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독의 제주일기
정우열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매년 제주도로 이주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모 기사를 통해 본 자료에는 올해만 해도 4달 사이에 5천여 명의 이주민이 생겼단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자꾸 제주도로 내려가는 것일까. 제주도가 주는 느긋함과 여유 그리고 제주도라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따뜻함도 있겠지만 피곤한 지금의 현실을 떠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모 포털 사이트에서 유명한 만화가 정우열의 <올드독의 제주일기>를 통해 제주도로 한때 이주 하고 싶었던 마음의 구멍을 조금 채웠다가 다시 빈 구멍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가 제주도로 내려간 2년 동안의 생활을 기록한 이 책을 통해 제주도로 이주하고 싶은 마음이 더 굴뚝같아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했었지만, 사실 읽으면서 뭔가 마음의 정리가 되었다고 할까.


 

 

까칠한 도시 남자라고 칭했던 책 표지의 정우열 작가는 많이 알려진 풋코와 소리라는 개와 함께 싱글 라이프를 살아갔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10년 동안 살았던 집에서 훌쩍 제주도로 이사를 하게 된 이유가 여러 가지겠지만, 그가 키우고 있는 풋코와 소리의 영향이 많았던 것 같다. 개를 키우면 밖으로의 생활이 살짝 불편한 것이 있다. 무엇보다 바다를 좋아하는 그가 개들과 함께 수영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사람들이 더 이상 오지 않은 성수기를 지난 바다여야 했고, 개들과 함께 숙박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간혹 반려 동물과 함께 투숙을 할 수 있는 펜션들도 늘고 있지만 많은 곳들이 아직은 반려 동물들과 함께 투숙하는 것을 꺼려한다. 수영을 즐기고 난후 집으로 바로 돌아 올 수 있고, 모래와 함께 잠을 자고 밥을 해 먹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 여건인가. 그가 즐기고 싶은 라이프를 최적합하게 할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해야 할까. 무엇보다 간혹 작가의 트위터에 올려진 풋코와 소리의 수영하는 모습은 기특하기까지 하니. 그의 제주도 행은 어쩌면 운명 같은 이사가 아니었을까.



 

 

집 앞에 귤나무(하지만 그것은 귤이 아닌 병귤이라고)가 있고 조금만 나가면 바다가 있고 마음이 동하면 그 좋은 바다를 거닐 수 있고, 제주도의 에메랄드 빛 바다 속을 들여다보며 스노클링도 하는 여유로워 보이는 삶. 뭔가 제주도만 내려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기만 해도 삶의 노곤함이 다 풀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사람들은 그에게 제주도의 생활에 늘 물어보나 보다. 사실 내게도 정우열 작가와 같은 지인이 있다면 어느 날 전화를 걸어 이렇게 물어 보았을 것이다. “제주도 사니까 좋아?”


 

 

그는 그냥 제주도의 삶이 당연히 좋다고 했다. 그가 사랑하는 개들과 함께 생활하는 삶이 왜 좋지 않겠나.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제주도 생활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라는 부분을 얘기했다. 한때 나도 제주도의 삶을 동경하며 그곳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열어 느긋한 삶을 살아 볼까 하는 생각으로 자료를 찾았다가 내가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고민에 빠졌었다.

 

 

제주도는 섬이기 때문에 습기가 많다고 한다. 그때 그 습기는 그냥 우리가 장마철에서 느끼는 습기 정도가 아니라고 한다. 여름이면 밖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곰팡이가 장판이며 벽지에 피어나고 심지어 이불과 장롱에서도 발견 할 정도로 많다고 한다. 제습기로 해결되지 않는 그 습한 기운을 말로 표현 할 수 없다고. 여름만 있을 것 같은 제주도의 겨울은 도시의 겨울보다 더 춥고, 바람이 너무 불어서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흙먼지로 집안과 마당이 구분이 안 될 때도 있다. 바다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염분으로 인한 부식이 많아 언젠가 봤던 인간극장에서 나온 우도에 사는 분이 창문이 부식되어 여러 번 교체해야 한다는 기억이 난다.

