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달 새벽녘에 문자가 왔다. 좀처럼 울리지 않는 핸드폰에서 다시 한번 또 문자가 왔다. 요즘은 뜸하게 만나고 있지만, 나에게 몇 안되는 초등학교 친구의 어머니의 부고를 알리는 문자였다. 지난밤 잠을 설치며 잠들지 못하고 있다가 받아본 문자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후 친구가 전화를 받았고, 나는 친구의 이름을 부르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친구도 나도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울고 있다가 전화를 끊었다.

친구에게 가는 동안 나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아버지를 생각했다. 곁에 없어서 생각이 나지 않다가 가끔 이렇게 장례식장에 가게 되면 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된다. 늘 아버지는 집에 아주 늦게 오는 사람이라서 어려서도 하루 종일 아버지 얼굴을 보는 날이 힘들었던 날도 있었기에 아버지에 대한 큰 애정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한동안은 그저 아버지가 이제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가슴을 쓰러 내리는 날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슬픔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사탕 때문이었다. 너무 아파서 고통을 잊기 위해 드셨던 그 사탕 뭉치들을 구석에서 장롱 구석에서 발견하고 그때야,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내 곁에 없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부모는 자식이 용서 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 떠나보낸다고 해서 떠나보낼 수 없는 존재였다는 것을 알았다. 지인의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를 떠 올리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이제는 뭔가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집을 나설 때 인사도 못한 아버지에게 마지막 안부를 남기는 기분이었다.

[잘 가요, 엄마] 또한 갑작스런 노모의 부고 소식을 받고 주인공은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잊고 있던 노모의 삶을 떠 올리게 된다. 주인공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도 없이 컸다가 새로운 아버지를 맞았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 생겼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재혼한 어머니는 더 가난해졌다. 돈이 좀 있는 남자에게 결혼을 한줄 알았지만 새아버지란 남자는 가진 것은 허풍뿐이었다. 집에 사람이 늘면서 점점 더 많은 일을 하게 된 어머니를 바라보는 주인공은 늘 엄마가 싫기만 했다. 그런 어머니는 매장도 아니고 무허가 장례식장에서 화장으로 삶이 마감되는 것을 보면서 오랜 시절 한 번도 반듯하게 누워 잠드는 모습을 본적 없는 지난날의 노모를 떠 올리게 된다.



“새아버지를 맞아들인 어머니의 선택이 재앙이 된 것은 내 가슴속에 자리 잡게 된 수치심 때문이었다. 그것은 발뒤꿈치에 생긴 굳은살처럼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아픔의 흔적이었다. 집안에 생겨난 음습함, 막연했으나 돌이킬 수 없는 모순, 빼앗긴 듯 하전한 삶에 가슴이 쓰렸고, 두 사람 사이에 자리 잡은 어떤 진실과 대면하는 것이 지극히 불편했다.” P 180

주인공 나에게는 어머니는 이런 존재였다. 가난을 벗어나려 결혼을 다시 마음먹은 어머니는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주변의 멸시와 냉대의 시선을 견디며 살아가는 억척스러운 여자. 돈이 없으니 당연히 학교에서 필요한 학용품은 사주지 못하고 그 어떤 것도 지원해주지 않는다. 학교에서 굴욕감을 맛보며 지내도 전혀 어머니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런 어머니를 견디지 못하고 열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고 어머니의 존재를 잊어가게 되었다. 아버지가 다른 아우와 우애가 있지도 않았을 텐데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우는 살갑게 어머니를 보내는 모습에 빨리 고향을 떠나고 싶어 했다. 내게는 한 번도 다정하지 못했던 어머니를 빨리 보내야 할 것처럼 떠나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아우가 흙으로 변할 어머니를 위해 던진 그 한마디.

“잘 가요, 엄마”

어쩌면 이 말은 많은 사랑을 받았던 동생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열다섯에 고향을 떠나온 나는 장례식을 끝나고 중국집 장춘옥과 어머니의 중년이 다 녹아 있는 고씨 고택과 유일하게 행복할 수 있었던 장소인 외가댁을 거치면서 자신에게는 수치심과 같은 어머니의 얘기를 아우를 통해 듣게 된다.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나는 어머니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 어머니는 그토록 모진 세월을 아무 말도 없이 견디며 살아 가셨을까. 화장을 한 모습을 본적이 없는 것 같은 엄마의 가방에서 발견한 립스틱처럼 주인공 나는 처음으로 엄마를 생각해본다. 그처럼 나도 아버지를 생각해 본다. 언젠가 나도 이런 인사를 했었던가. 떠나보냈던 적이 있었던가.

[ “잘가요, 엄마”

안개처럼 씨앗처럼... 한평생 무겁고 가혹한 삶의 중력에서 벗어날 날 없었던 어머니는 결국 한줌의 먼지였다." P88]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3-18 0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2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5-03-18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책 나중에 읽어봐야겠어요~

오후즈음 2015-03-22 14:17   좋아요 0 | URL
추천합니다. ^^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쓴 책이더라구요.

cyrus 2015-03-18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숨의 먼지였던 어머니... 슬픈 문장입니다.

오후즈음 2015-03-22 14:18   좋아요 0 | URL
결국 떠나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