

우연히 읽게 된 데이빗 보더니스의 말빨에 과학의 세계로 입문, 무턱대고 자연 과학 관련 책들을 읽었을 때, 뼈저리게 느낀 것이 기초 과학 지식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는 것이었다. 과학 관련 책들을 읽고 싶다는 욕망만 내 안의 허영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 때 여러 기초 과학 관련 책들(예로 김영사에 나온 지식인마을 시리즈같은) 책들을 구입해 읽었지만...솔직히 만족할 만큼 기초 지식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 정도의 수준도 어려웠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시절 물리이론을 배웠던 기간이 무척이나 짧고 어렵다는 이유로 입시도 쉬운 생물로 선택하다 보니(며칠전에 고등학교 참고서 생물II 보고 그런 생각도 접었지만), 우리 또래의 문과 세대들은 기초 과학 이론이 전무한 것이라. 지식이 딸리다보니 쭉쭉 읽어 내려가기가 힘들고 궂이 다른 재미난 소설도 많은데 힘들고 버거운 대상을 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보니 자연과학책을 더욱 더 멀리 한 것이 현실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읽으면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니면 오기가 발동해서인지 아니면 그들의 실제적인 이론과 철학이 맘에 들어서인지 한번 발을 들여놓은 자연 과학책에 무한 매력을 느껴, 집에 아들이 보는 why 시리즈중 핵과 이론이란 책까지 들춰보며(말 글대로 들춰봤다. 그 책속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쉽게 설명하는 물리 이론들만 읽고 만화 스토리는 건너뛰었다) 자연과학책들을 읽었다. 그때 든 생각이 아이들 보는 책이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만화 형식속에 실제 많은 기초 이론이 쉽게 설명되어 있었다.  

현대 물리학 관련 책들을 읽을 때 꽤 많은 도움을 받아 이런 종류의 책이 또 없을까 싶었는데, 상수리 출판사에서 나온 에너지 시리즈가 있었다. 이 책은 전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인 <에너지가 뭐예요? >에서는 에너지에 대한 정의와 에너지의 종류 그리고 그 에너지가 우리의 실생활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예를 들어 자동차와 기차가 에너지에 의해 어떻게 움직이고 전기와 풍력,수력같은 자연에너지의 이용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2권에서 중점적을 다룰 원자력 에너지에 관한 것이 말미를 장식한다. 2권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이론 에너지는 질량과 같다라는 에너지 보전의 법칙의 개념에서 시작된, 원자가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발견된 원자력에 관한 이야기가 원자의 역사에서부터 원자력에서 발생하는 방사선까지 잘 정리되어 있다.특히나 방사선의 현대 의학의 활용에 관한 서술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적절한 호기심과 예를 보여주고 있다고할까나. 무척 맘에 드는 2권! 3권은 <2권의 원자력이 궁금해요>이라는 책을 읽어야 정확한 이해도를 높이는 책인데, 물론 따로 각각의 권을 읽어도 이론의 이해는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순서대로 읽는 것이 아이들이나 과학의 기초 개념을 원하는 사람들한테는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이 3권의 <알고 싶어요 미래에너지>는 과학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던 그런 과학 기술의 미래도를 펼쳐 보인 책이다. 인공 태양과 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바람을 이용한 풍차, 날아다니는 자동차, 바닷물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만들어 조력발전소를 만든다든지, 쓰레기를 바이오에너지란 이름으로 연료를 만든다는 계획 그리고 그 바이오 연료가 실제로 제 역활을 하기에는 역부족인 이유 그리고 앞으로 바이오 에너지에 대한 여러 나라의 관심과 실생활에 대한 적용이 아이들 수준에 맞춰 어렵지 않게 적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1,2권을 충실히 읽으면 3권의 에너지 관련 용어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 용어나 기초 이론이 자리 잡으면 중고등학교의 물리과목을 좀더 쉽게 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어린이 책들을 보면, 나이 들어 느끼는 것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미술이론이나 철학이론 심지어 이런 과학 기초 이론까지 쉽게 접할 수 있어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세대들은 언제나 부족하고 또 부족했고 있더라도 너무나 어려운 수준의 책들만 있었는데, 이렇게 초등 고학년 아이들 수준에 맞게 설명도 잘 되어 있고 분량도 적절한 책이 계속해서 나온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사실 우리의 어린이 과학책은 외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데, 이것보다 더 쉽게 초등 저학년으로도(어려운 용어는 빼고 개념만 알 수 있는) 많은 과학책들이 나왔으면 한다. 욕심이려나........ 


