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빼기 3 - 어느 날… 남편과 두 아이가 죽었습니다
바버라 파흘 에버하르트 지음, 김수연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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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남편과 두 아이까지 모두 잃었다. 넷이었던 행복한 가정에서 바버라 홀로 남았다. 『4 빼기 3』은 그 기록이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처럼 과거의 기억이라는 세계로 떠나는 출구는, 빗물 받는 통 안에 들어가 환하게 웃고 있는 남편의 사진일까. 아니면 <포도도 잘 먹고 물건 숨기기도 잘하는> 아이에게 유치원에서 만들어준 상장일까. 저자는 침대를 벗어나는 게 무척이나 두렵다. 현실에서 떼어놓은 가족 세 명이 그녀를 저 바깥세상으로 데리고 나가줄 수 있을까, 하는 건 그녀로 하여금 의심 없이 믿는다는 게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려준다(p.190).

그러나 바버라는 눈물샘을 자극하며 칭얼대지도, 지나치게 염세적이지도 않다. 심지어 장례식을 치르면서 피에로 축제(!)를 한다. 바버라와 그녀의 남편은 모두 피에로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실제로 <빨강코 피에로 의사회roten nasen clown doctors>에서 피에로로 활동한다). 나비는 애벌레 시절의 기억이 전혀 없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자신이 태어난 곳을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ㅡ 탈바꿈하기 전의 시간들을 기억해내는 것(p.259). 기억은 잊혀도 본질은 남는다. 그 본질은 세 명의 가족이다.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고통 받았지만, 그 가족 때문에 바버라는 살아간다. 아니 살아 남는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미치광이 같은 현실을 억지스럽지 않은 희망으로 대한다. 그래서 결국 <어느 날… 남편과 두 아이가 죽었다>에서 출발하지만 <어느 날… 남편과 두 아이는 다시 내 가슴 속에서 살아났다>로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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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시
아모스 오즈 지음, 김한영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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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amos oz의 『삶과 죽음의 시rhyming life and death』. 머리가 아프다. 상상인지 현실인지 심지어 아직도 모르겠다. 아직도 상상인지 모르겠다. 현실인지 심지어 모르겠다. 모르겠다 나는 심지어 아직도.*  주인공 <저자>가 뿜는 끝없는 상상의 똬리는, 도중에 멈출 수 없는 사정射精과도 같이 거침이 없다. 그런데 실제 ㅡ 실제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하면, 나는 심지어 아직도 모르겠다! ㅡ 로는 세피아 빛 사진의 시대에서 온 사진사처럼 셔터를 눌러 유령으로 바뀐 것인지도 모른다(p.128). 마술적 허구주의나 난폭한(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텍스트는, 이 작품을 더욱 가볍거나 더욱 무겁게 혹은 대상을 관통하거나 속박된 시詩를 표방한다 ㅡ 영화 《스내치》에 등장하는 후, 하고 불면 사라지는 브릭탑의 돼지우리처럼. 아니면 작가는 작품에서 아예 자신을 흔적조차 없이 제거했을 수도 있다. 현실과 판타지가 샴쌍둥이에서 온전한 하나의 숨죽인 목소리가 되었기 때문에. 아모스 오즈는 삶의 성질과 죽음의 성질을 연결하고 통합했다. 파편적인 것을 축적하고 그것들을 활자로 치환하여 극렬하게 소비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완전히 개방된 <삶과 죽음의 시>와 마주하게 된다. 현실의 그림자는 엄청난 함의로, 상상의 공간은 잠겨 있지 않은 출구가 되기 때문이다. 즉 여기 이 모든 건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이고 우습고 끔찍하다는 결론이거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실히 알기 위해 불을 켤 가치가 있거나(p.159-160).

* 지금 이 자는 아모스 오즈의 『삶과 죽음의 시』에 나오는 구절을 어쭙잖게 갖다 쓰려 한다. 아모스 오즈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글쎄, 어디 봅시다. 당신은 심지어 아직도 모르겠다? 아직도 당신은 심지어 모르겠다? 심지어 아직도 당신은 모르겠다? 아직도 당신은 심지어 모르겠다? 아직도 심지어 당신은 모르겠다? 모르겠다 당신은 심지어 아직도? 자, 이 중에서 적합하지 않은 것을 지워 보시오.(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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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조절구역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장점숙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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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그리고 (특히)『파프리카』를 써놓고 어떻게 『인구조절구역』 같은 책이 탄생하게 됐지? 영화《쏘우》나 《배틀 로얄》을 닮아있는 건 분명한데 이 작품은 역자 후기에 나오듯 블랙유머의 재탄생에 근거한다. 그런데 고령 인구가 많아져 인구조절의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죽여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은 살 수 있다는 <노인상호처형제도>라니. 게다가 누가 누구를 죽이는 건 신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짓이니 신을 섬기는 자신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신부는 또 뭐야 ㅡ 이와 동시에 절 주지승이 부르는 애도를 가장한 우스꽝스러운 노래도 등장해 주시고 계신다. 프로 레슬링처럼 링 위에서 벌이는 미치광이 살인극도 있고. 

