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작)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고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로 해석되는 이 시가 시사하는 범위는 의외로 넓다. 무의미한 존재가 상호 의미론적 존재로 바뀌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기 때문인데, 어떻게 보면 타인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 혹은 사물이 다른 누군가에는 의미를 획득함으로써 가치를 부여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콜린 톰슨이나 다른 일러스트 작가들이 그렇다. 그렇게 유명한 그림책작가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이 사람에게 가치 부여를 함으로써 애정을 갖게 된 그림책 작가이다.  

이 책 <영원히 사는 법>의 줄거리는 수천개의 방이 있는 도서관의 수 많은 선반 위에는 지금까지 씌여진 모든 책들이 있는데, 이백년전에 한 권의 책이 사라진다. 그 책의 독서카드는 카비넷 맨 아랫층에 숨겨져 있고 ,그 책의 제목은 <How to live forever>였다. 도서관의 책들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마을에 로빈슨이라는 가족이 살고 있고 가족중 한 사람인 피터가 책 한권이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 그 책을 찾기로 결심한다. 책과 책들 사이의 그의 모험은 계속 되고 마침내 책을 발견한다. 책을 발견한 곳에서 그는 Ancient Child를 만나고 그는 <영원히 사는 법>을 찾는 그 소년에게 그 책을 너를 미치게 할 것이라면서 읽을 말 것을 권고한다.  그는 피터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책을 읽은 유일한 사람이지, 하지만 그 책은 나의 마음을 잃게 했단다. 나는 그 책을 너보다 더 어렸을 때 발견했고 아주 빠르게 읽을 수가 없었어. 그 때 나의 친구들이 자라는 동안 나는 자라지 않았지. 그들이 장난감과 멀어지고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을 때 나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야할 뿐이었다. 지금 나는 시간에 갇혀 있단다. 내가 모든 것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내가 가진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내일뿐이지. 영원히 산다는 것은 전혀 사는 게 아니란다. 그게 바로 내가 그 책을 숨긴 이유지" 소년은 그렇다면 왜 그 책을 태우지 않느냐고 물었고 Ancient Chils는 그 책또한 불멸의 책이기때문이지 라고 말한다. 피터는 그 책을 읽지 않기로 결심하고 다시 자신이 속한 세계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좋아할 것 같은데, 쌓여있고 꽂혀있는 책과 책사이에 보물찾기식으로 작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책도시를 연상케한다는. 


















  

 

 

 

 

 

덧붙여...이 책의 인쇄가 잘되서 실제로 색감은 무지 이뻐요. 사진사인 저의 사진기술이 후져서 사진빨을 제대로 뺄 수가 없었다는. 

이번에 논장에서 콜린 톰슨의 작품이 2개나 나왔네요. 이 작가의 나머지 작품들도 나와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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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 -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꾸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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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책들을 잔뜩 사 들일 때만해도 과학책을 거뜬히 읽어 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팽배해 있었다. 돈이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도킨스의 대부분의 책이 구비되어 있고 아이들도 다 커서 시간적 여유도 있고 자, 그러면 읽는 것만 남았는데 무슨 책부터 시작할까? <눈 먼 시계공>, 글쎄, 처음부터 두꺼운 책은 그렇지 않아? 그렇다면 <이기적 유전자>, <무지개를 풀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만들어진 신> !!!!  새책을, 새로운 분야를 대한다는 설레임으로 먼저 무엇을 읽을까로 고민했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내 머리 속에 새발의 피 정도의 과학적 데이타가 들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그의 책을 읽는 다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을, 수십번을 더 읽어도 문장은, 그의 진화생물학적, 유전학적 주장은 내 머릿 속에 구체화되어 이해되긴 커녕 책 안에 담겨있는 단어들만 겉돌 뿐이었다. 리처드 도킨스에게 쩔쩔 매다 할 수 없이 중간만 읽고 내려놓았다. 완전 패배였고 충격이었다. 내 지적 수준이 이것 밖에 되지 않는구나하는 자조도 좀 일었고.