에너지의 종류에는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가 있는데, 운동에너지는 곧 위치에너지이다. 풍선에 공기를 넣어(에너지를 얻어) 위치가 변화하는 모습을 찍었다. 큰애랑 미래의 에너지 이야기하다가 미래에는 인공태양도 만들 수 있다면 공기도 에너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아이들하고 미래의 에너지, 공기에너지란 개념으로 한 컷. 풍선의 입구를 막지 않아 풍선이 놓았을 때 날아오르는 힘이 세고 공기가 빠졌을 때의 정지 운동도 함께 볼 수 있어 아이들이 재밌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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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자전거 날쌘돌이
다바타 세이이치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우리교육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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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들애가 그림책 제목을 보고는 나에게 장난스럽게 던진 한마디, 피~ 고물인데 어떻게 날쌔다는 거야!   

사실 제목의 반어법을 의식하지 못했다. 무조건 받자마자 어떤 그림책인지 궁금해 이것저것 따질 겨를도 없이 책을 읽었고 아이들하고 늦은 저녁에 같이 읽었을 때, 놓쳐버린 제목의 의미를 아이가 캐치해 나에게 던진 것이다. 윽!꽈당!

책을 받기 전에는 대충 고물자전거에 대한 아이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긴 그림책이겠거니하고 추측했는데, 막상 받고 읽어보니 버려진 자전거를 수거해 고친 후, 운송시설이 발달하지 못해 먼길도 걸어다녀야하는 제 3 세계국가의 사람들에게 재생 자전거를 보내 유용하게 쓰인다는 그림책이다.  

공터 한켠에 버려진 자전거 날쌘돌이를 유키짱이라는 소녀가 발견하고 자전거를 잘 고치는 겐지라는 할아버지에게 데려간다. 겐지할아버지에 의해 다시 쌩쌩 달릴 수 있는 날쌘돌이는 아프리카로 보내지고, 아프리카에서 비록 낡았지만 제 기능을 다 하는 날쌘돌이를 반갑게 맞이하는 산파 아주머니를 만나 희망의 자전거로 변신한다는 이야기 그림책인데, 아이들에게 또 다른 리사이클의 형태를 알려주고, 재활용의 순환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그린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을 읽기 전에는 제 3국에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처치곤란한 물품들을 보내는 것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았다. 얼마전에 학교에서 집에 못 쓰는 핸드폰을 가져오라는 공문이 왔었는데, 그 공문이 내용이 핸드폰을 학교에서 수거해 다른 나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집에도 핸드폰 한 두개는 서랍 속에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주변에는 모든 상품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고물될 때까지 쓰는 경우는 거의 없고 고쳐 쓰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큰애는 몇 달 되지도 않은 핸드폰을 없애고 빅뱅의 대성이 선전하는 롤리팝으로 바꾸고 싶다고 안달안달한다. 물론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하고는 무시했지만, 아무리 모든 것들이 넘쳐나고 소비되어야 경제가 잘 돌아가는 사회라고 해도 이건 정도를 지나쳤다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가  새로운 제품에 계속하는 댓가로 버려지는 물건을 버리기 아까우니깐 못 사는 나라의 사람들에게나 주자는 그런 발상 자체가 싫었다. 이 무슨 씨다바리 심뽀냐! 싶었던 것이라.  