 

자연 환경에 정신 줄을 놓고 제주도에 왔지만 정작 그 자연이 나에게 가장 맞지 않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제주도의 생활이 가장 힘들었다는 어떤 블로거의 얘기는 인간관계라고 했다. 어딜 가든 인간관계가 늘 가장 큰 문제가 되는것 같기도 하다. 그 얘기는 작가의 ‘이웃의 거리’라는 곳에도 나오는데 실상은 어떤 텃새를 받아 본적 없지만 오히려 다른 곳에서 이사 온 이에게 느끼는 괴로움을 보면서 꼭 어디의 사람이라서 느끼는 불편함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의 사람들은 이상해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이상했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이다. 정우열 작가처럼 만화가라는 자유직이거나 전문직이 아니라면 제주도에서 돈을 벌어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점점 늘어나고 있는 카페와 식당, 게스트 하우스들은 이미 포화 상태라고 한다. 드라마 [멘도롱 똣또]에서도 제주도에 내려와서 가게만 차리지 말라고 할머니가 말하지 않았었나. 매일 뚝딱 거리며 고치고 다시 세워지는 상가들이나 식당들로 인한 주민들의 괴로움을 살짝 알 수 있을것 같다.


그의 불편함을 살짝 호소했던 제주도 생활은 그가 말했던, 계속 내려오는 사람들로 인해 제주도의 땅값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길 위한 얘기라지만 사실 그것 때문에 제주도에 내려가서 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은 안 든다. 사람마다 원했던 것을 손에서 놓는 방법이 다양하듯 내게는 제주도에서 뭘 하면서 먹고 살지가 해결만 되만 당장이라도 내려가겠다고 생각했던 소원을 작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일로 살짝 접었었다.



 

작년에 내가 머물렀던 콘도가 하필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산길의 골프 리조트였다. 골프를 치지 않지만, 자연 경관이 좋다는 얘기에 며칠 그곳에서 머물던 다음날 엄마가 많이 아프셨다. 병원에 급하게 가려고 나오는데 사방이 안개로 가득했고 자동차는 그 안개 속을 거북이 운전으로밖에 갈수 없었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도로를 달린다는 것은 눈을 감고 인도를 걷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식은땀을 흘리는 엄마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산속에 위치한 골프리조트를 빠져 나가는 사이 나는 마음 한편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프면 10분 안으로 당장 닿을 수 있는 병원이 없는 곳이라면 살지 못하겠다고. 몇 달 전 다녀온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도 장염으로 고통스러워 병원을 찾았지만 우리나라처럼 걷기만 해도 보이는 개인병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놀라워했었는데, 제주도의 그 산속의 리조트의 악몽은 여전히 나를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소중함을 느끼며 살아가게 하고 있다.

 

 

분명 그의 슬로우 라이프가 부러운 것은 맞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만 좋은 일이 훨씬 더 많았다는 그의 제주도 일기에 마음 한쪽에 부러움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사랑스러운 개들과의 느긋한 발걸음이라니,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하지만 역시 다시 책을 덮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의 소중함을 알아 가야 한다는 것. 창문을 열면 짠 바닷바람이 아니고 하루 종일 거리를 누볐던 차들과 사람들의 먼지 냄새가 혹은 어제 내 놓아야 할 음식물 쓰레기를 오늘 내다 놓아 나의 아침 기운을 망치는 이웃이 있다고 하여도 지금의 아침은 소중한 것이다.

 

평상에 누워 바라볼 한라산이 없지만, 조금만 나가면 가까이서 보이는 관악산이 있고 개들을 풀어 놓고 방치하는 아줌마가 매일 야간 운동을 해서 깜짝 놀라게 하는 공원이지만 안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던 그 두려움 없이 환한 가로등 아래서 밤의 산책을 할 수 있다. 마음이 동하면 차를 몰고 떠날 수 있는 연둣빛 바다가 없지만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상영이 되지 않는 아트필름 영화를 보기위해 시원한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다. 엄살이 심한 나는 조금만 아파도 집 앞에 있는 개인병원으로 방금 처방 받은 약을 먹고 습기 없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며 잘 수 있으니 이것 또한 나에게 필요한 행복의 몇 가지의 조건은 아닐까. 생각해 보니 내게도 참 많이 위안이 되는 행복의 요건들이 숨어 있는데 왜 그토록 떠나고만 싶어 했을까.



 

 

그의 친구들처럼 “난 도시를 떠나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아니지만 지금 있는 곳에서 발견하는 것들을 모른 척 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도시의 소음을 사랑하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소리가 떠난 제주도에 남아 있는 작가와 풋코의 즐거운 라이프는 분명 질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간혹 그의 보일러실을 빌려 쓰는 고양이들의 생활도 낭만적으로만 느껴지니, 가슴 한편에 사라졌다 다시 살짝 부는 바람은 여전히, 제주도의 생활은 낭만의 대상으로 남겨 놓고 있는것 같다. 그가 언제까지 제주도에서 살지 알 수 없지만 더 즐거운 생활이 많길, 그래서 떠나간 그의 사랑스러운 소리의 있었던 자리와 함께 더 오래 지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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