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마냐님 서재 이벤트에서 선물 받은 리버타운을 읽고 있다.

거기서 발견한 글귀,

"조이스 캐롭 오츠(Joyce Carol Oates, 미국의 여류작가로 현대 미국인의 불안을 탁월한 시각적 이미지와 심리 묘사로 그려냈으며 O. 헨리상, 전미 도서상 등을 수상했다. [나와 더불어 그대 뜻으로], [블랙워터]같은 작품이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나와 있다."

그렇다면 확인 작업들어감 과연,

 검색어 - 키워드 : “나와 더블어 그대 뜻으로”, 검색결과 - 총 검색조건을 만족하는 책이 없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

<블랙워터>는 있다. 근데 이미지가 없다. 그럼 소굼님에게 가야겠다. 이 사실을 알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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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회·영남대 한문교육과 교수

들로 나가보니 논에는 벌써 누런빛이 짙다. 날씨도 선선하여 가을이 완연하다. 그 무덥던 여름도 언제 그랬냐는 듯 홀연 가버렸다.

휙 지나가버리는 무상한 것은 돛을 단 배와 사람의 나이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한 세이쇼나곤(淸少納言)의 말이 그럴 법하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계절 분위기에 어울리는 정취(情趣)있는 책을 골라 읽고 싶다.

“가을이란 하늘의 별다른 가락이라”고 말한 장조(張潮)는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읽기에는 가을이 마땅하니 그 운치가 남다른 까닭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삶(幽夢影)’, 정민 옮김, 태학사> 책이 계절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마는, 별다른 가을에 남다른 맛을 주는 책을 접하는 것도 운치있는 일의 하나이리라.

행복하게도 올가을에는 그런 책을 만났다. 십여일 전 출간된 ‘마쿠라노소시(枕草子)’(정순분 옮김, 갑인공방)가 바로 그 책이다.

저자 자신이 “할 일 없는 시골 생활 중에, 눈에 보이고 마음속에 생각한 것을 설마 남이 보겠나 하고 써서 모은 것”이라고 고백한 수필집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0년 전에 지어진 일본 고전 수필의 효시로서, 세이쇼나곤이란 고위직 상궁(尙宮)이 지은이이다. 한 여성이 관찰한 인생 이야기 300가지를 잔잔하고 담백하며 독특한 문체로 써나갔다.

1000년 전 일본 여자의 삶과는 아무런 교섭도 없는 내게 이 수필집이 곰살맞게 다가오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 담백하고도 예민한 감각, 여성적 시선과 언어가 발산하는 멋이 매력적이고, 인생에 대한 통찰이 생동하여 이틀 만에 다 읽기는 했으나 너무 빨리 읽은 것 같아 종내 아쉽다.

그녀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방법을 알았던 것 같다. 그윽한 멋이 풍기는 인생사를 몇 가지 드는데 “방 한쪽 구석이나 장지문 뒤에서 들을 때, 식사 중인지 젓가락 소리와 숟가락 소리가 섞여서 들리는 것.

그런 때 주전자 손잡이가 탁하고 옆으로 넘어가는 소리 또한 마음이 끌린다”라고 쓰기도 했다. 젓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나 주전자 손잡이가 넘어지는 소리에 마음이 끌리고 그런 데 시선을 두어 글로 쓰는 것이 1000년 전 사람의 감각으로 어떻게 가능할까?

그 예민한 감각이 신선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에 대한 포착은 그녀의 장기다. “두세 살짜리 아기가 막 기어오다가 작은 티끌 하나를 발견하고 그 조그만 손으로 집어서 어른한테 보여줄 때는 정말이지 귀엽다”고 앙증맞고 귀여운 것을 포착해냈다.

인생살이 순간순간에 맞닥뜨리는 우연하고 찰나적인 행위에서 행복과 멋을 발견하여 담담하게 자분자분 말하듯이 전해준다. 생활에서 발견하는 유현(幽玄)한 삶의 미학이 그의 수필에는 번득인다.