비판의 눈이랍시고 그러한 나눔의 형태에 눈을 흘리기 있는 동안, 이 그림책의 작가 다바타 세이이치는 노구의 몸을 이끌고 직접 제 3 세계국가를 돌아다니며 고국에서 버려진 자전거가 타향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그리고 그 별 거 아닌 자원이 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하고 애정어린 존재인지를 몸소 체험하고 돌아와 이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그림책의 제작 의도가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타국의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단지 자전거라는 매개체만으로 서로의 기쁨을 나누는 장면이 상상되고 그 상상 속에서 노작가의 환한 웃음이 떠올려지니, 이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재활용 순환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거창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선진국가의 위상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좀 더 심도있는 주제로 이야기할 만 했다.  자, 알겠지! 왜 고물이라도 날쌘돌이인지 말이야! 하고 말이다. 

우리에게는 <벽장속의 모험>으로 알려진 다바타 세이이치가  <벽장 속의 모험>에서는 연필 라인이 아이들의 모험을 박진감있게 그렸다면 이 <고물자전거 날쌘돌이>에서도 약간 거칠면서도 흑백의 톤과 부분부분 채색으로 생동감 있게 그렸다. 작가가 우리 나라에서는 두 작품만 소개되어 있어서 어떤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고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본 그림책 작가들의 폭 넓은 소재와 주제 그리고 관심거리는 눈 여겨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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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Yousuf Karsh (Paperback) - Portrait in Light and Shadow
Maria Tippett / House of Anansi Pr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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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5월 5일 어린이날, 날씨 화창. 문방구앞 오락실에서 놀겠다는 큰 애를 억지로 윽박질러 데리고 간 곳이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이었다. 이 날 예술의 전당에서는 그림책 원화 전시회부터 클림트까지 다양한 크고 작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아이들하고 가 보려고 작정했던 전시회는 유제프 카쉬전. 5월 8일이 마지막이어서 서둘러 가지 않으면 놓치겠다 싶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 날은 작정하고 집을 나섰다.


예술의 전당 전면에 요제프 카쉬가 찍은 오드리 헵번을 프린트 해 걸어 놓고 있었다.  




애니타 애크베리라는 미국여배우와 훼밍웨이



사람들 징그럽게 많았다. 5월8일이 전시회 마지막 날이어서 파장 분위기일 것이라 지레짐작한 것은 나의 착각. 전시회장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린 시간이 1시간 40분 정도.    

