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 웬디고 - 코즈믹 호러, 만물의 의식에 가닿다
앨저넌 블랙우드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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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이 흔히 그렇듯 주인공(실질적 주인공은 화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이 처한 주변 자연경관에 대한 지난한 묘사로 시작하는 것에서부터 걱정이 앞섰지만, 책장이 넘어감에 따라 불신의 안개가 걷히더니 첫 번째 단편 <버드나무>를 다 읽었을 땐 나도 모르게 아아, 하며 탄식하고 말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네 말이 맞아. 그에 관한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말 말이야. 아니,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 좋아. 왜냐하면 생각하는 건 말로 나오게 되어 있고, 또 말이 되어 나오는 건 실제로 벌어지기 마련이거든."
(p.62)

러브크래프트의 말마따나 블랙우드는 실물에서 형성된 이미지와 상상의 운동으로 자극된 이미지 사이의 구분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미약한지 잘 이해하고 있으며, 특히 <버드나무>는 단 하나의 문단과 문장 부호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

수록된 모든 작품은 서두르는 법 없이 차근차근 그리고 뛰어난 기교와 식견으로 진중하고 꼼꼼하게 초자연적 대상과 내적인 찌꺼기들을 묘사함으로써 우리 마음에는 꾸밈없는 공포심이 심긴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나는 책 장정과 앨저넌 블랙우드라는 작가의 이름마저 사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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