“남몰래 만나는 애인 목소리를 항상 만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들었을 때나 누군가 그 사람 얘기를 화제로 올렸을 때도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원래 가슴은 조마조마하게 마련인가 보다. 어젯밤에 왔다 간 남자가 아침에 편지를 늦게 보낼 때도, 그게 설령 남의 일일지라도 조마조마하다”라고 남자를 기다리며 가슴 졸이는 사연을 묘사할 때도, “급한 병자가 생겨 수도승을 부르려는데 마침 자리에 없어 하인이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겨우 불러와 한숨 돌리고 기도를 올리게 했더니, 요새 장사가 잘 돼서 자주 불려다녔는지 앉자마자 다라니경 읽는 소리가 반쯤 조는 소리인 것도 정말 밉살스럽다”라고 분위기 썰렁하게 만드는 일을 들 때도 인생에 대한 그녀의 시선은 따뜻하다.

▲ 안대회·영남대 한문교육과 교수

뿐만 아니라 인간 심리와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가 보인다.

‘마쿠라노소시’는 그동안 읽어왔던 한국이나 중국, 나아가 서구의 수필과는 멋과 맛이 다르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별다른 맛이지만 깊이 음미할 만하다.

운치가 남다른 계절에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정취의 수필집을 읽는 것도 특별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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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9-18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4-09-18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9-18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4-09-1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곤 소곤/다행이어요. 근데 그거 알아 뭐할려구요? 그냥 그대하고 나하고 서재에서 재밌게 놉시다. 흐흐.

mira95 2004-09-18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수필이라..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stella.K 2004-09-18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말예요. 저도 일본문학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왠지 땡기는데요.^^
 
 전출처 : 바람구두 > 나의 책읽기 - 04

나의 책읽기 - 04

손이 기억한다.

"개관하기 -> 포스트 잇 -> 밑줄 긋기"까지 왔습니다. 그 다음에 남은 것은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손으로 옮겨 적는 겁니다. 저는 손으로 적습니다. 노트나 수첩에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적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손으로 적는 것이고, 그게 영 어려울 때는 먼저 컴으로 적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렇게 적은 노트나 수첩을 애지중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해버리는 것에 비중을 두는 거지, 그걸 뭐 나의 비망록에 적어두고 두고두고 기억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기억에 안 남는 걸 어쩌겠어요. 흐흐. 하여튼 그렇게 적어둔 걸 다시 컴에 저장해둡니다. 한글 워드프로세서로 해두면 찾기 귀찮아져서 워드패드라고 하는 메모장에 그냥 적어둡니다.

종종 "박사가 옛날 박사지 요새 박사가 무슨 박사냐"는 말을 합니다. 제갈량이란 중국의 지식인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융중에 묻혀 책만 읽은 사람이 세상 만사 돌아가는 일에 죄다 해박합니다. 장강에 시시때때로 동남풍이 불어오는 것도 알뿐만 아니라 도교의 무슨 비술을 익혔는지 제 수명까지 연장할 수 있는 비기를 알고 있는 인물이죠. 제갈량 시대에 출판된 책이 과연 몇 종이나 있을까요? 저는 종종 지역마다 보물을 얻는 방법이 어떻게 차이나는지 누구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테마를 정해 연구해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으리라 생각해보곤 합니다.

가령, 알라딘이 마술램프를 어디서 구하던가요? 알라딘이 마술램프를 구하는 곳은 우습게도 시장입니다. 일찍이 대상무역에 종사하던 아랍 지역의 유목민들에게 사막을 걷다가 우연히 마술램프를 구해도 되겠지만, 그네들은 상업이 발달하였기에 시장(바자)에서 마술램프를 구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 우리네 전설에서 보물을 구하는 건 어떤 방법을 통해서 일까요? 대개는 산에 나무 하러 갔다가 구해옵니다. 아마 우리나라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게 산이고, 그만큼 생활과 밀접한 대상이라 그렇겠지요. 아랍에서 보물은 시장에서 돈 주고 우연히 사는 행운이지만, 한국에서 보물은 산에 올랐던 나뭇꾼이 우연히 선녀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듯, 도깨비들 놀래켜주었다가 도깨비 방망이를 얻든, 아니면 연못의 신령에게 금도끼, 은도끼를 얻듯 우연히 습득하거나 꾀를 부려 얻는 것이죠. 그렇다면 중국에선 보물을 어찌 얻을까요? 우리와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만, 그네들은 선인들을 통해 그것을 얻나봅니다.