이 독창적인 지성앞에서 경외감에 사로잡혀 카쉬는 인간의 불멸성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의견을 물었다. "두가지 불명성이 있는데 하나는 인간의 상상 속에 존재하며 그것을 환상이라고 불립니다. 인간의 기억속에서 수세대동안 전해질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상대적인 불멸성입니다. 진정한 불멸성은 우주적 차원에서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우주 그 자체의 불멸성입니다." 카쉬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음악과 수학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예술 속엔 그리고 높은 수준의 과학 속엔 조화의 느낌이 있습니다. 조화의 감각이 없인 예술이든 과학이든 진정한 위대함이란 없습니다. 조화감각이 결핍된 사람에겐 어떤 분야이든지 뛰어난 기능인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인류가 조화를 이루는 해결책을 찾는데 실패했다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차원의 파멸이 닥칠 것입니다. 그럼 우린 인류는 이 인류 전체 미래의 희망을 위해 어디에다 기대야하는지 물었다. "우리 스스로에게 "아인슈타인은 슬프게 그러나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마치 우주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았다. 카쉬의 카메라는 이 순간 그를 찍었다. 이 사진은 희망이나 절망 같은 것의 차원을 너머 여행했던 사람의 인물 사진이다  카쉬는 이 사진을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에서 찍었다. 카쉬의 인물 사진에선 손이 특히 중요한 역활을 한다. 위치에 따라 얼굴과의 거리에 따라 의미가 모두 다르다.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면 기도하는 듯한 그의ㅣ손은 얼굴만큼 비중있게 처리되었다.. 만약 세상에 원자 폭탄이 또 다시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카쉬의 물음에 그는 "아아, 그렇게 된다면 아마 우리는 더이상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될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소피아 로렌처럼 지성과 프로근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고루 가준 여배우를 촬영한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작업이었다라고 카쉬는 회상했다. 이 사진은 파리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이른 오후에 찍은 것이다. 그녀는 여느 엄마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두 아들을 끔찍히 사랑했다. 작업이 끝나갈 무렵 학교에서 아이들이 돌아왔고 그들 사이의 넘쳐나는 사랑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카쉬는 세계적인 첼로연주자를 만나기 위해 먼지 나는 시골길을 운전해가면서 마치 순례자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프라드에 위치한 쿡사 수도원에서 카쉬는 이 첼로의 악성과 유쾌한 몇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이윽고 촬영을 위해 조용하고 어두운 방으로 갔다. 아무런 연출도 필요 없었다. 일단 카잘스가 바흐으이 곡을 연주하자, 카쉬는 감동한 나머지 잠시 동안 사진을 찍는 것도 잊었다. 자칫하면 마법 같은 분위기가 깨질까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카쉬는 이렇게 회상했다. "불현듯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제껏 그리고 이 이후로도, 나는 단 한번도 나를 등지고 있는 사람을 찍은 적이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왠지 이게 맞을 것 같았다." 위에 보이는 창문과 빈 방의 구조가 마치 감옥처럼 보였고 늙은 예술가의 음악이 창문을 넘어 감옥을 벗어나 전세계로 울려퍼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Yoursuf Karsh(1908~2002)

유섭 카쉬는 흑해 연안, 아르메니아 공화국 말딘에서 태어났다. 터키인의 박해를 피해서 시리아로 옮겼다가 1924년 그의 나이 열여섯 되던 해 캐나앋에서 사진관을 경영하고 있는 숙부를 찾아 이주했다. 1933년 캐나다에서 초상사진 사진관을 경영하면서 총독 부처를 비롯하여 고관과 그의 가족들을 찍기 시작했다. 1941년 카쉬의 후원자였던 캐나다의 수상 맥캔지 킹의 주선으로 캐나다를 방문한 영국수상 처칠을 찍었으며 이 사진이 후에 LIFE지의 표지로 발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후 1943년에 캐나다 정부의 요청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조지 6세를 비롯 정치가,과학자,군인,예술가,성직자등 42명의 초상을 찍었으며 1945년에는 LIFE지의 위촉으로 세계 명사들의 초상사진을 찍었다. 그 뒤로는 1950년대 산업 혁명 시기의 캐나다 경제성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으며 2002년 작고할 때까지 수 많은 세계 명사들으 모습을 남겼다.  

카쉬는 자신이 사진에 대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모든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대상이 되었던 것은 인간의 얼굴이었다. 그에게 있어 얼굴은 풍경과도 갔았고, 그는 이를 읽는데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생애를 통들어,그는 15,312명의 사진을 찍었고 150,000 장의 필림을 현상하였으면 20세기를 이룩한 많은 위인들의 예술적이고 역사적인 모습을 잊혀지지 않게 남겨 놓았다. 카쉬은 인물 사지은 그 대상이 된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확한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카쉬는 인간의 장점, 열정, 용기, 부드러움등과 같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모습만을 보고, 또 찾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진실을 추구하였고, 이를 자신의 대앗에게서 이끌어 내어 우리와 함께 공유하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회에서 발간된  KARSh 100 도록에서 발췌 