과학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한 두줄 짜리 과학 토막 상식뿐이었다. 아인슈타인이 과학 천재라고는 알고 있어도 그가 왜 천재소리를 듣는지 공식만 알았지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리처드 파인만의 에피소드나 실린 책이나 읽으며 끽끽거리거나 과학사의 뒷 이야기정도만 읽었지 개략적이나마 과학 역사나 과학 이론 자료에 대한 깊은 이해는 전무후무했다. 그런 상태에서 생물진화라는 과학적 주장이 담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몇 권의 과학책을 읽으면서 구분한 것이 있다. 과학책은 독자에게 리처드 도킨스처럼 자신의 연구 학문을 대중들에게 알리려는, 과학적 창조자 maker와 그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giver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일반 독자에게 메이커의 책은 쉽게 접근할 만 분야는 아니다. 메이커가 생각해낸 창조적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마침내 과학적으로 해결되어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의 결과물들을 읽는다는 것은 그 분야의 전공자들에게 쉽지만, 일반 독자에겐 고대 고전을 읽는 것만큼이나 지루하고 뜻 모를 말로 나열된 외계어나 다름 없다. 그렇다고 일반독자가 그들만의 성에 들어가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언제 어디서든지 그 성을 이어지는 다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넘지 못할 이론들의 해제와 쉬운 설명으로 무장하고 일반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무수히 노력하는 사람들, 바로 지식 전달자 기버들이 있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지식전달자 giver이다. 그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과학사에서 대표적인 인물들의 과학적 이론,공식, 발견들을 일목요연하게 다루고 있다. 원자의 무대 위에서,고전적 수수께끼들, 무한과의 만남, 생명의 복잡한 규칙들, 인간의 본성, 과학사의 흥미로운 사실들이라는 6개의 소분류를 나누고 그 카테고리안에서 그는 그것과 관련된 과학자들의 주장과 반박 그리고 업적등을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과학사의 간략한 보고서라고 할 만 하다. 짧은 글에서 그는 과학이론이나 업적을 최대한 핵심만을 다루려고 했고 그의 글을 통해 과학사의 전체적이면서도 개략적인 모습을 훏어 볼 수 있었다. (뒷장에 다룬 인간이 본성이나 흥미로운 사실들 경우는 실제 너무 짧막하게 다뤄 맛보기정도에 그쳐 이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특히나 프로이드에 심리학 이론이 조작되었다는 설명은 따로 크게 다뤘으면 했을 정도다)

이런 지식 전달자의 역활은 중요하다. 이런 사람들(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보더니스, 싱, 브라이슨, 정재승, 홍성욱,이은희 그리고 무수히 많은 번역가들등등)은 일반 독자에게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과학 지식의 이해를 충족시켜주고 더 나아가  상상력으로  출발한 자신의 과학적 이론이 발전, 이론화될 수 있는 과학 창조자(maker)를 양산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버들은 메이커들을 만들 수 있는 엔진과 같은 역활을 한다. 과학책을 단순히 읽는 다는 것은 흥미나 호기심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기본적인 과학사나 이론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지 않다면 더 깊은 과학의 세계로 나아가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과학사와 과학이론책을 접하면서 느꼈던 것은 이 세상이 그 어떤 이론도 따로 홀로 단절된 채 세워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에게 영향을 받았고 맥스웰은 페더웨이의 실험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빅뱅이론으로 이어진, 상호연관성으로 과학사는 촘촘히 짜여지며 서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20세기 이후, 우리 생활의 가장 큰 변화의 주역은 과학이다. 과학이란 저 머나먼 우주에 인공 위성을 쏘아올리고 달에 착륙할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드는 것 같은, 고도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라고 알 고 있지만 현재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과학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창조물들이다. 가깝지만 멀고 먼 과학에 다가갈 수 있도록 쉽게 도움을 주는 수많은 기버들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뉴톤의 고전 역학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플랑크와 보어의 양자이론을, 튜링의 알레고리를, 이 모든 이론을 한단계 거쳐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었고 그들의 해제을 읽은 그 누군가는  언제가 우리도 뉴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그, 칼 세이건, 도킨스, 굴드같은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과학 창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나같은 과학하수가 그들의 입담에 빠져 과학책을 옆에 끼고 또 다른 과학책을 찾아 읽게 해준 것은 분명 이런 기버들이 덕이니깐.  그들이 쓴 글을 찾아 읽다보면 언제가는 고차원의 과학 이론이 쉽게 이해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어느 정도 대략적이나마 과학적 이론의 체계가 머리 속에 잡히면, 위에 언급한 리처드 도킨스의 책이 쉽게 읽혀질 날이 분명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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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 주니어에서 콜린 톰슨의 신작 플러즈가족 시리즈를 출간했다. 그의 홈사이트 http://www.colinthompson.com/ 에 오랜만에 들어가둘러보니, 신작  플러즈가 뜨길래 아무생각 없이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 봤다. 놀라워라~~ 작년 8월부터 한달에 한권씩 12월까지 5권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사람 우리나라에선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는데... 시리즈 5권이 번갯불 콩 구워먹듯이 출간되어 주시고 웬일이니! (이달엔 조카졸업식과 딸애 입학식등이 있어 큰 돈 들어갈 일이 많아 진짜 진짜 책 안 사려고 했는데......흑!) 콜린 톰슨의 작품을 좋아하는지라, 안 사곤 못 배기지.... 