죽일 때마다, 죽어갈 때마다
되살아날 때마다, 그리고 다시 죽일 때마다
나는 애정을 느낀다네
죽은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네

ㅡ 본문 p.239 어느 주지승의 <장례를 위한 보사노바> 中


그러나 <늙음 = 죄>라는 명제를 두고 있어서 불편하고 불쾌한 건 어쩔 수 없다. 반대로 이것이 설득력을 가져온다는 건 주제 자체가 엄청나다는 것에 기인하기도 한다. 이 서로 죽고 죽이는 과정을 생중계하는 건 《박수칠 때 떠나라》를 상기시키기도 하고. 그런데 웬걸. 이건 코미디다 ㅡ 앞에 <블랙>을 붙이든 그렇지 않든. 패악스런 난도질과 인간의 본능(꾸물거리는 조악함)을 염세적인 칭얼댐으로 그리지 않아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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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무도 - 왜 우리는 호러 문화에 열광하는가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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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네이크 온 어 플레인snake on a plane》을 두고 하는 말 ㅡ <그냥 내 생각인데, 당신이 이 영화를 싫어한다면 도대체 뭐하러 이 글을 읽고 있는 거지?> ㅡ 은 뻔뻔함의 극치다. 내가 이 영화를 봤을 때 느꼈던 충격이란, 이게 대체 공포 영화야 코미디 영화야 하는 식의, 이 영화를 보는 시간에 1,0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읽었으면 적어도 3분의 1은 읽었으리라는 생각에서 나온 처절한 비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스티븐 킹이 이야기하는 <우웩gross-out> 단계로서는 탁월하다. 비행기 안에서 발광하는 뱀들 중 한 마리가 어느 뚱뚱하고 음탕한 여자의 눈을 파먹는 장면이 생각났기에 ㅡ 그것도 너무 적나라하게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죽음의 무도』는 지난 30년 동안의 테러와 호러를 다룬 아주 편안한(!) 결과물이다. 공포 영화가 제공하는 예술적 가치는 대단하다. 영화관에서 공포 영화를 보며 티켓 값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영화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그런 보장은 전혀 없지만). 우리가 대처해야만 하는 심증적인 두려움, 공포라는 것의 보편타당성, 사회적 공포의 경향성의 차이 등 <공포>라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풀어나가는 서술과 위트는 이 책이 방관자의 입장이 아니라 우리를 직접 소스라치게 놀라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공포(그 중에서도 영화)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대단한 책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성직자의 얼굴에 구토하고 십자가로 자위하는 《엑소시스트the exorcist》, 《트와일라잇twilight》을 얄팍하게 보이도록 하는 《황혼에서 새벽까지from dusk till dawn》, 뭉크의 「절규」 가면을 쓴 사이코가 나오는 《스크림scream》, 너무나도 멋지고 탁월했던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 ㅡ 스티븐 킹의 말을 빌리련다. <이 영화를 싫어한다면 도대체 뭐하러 내 허섭스레기 같은 서평 같지도 않은 서평을 읽고 있는 거지?>, 그리고 공포 영화를 패러디하고 <왕 가슴 언니들>을 등장시키는 수많은 코미디 영화들. 그래서 나는 이 『죽음의 무도』를 진지하게 읽고, 진지하게 공포에 떨었으며, 진지하게 웃었다. 공포라는 장르가 대중에게 어필하려면 피로 점철된 <우웩> 같은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은 공포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심층적으로 끌어나가도록 하고 있으며 그 개념들을 조리있고 재치있게 이야기한다(7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더욱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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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선물 - 커피향보다 더 진한 사람의 향기를 담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히말라야 커피로드 제작진 지음 / 김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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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피를 ㅡ 조금 과장해서 죽음에 이를 정도로 ㅡ 특히 대학생일 때와 군 시절 ㅡ 많이 마셨다. 그리고 지금은 하루에 1잔, 많으면 2잔을 마신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커피 이야기가 아니라 히말라야 말레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마을이라 하기엔 가구 수가 너무 적지만). 문득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이나 《아프리카의 눈물》을 떠올릴 법도 하지만 『히말라야 커피로드』는 전자의 신기함과 생소함이 아니라 커피 향내의 벅찬 기다림의 열매를 보여준다. 정체 모를 빨간 열매, 그리고 <칼디의 전설.> 또 기가 막힌 극적인 구성처럼, 이 마을 이름은, <좋은 사람들이 여기 정착하다>라는 뜻의 <아스레와 말레aslewa male>에서 온다.

 
우리가 정성스레 길러낸 이 커피 열매가
어떤 이들의 입 안을, 어떤 이들의 가슴을 향기롭게 해줄지
우리는 알고 싶습니다. 


이 달큼하고 쓴 검은 음료. 공정무역이건 뭐건, 내가(그리고 당신이) 마시는 커피는 저 말레 사람들의 숨결이 닿은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농부들은 이 책에서 많은 것을 쏟아놓았다. 그들은 커피 색으로 기적을 물들이고, 커피나무를 껴안았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여기지 않고 집 밖의 커피에 행복해했다. 내가 지금 들고 있는 커피는, 이 커피의 탄생을 거슬러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릴 거다. 그래서 뒤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중요한 것들은 모두 뒤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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