전시회장 안은 사람들로 혼잡해서 제대로 작품을 감상할 수 조차 없었다. 작품 감상이라기보다는 사람구경하러 왔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인터넷에서 떠도는, 혹은 책 겉표지에서 늘 보아오던 인물 사진들이 단 한 사람, 요제프 카쉬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은 묘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카쉬의 초상 작품에 대한 이끌림은 내가 그 어떤 세기보다도 20세기가 가장 매력적인 시대라고 생각한데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인한 가치에 대한 혼란과 반항, 영상의 발전, 미술에 있어서의 추상개념의 등장, 탈정치와, 기존권력의 대한 저항과 재편성, 두 차례의 세계전쟁, 이념 전쟁, 양심과 폭 넓은 인권에 대한 권리주장, 여성의 시대등등. 정말 이 멋지고 불편했던  세기는 그 어떤 세기도 겪지 않았던 쉴 틈 없는 혼란과 진통의 연속이었다.  카쉬가 그런 멋진 혼란의 세기에 살았던, 20세기의 대표적인 수 많은 인물들을 찍었다는 것자체가 놀라운 일 아니겠는가.아마 화가였다면 불가능한 작업을 사진기라는 매체를 통해 그는 20세기의 얼굴들을 보여 주었다. 한마디로 어떤 광고에 나오는 문구처럼 nothing is impossible!! 사진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의 도록에 쓰인 글에 의하면 그가 찍은 프레임 속의 인물들은 그의 독특한 45도 광(사광)으로 알려진 테크닉속에서 각각의 개성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카쉬전을 보면서 궁금한 것은 그가 찍은 무수한 인물들의 초상 사진속의 인물들을 단 한번 짦은 시간에 만났을 것인데, 어떻게 그는 사진 속의 인물들의 인간적인 혹은 내면화한 모습을 적절하게 포착할 수 있었을까하는 것이었다. 평소 인물들에 대한 이해가 깊었기 때문에....카쉬의 본능적인 재능이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려나. 도록에 실린 글에서는 그가 인물의 개성을 표출하기 위한 표정의 이해에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써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단 몇 분만에 인물들의 캐릭터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불가사의해 보였다. 전시회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인물은 고뇌에 찬 슈바이처와 날카롭고 까칠해 보이는 버나드 쇼였는데, 흑백의 프레임 속에  지난 20세기가 다 들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볼 만한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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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게 사는 법
고미 타로 지음, 강방화 옮김 / 한림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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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친척 결혼식이 있어 작은 애를 데리고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작은 애의 성격이 남들앞에서 활달하거나 발랄한 성격이 아니라서,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에게 애교있게 인사를 하는 성격이 못된다(그러면서도 악착같이 결혼식에는 따로 오고 싶어한다는).  애교는 커녕 예의조차 없는 그런 딸이 목석 인형처럼 가만히 무표정하게 내 옆에 착 달라붙어 있기만 한 채 친척 어른들께 인사를 하라고 해도 못 들은 척 가만히 고개 숙이고 있는 모습에 무척이나 민망했는데, 작은 애의 인사를 기다리던 작은 아버지 한분이 눈도 마주치지 않을려고 하는 딸애에게 "괜찮아, 지금 인사 하지 않아도 나중에 잘한다. 걱정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웃으시면서 하고는 자리를 뜨셨다 (지금까지 애낳고 키우면서 이런 반응을 보이신 분은 이 분이 처음이었다).