중국의 선인들이란 도가적인 인물들인데, 이네들은 원래 인간이지만 많은 공부와 신술비기를 익혀 선인이 됩니다. 삼국지의 유명한 황건적 두목인 장각이 비서인 태평요술서를 얻는 것도 매한가지죠. 그런데 장각이 이 책을 얻었다고 저절로 선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장각 역시 산속 동굴에 들어가서 몇년씩 태평요술서를 공부하여 선인이 되고, 도인이 되지요. 중국에서는 책이 곧 보물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중국의 무협영화들에 등장하는 비급이니, 비기니 하는 것도 죄다 무슨무슨 무예의 초식들을 적어둔 책입니다. 그리고 그런 비기를 익히는 동방불패니 이런 사람들도 다 그런 책을 통해 열심히 공부하고, 무공을 연마해서 초절정고수가 되지요. 이렇듯 중국에서 책이 보물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책 구하기가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중에 융중의 초려에서 농사짓고, 물고기 낚시나 하던 제갈량이 구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이 과연 몇권이나 되었을까 생각해보는 건 아마 불온한 상상일지는 모르겠으나 역시 많이 읽지는 못했을 거란 걸 상상하기는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반복하라, 가죽끈이 끊어질 때까지....

독서에 대해 전해지는 명언들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말은 가죽으로 맨 책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책을 읽는다는 뜻입니다. 흔히 독서에 힘쓴다는 말로 해석하는데, 맞는 말이면서 당시의 독서가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지를 상상케하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물론 당시의 책이 꼭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부들부들한 종이가 아니라 대나무 조각(죽편)을 엮어 만든 책이기에 가죽이 더 쉽게 떨어졌을 수도 있지만 이것을 세 번이나 끊어뜨릴 정도라면 얼마나 반복해서 같은 책을 읽었을지 상상이 가는 일입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한우충동(汗牛充棟) "이란 말인데 이는 소가 땀을 흘릴 만큼 수레에 실은 책의 무게가 엄청나고, 이 책을 쌓아올린 것이 용마루에 부딪칠 만큼이란 뜻입니다. 저도 이사를 몇 번 다녀봤지만, 친구들이 도와주러 다녀간 뒤 늘 하는 말이 "다음부턴 부르지 마."입니다. 이삿짐 중에 제일 힘든 이삿짐이 책짐이란 건 서재를 즐겨 이용하는 분들은 다들 알만한 내용이겠지요. 그런데 그 당시의 책은 역시 대나무였습니다. 이와 흡사한 말로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란 말이 있어요. 여성분들이 듣기엔 좀 그런 내용이긴 하지만 어쨌든 옛날 얘기니까 말씀 드리면 이 말의 뜻은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마 그 수레에 불 불이면 잘 탔겠지요. 대나무 자체에도 기름기가 있지만 읽은 사람의 손때에서 묻어난 기름도 대단했을 테니까요.

어찌되었든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퇴계 이황 선생도 하셨던 말씀이죠. 퇴계 선생은 “책이란 정신을 차려서 수없이 반복해 읽어야 하는 것이다. 한두 번 읽어 보고 뜻을 대충 알았다고 해서 그 책을 그냥 덮어버리면 그것이 자기 몸에 충분히 배어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옛 선인들의 공부법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갈량도 그렇게 공부했을 겁니다. 우리 근대의 지식인들만 하더라도 책 내용을 줄줄 외우는 암송에 의한 독서법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근원수필의 저자인 근원 선생도 암기력이 매우 뛰어나서 한문 고전들을 외워서 어느 부분을 묻더라도 막힘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하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워낙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정보량도 많은 시대이긴 하지만, 많은 정보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적지만 알찬 책을 여러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 실제의 활용이나 응용이란 측면에서 더욱 보탬이 될 수 있습니다. 자, 개관하고, 책에 질문을 걸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밑줄 긋고, 두번 세번 읽고, 손으로 옮겨적고까지 왔습니다. 그 다음엔 뭐가 남았을까요.

