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소설 속 두 이야기의 이음매를 잘 찾지 못한다. 결말의 연마에 다소 힘을 줬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사회에서의 규칙 위반은 안 되며 설득만이 능사라는 투의 언급도 나이브하고. 하지만 차분하고 끈덕지게 이야기를 설명하는 맛은 좋다.사회, 규칙과 도덕, 그 규칙을 파괴함으로써 페널티를 받아 외려 무언가를 얻으려는 남자. 살인 사건 현행범으로 체포된 후 '이것은 도덕 문제입니다'라는 말만 흘리며 기꺼이 처분을 받아들인다. 또 한쪽엔 음독으로 사망한 도예가가 있고, 사건 현장에 남겨진 메시지는 '도덕 시간을 시작합니다.'덴도 아라타와 시오타 다케시의 작풍을 좋아한다면 입맛에 맞을 듯하다. 사회 통념의 규칙과 모호하기 짝이 없는 도덕 관념을 같이 꿰어, 그 규칙 위반과 도덕 결여라는 명제를 보도(報道)하듯 끌어나가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지치지 않는 집요함도.
큰 얼개로 보면 별것 없다. 유아가 유괴되고 3년 후 홀연히 나타난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집념을 지닌 신문기자가 그간의 공백을 좇는다, 는 이야기. 그러나 <존재의 모든 것을>을 추리소설이 아닌 하나의 극(劇)으로 인식하는 순간 시야가 달라지고 내러티브는 비로소 제 임무를 수행한다.빈집에 들어가 먼젓번에 살았던 사람에 대해 추리하듯이, 소설은 똬리의 통로 안에서 공백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아니 공백보다는 여백이라 하는 편이 어울릴 거다. 타자가 아닌 주체에 의한 증명은 확신에 차 부러 캔버스 한쪽을 비워둔 의도가 분명하니까. '존재의 의미'라는 담론은 나로서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이건 말할 수 있다. 저편에 있어 아득한 소실점도 종내 환한 불꽃놀이처럼 명확해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 소설 속 언급되는 다빈치의 '예술에 완성은 없다, 포기할 뿐'이라는 말의 의미는 성장하는 존재의 가치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공포소설이 흔히 그렇듯 주인공(실질적 주인공은 화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이 처한 주변 자연경관에 대한 지난한 묘사로 시작하는 것에서부터 걱정이 앞섰지만, 책장이 넘어감에 따라 불신의 안개가 걷히더니 첫 번째 단편 <버드나무>를 다 읽었을 땐 나도 모르게 아아, 하며 탄식하고 말았다."하지만 한 가지는 네 말이 맞아. 그에 관한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말 말이야. 아니,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 좋아. 왜냐하면 생각하는 건 말로 나오게 되어 있고, 또 말이 되어 나오는 건 실제로 벌어지기 마련이거든."(p.62)러브크래프트의 말마따나 블랙우드는 실물에서 형성된 이미지와 상상의 운동으로 자극된 이미지 사이의 구분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미약한지 잘 이해하고 있으며, 특히 <버드나무>는 단 하나의 문단과 문장 부호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수록된 모든 작품은 서두르는 법 없이 차근차근 그리고 뛰어난 기교와 식견으로 진중하고 꼼꼼하게 초자연적 대상과 내적인 찌꺼기들을 묘사함으로써 우리 마음에는 꾸밈없는 공포심이 심긴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나는 책 장정과 앨저넌 블랙우드라는 작가의 이름마저 사랑하기 시작했다.
<흑뢰성>_요네자와 호노부. 나오키상엔 어울릴지언정 미스터리 쪽으로는 글쎄, 였다. 성(城)이라는 거대한 밀실이 무대이긴 하나, 기이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지하감옥에 갇힌 안락의자 탐정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활용하는 건 참으로 속 편한 짓이 아닌가, 하고.하지만 웬걸, 종국에 그걸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마냥 실제 역사에 적히지 않은 '빈 곳(작가가 인터뷰에서 야마다 후타로를 예로 들며 언급한 것은, 정해진 역사의 '입구와 출구')'은 인간의 고독과 수수께끼로 채워졌다.내부의 고독은 외부에서의 그것보다 더 수상쩍은 불안과 그늘을 데리고 와, 생사관과 가치관에 간섭하는 모순과 부조리는 <흑뢰성>에서 뒤섞여 미스터리 드라마가 된다. 부족하다 여겼던 첫 맛이 결국 납득 되는 만찬. 요네자와 호노부 씨, 잘 먹었습니다.
SF도 있고 미스터리도 있으며 그 경계 어디쯤엔가 서 있는 이야기도 있다. <폭발물 처리반이 조우한 스핀>_사토 기와무식 펑크는 이시다 이라의 <I.W.G.P.>와도 비슷한 냄새가 난다. 완독하는 순간 책 자체의 엔트로피는 감소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즐거움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수록작 <젤리 워커>는 영화 <에이리언>이나 <스피시즈>를 떠올리게 하고, 또 다른 단편 <시빌 라이츠>에는 악어거북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야쿠자가 등장한다. 그런가하면 연쇄 살인범의 미술품 수집가가 주인공인 <스마일 헤드>도 있다.그런데 어느 하나 똑 부러지게 장르를 규정하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다분히 SF스러우면서 현실적이거나 순문학 냄새를 풍기다가도 곧장 스릴러로 돌진하기 때문. 그래서인지 때론 핍진성이 묘하게 일렁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사토 기와무의 펑크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