사실 나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잘 해야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인사는 반갑게 잘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작은 애가 건방져서 또는 남을 우습게 알아서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남들 앞에서 씩씩하게 인사를 하는 것을 무척이나 어려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애한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엄마인 나도 다른 아이에게서 인사를 받으면 보기도 좋고 받는 입장에서 기분도 좋다. 어쩜 저렇게 씩씩하고 넉살도 좋을까! 솔직히 우리 애하고 다른 성격의 아이의 인사성이 한량없이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작은 애의 성격이 밋밋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들처럼 씩씩하게 인사하는 것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억지고 등 떠밀면서 인사 시키지 싶지 않고 그 강요로 인해 아이와의 간극을 넓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지딴에도 다른 아이들처럼 밝게 인사하고 싶은 맘 왜 굴뚝같지 않을까나). 간혹 이 글을 읽고 아무리 아이와 사이가 멀어진다기로서니, 사람의 도리를 예의를 내팽겨치는 엄마가 잘못된 교육을, 방임의 교육을 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정말 나는 아이에게 그릇된 교육을 시키는 것일까? 주관적인 관점일 수 밖에 없는데, 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라면 나의 교육관 또한 그렇게 그릇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믿는다. 작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언젠가는 인사하게 된다라는 넉넉한 마음과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아이가 수줍어서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오히려 획일적으로 인사는 꼭 해야 한다라는 그런 반응이 오히려 더 답답하고 갑갑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그 아이를 비난하는 거야 말로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사회 구성원로서 쇄뇌당한 것은 아닌가.  간혹 이런 아이도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를 인정하고 보듬어 안는 것이야말로 건강하고 보다 더 가치있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미 타로의 에세이집 <어른들은,의,이 문제야>라는 글을 만나기 전에는 나 또한 어른이나 동네 아줌마들에게 인사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짜증나고 화 내기도 했었다. 인사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핀잔도 주고 혼내기도 많이 했는데, 그럴수록 나는 아이에 대한 감정이 미움도 제법 쌓여갔다. 아이의 마음보다 창피한 맘이 앞선던 것이다. 그러다가 별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러지 말자,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자라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바로 고미타로의 글을 통해서이다.  

그는 1945년생, 우리나라 나이로 64세의 노인이다. 전후세대 사람이라 경직된 사고와 권위적인 행동이 자연스레 몸에 밴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의 그림책들과 에세이집에서 통해 그가 상당히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의 그림책 작가라는 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한마디로 전후시대 권위주의와 군국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던 일본 사회에서 볼 때 이단이라고 할만하다. 그런 이단적인 그의 사고가 지금 현재는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앞선 사람이다. 그가 관계 맺는 사람들, 그가 바라보는 사물들은 모두 동일하지 않다. 이 책 <똑똑하게 사는 법>의 표지에 나오는 사랑스런 아이들처럼 우리 모두는 사고, 생김새, 행동, 성격등 모든 것이 다른다. 그는 이 책에서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보다 사람들 저마다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한 예로 그는 젓가락을 제대로 하는 법에서 한 가지 방법의 젓가락 잡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손과 손가락은 가지각색이라서 젓가락질 하는 방법도 가지각색 인게 당연해요(p7)라고 말한다. 우리 어른들이라면 젓가락질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한바탕 소동 벌일 일을 그는 당연히 젓가락질은 각양각색이라고 말한다.(당연히 그의 말에 설득당할 수 밖에!)  

이 책은 요즘 유행하는 단순한 처세술의 책이 아니다. 만약 그런 류의 책이라면 난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고미 타로가 바로 보는 세상, 그리고 그가 이 세상을 똑똑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제시하는 것은 타인의 다양성을, 사물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자는 것이다. 획일화되고 규율적인 누구나 다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ONE의 세계가 아니라 불규칙하고 울퉁불퉁하고 비쭉비쭉하고 우둘두둘한 다양한 세계를 만들어 나가자는, 고미 타로만의 이단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그림책이다.  

덧 : 리본 묶는 법에서의 고미 타로 의견에 반대. 난 머리에 상처 난 것처럼 묶는 것도 이쁘더라. 

또덧 : 고미타로같은 유연한 사고의 그림책 작가 한명쯤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이들의 인사성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우리 나라의 그림책은 너무 규율적이다. 인사를 꼭 해야한다는 것과 인사를 제대도 하는 법을 가르치는 그림책도 좋지만 우리 아이처럼 남들 앞에서 수줍어 인사 못하는 아이들을 집단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그림책 한권 정도는 나올 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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