책 쓰는 아마추어

그렇습니다. 그 다음엔 책을 다시 쓰는 겁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는 숙제를 내주면 줄거리만 줄줄 베껴서 낸 기억들이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이렇게 숙제를 하면 아마 선생님이 차근차근 일러주셨겠지요. 독후감이란 말 그대로 책을 읽은 뒤에 너의 느낌을 적는 글이란다. 앞으론 줄거리를 베끼지 말고 네 감상을 적어보렴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줄거리를 요약해보라고 시키고 싶네요. 만약 그것이 문학작품이 아니라면 더욱더 줄거리를 요약해보는 일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줄거리가 아니라 그야말로 책의 구조를 빼내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시 구성해내는 걸 의미하죠.
아마 학교 다니면서 공부할 때 다들 해본 일일 겁니다.
예를 들어 한 권의 책을 선정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지요.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의 목차를 봅시다.

제1부 인간과 시장

경제학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 제레미 벤담
시장경제도 계획경제다 : 아담 스미스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
꼬리가 개를 흔든다? : 토마스 로버트 맬더스
'대박'의 경제학
사회보험, 위험의 국가 관리
마약, 매매춘, 포르노의 경제학
누구나 자기 몫을 가질까?

경제학 카페의 제1부는 "인간과 시장"입니다.
제1부에서 유시민은 고전경제학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레미 벤담의 공리론적인 의미에서 경제란 무엇인가를 논한 뒤에 국부론의 아담 스미스의 경제이론을 요약하고, 다시 맬더스의 경제학 이론을 다룹니다. 뭐 내용은 지대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들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목차에 모든 것이 나와 있습니다. 그걸 앞서 제가 말씀 드린대로 차근차근 해본 뒤에 본인이 읽고, 포스트잇 붙이고, 밑줄 긋고, 손으로 옮겨적고 난리 친 것을 조금씩 타이핑 해 놓는 겁니다. 이때 그저 베끼는 것도 방법입니다만, 자신이 물었던 질문에 대한 저자의 응답만이 아니라 본인이 알아낸 지식들을 함께 담아놓는 겁니다.

가령 "유시민의 경제적인 관점이 모두 옳아. 아, 유시민! 너는 왜 그리 멋진 말만 골라서 하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 이외에 아무론 생각도 들지 않는다면 구태여 제가 말씀드린 방법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오호, 유시민! 그래, 이런 부분은 그대가 하는 말이 맞아. 나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어. 하지만 말이야. 유시민 선생!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다른 학자들은 그대와는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던데, 나 역시 이 부분은 그들의 말이 더 맞는 것 같거든." 한다면...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비판적인 재구성이 가능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당신만의 관점을 재구성하여 그 글 속에 녹여낼 수 있다면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세요.

처음엔 좀 어렵겠지만, 몇 번 노력하고 공부하다 보면 그 방면에 대해 이런 제목의 책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줌마가 연 경제학 카페
- 유시민 씨 그건 좀 아니예요."

제1부 인간과 시장
경제는 밥그릇 싸움이다.
경제? 아직도 한다고 생각해, 경제는 되는 거여
맬더스 씨, 정신 차리세요.
'대박'의 경제학과 소시민의 꿈
사회보험, 국가 관리의 위험성을 폭로하며
결혼도 매춘이다.
이제 여성의 몫을 주장할 때다...


이 얘기가 꿈만 같은가요? 뭐, 김어준이니 한비야니 하는 사람이 날 때부터 잘 나갔던 건 아니죠. 흐흐.  까짓거 책 한 권 못 내보면 어때요? 대신에 경제학에 대한 기초는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다음 번엔 계통 밟아 읽는 책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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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소굼 > 혹시 알라딘 카드 결재시 복권 등록 하세요?

알라딘에서 카드로 결재를 하고 나서 주문조회란의 비고에 보면
카드전표가 있잖아요.
그걸 누르면 아래에 복권등록이 있거든요.
예전에 한번 당첨이 됐던 적이 있었죠. 만원이었던가.