아직 구입하지 않아 단정적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그의 신작 플러즈는 그의 젊은 시절의 작품 경향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미국 클래식 드라마 <아담스 패밀리>를 연상되는, 일러스트가 괴기스럽다기보다는 익살맞고 유머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의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챕터북 <트왓라잇>에서도 360도 다른 일러스트를 보여주길래, 잠깐 동안의 일러스트 외도인가 싶었는데, 이제 60이 넘는 콜린의 일러스트 경향이 스푸키 스탈의 익살스러움으로 완전 굳어진 것 같다. 콜린 톰슨은 그의 홈피에 들어가 바이오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그는 색맹이다. 일러스트 작게에게 약점이라면 약점이랄 수 있는데, 이 사람의 작품을 살펴보면, 자신의 장애가 결코 약점이 될 수 없는 그런 일러스트 작가이다.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의 작품 중에 The tower to the sun이라는 작품을 잠깐 소개하면, 그의 지금 현재의 일러스트와 상당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The Tower to the Sun (Red Fox picture book) 

환경오염으로 하늘의 태양을 볼 수 없는 미래,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할아버지는 태양을 보고 싶다는 손자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열기구를 띄어 하늘 가까이 가보려 하지만 실패한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하늘의 해를 보여주기 위하여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부어 건축물을 짓고(짓는다기 보다는 다른 건물이나 유적들을 가져다 쌓아올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태양이 보고 싶다는 그 손자는 어느 새 할아버지가 되어 가고 마침내 태양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높고 높은 건물이 완성된다. 그렇게 염원하던 태양을 보기 위해 할아버지가 된 손자와 그의 손자가 나란히 앉아 태양을 보는 장면은 뭉클하다.(그들은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도 경고지만, 한 인간의 불굴의 희망과 염원이 간절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마지막 한장의 그림으로 클라이막스를 이룬, 감동적인 그림책이었다. 



















 











 

일러스트를 보면, 메세지와 테크닉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의 감정이 작중 등장인물에 이입되어 표정이 살아있다거나 활기를 띤 장면은 없다. 그의 작품에서 사람은 언제나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한 부수적인 존재이지 드러내는 존재가 아니다. 이 말은 언제나 사물이 이야기의 중심이다라는 말이다. 사물에 더 집중적인 테크닉적인 묘사는 감탄을 불러일으키지만,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아쉬움은 남아 있었다. 그에게 약점은 색맹이라는 신체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적인 것에 대한 결여이지만, 하지만 일러스트 작가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묘사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사람의 재능은 부족한 것을 메꾸는 것이 아니다. 캐리커쳐 작가는 인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끄집어 낼 수 있지만  사물에 대한 묘사는 인물묘사만 못 할 수 있다. 이 작가도 인물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진 않지만 사물에 대한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것 하나만으로 볼 가치는 충분하다.

영국 태생이었다가 현재는 호주시민이 된(지금의 아내가 그의 작품을 보고 감동받아 반 아이들과 함께 돈을 모아 그를 호주에 초청해서 그녀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호주시민이 됨) 지금은 경제적인, 그리고 결혼 생활에서 오는 안정감때문인지 일러스트가 사람중심으로 바뀌었고 익살스럽고 유머스럽게 바뀌었다. 물론 나이도 무시 못 하겠지만서도. 더 이상 그 전의 꽉 차 있고, 메카니컬한 작품은 볼 수 없다는 건가. 

덧붙여: 이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이베이를 통해 구입했는데, 이 작품을 구입했을 때의 에피소드. 콜린 톰슨의 작품이 아마존에도 있긴 있지만, 주문해보면 보통 몇 달이 걸린다. 내 기억에는 한 2개월 기다렸다가 아마존 측에서 물량확보가 어려워 기다려야 한다고 메시지와서 취소하고 이베에서 구입하게 된 것인데, 이베이에서 이 책이 핸들링비하고 운송비포함 37달러에 나왔다. 싸게 나왔다고는 할 수 없어(내 기억에는 1000원이 조금 못 미쳤다)  일단 셀러에게 25달러에 주면 안되겠냐고 물었더니, 셀러가 선뜻 그러마 하더라. 난 핸들링비 포함한 가격으로 달라고 한 것이었는데, 이 사람은 핸들링비 비포함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꽤심한 것은 사겠다는 버튼(buy it now) 눌렀더니 그저서야 운송비 어쩌구 저쩌구 했다는 것이다. 운송비로 10달러! 버튼 눌렀으니 안 살수도 없고...알라딘의 중고샵에는 없는데, 이베이에는 판매자가 구매자도 평가를 내린다. 만약 산다고 해 놓고 안 사면, 평가에 영향을 미쳐 다음부터는 물건을 살 수가 없다는 이야기. 할 수 없이 울며겨자먹기로 구입한 책이었는데..그림책 자켓도 없었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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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작가 레이몬드 챈들러는 예술과 과학이라는 문화의 쌍이 얼마나 밀접하고 견고하게 맺어져 있는가를 1938년 2월 19일자 일기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 두 종류의 진리가 있다. 길을 가리키는 진리와 가슴을 따슷하게 해주는 진리이다. 첫 번째 진리는 과학이고 두 번째는 에술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무관하지 않으며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도 아니다. 예술이 없다면 과학은 마치 매우 정교한 핀셋이 함석 세공장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처럼 쓸모가 없다. 과학이 없다면 예술도 가수설 풍부한 민요와 싸구려 노랫가갈이 마구 뒤섞인 혼돈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의 진리는 과학이 비인간적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주고, 과학의 진리는 예술이 천박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추리 소설 작가였던 레이몬드 챈들러는 재료가 독으로 변질되는 순간을 알고 있었다. 그는 범죄라는 재료에서 문학의 매력을 이끌어 낼 줄 알았다. 챈들러가 인간됨과 천박함을 대비시키는 대목은 예술과 과학의 동등함을 강조하고 있다. (p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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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와의 올 방학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힘들었다. 아이가 둘이라서 부모가 신경 안 쓰고 둘이 잘 놀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커다란 오산이다.  놀기는 하지만, 그것도 잠깐, 아이들이 크면서 아웅다웅 싸우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참, 어른인 우리가 보기엔 싸울 일도 아닌데, 소사한 것으로 싸움이 번지는 것을 보면,  뭐라고 해야할지 허탈하고 어의가 없는 경우도 많다.  큰 애 성격이 차분하고 얌전해서 지 동생 그런대로 잘 챙기는 편인데, 방학 내내 오빠에 대한 둘째의 불평불만 신고가 끊이지 않었다. 일단 신고 들어오면 접수해야하는 엄마인 내 입장에선, 어떤 경우는 난처할 때가 있다. 엄마인 내가 봐도 큰 애가 동생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 주의를 주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너무 한쪽으로만 심하게 야단치거나 주의를 줄 경우, 당하는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엄만 맨날 작은 애편만 들어준다는, 반성보단 반발을 사는 경우다 더 많아, 혼내는 것도 어느 사이엔가 큰 애의 눈치를 보며 덜 혼내고 작은 애를 더 달래게 되었다. 하지만 것도 하루이틀이지. 큰 애를 덜 혼내고 작은 애를 달래도 싸움은 그치지 않았다. 오죽하면, 아들애한테 오락이나 하고 오라고 돈 천원씩 쥐어주었다. 근처 아파트 상가 문방구에 오락기가 몇 대 있어, 아들애가 종종 오락하려고 들리는 곳인데, 돈까지 쥐어주면 하고 오라고 할 정도이니, 나름 아이들과 함께 한 방학이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추운 한겨울에 아이들하고 어디 나들이 다니기도 마땅치 않고..방에만 눌러 붙어 있으니 아이들의 에너지가 남아 돌아, 걸핏하면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리라. 조만간 봄 방학도 닥쳐 올 것인디......개학 첫날부터 다가올 봄 방학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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