혹시나 모르시는 분들 있을까봐요^^;
항상 체크카드로 결재하거든요 저는?
오케이 캐시백에 체크카드 자체 캐시백도 있고...저런 무료복권도 있어서 말이죠.
운이 좋으면 뽑힐 수도 있으니까요^^

//설마 다 알고 계시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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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밥헬퍼 > 김수영의 '풀'과 이어령의 '풀들의 혁명'

 시 자체와 함께 시를 해석하는 방식이 저에게는 많은 도움을 주었던 글입니다. 시간과 공간, 관계된 사람이나 사물,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시뿐만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데 도구가 되었습니다.  *본문의 그림은 당시의 그림을 찾기 어려워 동일한 화가의 그림을 다시 옮깁니다. 창현 박종회 화백   

.................................................................

다시 읽는 한국시 -이어령-



 

 

 

 

 

 

 


                           김 수 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현대문학 1968년 8월호>


왜 당구대는 초록색인가. 이상스럽게도 카드놀이나 룰렛판이나 서양의 놀이판은 모두가 초록빛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많다. <유럽의 색채>를 쓴 미셀 파스투로는 그것이 16세기때부터 내려오는 풍습이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푸른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고 골프를 하는 스포츠를 보면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유럽의 지중해성 기후는 농작물을 기르는데는 적합지 않지만 양떼나 젖소가 뜯는 목초를 기르는데는 이상적이다. 그래서 유럽사람들의 생활은 목장의 풀밭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서구문학에서는 풀이 생명과 활력의 상징물이 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월트 휘트먼의 <풀잎>이다. 서구 사람들이 이상으로 삼아온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므로 당구대에 깔린 초록색 나사는 지금도 집집마다 잔디를 심는 서양사람들의 풍속처럼 초지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는 목장 문화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김수영 시인의 <풀>읽기는 당구대의 놀이판과 대단히 흡사한 데가 있다. 풀에 대한 그리움과 찬양만이 아니라 당구대 위에 흩어진 당구공처럼 그 시인의 언어 역시 희고 붉은 양색깔로 선명하게 나뉘어 있다.

  ‘날이 흐리다’,‘바람이 불다’와 같이 기상조건을 나타내는 말들이 ‘흰 공’이라면 풀에 관한 말들은 그와 대비를 이루는 ‘붉은 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는 ‘바람’과 ‘풀’의 두 언어가 서로 부딪칠 때 생겨나는 ‘눕다’와 ‘일어나다’의 서술어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간다. 이 시에는 거의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행위(동사)에 관련된 부사들은 도처에, 그리고 시적 메시지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로 등장한다.


솔, 창현 박종회, 문인화, 70*40

 

  風靡(풍미)한다는 한자말이 암시하고 있듯이 바람이 불면 모든 풀잎은 일제히 한쪽 방향으로 나부끼며 쓰러진다. 풀이 눕는다는 것은 곧 바람에 굴복하고 순응하는 풀의 패배이며, 일종의 작은 죽음인 것이다. 그러나 풀의 일어난다는 것은 그와는 정반대로 생명과 자유를 되찾는 것이며, 독립적인 의지를 나타내는 승리인 것이다. 이렇게 눕다/일어서다의 대립항을 어떻게 선택해 가고 또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서 그 언어의 공이 굴러가는 성질과 속도, 그리고 그 방향과 미묘한 부딪힘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는 그 움직임을 제어하는 부사가 당구대의 쿠션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눕다에 중점을 둔 1연의 풀들을 보면 안다. 그 풀들은 바람 부는대로 움직인다. 바람의 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억눌리고 쓰러지는 순응의 풀이며 수동적인 풀이다. ‘풀이 눕는다’로 시작하는 그 시행은 계속 그 뒤에도 ‘나부끼다’와 ‘울다’로 이어져 갈 뿐이다.

  그러나 주어와 술어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지만, ‘드디어 울었다’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에서 ‘드디어’ ‘더’ ‘다시’와 같은 부사가 누워있는 풀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미묘한 움직임의 변화를 나타낸다. 드디어 울었다는 것은 참고 있었던 풀의 의지를, 그리고 ‘더 울었다’는 증대되어가는 좌절의 의미를, 그리고 ‘다시 누웠다’의 그 ‘다시’는 계속 일어나려고 노력하던 풀의 잠재된 행위와 그 지속성을 묻어둔다.

  그래서 풀의 의지를 숨겨두었던 그 부사들이 2연째에 오면 ‘빨리’와 ‘먼저’로 발전해서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와 ‘바람보다 더 빨리 운다’의 능동적인 풀을 만들어 낸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는 것은 수동적이었던 풀ㄹ이 이제는 자기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능동적 풀로 변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람과 풀의 행위는 이미 같지 않은 것이다. 이 같지 않은 속도의 그 작은 틈새 속에서 ‘풀’의 자유와 의지가 번뜩이기 시작한다. 그것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람보다 빨리 일어난다’이다. 일어난다는 것은 저항이며 생명이며 희망이자 승리이다. 그것은 풀들의 작은 혁명이다.

  눕다/일어나다의 대비를 극대화한 것이 3연의 풀이다. 1연의 바람에 눕는 풀이 2연에 오면 바람보다 빨리 눕는 풀로, 그리고 그것이 3연에 오면 바람보다 늦게 눕고 바람보다 빨리 일어서는 풀이 된다. 그래서 이 전체의 시적 구조는 음악용어로 말하자면 크레센도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1연의 나부끼는 풀이 3연에서는 뿌리째 눕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바람의 강도와 흐린 날씨의 정황은 ‘발목까지’, ‘발밑까지’ 내려와 결국엔 ‘풀뿌리가 눕는다’로 증대된다.

  풀뿌리가 눕는다는 말은 이미 그 풀이 단순한 식물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적인 풀의 경우는 뿌리가 뽑히는 경우는 있어도 바람에 눕는 일은 없다. 그래서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할 때의 바로 그 풀뿌리처럼 이 풀들은 식물 언어에서 정치적 이념어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바람에 눕는 1연의 사실적인 풀이 바람보다 빨리 눕는 2연의 비사실적인 풀로 옮겨가고, 그것이 다시 3연째의 바람보다 늦게 눕고 바람보다 빨리 일어서는 반사실적인 풀로 바뀌어가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눕다/일어서다의 대립적 행위를 수식하는 언어들 역시 ‘다시’에서 ‘빨리’로, 그 ‘빨리’에서 ‘늦게’로 바뀌어지면서 시 전체의 긴장과 풀의 의미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눕다와 동격인 ‘운다’란 말이 3연에 오면 ‘웃는다’로 바뀌고 바람과 풀의 대응관계를 나타내는 비교어 역시 빨리/늦게, 먼저/늦게의 대비로 무력한 풀의 의미를 반전시켜 ‘거대한 풀뿌리’를 만들어 낸다.

 

 

낙엽은 가시덤불에서, 창현 박종회, 문인화

 

 ‘풀이 눕는다’로 시작한 이 시가 마지막에 오면 ‘풀뿌리가 눕는다’로 그 상황이 한층 더 가열한 것으로 변해 있는데도 ‘우는 풀’은 ‘웃는 풀’로 변신되어 있다. 김수영의 식물원에서 자라는 풀들은 이파리를 나부끼게 하는 바람보다도 뿌리를 흔들어 놓은 바람 속에서 더욱 자유롭고 강한 풀이 되는 까닭이다.

  풀을 압도하고 압도하는 바람, 이파리와 줄기와 그 뿌리까지 누이는 거대한 바람의 힘, 그리고 비를 몰고 오는 흐린 날의 기상은 대체 무엇인가. 그 풀이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할 때의 바로 그 풀뿌리라고 한다면 그 바람과 흐린 날은 民草(민초), 그 당시 유행하던 말로 하자면 민중의 자유를 억압하고 그 생존을 위협하는 정치세력들이라는 것은 너무나 뻔하다. 그런데도 김수영 시인의 언어들이 다른 정치이념을 구호화한 시와 비교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뻔한 알레고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예츠의 말이었던가. 시를 쓰는데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알레고리에 빠지지 않게 하는 일이다.

  당구는 직선운동이면서 그것을 치는 큐의 변화에 의해서 그리고 쿠션을 이용한 간접적인 작용에 의해서 표적구를 때린다. 김수영 시인은 시를 총으로 생각하지 않고 당구대의 큐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흰공, 붉은공의 그 단순한 도식을 언어들을 갖고서도 무한한 변화와 유연성, 그리고 최대의 유희성을 획득한 초원의 시학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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